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나무는 좋은 열매를 맺는다
창세 15,1-18; 마태 7,15-20 / 성 이레네오 주교 학자 순교자 기념일; 2023.6.28
부르심은 가르침을 통해 계약으로 이어집니다. 하느님과 아브람의 관계에서도 그러했고,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에서도 그러했습니다. 이 모두가 다 하느님의 네트워크(Network)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수메르 문명권에서부터 가나안 땅으로 아브람을 불러내신 하느님께서는 그가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했을 뿐만 아니라 당신을 섬기려는 믿음도 충실함을 보시고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축복으로 이집트 강에서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너른 땅을 주셨습니다. 이미 그 당시에 북쪽에서는 유프라테스강 일대에 수메르 문명에 이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일어나 있었고, 남쪽에서는 이집트 문명이 일어서고 있었는데, 이제 아브라함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 두 문명 사이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새로운 문명을 이룩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로부터 2천 년 뒤에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오셨을 때, 아브라함이 전해준 믿음의 전통과는 달리 거짓 예언자들과 그들의 꾐에 빠진 우상숭배자들을 보셨습니다. 거짓 예언자들은 양의 옷차림을 하고 와서는 게걸든 이리들처럼 사람들을 타락시켰습니다. 타락한 그들이 제법 많았고, 그에 물들지 않은 이들은 드물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식별 기준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것이 열매를 보고 나무를 식별하라(마태 7,17)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물려준 믿음의 전통을 따르고 있던 이들 가운데에서 열두 제자를 뽑아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시고 그들과 사도가 되는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사도가 된 제자들이 맺어야 할 열매는 복음을 실현하는 교회를 이룩하는 일이었고, 그들이 받을 수 있는 축복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현존하시는 새로운 땅이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세례를 받은 우리가 미사 때에 영성체를 하는 의미는 거듭거듭 계약을 새롭게 갱신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 계약은 예수님의 피로 맺어진 ‘새롭고 영원한 계약’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축성된 성혈을 받아 마실 때마다 그 의미는 더욱 살아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분은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마셔라.”(루카 22,17) 하고 명령하셨습니다. 그 까닭은 당신의 뜻과 삶과 희생을 기억하여 우리로 하여금 같은 뜻과 같은 삶과 같은 희생으로 계승하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칼데아 우르에서 빠져나와 낯선 땅 가나안에서 소박하지만 새롭게 시작한 그 삶이 사랑의 문명을 이룩하기 위해 우상숭배 문명에 대적하는 ‘하느님의 방패’(창세 15,1)였고 이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하늘의 별’(창세 15,5)처럼 불어났습니다.
세월이 흐른 후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불러 모아 사도로 양성하심으로써 세우신 교회가 오늘날 수십억 명을 넘는 큰 무리로 자라났습니다. 하지만 늘어난 숫자가 표시하는 양적인 규모가 질적인 내용을 보장해 주지는 못하는 법, 아직도 아브람처럼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님처럼 작은 규모로 소박하지만 새로운 시작을 이루어야 하는 요청은 여전히 절박하게 남아 있습니다.
2021년 현재 전 세계 인구 78억 명 가운데 그리스도인들이 그 1/3 가량 되는 약 25억 명이고 그 중 가톨릭 그리스도인들만 해도 12억 명을 상회하고 있으니(International Bulletin of Missionary Research, 2021년 1월호), 하늘의 별들처럼 불어나리라고 하느님께서 축복하신 바가 분명히 실현된 것이 틀림없어 보이지만, 가톨릭교회의 수장으로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내다본 것처럼 “앞으로의 세상은 대다수의 무신론자들과 소수의 신비주의자가 차지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등 자본을 중심으로 한 사회적 무신론 풍조와, 물질의 풍요로움과 육신의 편리함과 현세적 행복을 우선시하는 물질적이고 심리적인 무신론 풍조, 게다가 발달된 기술과 이를 뒷받침하는 과학을 떠받드는 나머지 하느님 없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과학만능주의적 무신론 풍조가 이 세상에 만연되어 있고 사람들 의식 안에 팽배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대의 징표들 속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개인들 사이에서나 나라들 사이에서 강자가 더욱 부유해지고 약자가 더욱 가난해지는 빈익빈부익부 사태입니다. 또한 이렇듯 선진국들이 인류 사회 전체의 공동선을 보지 못하고 자국의 이익만 앞세우고는 또한 국내에서도 정치경제의 책임자들과 지식인들 역시 사회의 공동선보다는 부자들의 소득 향상에 따른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down Effect. 대기업이나 고소득층 등 선도 부문이 성장하면 이들의 성과가 연관부문으로 확산됨으로써 경제 전체가 성장한다는 이론.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이것이 자본을 섬기게 하는 현대판 우상숭배풍조로서 허구임을 비판하였다.)만을 기대하는 등 균형 감각이 실종되다보니, 여기서 비롯된 결과로서 인류와 모든 생명체들의 공동의 집인 지구의 환경이 날이 갈수록 오염되고 파괴되어 가고 있습니다. 오염된 환경과 파괴되어 가는 생태계에서도 가장 먼저 그리고 제일 치명적으로 피해를 입는 희생자들은 경제양극화에서 뒤처진 가난한 이들입니다.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갈수록 악화되어 가고 있는 이 두 가지 현상, 경제양극화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사태야말로 현대 물질문명이 과연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보여주는데, 이것만으로도 인류의 지성과 양심을 하느님의 뜻에 비추어 질타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이유가 됩니다.
교우 여러분!
그래서도 하느님의 축복과 보호하심을 믿고 사랑의 문명에 희망을 거는 이들은 아브람과 예수님의 소박하면서도 새로운 시작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브람은 아내 사라와 조카 롯과 함께 세 명이서 시작했으며,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로 시작하셨습니다. 그렇게 소박하게 새로이 시작하려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요한 15,4-5, 복음 환호송).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