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서교동에 있는 중식당 '진진'은 짜장면·짬뽕·탕수육 등 중국집 하면 떠오르는 음식은 아예 팔지 않는다. "늘 먹는 짜장면·짬뽕·탕수육 말고 흔히 접하지 못하는 정통 중국 요리를 즐겨보라는 뜻에서 뺐어요." 이 식당 대표 겸 총주방장인 화교 왕육성씨가 말했다. 왕씨는 코리아나호텔 중식당 '대상해'를 26년간 운영했던 화교 요리사계의 원로다.
#2. 서울 연남동 '대만야시장' '송가' '띵하우' '편의방'은 '중식 포차(포장마차)'라 불린다. 우리가 아는 평범한 중국 음식 대신 피가 두툼하고 새우가 들어간 물만두, 소스를 뿌리지 않는 대만식 탕수육같이 중국과 대만의 현지 음식을 술안주처럼 판다.
흔히 '철가방 배달 음식'으로 여겨지는 중국 음식이 환골탈태(換骨奪胎)하고 있다. 화려한 중국식 문양의 그릇이나 실내 장식 대신 카페 같은 분위기로 단장하고, 중국 요리의 상징인 짜장면을 팔지 않는 가게까지 등장했다. 허름한 동네 '짜장면집'과 고급스럽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 고급 호텔 중식당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식당이 '모던 차이니즈'로 대중의 맛과 멋을 공략하고 있다.
서울 반포 고속버스터미널 파미에스테이션에 있는 중식당 '모던눌랑'은 꽃무늬 새겨진 비취색 접시에 음식을 조금씩 담아낸다. 화려한 중국식 문양으로 뒤덮인 무겁고 큰 접시에 잔뜩 담겨 나오는 여느 '중국집'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이 식당은 1930년대 중국 상하이를 테마로 카페처럼 세련된 분위기로 실내 장식을 했다.
전국 17개 지점을 둔 싱가포르계 중식당 프랜차이즈 '크리스탈 제이드'의 대표 메뉴는 고추와 땅콩으로 만든 맵고 고소한 소스에 버무려 먹는 사천(四川)식 국수 '딴딴면'이다. 몇 해 전만 해도 생소한 중국 요리였지만 지난 10월 이 식당의 면 요리 가운데 매출 1위였다. 이 식당 관계자는 "딴딴면이 짜장면과 짬뽕을 제쳐 우리도 놀랐다"고 했다.
이들 '신(新)중식당'의 공통된 특징은 중국 본토 맛에 충실하다는 것. '크리스탈 제이드' 관계자는 "중국·홍콩·대만 등 중화권 여행이 증가하면서 정통 중식을 경험한 소비자들이 현지 맛을 구현하는 중식당을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식당 분위기가 달라지자 여성 손님의 비중도 증가했다. '모던눌랑' 관계자는 "주 고객층의 70%가 여성"이라며 "기존 중식당 손님은 남성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과 비교해 이례적"이라고 말했다.
음식은 기존 중식당처럼 많이 담아주지 않고 둘이서 나눠 먹기 알맞을 정도의 양이다. 미국 프랜차이즈 중식당 'PF창'도 패밀리 레스토랑을 능가하는 세련된 인테리어에 중식과 어울리는 다양한 칵테일을 내놓으면서 젊은 여성들이 즐겨 찾고 있다.
중식의 부활은 방송으로도 연결되고 있다. 지난 10월부터 SBS플러스에서 방영 중인 '강호 대결 중화대반점'은 중식에 대한 관심을 실감케 한다. 옥근태 SBS플러스 CP는 "시청자 반응이 예상보다 훨씬 뜨겁다"며 "시식단 경쟁률이 초반 70대1에서 500대1로 껑충 뛰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중식이 뜨는 건 누구나 중식에 대한 추억이 있기도 하지만 중식이야말로 미식의 궁극(窮極)이자 종착역이라는 인식 때문"이라고 했다.
음식칼럼니스트 강지영씨는 "1990년대 후반부터 고급 외식시장은 프랑스 레스토랑에, 대중 외식은 피자·스파게티로 대표되는 이탈리아 요리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며 "최근 서양 요리에 질린 대중이 다시 중식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