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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산 남인희화백님의 카톡에서]
●사랑방 夜話●
[ 무 촌 ]
강원도 정선땅,
첩첩산중을 헤매던 사냥꾼이
풀숲에서 몸을 낮추는 짐승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고 부리나케 달려갔다.
이럴 수가!
사냥꾼의 화살에 맞아 죽은 것은
짐승이 아니라 약초 캐던
노인이었다.
사냥꾼은 노인의 시체를
정성껏 염해서 용바위 바로 아래
양지바른 곳에 묻고 나서
목마를 때 마시려고
차고 다니던
표주박의 막걸리를 따라놓고
눈물을 흘리며 절을 했다.
그러고 나서 자신도
소나무에 목을 매고 죽으려 했지만
눈앞에 아른거리는,
늦장가를 들어 얻은
외아들 삼봉이와 아내 모습에
그만 올가미를 벗고 집으로 돌아왔다.
한숨만 푹푹 쉬자 부인이 캐물었다.
사냥꾼은 자초지종을 털어놓고
날이 새면 관가에 가서
자백해야겠다고 했다.
살인자는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사형을 당하는 시절이라
부인이 펄쩍 뛰었다.
“여보, 하늘 아래 그걸 아는 건
우리 세식구뿐이잖아요
당신 없이 우린 어떻게 살라고..”
이튿날 아침,
늦게 일어난 사냥꾼 부인이
개밥을 주려고 누렁이를 찾자
끝내 보이지 않았지만
이 판국에 개 없어진 것은
문제가 될 수 없었다.
세월은 흘러 3년이 지났다.
그때 그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15세 삼봉이는 아버지를 도와
사냥감을 몰고
아버지는 목을 지키다가
활시위를 당겨
보는 족족 잡아
광 속엔 산짐승 모피가 가득했다.
모피철 늦가을이 되면
모피를 팔아 한몫 잡을 참이다.
그러던 어느날,
사냥꾼 부자는
3일 동안 사냥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광 속의 모피를 몽땅 털어
부인이 집을 나간 것이다.
사냥꾼 부자는
몇날 며칠 수소문 끝에
부인의 행방을 알아냈다.
모피수집상과 눈이 맞아
정선 읍내에 새살림을 차린 것이다.
사냥꾼 부자가 그 집을 찾아가
“네 이년, 당장 동헌으로 가자.”
부인은 배시시 웃으며
“사또 앞으로 가자,
이 말씀이군요.
갑시다.”
부인이 꼿꼿하게 대들자
사냥꾼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3년 전 그 일이 떠오른 것이다.
동헌으로 가는 길에
삼봉이가 몰래 아버지 귀에
속삭였다.
“아버님 사또 앞에 가거든
절대로 그런 일 없다고
딱 잡아떼세요.
저만 믿으시고!”
그들은 사또 앞에 섰다.
부인이 앙칼지게 말했다.
“이 살인자하고 살 수 없어
제 발로 집을 나왔습니다.”
사냥꾼이
“나는 짐승 잡는 사냥꾼이지
사람 잡는 망나니가 아닙니다.”
사또가 육방관속을 거느리고
사냥꾼 부인을 앞세워
용바위로 올라갔다.
포졸들이 땅을 파자 뼈가 나왔다.
이방이
“사또 나리 이것은 사람 뼈가 아니라
네발 달린 짐승 뼈이옵니다.”
사또가 고함쳤다.
“여봐라 저년을 당장 옥에 가두고
간부도 잡아넣으렸다.”
호롱불 아래 사냥꾼과
아들 삼봉이가 마주 앉았다.
“어떻게 된 셈이냐?”
사냥꾼이 물었다.
“그날 밤,
아버지 어머니께서 잠드신 후
몰래 용바위로 올라가
시체를 파내어 멀리 뒷산에 묻고
따라온 우리 집 개를 잡아
그 자리에 묻었습니다.
부부지간은 촌수가 없습니다,
촌수도 없을 만큼
가까울 수도 있고
촌수도 없을 만큼
남남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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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報恩)》
90세가 된 미국인 할아버지는 손녀 하나만 바라보고 그녀를 양육하며 일생을 살아 오셨습니다.
아들과 며느리는 이혼하고 아들과 손녀 셋이서 단란하게 살았지만
아들이 먼저 하늘 나라로 가면서 어린 손녀를 할아버지 혼자 양육하게 되었습니다.
늘 건강하시던 할아버지가 최근에 들어 옆구리를 잡고 힘들어 하시는 모습을 보며 왜 그 러시냐고 물어보았더니 할아버지가 20대에 6.25 한국전쟁에 파병되어 중공군과 싸우다가 옆구리에 총을 맞았는데 당시 의술로는 그냥 총알을 몸에 지닌 채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판단으로 지금까지 그냥 지내오셨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나이가 들고 면연력이 약해지니 그로 인한 여러가지 몸의 상태가 안 좋으시다는 말씀을 들은 손녀는 수술을 해드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미국 병원비는 아마 집 한채 값을 들여야 할 것 같아 마음 뿐이었지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은 의술도 좋고 병원비가 저렴하다는 소문을 들은 손녀는 할아버지가 평생 자신을 위해 희생하신 것에 보답하기 위해서 치료를 해 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할아버지를 모시고 한국으로 왔습니다.
병원에 입원하고 모든 검사를 마친 후 담당 의사는 "몸에 총알을 담고 어찌 지금까지 사셨습니까?"하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할아버지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 중공군과 싸울 때 얻은 훈장이라고 설명을 하자 담당 의사가
"저희 할아버지도 6.25 참전 용사셨는데 총을 맞고 후송되었지만 결국 열악한 의료 시설과 낙후한 의술 때문에 돌아가셨고, 아버지가 의사가 되시려고 생각하셨지만 가난한 살림으로 의학공부를 할 수 없어서 아들인 제가 의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며 "염증이 생겨 그냥 두면 안되는 상황이다. 잘 오셨다."고 말하며 "저희 할아버지와 같은 참전 용사를 수술할 수 있게 되어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수술이 순조롭게 끝나고 회복한 후 건강한 모습으로 완쾌하여 퇴원하게 되었습니다.
퇴원을 위해 수속을 준비하면서 손녀는 치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왔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계산을 하러 창구로 갔는데 수납 창구에서 봉투 하나를 내어 주었습니다.
"얼마일까?" 하며 봉투를 열어보니 계산서에 "진료비 0원"에 미화 $1,000가 들어있었습니다.
동봉한 작은 쪽지에는 "당신이 흘린 피로 지킨 우리나라의 자유는 영원할 것입니다. 귀국하시거든 여생을 편안하게 오래오래 사십시요"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병원측과 담당 의사가 치료비를 모두 부담 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깜작 놀란 손녀는 집도의사를 찾았지만 의사는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퇴원하여 미국으로 귀국하면서 할아버지는,
"전쟁 당시에도 한국 군인들은 듬직하였고 정이 많은 병사들이었다.
한국이 놀랍도록 발전했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이 정도로 발전 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산(山)은 붉은 흙과 돌들 뿐이었고 참 가난한 나라였었는데 울창한 산림과 빌딩 숲을 보니 내가 한국의 자유를 위해 싸운 보람이 있다."
고 말씀하시며 기쁜 마음으로 미국으로 돌아 가셨다고 합니다.
국격을 높인 젊은 의사에게 박수를 보냅니다.
얼굴도 모르는 우리나라를 위해 15만 여명의 연합군이 죽거나 다치거나 실종되었습니다. 그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날 우리나라의 평화가 있었을까요?
미국의 수도 워싱턴 의사당앞의 한국공원에는 한국전에서 전사한 50,000명의 미군 명단과 공원 바닥에 쓰여 있어 가슴 뭉클하게 하는 문구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를 볼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으로 우리의 안보 현실을 뒤돌아 보게 됩니다.
감사합니다.펌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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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보석 같은
나라였다! 》
- 한국인은 원래
善한 품성을 가진
백의민족이었다. -
우리 조상들은
작은 벌레의 생명조차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뜨거운 개숫물을
마당에 버릴 때에는
이렇게 외쳤다.
“워이 워이!”
물이 뜨거워 벌레들이
다칠 수 있으니
어서 피하라고
소리친 것이다.
봄에 먼 길을
떠날 때에는
오합혜(五合鞋)와
십합혜(十合鞋),
두 종류의 짚신을
봇짐에 넣고 다녔다.
'십합혜'는
씨줄 열 개로
촘촘하게 짠 짚신이고
'오합혜'는 다섯 개의
씨줄로 엉성하게 짠
짚신을 가리킨다.
행인들은
마을길을 걸을 땐
'십합혜'를 신고 걷다가
산길이 나오면
'오합혜'로 바꾸어 신곤 했다.
벌레가 알을 까고
나오는 봄철에
벌레들이
깔려 죽지 않도록
듬성듬성 엮은
짚신을 신은 것이다.
'오합혜'는
'십합혜'보다
신발의 수명이 짧았으나
그 만큼 벌레의
수명은 늘어났다.
▪️콩을 심을 때엔
세 알씩 심었다.
한 알은 땅 속에 있는
벌레의 몫으로,
또 하나는
새와 짐승의 몫으로,
마지막 하나는
사람의 몫으로 생각했다.
▪️감나무 꼭대기에
‘까치밥’을 남겨 놓고,
▪️들녘에서
음식을 먹을 때에도
"고수레"하면서
풀벌레들에게
음식을 던져주었다.
이러한 미덕은
우리의 식문화에도
그대로 배어났다.
여인들은
3덕(三德)이라고 해서
식구 수에
세 명의 몫을 더해
밥을 짓는 것을
부덕(婦德)으로 여겼다.
걸인이나
가난한 이웃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미국 여류소설가
'펄 벅'은 장편소설
‘살아 있는 갈대’에서
한국을
‘고상한 사람들이 사는
보석같은 나라’로 표현했다.
그녀의 극찬은
한국에서 겪었던
특별한 체험때문 이었다.
1960년 '펄 벅'이
소설을 구상하기 위해
한국을 찾았다.
'여사'는 늦가을에
군용 지프를
개조한 차를 타고
'경주'를 향해 달렸다.
노랗게 물든 들판에선
농부들이 추수하느라
바쁜 일손을 놀리고 있었다.
차가
'경주 안강' 부근을
지날 무렵,
볏가리를 가득 실은
소달구지가 보였다.
그 옆에는
지게에 볏짐을 짊어진
'농부'가 '소'와 함께
걸어가고 있었다.
'여사'는 차에서 내려
신기한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여사'가 길을 안내하는
통역에게 물었다.
“아니, 저 농부는
왜 힘들게 볏단을
지고 갑니까?
달구지에
싣고 가면 되잖아요?”
“소가 너무 힘들까 봐
농부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지요.”
'여사'는
그때의 충격을
글로 옮겼다.
“이제 한국의
나머지 다른 것은
더 보지 않아도 알겠다.
볏가리 짐을 지고 가는
저 농부의 마음이 바로
한국인의 마음이자,
오늘 인류가
되찾아야 할 인간의
원초적인 마음이다.
내 조국, 내 고향,
미국의 농부라면
저렇게 힘들게
짐을 나누어 지지 않고,
온 가족이 달구지
위에 올라타고 채찍질하면서
노래를 부르며 갔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농부는
짐승과도 짐을 나누어 지고
한 식구처럼 살아가지 않는가.”
▪️구한말 개화기에
한 선교사가
자동차를 몰고
시골길을 가고 있었다.
그는 커다란 짐을 머리에
이고 가는 할머니를 보고
차에 태워드렸다.
저절로 바퀴가 굴러가는
신기한 집에 올라탄 할머니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뒷자리에 앉은
할머니는
짐을 머리에
계속 이고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내려놓으시지요?"
선교사의 말에 할머니는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이고,
늙은이를 태워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어떻게 염치없이
짐까지 태워달라고
할 수 있겠소?”
차를 얻어 타고서
차마 머리에 인 짐을
내려놓지 못하는 善한 마음이
우리의 모습이었다. - 終.
- 옮겨온 글 -
※ 요즘 自己中心의
윤리적 에고이즘에
빠져있지는 않는지
살펴봐야 겠다. -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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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선한 아침 공기와 함께
오늘 하루가
나에 몸과 정신이 건강한
하루가 될 수 있는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서로가 바라보는 눈에서
사랑의 눈빛이 흘러나와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 입니다."
라고 인사하는 하루가 됩시다.
오늘의 계획이 나에 뜻대로
이루어져서 행복하게 해주세요.
나로 인해
다른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나의 말 한 마디에
사랑에 힘이 있도록 해주세요.
늘 나보다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여..
쉽게 좌절하지 말고 힘들어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한 힘을 주세요.
남에게
줄 때는 조금 덜 준 듯이..
내가 남에게 받을 때는
조금 더 많이 받은 듯이
그렇게 생각하는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힘들어도쉽게 화내지말고
내 입에서
나오기 전에
늘 세 번을 생각하고
말을 하는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그 길고도
가장 짧은 시간들을
내가
보람있게 보내는
하루가 되어
행복해지는 하루가 되게 해주세요.
안 된다는 말보다
된다는 생각으로 살게 해주세요.
- 옮겨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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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편을 파는 곳!
남편감을 파는 백화점이 새로 문을 열었다.
이 백화점에 가면 마음대로 남편감을 골라 살 수 있다고 하였다.
5층으로 되어 있는 백화점에는 층을
올라갈수록 점점 더 고급스러운 상품이 진열되어 있다고 하였다.
단 규정이 하나 있는데, 일단 어떤 층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이상은 올라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남편을 선택해야 했다.
쇼핑을 포기하고 백화점을 완전히 떠날 생각이 아니라면,
이미 거쳐 왔던 층으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두 여자가 꿈에 그리던 남편을 사려고 백화점을 찾았다.
백화점 1층에 당도하니, 품목에 대한 안내문이 하나 걸려 있었다.
"이곳에는 직업이 있고 아이들을 좋아하는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한 여자가 말했다.
"괜찮군, 1층이 이 정도면 한 층더 올라가 볼 필요가 있겠어.''
다음 층에서는 어떤 남자를 팔까?
"이곳에는 돈을 잘 벌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아주 잘 생긴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흠, 아주 좋아,"
그래도 위층에 어떤 남자들이 있는지 확인은 해봐야겠지?"
두 여자는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고는 위로 한 층을 더 올라갔다.
3층에 걸린 안내문.
"이곳에는 돈을 잘 벌고,
아이들을 좋아하며,
아주 잘 생겼고,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정말 여기서 내리고 싶어지는 걸!
하지만 올라 갈수록 점점 더 좋아지니
위층에는 어떤 남자들이 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잔아!"
두 여자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4층으로 통하는 문 앞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이곳에는 돈을 잘 벌며,
아이들을 좋아하고,
아주 잘 생겼고,
집안일을 잘 도와 줄 뿐 아니라 아주 로맨틱한 남자들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맙소사!'' 두 여자는 경악했다.
"4층이 이 정도라면 5층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들은 어떨지 상상조차 안돼!"
두 여자는 서둘러 5층으로 올라갔다.
5층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
안내문은 다음과 같았다.
"5층은 조기 매진 품절로
다 팔려 잔고 없음''.
만족을 모르는 당신,
출구는 왼편에 있으니 계단을 따라 쏜살같이 집으로 돌아가시기 바람.
인간 욕망의 끝은 어디일까요?
모든 강물이 바다로 흐르되 바다를 채우지 못함과 같이,
눈은 아무리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아무리 들어도 차지 않습니다.
앉으면 눕고 싶고,
나귀 타면 경마 잡히고 싶고,
자전거 한 대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던 사람이,
막상 갖고 보면 자가용이
눈앞에 선해 떠나지 않습니다.
단칸방이라도 좋으니 내 집만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던 사람도,
막상 단칸방 창문 너머 보이는 30평 아파트가 눈이 시리도록 아른거리는 것이 사람 마음입니다.
적당한 욕심은 발전을 가져옵니다.
형편과 처지에 따라 브레이크를 밟을 수만 있다면 적당한 욕심도 필요하겠지요!
불행히도 사람 욕심이라는 승용차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어느 하나를 절실히 원하다 그것을 막상 소유하게 되면,
그 얻은 것에 감사하는
마음은 짧은 여운으로 끝나고,
또 다른 하나를 더 원하고 더 많이 바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갖고 있을 때는 소중함을 모릅니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기에 가진 것에 만족하고
적은 것에 행복을 느낄줄 아는 지혜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욕심은 부릴수록 비참해지고
만족은 가질수록 행복해진다.}
있다가 없어지면 더 좌절하고 못견뎌하는 게 인간심리다.
이를 소유효과 (Endowment Effect) 라고 한다
붓다는 소욕지족(少欲知足),
적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살라고 했습니다.
없는 것을 슬퍼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에 만족할 줄 아는 자가 정말 부자인거라고...
가진 것 사랑하고 만족합시다.
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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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그러진 마지막 세대(世代)"👍
무심히 흐르는 구름 따라 세월은
흘러 어느덧 2023년 계묘년도 서리가 내리고 겨울은 깊어만 간다.
참 덧없이 흘러가는 세월이다.
국민학교 다닐 때 보따리에 책을
싸서 어깨에 메고 뛰던 그 시절 보릿 고개에 배 꺼진 다고 어른들은 뛰지도 못하게 하셨다.
연필에 침을 묻혀 가며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하며 더하고, 빼고를 하던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지나간 추억(追憶)일 뿐이다.
주판알을 튕기던 시대를 넘어 전자 계산기가 나오고 컴퓨터가 등장 하더니 이젠 모바일 폰으로 모든게 해결 되는 세상이 되었다.
편하긴 하지만 굳어 버린 손가락으로
과거의 습관에 익숙 해진 고정 관념으로 따라 가기엔 너무나 벅찬 세상이다.
모든 것이 편한 세상 이라곤 하지만,
그래도 컴맹 에겐 어렵고 불편한 세상이고,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청맹과니(눈뜬장님)가되는 세상이다.
예의범절(禮儀凡節)이란 단어는
고어사전(古語辭典)에서나 볼 수 있는
단어가 되었다.
집안에서 하던 크고 작은 행사들도 (돐ㆍ백일ㆍ생일ㆍ장례ㆍ등) 이젠 볼수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정말 우리는 지난 세월을 힘들고
어렵게 살아왔는데 이제 그 모든 것 들을 알고 있는 마지막 세대가 되었다.
이제는 우리 세대를
일컬어서 컴맹의 마지막 세대,
검정 고무신에 책 보따리를 메고
달리던 마지막 세대
굶주림이란 가난을 아는 마지막 세대,
보릿고개의 마지막 세대 , 부모님을모시는 마지막 세대
성묘(省墓)를 다니는 마지막 세대
제사(祭祀)를 모시는 마지막 세대
부자유친(父子有親) ‘아비와 자식은 친함에 있다’ 라고
교육 받았던 마지막 세대
우리는 자식 들로 부터 독립 해서
살아야 하는 서글픈 첫 세대가 되었다.
죽어서 귀신이 된 후에도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하는 첫 세대가 될 것 같다.
아니꼽고 치사하지만,
젊은이들에게 컴퓨터도 모바일 폰도
열심히 배우고 익혀서 얼마 남지 않은 세월이지만 젊은이들 눈치만 보지 말고 우리도 즐겁고 재미있게 살도록 노력해야겠다.😂😀😄
(좋은 글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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