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과 산에 무수히 맺혀 있는 과일이 있습니다. 크기는 작지만 그 달콤함의 강도가 강해 한번 먹으면 멈출 수 없게 만드는 대단한 과일입니다. 바로 오디입니다. 오디는 효능이 좋을 뿐아니라 맛도 기가 막힙니다. 잘 알다시피 오디는 뽕나무의 열매입니다. 대부분의 과실나무는 열매의 이름을 따랐습니다. 매실나무 복숭아나무 자두나무 살구나무 사과나무 등이 그렇습니다. 하지만 뽕나무를 오디나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 열매가 작았기때문이기도 했지만 열매보다는 뽕나무는 잎으로 바로 누에를 키웠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잎이 중요하였으니 이름도 오디나무가 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뽕나무는 열매에 소화를 돕는 성분이 있어 먹으면 방귀가 뽕뽕 잘 나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한반도에서는 한때 뽕나무가 귀한 대접을 받았습니다. 지금은 오디 채취를 주목적으로 하는 농가나 산속 등에 외롭게 자라는 나무가 됐지만 말이죠. 한반도에서 누에에 기초한 양잠이 시작된 것은 삼한시대 이전으로 추정됩니다. 그때부터 뽕나무의 재배가 시작됐으니 지금 한국에서 자라는 나무가운데 가장 역사와 전통이 깊은 나무라 할 수 있습니다. 비단은 예전 삼국시대나 고려시대 조선시대까지 지금의 반도체와 비견되는 나라의 중요한 기간산업이었습니다. 특히 조선때 뽕나무는 그 가치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고려에서 갑자기 나라의 이름을 바꾸고 왕도 교체되자 백성들은 불안했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불안과 우려를 줄이고 민심을 회복하기 위해 비단생산의 증대를 통한 백성들의 수입을 늘려주어야만 했습니다. 조선 3대왕 태종때는 집집마다 뽕나무를 나눠주고 식재를 거의 의무화하기도 했습니다. 세종때는 왕비가 직접 비단을 짜는 솔선수범을 보여주었고 뽕나무를 관리하고 누에치기를 전문화하는 기관인 잠실을 각 도마다 설치했습니다. 그후 중종때에는 효율적인 관리를 위해 각 도의 잠실을 한양 근교로 모이도록 했는데 그 장소가 바로 지금 서울 서초구 잠원동입니다. 조선시대 말기때만해도 잠원동과 그 인근에 수령 400년이상이 된 뽕나무가 여러그루 생존했지만 그후 일제 강점기와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을 거치며 모두 고사하고 말았습니다.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압축성장 그리고 전통과 문화를 무시하고 강압일변도의 밀어붙이식 정책으로 한국 비단의 상징이자 백성들의 고부가가치상품의 근원인 뽕나무는 하찮은 존재로 인식되게 됐습니다. 대신 그 잠원동일대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만든 것이 바로 박정희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었습니다.
상전벽해(桑/뽕나무 상,田/밭 전,碧/푸른 벽,海/바다 해) 다시말해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했다는 의미로 세상이 너무 변하여 옛 자취를 찾을 수 없다는 뜻의 4자성어가 이처럼 맞아떨어지는 경우가 없습니다. 아무리 개발을 한다고 그 많은 뽕나무들을 그냥 밀어 없앤 것은 너무도 가슴 아픈 일입니다. 노거수(수령이 오래되고 커다란 나무) 몇그루라도 잘 관리해 보존했더라면 지금도 그곳은 명소가 됐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가득합니다. 지금은 잠원동이라는 이름만 남아있고 지하철 3호선 잠원역의 벽면에 누에 모자이크만이 유일하게 그 흔적을 남기고 있습니다. 새마을 운동으로 시골 옛집들은 모두 땅속에 묻혔습니다. 성황당은 미신이라며 허물어버렸습니다. 동네 당산나무들도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뿌리채 뽑히고 말았습니다.
한국은 왜 이렇게 전통과 문화를 업신여길까요. 사계절이 분명해서...한국식 전통과 문화가 가치가 없어서...외국에 보이기가 창피해서...그냥 문화와 전통을 제대로 교육받지 못하고 36년동안 일제강점기를 거치고 18년동안 군사독재정권아래에서 순치된 결과 옛것에 대한 무지로 인한 문화 대파괴행위가 아니였나 판단이 됩니다. 무조건 빨리하고 무조건 옛것은 불편하고 지저분하고, 새것으로 갈아끼고 새것을 숭상하고,거치장스런 헌 것과 옛 전통과 유물은 무조건 밀어없애는 그 단견속에 한국의 문화는 축소되고 왜곡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군사독재정권을 지나 민주화된 정권속에 잊혀진 전통과 옛것에 대한 소중함을 생각하는 세력에 의해 지금 이 정도 회복하고 복원한 것만도 그나마 대단하고 안도가 되는 상황입니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각국이 아파트가 편한 것을 몰라 불편한 옛 건물을 고수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주택들 정말 불편합니다. 수백년된 주택이 대부분이어서 생활에 힘들고 짜증나는 일도 숱하게 많다고 합니다. 고속열차 떼제베를 건설할 때 오래된 수도원을 피해 우회하는 노선을 택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이 휘어지니 돈도 많이 들고 열차운행 시간도 그만큼 더 걸리는데 말이죠.
하지만 어릴 때부터 배운 전통과 문화 그리고 예술에 대한 가치에 의해 그들은 그런 불편함을 극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와 전통의 가치는 그만큼 말로 설명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이겠지요. 상전벽해가 무엇이 그리 가치있겠습니까. 대형 저수지와 댐을 만든다고 어느날 옛 고향을 깊은 물속에 가라앉힌 그 정책이 바로 상전벽해정책 아니겠습니까. 상전벽해를 즐기다가는 그 나라가 가진 소중한 가치도 모두 물속에 수장시키고 말 것입니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세계 역사상 유래가 없는 초저출산 그리고 갈등 세계 최다국가 등의 불명예도 바로 상전벽해가 가져온 우려스런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2024년 6월 6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