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 이후가 더욱 빛났어며 한편으로 '평화의 전도사'로 알려진 지미 카터 미국의 전 대통령이
Dec. 29, 2024 100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결식장에서 낭독된 포드 전 대통령이 생전에 써 두었던 추도사에 드러난 두 전직 미국 대통령의 우정이 감동적입니다.
- 경쟁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지만, 상대를 단순한 적으로 간주하지 않고 존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며
- 당시에는 이해할 수 없던 상대의 결정을 시간이 흐른 후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많고
-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인간적인 우정은 더욱 깊고 오래 지속될 수 있으며
- 상대를 존중하는 태도는 정치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에게도 중요한 덕목이라고 추도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나라 정치 지도자들의 생각이지만,
한 번쯤 생각해 볼 만한 주장일 것 같아 정리했습니다.
(우리는 지미 카터와 제럴드 포드의 유산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역사 속에서 경쟁과 대립을 거듭했던 인물들이 시간이 지나 화해와 우정을 나누는 경우는 종종 있다.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었던 지미 카터와 제럴드 포드 역시 그러한 사례 중 하나이다.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관계였으나, 세월이 흐르며 서로를 존경하게 되었고 결국에는 깊은 우정을 나누었다.
특히, 그들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서로에게 바친 추도사다.
(정치적 경쟁과 화해의 과정)
제럴드 포드는 1974년 워터게이트 스캔들로 인해 사임한 리처드 닉슨의 뒤를 이어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그러나 1976년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였던 지미 카터에게 패배하며 재선에 실패했다.
이 선거는 미국 사회가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는 평을 받지만, 카터와 포드는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선거 과정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비판하며 날 선 공방을 벌였지만, 선거가 끝난 후에는 개인적인 감정을 내려놓고
국가의 안정을 위해 협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포드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후 카터와 여러 공공 행사에서 함께하며 정치적 반대자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다.
카터 역시 시간이 지나며 포드의 결정을 더욱 깊이 이해하게 되었고, 두 사람은 점차 우정을 쌓아 갔다.
그들은 함께 여행을 다니며 정치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상호 존경을 표했다.
(추도사에 담긴 의미)
포드는 생전에 카터를 위한 추도사를 미리 작성해 두었다.
그러나 포드가 먼저 세상을 떠나면서 그의 추도사는 사용되지 못했다.
반대로, 카터는 포드가 세상을 떠난 후 진심 어린 추도사를 바쳤다.
이후 카터가 세상을 떠났을 때, 포드의 아들이 아버지가 남긴 추도사를 대신 헌정함으로써
두 사람의 우정이 다시 한번 강조되었다.
이는 단순한 정치적 제스처를 넘어, 서로를 존경하고 신뢰한 두 인물의 깊은 인간적 유대감을 보여주는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이러한 에피소드는 정적(政敵)일지라도 시간이 흐르면 서로를 이해하고 화해할 수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남긴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단순한 경쟁에서 벗어나 진정한 우정과 화해로 발전했다는 점에서
정치적 대립 속에서도 품격을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두 사람이 남긴 유산)
오늘날의 정치 환경은 종종 극단적인 대립과 분열로 점철되어 있다.
그러나 카터와 포드의 관계는 이러한 정치적 분열 속에서도 화합과 존중이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미 카터와 제럴드 포드는 단순한 정치적 경쟁자를 넘어 서로를 존경하는 관계로 발전하며 아름다운 우정을 쌓았다.
그들의 삶과 행동은 정치적 갈등 속에서도 품격과 존중을 유지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우리에게 깊은 감동과 영감을 준다.
정치뿐만 아니라 우리의 일상에서도 상대방을 존중하고 화해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일깨워 주는 사례로 남을 것이다.
*** 아래는 인내심이 필요할 만큼 긴 추도사입니다.
( 생전에 포드 대통령이 카터 대통령을 위해서 미리 작성했던 추도사)
"짧은 시즌이라는 운명 속에서 지미 카터와 저는 라이벌이었지만, 그 후 많은 멋진 세월 동안 우정은 존 애덤스와 토마스 제퍼슨 이후 두 대통령이 되지 못했습니다. 아담스 대통령의 마지막 말은 '토마스 제퍼슨은 여전히 살아남는다'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지미는 저에게 좋은 10년을 보냈기 때문에 저는 지미에 대한 기억을 아들 스티브에게 맡기면서 내기를 걸고 있습니다.
"지도에 따르면 미시간주 그랜드래피즈와 조지아주 플레인스 사이에는 먼 거리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리는 마일이 아닌 가치로 측정하면 사라지는 방식이 있으며, 지미와 저는 소중한 친구로 소중히 여기기 전부터 서로를 적대적인 존재로 존중했습니다.
"지미가 제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지만, 1976년 대회 기간 동안 서로에게 그렇게 하지 않은 정치인 그룹이 있었나요? 지미는 제 정치적 약점을 알고 있었고, 그 약점을 성공적으로 지적했습니다. 이제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1976년 선거의 결과가 제 가장 깊고 인내심 있는 우정 중 하나를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알 수 없었습니다.
"1981년 여름, 이번에는 위대한 평화주의자 안와르 사다트의 장례식을 위해 에어포스원을 타고 다시 모였습니다. 한 방에 두 명의 대통령이 너무 많다는 오래된 주장이 있습니다. 솔직히 카이로까지 가는 그 긴 비행이 얼마나 어색하고 긴 비행이었지만 돌아오는 길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지미와 저는 대서양 어딘가에서 정치를 초월하는 우정을 쌓았습니다. 우리는 전투의 열기 속에서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상대방에 대해 거친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잊고 전직 대통령의 특권 중 하나를 행사하기로 즉시 결정했습니다.
"그런 다음 훨씬 더 즐거운 주제로 넘어가 가족,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경험을 공유하며 백악관 이후의 삶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통령 도서관 건립에 드는 높은 비용과 다른 훌륭한 기관을 위한 모금의 대부분이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돌아갔다는 점에서 더욱 유감스러운 사실에 대해 위로했습니다. 그 자리에서 우리는 군비 통제에 관한 일련의 컨퍼런스를 시작으로 서로의 도서관에서 열리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기로 합의했습니다. 그리고 그게 충분히 뉴스거리가 되지 않는다면 중동 평화가 지속되려면 팔레스타인 문제와 직접 대면하는 것과 같은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하며, 이를 통해 사다트 대통령이 말 그대로 목숨을 바친 일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고 비행기 안에서 기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의 예상치 못한 파트너십이 워싱턴 시설에서 깃털을 장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결코 마지막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정직과 진실을 말하는 것은 지미 카터라는 이름과 동의어였습니다.
이러한 특성들은 그의 사랑하는 부모님인 릴리안과 얼 카터에 의해 그에게 심어졌고, 그의 정직함의 힘은 사회 변혁의 위기에 처한 남부 시골에서의 성장으로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그는 해군 장교, 주 입법자, 주지사, 성가신 사람, 세계 지도자로서 평생 동안 정직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지미 카터에게 정직은 열망의 목표가 아니라 그의 영혼의 일부였습니다.
"이제 지미는 전직 대통령보다 더 많은 책을 쓴 것 같아요. 정말 글 쓰는 것을 즐겼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지미는 익숙한 눈망울로 '솜을 따는 것보다 낫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지미가 다른 이유로 글 쓰는 것을 즐겼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로서 지미는 자신의 의견을 정치적 선거구나 잠재적 기여자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제 우리 둘 다 여론조사에서 패배하는 것이 고통스러울 수 있다는 가혹한 현실을 경험했지만, 더 중요한 결과를 알게 되었습니다. 정치적 패배와 글쓰기는 단기적인 정치적 인기와 일치하지 않는 주제에 대해 토론할 수 있게 해준다면 해방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지미는 일요일 아침에 소변을 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일찍 배웠습니다. 그의 신앙에서 영감을 받아 그는 민족의 경계, 전통의 경계, 카스트의 경계, 미국의 도시 지역, 전 세계 시골 마을에서 형제애를 추구했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가 목수였음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3세계 마을에서 그는 투표가 아니라 개발되지 않은 세계를 황폐화시키는 질병을 근절하기 위해 성공적으로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물론 지미의 모든 시간이 집을 짓고, 질병을 퇴치하고, 휴전을 중개하고, 선거를 모니터링하는 데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지미는 아마도 주간 성경 수업을 진행한 유일한 전직 대통령일 것이지만, 윌리 넬슨과 함께 '온 더 로드 어게인' 듀엣 공연을 한 유일한 전직 대통령이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조지아는 지미의 마음속에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의 피 속에 있었습니다. 지미는 아무리 멀리 여행을 떠났지만 어디로 돌아왔는지, 지금 어디로 왔는지, 결국 어디로 돌아오게 될지 결코 잊지 않았습니다. 지미와 제가 공통적으로 가졌던 많은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우리는 둘 다 훨씬 위에서 결혼했습니다. 지미와 함께라면 모든 발걸음이 평원에서 온 그의 영부인이었습니다. 축복이 가득한 삶에서 지미에게 그가 로잘린과 나눈 사랑과 두 사람이 자녀, 손자, 증손자와 나눈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없었습니다. 지미처럼 로잘린은 미국 연민의 상징이기도 했습니다. 우리 역사상 다른 영부인과 마찬가지로 로잘린 카터는 진정한 세계 시민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제 아내와 베티, 저, 그리고 포드 가족 모두에게 사랑받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카터와 포드 부부는 의회 로비와 관련하여 결정적으로 엇갈린 기록을 남겼지만, 로잘린과 베티는 절망과 수치심의 그늘에서 가져온 수백만 명의 사람들을 위한 옹호 활동에서 무적이었습니다.
"이제 작별 인사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슬픔은 이 남자, 이 사랑하는 남자, 이 아주 특별한 남자를 알게 된 기쁨과 감사의 마음으로 위로받았습니다. 그는 수년간의 선물을 받았고, 미국 국민과 전 세계 사람들은 그의 수십 년간의 선행으로 영원히 축복받을 것입니다. 지미 카터의 평화와 연민의 유산은 시대를 초월하여 독특하게 남을 것입니다.
"포드 가족 전체가 여러분께 사랑을 전하며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사람들의 기도에 기도를 더합니다. 하나님의 축복과 감시가 있기를 바라며, 카터 가족이 수많은 선행에서 보여준 믿음으로, 사명을 풍성하게 완수하고 영원한 삶으로 보상받는 영혼으로 작별을 고하는 동안 카터 가족에게 평화를 허락하기를 바랍니다. 저로서는 지미, 우리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따라잡을 것이 많습니다. 대통령님, 감사합니다.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랜 친구여."
첫댓글 두 분 모두
훌륭하신
대통령들 이셨습니다.
미국 우선 주의 보다는 평화와
남을 배려하는
대통령이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 대가를 치르더라도 윤리적 리더십에 대한 헌신을 보여주었고.
포드는 대통령직을 안정시키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으며, 카터는 정치적 편의보다 원칙적인 정책을 우선시했고
과거의 정치적 라이벌 관계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의 대선 후 우정은 당파성을 넘어 더 큰 이익을 위해 나아가는 드문 능력을 보여주었으며
이들의 유산은 리더십이 정책의 성공뿐만 아니라 인성, 청렴성, 봉사 의지에 관한 것임을 상기시켜줍니다. 라는 평가를 받는다고 합니다.
미국의 두 정치 지도자,
카터와 포드 대통령은
재론이 필요 없는 서로의 경쟁자였겠지만...
현직에서 물러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동안에도
두 분의 우정은 더 깊어졌음에
경의와 존경을 표하지요.
70년~80년대의 이야기를 지금 생각하니,
너무 아득해서...
카터 대통령은 현직에서 물러나
고향 땅콩 밭에서 농사 짓는 일에
열심이라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후진국의 국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사람들은 거지도 영어한다는 말로 우스개를 했지만...
세계를 움직이는 큰나라의 대통령이래서
그런가 보다로...^^
긴 이야기 쓰시느라 수고 많았습니다.
긴 글 읽느라 아래 줄 위 줄이 오락가락 했지요.
국내 현실이 민감한 시기라 글 올리는 것을 망설였지만
내,네편 가르는 정치 하고는 관련없는 추도사에 얽힌 사연이니 독자들은그렇게 읽어주시겠지요.
카터 대통령의 추도식 재방송을 어제 이곳 방송에서 했습니다.
캐나다 신임 총리 취임 관련해서 방송국에서 재작된 특별 방송이지요.
국내의 현실과 대비되어 보이는 여럿 장면들이 부럽기도 하고 아프기도 해서 글을 올리게 된겁니다.
카터 대통령의 손자가 읽은 추도사는 발음이 아주 정확하여 저 같은 사람도 쉽게 알아들을수 있더군요.
전직 대통령이 함께 모여 추도하고 호상인 탓에 즐겁게 추도사에 반응하고 함께 웃는 장면이 부럽게 보였어요.
사용한 지프백을 씻어사 싱크데에 걸어놓고 재사용 한다는 손지의 추도사를 듣고서는, 아내에게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했었답니다.
아래 첨부한 추도사는 빼버릴걸 그랬습니다. 너무 장문이지요~
@단풍들것네
단풍님이 하고자 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모두 이해하실 겁니다.
계엄이 아니고 계몽이라는 말에
모두 알아듣지요^^
지루하지 않게 읽었으니....^^
걱정 마셔요.
저는 요~
일회용 비닐 장갑도 씻어서 2번 쓰고요..
심지어 마스크도 한 번은 더 써요.
나 하나 아껴 쓴다고,
국가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지만요.
@콩꽃 알뜰함이 몸에 베인탓이겠지요.
제가 요즈음 집안 일 담당입니다.
반찬 장만은 딸이 하지만 나머지는 제가 하지요.
설것이 할때 사용하는 세제가 떨어져서 빈 세제통에 물을 넣고 흔들어서 사용했더니
그 모습을 모녀가 물끄러미 쳐다 보데요
저는 모녀의 생각을 짐작 하지요 ~
어머나, 저 양반이 쪼잔하게 무슨 짓이고, 요런 눈초리로 째려 보았을 겁니다 ㅎ
규정대로 댓글은 이제 그만 달고. 밤이 늦어 저도 그만 퇴근합니다
우리나라의 현 정치인들을 보면서
이 글을 읽으니까 미국의 전직 대통령 두 분의
우정이 무척 부럽습니다.
나라가 커서 마음이 넓은
사람도 많아서 일까요.
우리나라에도 저런 마인드를
지닌 정치인들이 나오기를 바랄뿐입니다.
저도 두 분의 정치나 삶에 대해서는 몰랐습니다.
카터 대통령의 영결식을 보고 자료를 찾아 보고는 알게 되었지요.
두분 모두 존경스럽더군요.
우리도 존경받을 분들 보게 되겠지요.
한분은 민주당이요 다른 분은 공화당인데
우리같으면 배신자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만.
참 아름다운 우정입니다.
네, 자료 찾으며 참 대단한 분들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카터 못지않게 포드 대통령이 대단한 분이더군요, 퇴임후 상대적으로 메스컴에 덜 노출되어서 그랬던것 같습니다.
추구한 이념은 달랐어도 사나이 우정은 영원했다.
그러게요 후세을 위해서 위대한 유산 같은 느낌은 지울수가 없어요.
문화가 달라서 일까요?
우리는 왜 맨날 이전투구만 하는지?
개인적으로 저는 지미카터 대통령을
존경하고 좋아했어요. 지극히 인간적
이잖아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려요.
ㅎ 사나이 우정은 영원하다.
정확하고 날카로운 지적 입니다
여인들은 이런 우정 택도 없어요, 죽었다 깨어나도 안될낀데요 ~~ 안 그렇습니까?
카터 대텅령 부부가 퇴임후에 정성을 기울였던 헤비타트 운동의 지원 사무실이 제 집에서 한 블럭 건너 있습니다.
카터 대통령은
헤비타트운동을
통해 인류애를 실천 하셨지요.
그렇지요.
제 친구 (입사동기에 같은 업무를 20년 함께한) 가 캐나다에 2명 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 한 사람은 15년전에 심장마비로 운명했습니다.
그 친구의 아들이 20여년전 헤비타트 운동에 빠져서 친구와 많이 다투었던적이 있습니다.
이곳의 젊은 학생들이 봉사활동으로 많이 참여 하더군요.
이런 위대한 정치인이 미국을 통치하였기에 세계의 평화공존과 미래에 대한 번영을 지킬수 있었습니다. 서로 경쟁관계로 다른당에 속하였어도 배울건 배우는 정신과 좋은 정책에 대한 존중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싯점입니다.
특별한 분들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할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면서 위대한 분들이다, 라는 생각 많이 했습니다.
우리도 조만간 그런 분들을 볼수 있겠지요.
여야가 서로 대립하는 우리 정치인들도
미국의 두 전직 대통령을 본 받으면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미국도 더 이상 그런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요
미국이라고 전부 대단한 사람들이 아니고
두 정치인은 특별한 분들이었지요.
잘 읽었습니다 .
며칠전 한국 라디오 방송을 들으니
정치를 하신 어느 한국인이 자기가 만난
대통령들을 이야기 하는데 그분은 다좋게 말하데요.
그중에 조지 부시와 레이건 대통령을 특히 ...
요즘 미국은 여러모로 힘든 시절 입니다 .
ㅎ 미국은 그래도 괜찮을텐데요
나불나불대는 금발 영감님때문에 캐나다 아주 힘들다고 해요.
아내는 이제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제가 시장 갈때 항상 붙어 다닙니다.
그런대 이곳 뮬가 무지막지 오르데요
그래서 캐나다 연금 생활자들 살기 어려워 집니다, 깡패 영감님 땜에~~~~~~~
보수와 진보는 나라의 발전을 이루기 위한 방식의 차이이기 때문에 정책적 대립은 해도 인간적으로는 교류의 가능성이 있는데,
현재 한국의 정국과 사회는 좌와 우의 나라 체제에 대한 첨예한 대립이라 마주보고 달리는 기차처럼 정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어 보입니다. 그 충돌이 나라와 사회를 파국으로 몰고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글 올리며 망설였습니다. 작금의 현실을 재삼 거론하게 되기 때문이지요.
양쪽진영 공히 나라를 책임지고 다스리겠다는 정치를 평생의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의 그릇이 간장 종재기도 못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