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tafa Kemal Atatürk
(1881 ~ 1938)
터키의
국부. 터키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1923년부터 1938년 사망할 때까지 15년간 재직했다.
어린 시절의 이름은 "무스타파". 케말은 본래 별명으로 '완전무결'을 뜻하는 아랍어 '카말'에서 유래한 말인데, 그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 수학선생님이 그의 뛰어난 수학실력에 감탄하여 이런 별명을 붙여줬다는 일화가 전한다.
터키 공화국 수립 후 모든 사람에게 성을 쓰게 하면서 "아타튀르크"라는 성을 쓰게 되었다.
'아타튀르크'는 '터키의 아버지'라는 의미이다. 그는 실로
국부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는데, 그의 업적과 사상이 곧 현대 터키 공화국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터키의 모든 공공건물에는 아타튀르크의 조각상이나 초상이 걸려 있고, 터키의 모든 지폐에는 아타튀르크의 초상이 들어 있다.
1차 대전이 끝나고, 연합국은
독일편에 섰던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려는 시도를 했다. 연합국의 안은 수도
이스탄불과 그 주변 일부를 제외한 모든 지역을 점령하는 것이었으며, 설상가상으로
비잔티움 제국의 부활을 외치는
그리스가 소아시아로 진군해왔기 때문에 터키는 국가해체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케말은 앙카라에서 국민회의를 주최하고, 그리스군을 격파해서 소아시아 반도에서 몰아냈으며,
오스만 제국의 술탄 정부를 반역자로 규정하고 연합국과 재협상을 벌였다. 긴 전쟁으로 지쳐있던 연합국은 협상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지금의 터키 공화국 영토를 확정하였다.
새로 성립된 터키 공화국에서 케말은 강력한 정교분리, 세속주의 원칙을 펼쳤다. 복잡한 아랍 문자 대신에
알파벳을 쓰는 라틴 문자를 채택했고, 서구식 정부 제도를 받아들였다. 그 결과 케말의 서구화 정책은 터키를 이슬람권에서 가장 개방적인 나라로 만들었다. 물론 이런 과정 중, 그리고 그 이후에도 공화파와 이슬람세력 간에 충돌이 있었고 그 와중에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터키의 노벨문학상 작가인 오르한 파묵의 저서 '눈'이 이 갈등을 표현한 대표적인 작품.
특히나 특이하게도 아타튀르크는 히잡을 금지시키고 싶었는데,
이슬람 국가에서 히잡금지 때리면 난리가 날껄 예상하고 제정된 법안이...
모든 창녀는 히잡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모든
여자는'이 아니라!)
참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
첫댓글 이슬람 세계에서 그러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우리한테도 이런 멋진 지도자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하긴 있어도 못견디고 사라질거 같긴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