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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명 : 갤러리메르헨, 권영성 이강욱전
유형 : 대전전시회
날짜 : 2024년 3월 6일~3월 19일
관람시간 : 10:30~18:00
장소 : 갤러리메르헨, 대전 유성구 대덕대로 556번길87 (구)모리스 갤러리
문의처 : 갤러리메르헨 042-867-7009
권영성 - 나무뿌리 단면 분포도, Tree root cross-section distribution map, 2020, Acrylic on Canvas, 162.2x130.3cm
권영성 - 나무의 높이와 연못의 깊이가 같은 공원의 분석도, 2023, Acrylic on Canvas, 80.3x116.8cm
권영성 - 녹색과 회색의 면적 비교도, Green and gray area comparison diagram, 2021, Acrylic on Canvas, 72.7x90.9cm
권영성 - 도심부 도로망에 의한 지층분석도, 116.8x80.3cm, Acrylic on Canvas, 2021
권영성 - 온전히 벽에 붙어 자라는 나무 분석도, 2023, Acrylic on Canvas, 97x162.2cm
권영성의 ‘관계 그래프’, 풍경 속 사물의 관계항 찾기
미술평론가 유현주
권영성은 복잡한 세계를 사물의 기호로 단순화시켜 바라보게 하는데 누구보다 특출한 재능을 가진 작가이다. 작가는 복잡성 속에서 사물의 유형이나 공통된 패턴을 찾아내고, 그 사물의 이야기를 ‘지도’라는 구체적 장소의 맥락에서 구성해내는 데 있어 그만의 독특한 시각적 유희를 생산해왔다. 사물과 텍스트가 허구의 지명(地名)을 차지하고 있는 그의 가상적 지도는 가끔씩 일종의 아나모픽(anamorphic)적인 착시효과마저 불러일으킨다.
최근의 권영성의 그래프 작업은 이전의 지도작업의 연장이지만, 지도 내부에서 ‘사물의 관계’를 찾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특히 ‘그래프’를 채택함으로써 사물과 사물 사이의 관계항을 설정하고 주변 세계의 패턴을 드러내는 것이 더 두드러진다. 의식적으로든 그렇지 않든, 작가는 도심 안에서의 반복적인 패턴을 탐색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권영성이 그린 일련의 도시의 건축물, 벽돌, 강둑, 제방의 규격화된 돌, 잔잔히 흐르는 물결의 패턴들이 실제로 일정한 음정과 박자를 갖는 질서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바로 그 예로 <강산과 도심지의 관계 그래프>는 대전의 갑천과 그 주변의 아파트, 강, 산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이다. 건물의 형태는 밝고 경쾌한 색채의 막대그래프로 도식화되어 있고, 고층과 저층의 동을 표시하는 듯 각각의 다른 막대들이 블록을 이루고 있다. 그림의 중앙에 있는 막대그래프-아파트단지-를 중심으로 아래로는 같은 크기의 강변 제방, 그것을 이루는 같은 크기와 모양의 돌, 강물의 출렁거림을 패턴화한 삼각 형태들은 다시 그림의 맨 위쪽의 산모양의 삼각 형태와 대칭을 이룬다. 한눈에 보아도 도시의 풍경을 수치, 양화(量化), 통계, 도면, 분포도처럼 배치한 인상이며, 이는 감각적인 재현이 아닌, 매우 관념적이고 오히려 ‘수학’에 가까운 사물의 인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감정을 차갑게 배제시킨 수학적 인식을 반영한 그림 혹은 사물에 대한 ‘권영성식의 그래프화’라고 단정 짓기 전에, 또 다른 작품 <배수관, 가스관과 창문의 관계 그래프>를 좀 더 살펴보자. 작가는 평소 사물을 예리하게 관찰하는 습관을 가지고 건물 외벽의 가스관의 정렬된 모양과 배수관의 배치 그리고 창문을 살펴본 것 같다. 그는 가스관과 배수관 그리고 창문의 관계항을 그래프의 항들로 도식화한 후 도면처럼 펼쳐놓은 그림을 그렸는데, 그 결과는 전자회로의 이미지와 유사해 보인다. 수학자로부터 그래프에 대해 조언을 얻은 후, 작업에 사용된 그래프들은 전문적인 그래프의 도상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도시 벽면을 횡단하는 가스관과 배수관을 그래프로 이미지화 한 것은 예술적인 아이디어의 발로를 넘어, 도시의 건물 외관이 어떤 식으로 배치되고 설정되는지를 ‘인식’하는 문제에 다가서고 있기도 하다. 즉 그래프가 단지 통계, 수치의 의미만이 아니라, 도심 풍경에서의 그래프의 시작과 끝이라는 ‘관계항’, 도시 건물의 혈맥들이라고 할 수 있는 파이프들이 가로지르는 ‘관계항’에 작가의 시선이 이끌리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이번 과학예술의 융합 작업을 통해, 작가는 그래프가 가진 본래의 의미가 ‘관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사물과 사물의 관계를 아는 것, 그것이 바로 그래프에는 반드시 두 개의 항 혹은 다수의 항이 필요한 이유이다.
작가는 이처럼 그래프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가 작품에 담고자 하는 사물들의 관계의 항을 중요시 여기고 풍경 전체를 사물들의 관계의 맥락에서 바라보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권영성의 그래프로 담아낸 풍경은 도시내부에 깃든 사물들의 관계, 즉 도시건물과 경관의 구조를 그리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나아가 자연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질서에도 존재할 수밖에 없는 반복의 패턴과 메커니즘까지도 슬며시 투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권영성 Kwon Young Sung
1981년생 3월 18일생
학력
목원대학교 서양화과 졸업 동대학원 졸업
전시경력
2023 10회 개인전 연결하는 범위, 골프존 조이마루 로비, 대전
2021 9회 개인전 느슨한 경직, 아트스페이스128, 대전
2019 8회 개인전 높고 짧고 낮고 긴 무언가, 청주창작스튜디오
2019 7회 개인전 제한된 수치, 종로타워 로비 갤러리, 서울
2018 6회 개인전 아트랩, 이응노미술관 m2프로젝트룸, 대전
2017 5회 개인전 이것과 저곳, 대전 예술가의 집
2023 기대의 물결이 가닿은 시선, 팔복예술공장, 전주
삶은 건축을 그려낸다, 고트빈 갤러리, 대전
가건물, 문화정원 샘, 세종
저마다의 속도로 유연하게, 팔복예술공장, 전주
2022 시티팝, 정서진 아트큐브, 인천
충청 아티스트:중견&청년작가전, 대전신세계갤러리, 대전
삶은 고요속에서, 더크루즈 아트스페이스, 공주
그림 상점로, 이미정 갤러리, 공주
2021 황금비율 7:1, DMA아트센터, 대전
원도심사람들, 문화공간 주차, 대전
시대의 살롱, 테미오래 상상의 집, 대전
2020 Perspective,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주
현대미술의 채도, 대전시립미술관
2019 Picturesque City, 미메시스 아트 뮤지엄, 파주
오픈코드, 청주창작스튜디오
키워드 이미지, 대청호 물문화관, 대전
동시대 미술가들의 항해술, 이공갤러리, 대전
2018 나르시시즘과 사디즘의 경계, 대전 예술가의 집
매체 사람 풍경, 대구예술발전소
싱글채널, 128 갤러리, 대전
2017 나라말쌈-현시대를 바라보는 열가지 시선, 구석으로부터, 대전
DNA 프로젝트, 대전 예술가의 집
동네방네 현대미술전, 솜리골 작은미술관, 익산
대전에서 공주까지, 이미정 갤러리, 공주
그리고 그린다, 대전시립미술관창작센터
그리다 꿈꾸다, 아트센터 쿠, 대전
이강욱 - 겨울나무 연작 46x53.5 과슈 한지 2024
이강욱 - 붉은 얼굴 46x53.5 아크릴, 과슈 . 한지. 2024
이강욱 - 산, 새 56.5x76 콘테 파스텔 판화지 2016
이강욱 - 섬, 새 56.5x76 콘테 파스텔 판화지 2016
이강욱 - 푸른의자 56.5x76 콘테 파스텔 판화지 2016
작가노트
꽃이면서 불인 것
꽃
어떤 것은 사람의 목소리, 지나가는 바람소리, 내 안의 흐트러지는 감정 같은 것인가? 지난여름 모든 형성된 것이 제각기 아름다웠을 때 나는 담장아래 맨드라미 사루비아 화단을 지나갔었다. 햇볕은 이마위에 내렸다 말았다 했다. 내쉬는 숨소리에 기억하는 것과 지금의 시간이 조금씩 뒤섞이고. 내가 알던 것들이 더 이상 안다고 말할 수 없었을 때, 저 숲 가운데 다른 내가 앉아 멀리서 반짝이는 유리 알갱이를 보고 있었다.
왼쪽 옆구리에서 자란 파릇한 이파리들이 검은 조각이나 뿔 모양의 가시처럼 변해 갔다. 나는 대지를 푸른색으로 만들고 어떤 줄기를 만들고, 뿌리 알갱이를 만들어 냈다. 나는 정물이나 사물처럼 아무런 입장을 갖고 있지 않았으나 여전히 수다스럽게 온갖 것에 마음을 두었다.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았고 머리맡을 운행하는 별들의 개수를 헤아렸으며 돌을 굴려 모래알을 만드는 해조음을 아주 오랫동안 들었었다.
그 많았던 별들을 물에 비추던 연대의 밤, 어떤 것은 꽃을 피우고 어떤 것들은 그냥 지나가는데 나는 하염없이 플라타너스나 목백합나무를 생각하며 꽃을 잊는 법을 되뇌었다.
불
당신에게 미안해요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말 이었어요. 그 많은 밤과 낮, 한 두 가닥의 희미한 선(線)속에 당신을 내버려 두었어요. 당신의 손가락 끝에 실금이 하나씩 생기면 갈라진 생채기마다 씨앗을 몰래 심어두곤 했지요 당신이 숨을 한번 쉴 때마다 밤은 흐트러지고 식물은 자라 꽃을 피우더군요. 숯 같은 어둠위에 멀리 보이는 반짝이는 것들이 타버린 재속의 불씨인 것을 잘 알고 있어요.
당신이 머뭇거리는 동안 많은 시간들이 지났어요. 바람은 먼지로 쌓이고 깊은 물들은 부드럽고 단단한 앙금을 만들었어요. 흰 선과 검은 사각형 같은 것, 알 수 없는 단단한 도형들은 언젠가 내가 무심히 던진 말처럼 사라질 거예요.
당신이 그려낸 물고기들이 새처럼 보이고 가시 같은 잎사귀들이 줄기처럼 보이는 것을 이제는 이해해요. 왜 대지는 푸른색 이고 당신의 꽃들은 견고한 뿌리대신 씨앗으로 남아 있고 싶은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아요. 당신의 작은 의자엔 누구도 앉을 수 없어요. 좁고 긴 화분엔 풀들이 비수처럼 자라났어요. 꽃들이 피는 것을 이해해주세요. 빛나는 색채들을 용서해 주세요.
201707. k
탐험 2019-k
새들의 날갯죽지를 생각할 때
그 아래 제일 높이 자란 여린 나뭇잎이 되는 것은 중요하다
식물을 그릴 때 딱히 식물을 그리지 않는 것도 좋은 일이다
산과 바다를 별과 함께 생각 하는 것
흰 바위와 부스러진 모래알, 잠깐 지나는 옛 일을 마구 섞어 내는 것 또한 나쁘진 않다
이것은 탐험하는 것에 가깝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곧장 뛰어들어야 하는 경우
숨 참기를 연습해 더 깊은 바다로 들어가는 것
색을 찾고 형상을 끄집어 내 하나의 세계를 만들 때
나는 얼마나 나 아닌 것들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숲 속에 서있는 나를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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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으로부터 우주로까지 변신하는 자아
이선영(미술평론가)
이강욱의 작품에는 식물, 동물, 광물, 하늘과 바다까지 다양한 계가 등장한다. 어눌한 표현방식 때문에 아이의 순진한 그림이 생각나는 그의 작품은 대상에 대한 정확한 재현에 충실하지는 않지만, 자신이 보고 느낀 바를 전달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 작가는 작업에 무의식이 최대한 발휘되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그의 말대로 ‘바람한 점, 풀 한포기’에서 얻는 영감은 매우 크고, 그것은 작품에 잘 반영되어 있다. 이전 전시에서 ‘풀 한포기’ 얽힌 상상력이 피어났다면, ‘바람 한 점’은 이동하는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번 전시에서 발견된다. 평평하게 채워진 바탕에는 대상을 감쌌던 공기, 즉 분위기가 전달된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지속되는 맥락이지, 어떤 특별한 국면의 단편은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 그림은 단편이지만 무엇인지 알 수 없는 굳어진 파편이 아니라, 생략된 앞뒤의 함축을 통한 일련의 서사를 가진다.
간략한 표현방식이 특징인 그의 작품에서 형식은 큰 위상을 차지 하지만, 그것은 예술언어의 자족성을 위해 세계를 괄호 치는 형식주의와는 구별된다. 작가는 예술에 대해 ‘그 시간을 온전히 내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작업을 통해 작품 안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그 그림 안의 공기와 색감에 빠진다. 온갖 화려한 스펙터클이 대중의 눈을 현혹하는 가운데, 예술은 이러한 내재적 차원을 통해 자신의 차별성을 내세울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만든 세계지만 거기에서 또 다른 나, 즉 다양한 타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작품에 들락날락 할 수 있는 사람, 즉 예술가의 특권일 것이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뻔 한 일상을 탈출한다. 예술이라는 또 다른 차원을 통해 일상의 다른 결을 발견한다. 이강욱의 경우 다른 사람들도 같이 볼 수 있는 어떤 대상의 표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 대상이 되는 것에 있다.
카프카적인 변신은 오늘날 겉보기의 자유로움 뒤에 더욱 결정론적 작용하는 시스템화 된 현대사회를 탈주하는 작가의 방식이다. 탈주는 산 넘고 바다 건너, 그리고 창공을 통과해 우주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그러나 대개 제자리에서 하는 탈주이다. 단편과 단편이 난데없이 이어지곤 하는 이강욱의 작품은 탈주를 위한 변신의 한 방식이다. 변신하는 존재는 대지에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는다. 나무같이 체계적이지 않다. 그것은 풀과 더 가깝다. 풀의 뿌리는 지층 바로 아래에서 서로 얽혀있다. 자연은 예술처럼 ‘창조’가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지만, 어떤 예술가적인 철학자의 말대로 ‘창조 또한 발견되는 것’(니이체)이다. 자연이 이미 실행하고 있는 것을 인간은 단지 발견할 뿐이며, 발견 또한 일부일 뿐이다. 인간의 신화적 상상력부터 동양 고전 [산해경]까지, 그리고 현대의 작가 보르헤스의 [상상 동물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기괴한 상상력은 자연의 파편을 재구성한 것에서 나왔다.
이강욱의 저 너머 바깥에 서식하고 있다고 상상되는 동물들에서 괴기스러운 면은 별로 없다. 그의 작품에서 상상 동물은 제압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 자기 내부의 타자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작품 속 동물들은 작가가 했을 법한 행동을 한다.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주사위 놀이는 예술에서도 실행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실행에 돌연변이, 실험 등의 명칭을 부여한다. 이번 전시의 부제 [산의 바깥, 바다 너머]는 식물보다 더 넓은 행동반경을 가진 존재를 등장시켜 ‘바깥’과 ‘너머’를 상상한다. 형식상의 변화는 ‘바깥’, ‘너머’라는 공간적 상상과 관련된 배경이 들어온 점, 그리고 그 배경을 채우는 붓질이 보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공간적 이동이라는 상상에 내재된 시간성을 조형적인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화면에 남아있는 붓의 궤적은 바로 시간성을 말한다. 작품은 자신 속의 타자적 존재가 변모하는 장이며 선택지는 무한하다.
특히 그가 현대미술의 전범들이 아니라, 주로 자연을 참조한다는 것, 또는 자연에 가까운 역사인 고고학, 또는 자연과 잘 어우러졌던 시대의 상상력이 결집된 [산해경]같은 고전을 참조하는 대목이 그렇다. 그러나 그러한 자연적 원천들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재현이 온갖 종류의 생산과 관련된다면 진정한 예술은 생성이다. ‘너머’와 ‘바깥’을 지향하는 이강욱의 전시에서 생성은 미지의 것, 즉 ‘되기’를 말한다. 이때 자연은 재현되는 것이 아니라 자연으로 되는 과정으로 나타난다. 작품에 대입하자면 식물 되기, 동물 되기 등이 있는 것이다. 심지어는 변치 않아 보이는 광물조차도 광물이 되어야 한다. 자명한 출발점은 없다. 욕망을 따라 이동하는 과정에서 되기가 실행된다. 소유와 소유의 또 다른 형태인 소비가 직업이라는 기계적 반복을 요구할 때, 자의반 타의반으로 이러한 시스템에서 벗어나 있는 작가는 오직 자신만을 대상으로 되기의 실험을 감행한다.
이강욱(李康旭 / kangwook Lee)
1970 청주 생. 1997 충남대학교 예술대 회화과 졸업
개인전. 2023 난이거나 풀이거나. 갤러리담. 서울 / 2021 조용한 생활. 갤러리담. 서울 / 2020 숲으로 가는 길-ARCANA. 갤러리담. 서울 / 2019 숲으로 가는 길. 갤러리담. 서울 / 2018 산의 바깥 바다 너머. 갤러리담. 서울 외 12회
작품소장, 부산시립미술관, 대전시립미술관, 이중섭미술관 外
문화가 모이는 곳 "대전공연전시" http://www.gongjeon.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