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아닌 이야기
박지니
하얗고 동그란 얼굴에 까맣게 반짝이는 두 눈이 밤하늘을 떠올리게 했다. 웃을 땐 자그마한 입술이 긴 선을 그리며 양쪽 입꼬리에 깊게 보조개가 파였다. 낮은 목소리로 하는 말에는 여유로움이 묻어있었다. 미나는 좋은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귀하게 자란 티가 나는 친구였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였지만 어딘지 다부져 보이는 구석이 있어 언뜻 예쁘장한 사내아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선생님도 아이들도 미나를 좋아했고 미나도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다. 그런 아이와 어쩌다가 친해졌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캐릭터 인형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고교 시절 청개구리 모양의 일본 캐릭터가 인기 있었는데, 내가 가진 고리 인형은 문구점에서 팔던 모조가 아닌, 백화점에서 산 진품이었다. 10학년 가을, 나는 영어를 못하는 학생들을 위한 특별반에서 일반반으로 갓 합류한 데다가 소심해서 좀처럼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었다. 그 인형을 가방에 달자 몇몇 아이들이 관심을 보였다. 미나는 ‘진짜’를 가진 친구였다.
자리가 정해져 있지 않았는데도 언제부턴가 같은 수업이 있을 때면 우리는 늘 붙어 앉았다. 이전 수업이 달라 따로 갈 땐 먼저 교실에 도착한 사람이 자리를 맡아놓았다. 교실 맨 앞자리에 앉아 선생님 몰래 쪽지를 주고받으며 수다를 떨기도 했고, 키득대다가 결국 걸려서 나란히 주의를 받은 적도 있었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을 때 미나는 말을 아꼈다. 다른 아이들도 특별히 우리에게 말을 거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우리 주위엔 늘 아이들이 북적였다.
“일본 앤데 엄마가 한국인이래. 한국어도 잘해. 할머니랑 엄마랑 셋이 산다나 봐. 아빠는 일본에 있고….”
“그래봤자 첩의 딸이지.” 엄마가 말했다.
열여섯. 그 말의 뜻을 알아듣지 못할 나이는 아니었다. 미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단정 짓는 엄마를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엄마랑 일본 다녀왔다.” 겨울방학 후 만난 미나에게 쪽지를 건넸다. “나돈데.” 미나는 다음번엔 같이 가자고 했다. 우리는 가고 싶은 곳, 먹고 싶은 것 따위를 적어갔다. 선생님에게 걸렸다. 바로 코밑에서 대놓고 딴짓을 하니 선생님도 모른 척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나를 문 쪽 자리로, 미나는 창가 쪽 자리로 보냈고, 남은 학기 동안 그 자리가 우리 자리였다. 여름방학 전, 새 학년 시간표를 짤 때 우리는 시간표를 똑같이 맞췄다.
“엄마랑 일본에 가는데 같이 갈래?”
11학년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미나가 물었다. 평소 친구가 없다고 내 걱정을 하던 아빠는 흔쾌히 비행기표를 사줬다. 도쿄 시내의 식당에서 만난 미나의 아버지는 키가 크진 않아도 까무잡잡한 피부에 다부진 인상의 아저씨였다. 우리가 메뉴를 구경하는 동안 미나의 부모님은 나지막하게 소곤거리며 이야기를 나눴다. 장어구이가 나오자 미나는 “스태미나!” 하며 역기를 들어 올리듯 두 팔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렸다. 미나의 어머니는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쉬었고 미나의 아버지는 껄껄대며 웃었다. 각진 얼굴에 웃음 띤 눈매가 미나와 똑같았다.
모처럼 일본까지 갔는데 친구네 집에 가지 못해 섭섭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엄마와 묵었던 곳과 다를 바 없는 비지니스호텔이라 실망해서였는지도 모른다. 혼자 말이 통하지 않아 이틀 동안 주눅이 들어 있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넌 아빠랑 살고 싶지 않아?” 갑자기 생각난 질문은 아니었다. 그냥 심술이 났다. 난 미나의 말을 기다렸다. 미나는 잠깐 눈을 흘기다가 “이럴 땐 말을 잘하네?” 하더니 몸을 돌려 앉았다. 곧 착륙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나와 나는 여전히 함께였지만 다른 친구들도 함께였다.
10학년 겨울방학 때 엄마는 나를 데리고 후쿠오카에 갔다. 한국 학교에서 외국인 학교로, 특별반에서 일반반으로 옮겨 다니느라 좀처럼 친구를 사귀지 못하고 있던 차였다. 해외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라니, 나는 조금 들떠 있었던 것 같다. 엄마는 공항에서도 비행기 안에서도 식사까지 거르며 말 한마디 안 하더니 일본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호텔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바라본 창에는 빗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빗방울은 검은색 종이에 선을 그으며 흩어졌다.
그날 밤 엄마는 호텔에서 울었다. 소리를 내는 것도 아니고 안 내는 것도 아닌 채로 밤새 울었다. “네 아빠 바람 났댄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TV 리모컨을 쥐었을 때 엄마가 말했다. 마침 켜진 TV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일본 유행가였고 나는 가사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스물일곱 살이나 어린 년이라더라.” 불 꺼진 호텔 방 안에서 등 뒤로 엄마의 말소리를 들으며 난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엄마는 복잡한 상가를 후비며 골목 안쪽의 가게들까지 모조리 훑었다. 옷가지를 대보고 점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다가 사는 경우도 있고 그냥 나올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난 가게 밖에서 기다렸다. 비 내리는 겨울날의 후쿠오카는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새해 첫날 엄마와 찾아간 어느 아파트에서 나는 액자를 보았다. 젊은 여자의 사진이었다. 작고 마른 여자였다. 까무잡잡한 피부에 까맣게 빛나는 두 눈이 어딘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설산을 배경으로 한 사진 속에서 여자는 아빠의 팔짱을 끼고 다정스럽게 서 있었다. “애라도 낳아 봐, 그래도 아빠가 널 예뻐할 거 같니?” 탐정놀이. 집 안 구석구석 사진을 찍어대는 엄마의 모습은 그랬다. 그해 여름방학이 다가올 즈음 하루는 엄마가 불러서 가니, 엄마는 나를 아빠 앞으로 밀쳤다. “어디 딸 앞에서도 말해 봐! 왜 말 못 해? 창피한 줄은 알아?” 엄마가 아빠에게 큰소리로 따지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바락바락 소리를 질러대는 엄마와 달리 아빠는 약간 난처해 보였다. 마치 방에서 기말고사 준비를 하다가 불려 나온 나처럼….
여름이 지나고 첫눈이 내릴 때까지 몇 번의 큰소리가 났지만 별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네 집은 아버지가 ‘두 집 살림’을 하고, 누구네 엄마는 본처를 쫓아낸 첩이고, 누구네 동생은 밖에서 데려온 자식이고….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SNS를 통해 미나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오랜만이라는 메시지에 돌아온 답장에는 반가움이 묻어있었다. 미나와 일본에 다녀온 후 그때까지 모아왔던 캐릭터 문구들을 같은 반 남자애에게 모두 줬다. 당시 나의 관심사는 일본 TV에서 본 일본 아이돌이었기에 수첩이며 바인더에 여행에서 사들인 그의 사진들을 붙이느라, 초록색 청개구리에게 내어줄 자리가 없었다. 내 문구를 넘겨받은 아이의 여자친구가 내게 건넨 눈빛은 꽤 오래 상처로 남았던 것 같다. 그때 비행기 안에서 나를 보던 미나의 표정과 함께. 미나가 그 일을 기억할지 모르겠다. 앞으로도 확인할 일은 없을 것이다. 미나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무슨 사이였는지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다. 어쨌든 미나는 미나의 어머니와 아버지의 딸이 틀림없다.
월간문학, 2025.01.
2022년『한국산문』 등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