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는 법
매일같이 폭염 경보가 울리고 뉴스에서는 찜통더위 관련 기사가 쏟아지던 뜨겁고 녹을 것만 같던 여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어느새 옷장 속에 묻혀 있던 두꺼운 옷을 꺼내게 되었고,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에어컨을 틀어야 했던 강의실과 집 거실에서는 이제 더 이상 에어컨을 켜지 않는다. 코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과 함께 푸르렀던 나무들은 하나둘씩 잎을 떨구고, 내 발에 닿는 것은 이제 초록빛 잎이 아닌 바스락거리는 낙엽이 되었다.
가끔 익숙했던 것들이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이 날씨가 곧 익숙해질 것이고, 더웠던 여름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날이 올 거라는 걸 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단어를 계속 발음하고 생각하다 보면 그 단어가 낯설고 이상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질 때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본다는 것은 매일 지나치던 길을 처음 보는 사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렇기에 잠시 멈추어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 익숙함 속에 숨겨져 있던 새로운 것들을 발견할 수 있다.
매일 빠르게 지나치던 익숙한 동네도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걸어 보면 평소라면 당연히 스쳐 지나갔을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 빨래방 앞에서 나는 빨래의 향기, 주택 앞 맛있는 찌개 냄새, 나무에 달린 열매, 바닥을 기어가는 지렁이, 다양한 가게들의 간판 등을 하나하나 세심하게 들여다보면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이 동네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본다는 것은 세상을 더 넓은 시야로 보는 것이다. 평소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시선을 돌려 숲을 바라보고, 숲만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나무를 주목하는 것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익숙한 것을 낯설게 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천천히 걸으며 새로운 시각으로 무언가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매년 새해 목표를 세우지만, 대부분의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고 내년으로 미루어지는 것처럼 실천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익숙한 것을 낯설게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익숙함에 안주해 편협한 사고에 갇혀 모든 것을 자기중심적으로만 보던 과거에서 벗어나 내가 이렇게 생각했지만 이렇게도 볼 수 있겠구나 라는 새로운 관점을 발견하는 재미를 찾을 수도 있다.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고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봄으로써 왜 그것들이 우리에게 익숙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것들을 새롭게 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첫댓글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것'을 우리는 두려워합니다. 의미 과잉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가 앞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매일매일의 순간, 그리고 그 순간 마주하는 것들에 대해서 의미 과잉이 될까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들의 의미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우리의 바람을, 우리의 내일을 어쩌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서 의미를 두지 않고, 바라봐주지 않으면서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일을 제대로 해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세계를 축소시키고, 답답하게 만듭니다. 삶의 세계가 축소된 사람은 눈가리개를 하고 앞만 바라보며 달리는 경주용 말과 같은 신세입니다. 달리면서 스쳐지나가는 풍경을 보지 못하고, 결국은 달리는 그 행위에만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에게 끝, 곧 삶의 목표라고 하는 것은 결국은 늘 새롭게 주어지는 어떤 지점에 도달하는 것일 뿐입니다. 익숙한 것들, 실은 익숙하지도 않은 것들을 낯설게 보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 있는 것들로 눈을 돌리고, 그것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세계를 확장시키라는 이야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