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4. 연중 제27주일(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1181/82-1226 기념일)
2026년 10월 04일
오늘의 말씀, 이 프란치스코 수사
이사 5,1-7 필리 4,6-9 마태 21,33-43
주님의 포도밭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가꾸고 돌봅시다.
“사랑, 찬미, 무욕, 평화”
오늘은 연중 제27주일이자 제 주보성인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입니다. 마치 예수님과 성 프란치스코의 축일을 동시에 지내는 기분입니다. 어제 저녁식사 때 영명축일 축하식에서는 수도형제들의 넘치는 사랑의 축하와 노래를 선물받고 일일이 포옹할 때는 난생 처음 <참 맑고 깨끗한, 순수한 형제애>를 안는 듯 참 신선한 느낌이었습니다.
또 어느 들꽃 같은 청순한 자매로부터는 끝기도 전 <태양의 찬가>를 선물 받았고 축하차 방문했던 분들과는 꽃다발을 들고 주님 배경으로 셀프 사진도 찍어 나눴습니다. 1988년 7월11일 요셉수도원에 부임 후 39번째 맞이하는 감개무량한 영명축일이었습니다. 당시 40세 나이였는데 이제 78세, 늦가을 인생에 접어든 듯 그러나 영혼은 늘 파스카의 봄입니다.
개신교 때부터 유일하게 알고 흠모해온 프란치스코 성인이었고 개종과 동시에 프란치스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았으며, 유일하게 알았던 왜관 성 베네딕도 수도회에 34세 늦깎이로 입회합니다. 그러니 성 프란치스코와 성 베네딕도와의 만남은 저에게는 운명적인 사랑의 사건이었던 것입니다. 제 짧은 <산과 강>이란 좌우명 시도 이를 요약합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한결같이, 끊임없이
임기다리는 정주의 산,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한결같이, 끊임없이
임향해 맑게 흐르는 강, 성 프란치스코”<1998.1.27.>
밖으로는 산의 성 베네딕도, 안으로는 강의 성 프란치스코의 삶과 영성을 지향하는 제 수도여정입니다. 어제는 며칠 전의 태양의 찬가 노래가 있는 <선운사 꽃무릇> 동영상과 수도원 일출의 장관의 풍경을, 그리고 어제는 영명축일 축하받는 사진이 맘에 들어 축복을 비는 마음으로 주님을 닮은 착한목자의 사랑으로 “-축복선물 받으시고 오늘도 힘내시고 건강하시고 평화로우시고 행복하세요!”글귀와 더불어 참 많은 지인들에게 선물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이고 제1독서 이사야서는 포도밭 노래입니다. 공통적으로 우리 믿는 이들은 모두 예나 이제나 주님 포도밭의 소작인 일꾼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라네” 방금 흥겹게 부른 화답송 후렴중 이스라엘 집안 대신 교회나 수도원, 모든 믿는 이들의 공동체를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새삼 주님의 포도밭의 빛나는 모범이 성 요셉 수도원 공동체임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의 포도밭이 상징하는 바 하느님의 나라 실현입니다. 깊고 넓게 보면 우리 몸담아 살고 있는 모든 공동체가 주님의 포도밭이며 하나뿐인 공동의 집 지구도 주님의 포도밭입니다. <지구 살리려면 지금 당장 기후정의“실천이란 모토 안에 많은 이들의 시위도 있었습니다. 주님의 포도밭 지구를 살려야 할 절체절명의 시점에 살고 있는 주님 소작인들의 생태적 회심이 절실한 시점입니다.
주님의 포도밭은 주인은 착한목자 하느님이신 주님인데 복음의 악한 소작인들은 탐욕의 무지에 눈이 멀어 끔찍한 악행을 저질렀습니다만 하느님은 좌절하지 않으시고 당신 아드님을 살리심으로 명실공히 당신 포도밭의 착한목자 책임자로 맡기셨습니다. 초대교회 신자들은 이를 시편으로 은혜로이 고백합니다.
“집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마태21,42;시편118,22-23)
그러니 착한목자 파스카의 주님을 공동체 삶의 중심에 모시고 지금 몸담고 살아가는 주님의 포도밭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만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우선적 사명이자 책임임을 절감합니다. 그 방법을 네 측면에 걸쳐 나눕니다.
첫째, 주님을 사랑하십시오!
주님 포도밭 공동체의 주인인 착한목자 파스카의 주님을 열렬히 한결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면 결코 주님을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실망시킨 복음의 악한 소작인들이 결코 되어선 안 됩니다. 이사야서의 포도밭 노래에서처럼, 주님을 실망시키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의 탄식이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그대로 오늘의 폭력의 악순환을 살아가는 무지한 세계인들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처럼 들립니다.
“내가 해 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만군의 주님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집안이요 유다 사람들은 그분께서 좋아하는 나무라네.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시는데 피 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공정과 정의와 평화가 실현되는 아름다운 주님의 포도밭을 만드는데 노력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교회안팎의 무수한 선각자들이요 성인들입니다.
둘째, 주님을 찬미하십시오!
주님 사랑은 저절로 주님 찬미로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주님 사랑의 훈련과 성장에 주님 찬미의 훈련과 습관보다 더 좋은 수행은 없습니다. 주님 포도밭의 착한 소작인 성인들은 한결같이 주님 찬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찬미의 기쁨, 찬미의 행복, 찬미의 맛, 찬미의 재미로 살아가는 성인들이요 우리들입니다. 주님 찬미는 우리의 영적본능입니다. 주님 찬미가 우릴 정화하고 성화하며 위로하고 치유하며, 참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점차 착한소작인들 주님의 일꾼으로 만들어 줍니다.
돈 없어도 주님 사랑의 마음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찬미의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오늘 시간되시면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와 다니엘서의 세 젊은이의 <찬미 감사 노래(다니3,52-90)>를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셋째, 탐욕을 버리십시오!
무욕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무욕의 지혜와 자비입니다. 어렵지 않습니다. 탐욕의 원인은 두려움에서 비롯됩니다. 참으로 끊임없는 주님 사랑의 찬미로 최고의 보물이자 안식처인 주님을 모실 때, 두려움의 어둠은 주님의 빛 앞에 사라지고, 비로소 무지와 허무의 두려움의 어둠에서 해방됩니다. 모든 불행과 재앙의 궁극의 원인은 눈먼 탐욕에서 기인합니다.
탐욕에는 한계가 없으니 바로 거기가 무지의 탐욕이 자초한 지옥입니다. 탐욕이 사라진 곳 바로 거기가 하느님의 나라요 참 좋은 주님의 포도밭 공동체입니다. 그 좋은 본보기가 바로 가톨릭교회요 여기 <남양주 성 요셉 수도원>입니다.
보십시오. 복음의 악한 소작인들의 행태는 지금도 여전히 계속됩니다. 착한목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이들이 누구입니까? 주님 포도밭의 악한 소작이들이었습니다. 교회의 무수한 착한소작인들의 순교는 밖에서가 아닌 교회 안에서의 주님의 포도밭 악한 소작인들의 소행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탐욕을 버리십시오. 바로 거기가 지혜와 자비가 빛나는 하느님 나라입니다.
넷째, 평화를 추구하십시오!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이 이 모두를 포함합니다. 그러니 어떠한 경우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모든 이해를 뛰어넘는 하느님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지켜 줄 것입니다.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런 욕심은, 청정욕은 얼마든 좋습니다. 우리의 무한한 부정적 에너지 탐욕을 이런 청정욕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자발적 기쁨으로 끊임없이, 한결같이 바치는 <사랑의 찬미와 봉사의 삶>입니다. 더불어 하느님의 평화로 충만한 주님의 포도밭, 하느님 나라의 실현입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착한목자 예수님을 그대로 닮은 오늘 기념하는 성 프란치스코입니다. 오늘 시간되면 성인의 <태양의 찬가>와 <평화의 기도> 꼭 음미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 주님께로부터 주어진 평생과제가 주님 포도밭을 아름답고 평화롭게 가꾸고 돌보는 일입니다. 주님은 네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1.주님을 사랑하십시오.
2.주님을 찬미하십시오.
3.탐욕을 버리십시오.
4.평화를 추구하십시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 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