중국여행을 다녀와서
(서안, 장가계 문화유적 답사)
김 재 식
2005. 8. 2. 오전 8시 30분, 인천국제공항에 우리 일행 14명은 상기된 표정과 산뜻하고 가뿐한 차림으로 시간에 맞춰 나타났다. 10시 30분 정각에 우리의 서안행 비행기는 무거운 동체를 움직여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12시 30분에 서안 공항에 도착 ‘최선자’라는 조선족 가이드가 맞이하여 우선 공항식당에서 점심부터 먹었다. 30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古都 서안은 장안, 낙양으로도 불렸던 곳인데 오래동안 중국의 수도였다. 그래서 땅만 파면 문화재가 나온다고 하여 이 곳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주처럼 곳곳에 황제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는데 경주의 능과는 달리 산으로 되어 있다.
맨처음 관광한 곳은 碑林이다. 흩어져있던 비석들을 한곳에 모아 놓았다고 한다. 유명한 안진경, 왕희지가 쓴 비석들도 있었고 특히 거북이가 비석을 받치고 있어 우리나라의 무열왕릉이 생각났다.
소안탑을 경유하여 대안탑을 찾았다. 삼장법사로 잘 알려진 현장법사가 인도를 여행하고 수백권의 불경을 들여와 이곳에서 번역하였다고 하는데 이를 기리기 위해 유일한 여자황제인 측천무후가 이곳에 높은 10층 전탑을 세웠다고 한다. 3000원 거금을 내고 탑을 올라갔는데 실망스러웠다.
삼장법사는 불경, 지팡이, 밥그릇 이 세가지를 꼭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유명한 만두요리 전문 식당인 교자연에서 15가지의 만두요리로 저녁을 맛있게 먹고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을 노래한 당락궁 쇼를 관람하였다. 오페라에 가까운 화려한 공연이었다.
서안 거리 풍경은 빈부의 차가 그대로 보인다. 거리는 매우 깨끗한데 청소부들이 자기 구역을 하루 종일 청소하고 있었다. 일방통행인 곳이 많으며 신호등이나 횡단보도가 별로 없고 있어도 잘 지키지 않는다. 만만디 성격이 잘 나타난다. 복잡한 거리에서 자동차 경적소리도 별로 나지 않는다. 희한한 도시이다.
5星級인 하야트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이틀째 첫 번째 코스로 서안의 옛 성벽을 관광하였다. 매우 높고 견고한 성벽은 우람한 4개의 동서남북 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명나라때 복원하였다고 한다. 성벽위에는 자전거, 코끼리 열차가 관광객들을 태우고 달리고 있어 우리도 높은 성벽위에서 서안시내를 내려다보며 長樂門에서 西安驛까지 2km 쯤 달려보았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을 잘 안 해먹고 저녁도 친지들과 모여서 외식을 즐긴다고 한다. 주로 밀가루로 된 음식을 주식으로 하고 여자들이 대우받으며 돈도 잘 벌어온다고 한다.
다음 코스로 양귀비와 현종이 사랑을 나누었다는 옛 휴양지인 화청지로 향했다.
양귀비는 현종의 며느리인데 망측하게도 그 미모에 현혹되어 현종이 부인으로 삼았다. 체중 74kg 키 165cm 매우 통통하고 글래머였다고 한다. 안록산은 양아들인데 양귀비의 기둥서방이었다고 한다. 안록산의 난이 있고 양귀비는 목메어 죽고 그 일가는 멸문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사용했다는 목욕탕, 석류나무, 연못, 등 설명을 듣고 점심을 먹은 후 기다리고 기다리던 8대 불가사의 진시황 병마용갱에 도착하였다. 그 규모가 어마어마하였고 관광객도 무척 많았다. 진시황은 39세에 천하통일을 하였다. 등신대의 병마도용 6000개로 이루어진 지하의 군단, 죽은 황제를 사후에도 지키기 위해 흙속에 감추어진 이 근위군단은 그 하나하나의 표정은 물론이고 머리카락까지 다르게 만들었다고 한다. 같이 출토된 청동 말과 마차는 그 당시의 화려했던 진시황의 권력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그러나 漢나라 시조인 항우가 군사들을 끌고 들어와 유물들을 부수고 불지르고 손에 쥐고 있던 쇠로 만든 창을 약탈해 갔다고 한다. 오래동안 묻혀 있다가 1974년, 한 농부가 밭에서 우물을 파다가 이 병마용갱을 발견하였는다고 한다.
다리가 무척 아플 정도로 제 3실까지 있는 넓은 병마용갱 박물관을 둘러보고 근처에 있는 진시황릉에 올라가 보았다. 진시황릉은 수많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데 야산이었다. 석류나무가 빽빽이 심어져있었다. 진시황릉 속에는 그 당시 군사들과 신하, 궁녀들을 같이 매장했다고 하는데 여자는 수은을 먹여 죽였고 그 수은 때문에 석류를 따먹으면 안된다고 하였다. 진시황릉 주변과 병마용갱은 앞으로 많은 세월을 두고 발굴예정이란다.
서안의 4대 명물은 옥(비취), 석류, 탁본, 병마용 이다.
피로한 몸을 이끌고 공항으로 이동 9시 비행기로 장가계로 향했다.
장가계 공항에서 다시 원가계가 있는 곳으로 버스로 1시간 정도 이동하여 퀘천호텔에서 잠이 들었다. 이튿날 마을 사람들의 떠드는 소리에 잠을 깨어 창문을 열어보니 노동자들이 하수구를 파고 있었는데 포크레인으로 하루면 끝날 일을 일일이 삽, 곡괭이로 파고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이므로 일감을 배당하였나보다. 그래도 국제호텔 앞에서 아침부터 작업하는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는 것은 너무한 느낌이었다. 빈부의 차가 심하니 어쩔 수가 없겠지만.
첫 관광지는 보봉호(寶峯湖)이다. 댐을 쌓아 만든 인공호수이다.우리나라의 산정호수처럼 산중턱에 있으며 수심이 72m이다. 유람선을 띄우고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었다. 석회수인 듯 물 색깔은 비취색을 띄고 있으며 물고기는 당연히 별로 안 살고 있을 것 같다. 밋밋한 관광 분위기여서 인지 관광객들에게 노래를 주문하였는데 100% 한국사람이었다.
인공폭포가 장관이었고 그 앞에서 토가족들의 민속춤 이벤트가 관광객들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이어서 기다리고 기다리던 天子山으로 향하였다. 천자산은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는데 오필봉을 비롯한 수백개의 봉우리가 눈아래 펼쳐지고 있었다. 처음엔 토가족들의 호객소리에 우리나라 관광객들은 어리둥절하였다. 다들 평정을 되찾고 여유있는 표정속에서 우리의 국력을 실감할 수 있었지만 왜 우리나라 사람들만 여기에 많이 오는지 좀 이상하였고 이 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뿌리고 가는 돈에 현혹되어 생산적인 일을 내팽개치고 얄팍한 상술로만 치닫고 있는 것 같아 좀 안쓰럽기도 하였다. 물론 이들이 우리 때문에 옛날보다 풍족해지긴 하겠지만.........
천자산에서 원가계로 이동하였다. 원가계는 절묘하고 우람한 봉우리들을 바로 앞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산꼭대기에 기가 막히게 길을 만들어 놓았다. 아찔한 깊은 골짜기와 봉우리들을
바라보며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1300m라고 한다. 6억년전에 바다에서 솟아올랐다는 얘기도 있고 산이 내려앉았다고도 한다. 이 산등성이를 타고 설치해 놓은 인공 길은 4km 정도인데 15년전쯤에 설치했다고 한다. 산길이 끝나고 350M 높이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단숨에 산아래로 내려왔는데 이 엘리베이터는 독일에서 설치했다고 한다.
호텔로 돌아와 너무 많이 걸어서인지 다들 녹초가 되었는데 발맛사지를 단체로 받으니 다소 피로가 풀렸다.
3일째, 아침에 십리화랑으로 향했다. 너무 경치가 좋아 십리길이의 화랑이라고 명명하였다고 한다. 모노레일을 타고 왕복하였다. 깍아지른듯한 봉우리들을 어제에 이어서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셈이었다.
금편계곡에서는 오랜만에 보는 맑은 물에 발 담그고 휴식을 취했다. 오후에 황룡동굴로 향하였다.
이 황룡동굴은 10년전에 발견하였는데 석회암 용암동굴이다. 아래에서 자라나는 수많은 종유석과 화려한 조명장치로 너무나 신비스러웠다. 동굴길이는 15km, 동굴내부가 높아(160m) 1층은 배를 타고 다닌다. 4층으로 이루어진 코스를 수많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하여 관광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챙겨 우리는 장가계를 뒤로하고 공항쪽으로 향했다.
공항근처에 토가민속박물관을 관람하였다. 우리 나라의 워커힐에서처럼 귀빈들을 모시는 최고급 음식점이기도 했다. 우리 한국관광객들이 도착할 때 마다 둥둥!! 북을 울리고 환영의 나팔을 불고 환영연을 펼쳐주었다. 그러나 건물규모에 비해 음식도 소박하고 민속자료도 별로 보잘것 없었으며 공연도 유치하여 이 토가족들의 우물안 개구리 문화를 보는 것 같아 측은하기도 하였다.
밤 8시에 장가계 공항에 도착, 상해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었으나 상해 쪽에 태풍이 올라와 우리는 하루를 더 장가계에서 머물게 되었다. 천문산을 바라보는 세기국제호텔인데 간판이 순 한글로 되어있어서 참 이상했다.
다행히 다음날 아침에 태풍의 영향에서 벗어나 상해로 올 수 있었으나 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몸들도 지쳐있어서 상해 관광은 취소하고 서울로 바로 돌아왔다.
자연이 빚어놓은 아름다움과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두 가지를 모두 보고 돌아오게 된 즐거운 여행이었다
첫댓글 3년전에 가족과 함께 북경을 관광하였었는데 그때가 생각나는구만.....나는 별로 내키지 않았던 관광이었는데 가족들의 강제 징집에 의해 잠시 1주일동안 관광....기나긴 글 잘 읽었고 사진을 보면서 마치 함께하는 여행같았습니다.고맙습니다.
김샘 어제 반 읽고 이제 마저 읽었구만 재미있네 우린 내년에 계에서 갈예정이야 근데 마눌은 않가고 김샘 혼자갔냐 나쁜 ㅅ ㄲ ㅎㅎㅎ 미안 우짜든지 이제 나이들면 같이 다니라고 한소리여
김샘 덕분에 중국관광 갔다온것 갔구먼 감상 잘했고 사진멋져 깔리는 배경음악 이밤 죽이는 구나 고마워 ㅎㅎ^^
직장동료들하고 갔지. 마누라는 마누라 친구들끼리 가는기여. ㅎㅎ 더 늙으면 그땐 부부동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