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_한국의차인1(서평비교고찰문)
참...이건 뭔 조화인지..., 맥주 한 잔 시원하게 들이키고 난 후, 차 서적을 뒤적이다. ㅎ~~ 서평들이 은근 재밌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생각을 써보기로 한다.
이 책은, 이번에 새로 출간된 #한국의차인1 이다. 출판은 차의세계이고, 저자는 차의세계 발행인 최석환님이다. 이 책은 저자가 20여년간 발굴한 33인의 차인에 대한 기록이다. 초의선사 이후부터 근현대까지의 차인들 발자취를 엄선하여 33인으로 가닥을 잡고 그 맥락을 이어가는 책이다. 한국의 차인1이 출간되었으니 2권, 3권도 출간될 것이다.
세 편의 서평이 실렸는데, 명원문화재단 김의정님과, 장시성사회과학수석연구원 위웨님과, 코베대학 명예교수이자 심차회 회장인 쿠라사와 유키히로님이다.
세 편의 서평을 읽어보니, 각 나라들 특징이 드러나는거 같다. 사람은 환경을 떠날 수 없고, 그 환경은 기억이 되어 그 사람에게 전승되는거 같다. 간략하게 각 서평들 내용의 맥락만 살펴보기로 한다.
김의정님 서평은 명원 김미희선생의 발자취 속에서 한국차가 이어지는 과정과 한국차문화를 이어오는 그 지난한 애환에 대해 넌지시 알려주고 있다. 비교적 짧은 서평이다. 뒤에 최석환님의 서문에 김미희선생의 일화와 활동이 다시 언급되고 있다. 또한 독립적으로 차인 글에 다시 소개되므로 인해서 서평이 짧은 것이라고 여긴다.
중국의 위웨님의 서평은 중국내에서 차산업의 위상이 간접적으로 드러나 있다. 차인의 정의를 협의적 관점에서 언급한 부분을 보면, 차인을 정의하는 중국인들의 시선을 느낄 수 있다. ' 차를 심는 사람과 차를 파는 사람만을 차인으로 친다' 이 분분만 보자면, 한국에서 협의의 관점의 차인은 - 차를 만드는 사람과 차를 파는 사람에 차별을 두었었다. 또한 차를 직접 마시고 행다를 하는 이들에 더 무게가 있었다. 차인보다는 '다인'이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차인과 다인이라는 언어 사용의 무게중심을 보자면, 차인은 사람지향적이고, 다인은 행위지향점이라는 약간의 차이를 만들어 내었던거 같다. 차인이 인간이 지향하는 어떤 궁극적 이상 형태의 모델과 같다면, 다인은 차를 마시는 사람으로만 한정하는 느낌을 나는 받고는 하였다. 시간이 흘러 중국과의 차무역을 통해 차를 파는 사람에 대한 시선이 완화되었다. 이 부분은 우리나라 다인들이 차상인(차무역)에 대해 관대하지 않았다는 반증도 된다고 여긴다. 반면에 그저 차만 팔면 차인은 아닌 것이다. (여기서 차는 완제품의 상품의 차를 의미한다). 그건 그 당사자들도 원하는 바가 아닐 것이다. 상업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을 원하는건 본인 소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를 팔아도 자신이 차인이라 여기면서 판다면, 그에 걸맞는 자기 지향점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차인인 것이다. 반면 중국은 차인에 대한 협의의 관점이 차를 만드는 사람과 차를 파는 사람을 동등하게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그 자신들이 그렇게 여기고 있는거 같다고 여긴다.
위웨님은 <한국의차인1> 책의 가치를 차인의 광범위성 - 광의의 범위에서의 차인을 보고 있다는 것에 있다고 여기는거 같다고 느껴진다. ' <한국의 차인1 >의 책에서 논술한 차인은 각종 신분의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 ' 라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중 차문화 교류에 대해서 역사적인 맥락에서 서술하고 있다. 중국차의 대외적 전파사에서 한국의 전파가 가장 빠르다. 라고 서술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이기도 하고, 현재에서는 역사적한중교류 문화를 부각 시키는 것이 중국을 훨씬 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건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일본의 쿠라사와 유키히로님의 서평은, 차맥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일본 차가 슈코 - 조오 - 리큐로 이어졌듯이, 한국차도 초의차맥이 한국차의 본류에 두는 것에 경의를 표한다고 서술하고 있다. 일본에 차맥이 선명하듯이 한국도 그렇게 되어 좋다는 의미일 것이다. 유키히로님은 좀더 차의 근본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한중일이 아닌, 동양과 서양의 대비를 부각시켜 서술하고 있다. 자연주의와 인본주의의 대비를 통해 다음 시대는 자연주의와 인본주의가 결합되어 종합된 시대가 될 거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 다음 시대에 동양의 자연주의 차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할거라고 서술하고 있다.
서로 관계를 드러내고 있지만, 입장의 차이들은 분명한거 같다. 한국은 일본과 애증관계이면서도 일본차문화를 받아들인 가운데서 우리차문화를 살려 내었다. 중국은 일본과 애증관계이나 현대에 와서는 차차로 차문화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 일본은 한국차 소실에 대하여 일정부분 책임은 있지만, 그 자신들이 보관한 차문화를 다시 한국 차문화에 일정부분 이식 시켰다. 한국과 중국은 그 어느때보다 활발하게 차문화 교류가 일어나고 있다. 한국은 중국차를 역사적으로 가장 빨리 접했지만, 중국은 정신성에 있어서 희미해졌다. 한국이 일본이 보관하고 집대성한 다도를 일정부분 역으로 다시 받아 들였듯이, 중국은 한국에 보관된 정신성을 다시 받아 들이고 있는 중이다. 한중일 삼국에서 한국이 양국을 이어주고 있다. 한국을 통해 한중일 삼국의 차문화는 다시 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그 대화의 꼭지점에는 한중일 공통의 차문화 '선차'가 있다. 그러니까 한중일 삼국의 차문화는 차문화의 시작이자 본류인 선차로 만나자 대화가 통한 것이다. 그리고 선차는 현대에 와서 '선차'라는 선명한 이름을 되찾아서 차문화를 새롭게 모아가고 있다. 한중일차문화는 선차로 비상하여 다도로 완성되었다. 현재의 차는 다시 선차라는 이름을 발굴하여 차문화를 현재에서 다시 써 나가고 있다. '선차'가 다시 한중일 차문화를 한데 모으고 있다. 이리 생각하면, 명명하는 것. 이름이란 것. 개념이란 것. 형식이란 것 들은 그 자체로 얼마나 많은 일들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국의차인1>은 선차의 흐름이 한국에서 조주다풍으로도 계속 이어져 왔었음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전방위적으로 퍼졌으나, 차는 인연이 있어야 마신다. 라는 말처럼, 차는 인연따라 흘렀다. 인연따라 흐르는 차는 시대의 암울함에서도 가느다랗게 그러나 끊기지는 않고, 쉬지는 못하고, 쉬면 큰일나니까... 흘러흘러 왔다. 초의 이후 근현대사의 차 이야기이다. 거기에는 차를 마시는 사람이 있다. 그러므로 차는 사람의 이야기이다. 사람중심에서 차는 논해야 한다. 역사안에서 인간은 자유롭지 못하지만, 차 한 잔 앞에 두고는 자유로울 수 있다.
#한국의차인1에서 언급된 33인의 차인 - <조선말기의 차인 - 금령 박영보. 귤산 이유원. 범해각안. 금명보정. 연해적전> , <광복 전후의 다승들 - 경운원기. 학명계종. 경허성우. 용성진종. 만공월면. 석전 박한영. 방한암. 만해 한용운. 화중지산> , <조주 다풍을 이은 다승 - 경봉선사. 월산선사. 서옹선사. 수산지종. 동곡일타> , <근현대 한국 차문화를 일으킨 차인 - 이방지 여사. 명원 김미희> , <제다의 명인 - 청파 조병곤. 이한영. 김복순> , <차를 말해온 언론인 - 위암 장지연. 호암 문일평. 춘원 이광수. 육당 최남선. 홍종인. 천관우> , <차를 사랑한 문화 예술인들 - 의재 허백련. 소안 현중화. 청탄 김광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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