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나답기 위해서는 나를 알아야한다 >
공자는 <논어>에서 자신이 정치를 하게 된다면 임근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답게 되는것에 대해 이름을 바로잡겠다고 하였다. 또한 신하가 신하답기 위해서는 충(忠)이 무엇인지 알아야하고 자식이 자식답기 위해서는 효(孝)가 무엇인지 알아야한다고 하였다.
철학에 대해서는 [아시아 철학의 기초]가 처음이었기에 정명론이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어려웠다. 그럼에도 이름을 바로잡자는 정명론이 수업 내용 중 가장 인상깊었다. 왜그랬을까 생각해보니 정명론은 우리가 항상 말하는 ‘~답게’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공자의 말처럼 자식이 자식답기 위해서는 효(孝)가 무엇인지 알아야하며, 겉으로 봤을 때는 효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효가 아닌 행위가 있다. 효를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효의 존재에 대해 제대로 인식하고 그 가치를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핵심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득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다운~’,‘~답게’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다. 예를 들어 ‘나 다운 나’에 대한 설명을 하려면 내가 아닌 다른것들이 끼어드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흔히 ‘~면~답게 행동해야지’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도 본인 스스로 정의한 것이 아닌, 사회가 정한 틀에 우리를 맞추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하지만 이것은 스스로 이름을 바로잡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말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바로잡고 제대로 실현하고싶었다. ‘나’..나는 무엇이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있으며 ‘나’의 가치는 무엇일까. 또 내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라는 수많은 의문이 생겼다. 그런데 이 의문속에서 나는 사회와의 타협점을 찾을 수 밖에 없었다. 나를 소개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만들어둔 문장을 이용해야하며 남들이 바라보는 나에 대해 서술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나’ 라는게 가능할까?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나는 도전적인 사람이지만 주변 눈치를 보고, 당신의 장점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적을 때도 주변 친구들에게 ‘내 장점이 뭐인 것 같아?’하고 물어본다. 이렇게 다시 돌아봤을 때 말로는 아무도 개입하지 않는 ‘나’를 찾고 있지만 행동은 누군 가를 통해 나를 정의하고있다. 공자의 말처럼 내가 나 답기 위해서는 내가 무엇인지 알아야될텐데 ‘나’라는 존재 만으로 ‘나’를 정의하는게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내가 생각한 나의 가치를 실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남이 보는 나도 ‘나’이고 내가 스스로 긍정적이고 도전적인 사람이라고 정의한 나도 ‘나’이기 때문에 굳이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 ‘너는 20살이니까 20살 다워야지~’처럼 ‘~는~다워야지’에 휘둘리지 않고 그런 말에 대해 스스로 ‘20살이 뭘까? 20살에는 무엇을 해야하며 20살 다운 것이 무엇일까?’등에 대해 의문점을 가지고 그것을 나로 만드는 것 그것이 진정 ‘나’를 실현하는 첫번째 방법일 것이라고 나 혼자 정의 내렸다. 이 글은 이름을 바로잡자는 정명론을 통해 '나'라는 존재에 대해 바로 잡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첫댓글 현대 심리학 분야에서는 나에 대한 생각을 네 가지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격자무늬의 창과 같은 모양이라서 최초로 이것을 주장한 조셉 러프트와 해리 잉햄의 이름을 따와 '조하리의 창'이라고도 합니다. 각각의 네 부분은 나는 잘 알고 남은 모르는 나, 나와 남이 다 잘 알고 있는 자, 나는 모르지만 남이 잘 알고 있는 나, 마지막으로 나도 남도 잘 모르는 나가 차지합니다. 이미 철학분과에서는 오래도록 인식과 실천의 주체인 나를 객관화하는 작업을 시도해왔습니다. 조하리의 창도 결국은 자기 객관화의 한 방법인 것이지요. 그런데 이 네 가지가 모두 종합될 때 비로소 나라고 하는 사람이 제대로 보입니다. 때때로 내가 숨기고 싶어하는 부분을 상대는 신경쓰지 않는 경우도 있어서 그것이 잘못된 판단일 수도 있지만, 남이 잘 모르는 나라는 점에서 그것도 나의 일부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네 가지의 총합이 '나' 그 자체는 아니지만, 이 네 가지를 통해서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결국 인간은 '관계' 속의 존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