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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06회>
줄거리
궁예는 아지태의 사건을 친히 다시 국문하기 위해 모든 준비를 서두르는 한편, 왕건이가 주관한 평양의 북벌 군단이 출병하자 마치 자신의 위엄이 다시 살아난 듯 그의 기세는 당당했다. 한편, 종간은 백두산에서 내려온 도인이 백일간 치성을 다해 지은 영초탕이 완성되자 궁예에게 마시게 한다. 그러나 궁예는 갑자기 피를 토하며 극심한 고통을 호소하더니만, 도인을 그 자리에서 처형시킨다. 그리고, 이내 의식을 잃고 사흘간이나 깊은 잠에 빠지게 되는데...
씬 1 철원 황궁 외경(낮)
씬 2 동 대전 안
궁예가 법봉을 옆에 두고 수북한 자료철들을 읽고 있다. 최응이 조용
히 보고 있다. 기록을 보다가 궁예가 한참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는 중얼거린다.
궁예 문제는 크게 세가지야.
최응 .........
궁예 그 첫째는 반역에 관한 것이야. 하나는 아지태의 반역과 내
장인이 되는 대부 강장자가 어떻게 음모를 꾸몄는가가 확실하
게 나와 있지가 않아. 즉, 왕건 아우가 너무 후하게 일을 처
리했다는 말이야. (사이) 그리고, 두번째는 이 석총이 문제
야. 그 옛날 법회 때에는 제놈이 감히 미륵을 운운하길래 벌
을 내린 것이지만, 이게 파고 들어가보니까 그렇지가 않아.
자꾸만 왕건아우와 연관이 되었단 말이야. 세상에 태양은 하
나이듯이 미륵은 나 하나로 족한 것이야. 아니 그러냐?
최응 그것은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암, 그러니 내가 어찌 자세히 살펴보지 않을 수 있겠느냐? 세
번째로는 더 나쁜 것이 있어. 나는 지금 우롱당한 기분이야.
아무리 내 사형이 추천을 한 황후이지만 내게 오기 이전에 정
혼을 했었다는 사실은 한 나라의 황제인 내게 있어서 아주 치
욕스러운 일이야.
최응 아뢰옵기 참으로 황공하오나, 난세 중에 난세이옵니다. 한치
앞을 보기 어려운 전국시대에 있어서 잠시 장래를 의논했다
는 것은 그리 큰 죄가 되지는 않으리라 보옵니다.
궁예 그래? 너는 그리 생각한단 말이지?
최응 서로가 살기 위해서 잠시 약조했던 일이옵니다. 그리고, 그
일은 곧 없던 일이 되지 않았사옵니까?
궁예 허지만, 내가 알았어야 하지 않느냐? 내가 말이다. 나는 지금
아무도 믿을 수가 없다. 참으로 외로움을 느껴.
최응 .........
궁예 다 다시 헤집어서 밝혀낼 것이다. 내가 아직 이렇게 멀쩡한데
저것들이 태자를 운운하면서 역모를 꾸몄어. 헌데도 왕건아우
는 마치 지나가는 일처럼 대수롭지 않게 다 넘겨 버렸어. 이
건 용납해서는 아니되는 일이다. 관련된 인물들이 지금 어찌
하고 있느냐?
최응 고변을 했던 입전과 신방은 의형대에 대기중이고, 당시 연루
되었던 능달과 기전은 여전히 순군부에 소임을 맡고 있는 것
으로 아옵니다.
궁예 순군부에 낭장 임춘길이도 관련되었지 않았느냐?
최응 그렇기는 하오나 죄안이 명백히 밝혀지지 않아 일단 면죄된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하긴 그래. 주모자는 아지태 그 놈과 내 장인이었어. 이 자들
이 어린 태자들을 앞세워 농간을 부리려 했단 말이야. (사이)
기록이 이것뿐인가? 있는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모조리 올려
오라고 하라.
최응 예, 폐하.
궁예 아무도 내 관심법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절대로.... 내군에
일러서 그 능달과 기전이라는 놈은 다시 잡아다 하옥시키고,
임춘길도 또한 조사가 마무리 될 때까지는 이 철원을 떠나지
못하도록 하라 이르라. 이 일은 내군에 직접 전하라.
최응 예, 폐하.
씬 3 의형대 옥사 안
강장자가 한숨을 쉬고 있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강장자 내 말년이 참으로 보기 흉하게 되었구나. 모든 게 잘 넘어 갔
다 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어. (사이) 그리고보면, 왕건이
가 나았어. 되도록 드러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감추어주었지
않았는가? (사이) 내가 다시 끌려 온 것은 그 아지태 사건이
아니야. 황후마마의 일 때문이다. 황제는 그 이야기를 더 앞
세우고 있었어. 허허, 이거 참...도대체 내가 뭐라고 할 수
있단 말인가? 내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는 있을까?
씬 4 순군부 외경
장일이 이끄는 일당의 내군들이 달려온다.
그리고, 순군부의 문을 박차고 들어간다.
씬 5 동 순군부 안
임춘길이 중심에 있었고, 많은 여타 장수들이 일을 보고 있다.
장일과 내군들이 들어와 능달과 기전 앞에 선다. 임춘길이 묻는다.
임춘길 무슨 일들인가? 아니, 장부장 무슨 일이오?
장일 폐하의 영이시오. 아지태 사건을 재조사하신다 하셨습니다.
능달과 기전을 하옥시키라는 영이시오이다.
능달,기전 아니, 저저.... ?
장일 뭣들 하느냐? 두 장수를 끌어 내라.
능달 이럴 수가 있소이까? 그 사건은 이미 왕시중이 평결을 내린
것이올시다.
장일 폐하께서 다시 하신다면 하시는 것이오. 어서 끌고 가지 않고
무얼 하는가?
기전 너무하시오이다. 다 끝난 일을 가지고 이럴 수가 있소이까?
장일 폐하의 영이라 하셨소. (임춘길에게) 장군께서도 폐하의 재조
사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이 황도를 떠나지 말라는 엄명이
계셨소이다. 얘들아, 가자.
내군들이 대답하며 두 장수를 끌고 간다.
임춘길은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당황한다.
그리고,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모른다.
임춘길 다시 조사한다...? 폐하께서 다시....? 그러면 이거 일이 도
대체 어찌 되는 게야?
씬 6 왕건의 시중부
왕건이 많은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
서류들을 보고, 정리하고, 또한 적어 넣기도 하고, 겉으로는 평온한
모습이다. 많은 관리들이 그 주변에서 일하고 있다.
조심스럽게 태평이 들어와 작은 헛기침을 하며 앉는다.
왕건 어디서 오는 길인가?
태평 순군부 쪽을 좀 알아보고 오는 길이옵니다.
왕건 거기는 왜?
태평 폐하께서 내군들을 시켜 법봉을 거두어 가신 이후 발빠른 조
치를 내리시고 계시옵니다. 입전, 신방이 의형대에 대기해 있
고, 능달과 기전이 순군부에서 일을 보다가 그대로 내군들에
게 끌려가 하옥되었다 하옵니다.
왕건 하옥...?
태평 그러하옵니다, 주군. 순군부의 낭장 임춘길장군도 재조사가
끝나기 전에는 황도를 떠나지 말라는 엄명이 계셨다 하옵니
다.
왕건 대전으로 불려간 강장자 어른은 어찌 되었는가?
태평 그 분도 역시 의형대 옥사에 하옥되었다 하옵니다.
왕건 강장자 어른까지 말인가?
태평 예, 주군. 일이 아주 급하게 돌아가고 있사옵니다. 결론은 주
군이시옵니다. 주군을 노린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석총대사에
관한 일도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사옵니다.
왕건 ........
태평 주군, 뭔가 방책을 세우셔야 하옵니다.
왕건 더 지켜보세. 이 시점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태평 주군께서 평결을 내리신 아지태 사건을 폐하께 직접 다시 조
사하신다 하시옵니다. 이것은 결국 주군을 의심하시는 것이옵
니다.
왕건 .......
씬 7 황후 전 복도
연화 (E) 하옥..? 아버님께서 말인가?
씬 8 동 황후 전 안
연화가 놀라서 진내관에게 묻고 있다.
제조상궁과 슬이가 보고 있다.
연화 아버님께서 하옥이 되셔?
진내관 예, 황후마마. 대전에서 폐하와 함께 어주를 드시는가 했더
니, 그 길로 의형대 옥사에 안치되셨다 하옵니다.
제조 대부어른께서 하옥이 되셨다면, 작은 일이 아니지 않사옵니
까?
연화 (생각하다가) 아주 작정을 하신 게로구나. 정상이 아닌 폐하
이시니 무슨 일을 또 벌리실 지 아득하구나. 하옥으로 끝날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슬이 왕시중께 말씀을 드려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연화 이 어리석은 것아, 몰라서 그러는 것이냐? 이미 나와 왕시중
을 한꺼번에 의심하고 계시는 폐하이시다. (슬픈 듯) 폐하께
서 자꾸만 외길을 파고 계시는 구나. 그나저나, 이대로는 아
니된다. 아버님을 하옥하시다니? 이제 아주 끝을 보자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는 아니된다. 내가 가봐야겠다.
슬이 가시다니요? 어디로 말이옵니까?
연화 어디는 어디냐, 대전으로 가는 것이지.
슬이 아니되옵니다. 마마께서 그리하시면, 일이 더 커지옵니다.
연화 더 이상 얼마나 커지겠느냐? 가자, 슬이야.
슬이 마마...마마....
제조 마마.......?
연화가 그렇게 나가고 그들이 황급히 뒤따른다.
씬 9 내원
종간이 답답한 듯 탁자를 토닥거리며 은부와 마주해 있다.
은부 일이 의외로 자꾸만 꼬이고 있는 것 같사옵니다. 아지태의 사
건에 관련됐던 자들이 대기중이거나 하옥중이옵니다.
종간 .......
은부 임춘길이도 황도를 떠날 수 없다는 영이 내려졌다 하옵니다.
강장자도 하옥되었고 말이옵니다.
종간 (한숨) 자네의 내군들이 움직이고 있다면서?
은부 폐하께서 소장의 군사들을 움직이라 명하셨사옵니다. 단단히
채근을 하실 모양이옵니다.
종간 자고로 사내들이 해서는 아니될 일이 있네. 그 중 하나가 여
인네들에 관한 이야기야.
은부 예?
종간 상대의 결점을 끄집어내거나 아니면, 적을 제거하거나 할 때
도 다른 방법은 다 쓰더라도 아녀자들에 관한 이야기는 금물
이야. 왜냐하면 아주 졸렬해 보이기 때문이지.
은부 그렇기는 하오나.... 폐하께서는 황후마마에 관한 일이기 때
문에....
종간 그래도 그렇지가 않아. 대 미륵이시고 이 나라 최고의 지존이
신 폐하께서 아녀자의 지난 과거사를 가지고 의심하고 질투를
하신다면 백성들이 어찌 보겠는가? 그야말로 상대를 다스리는
방법 중에 최하수 일세. 폐하께서는 잘못 생각하고 계시네.
은부 하오나, 저라도 의심을 아니할 수 없게 되었사옵니다.
종간 아지태의 농간이야. 절대로 그냥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더니
만, 여파가 아주 크네 그려.
은부 하오나, 그 불똥이 왕건에게 떨어지고 있사옵니다. 그 동안
우리가 얼마나 제거하려고 애를 썼던 왕건이옵니까?
종간 방법이 좋지 않다는 것이야. 방법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
은, 그리고 정적을 다루는 것은 하나도 둘도 명분이야. 그것
이 서툴게 되면 결과는 오히려 역효과를 나타내는 것이야. 자
네와 나의 생각이 다른 점은 바로 그것이야. 그나저나 큰 일
일세. 대부 강장자까지 하옥을 해버리셨으니, 일이 어떻게 번
져 갈꼬....
씬 10 대전 복도
연화와 제조, 슬이, 진내관들이 들어서고 있다.
대전내관이 눈치를 보는데, 연화가 말한다.
연화 아뢰어주시게.
대전내관 예, 황후마마. (크게) 폐하, 황후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사이) 폐하, 황후마마께서 드셨사옵니다.
씬 11 대전 안
궁예가 대전내관의 소리를 듣고 고개를 들어 말한다.
궁예 황후가? 드시라 하여라.
내관의 대답소리와 함께 연화가 들어선다.
궁예가 보던 기록들을 한쪽으로 밀어 놓는다.
여전히 법봉이 놓여 있다. 궁예가 술을 한 잔 마시며 계속 다른 기록
을 가져다 본다.
궁예 어쩐 일이시오, 황후께서?
연화 .........(화를 삭히며 본다)
궁예 하긴 그렇지 않아도 곧 왕시중이 발족한 북벌군이 평양 쪽으
로 떠난 다기에 황후도 함께 전송을 하자고 할 참이었는
데.... 헌데, 무슨 일로 오시었소?
연화 어쩐 일이라 하셨사옵니까? 몰라서 물으시옵니까, 폐하?
궁예 몰라서라니, 뭘 말이오?
연화 얼마전까지만 해도 폐하께오서는 신첩과 함께 밤을 세우시면
서 지난날을 따뜻하게 얘기하시고 모든 일들을 자애스럽게 말
씀해주셨사옵니다. 헌데, 이러실 수가 있사옵니까? 아버님을
하옥시키셨다 들었사옵니다.
궁예 그랬지요.
연화 폐하의 환후가 깊으신 줄로 아옵니다. 하오나, 그렇다하더라
도 이리 하실 수가 있으시옵니까? 황후의 아버님이시옵니다.
궁예 허허허, 황후의 화가 난 모습을 처음 보는 구료. 그러고보니,
더욱 아름다워 보입니다.
연화 폐하....?
궁예 이보시오, 황후. 황후와 내가 부부라 하나, 법은 법이오. 잘
못된 것이 있으면 바로 잡아야 하는 것이오. 그리고, 벌을 받
아야 하는 일이 있으면 받아야 하는 것이고...
연화 신첩에 관한 의심이 아직도 아니 풀리셨사옵니까?
궁예 그런 일이 아니오. 나는 국가 전복에 관한 중대한 사건을 다
시 조사하자는 것이오.
연화 그렇지 않사옵니다. 결국은 아버님에 대한 불만이 아니시옵니
까? 지난 일들을 괘씸히 여기시어 본을 보이시겠다는 것이 아
니시옵니까?
궁예 허허, 이런... 그렇지 않다고 했소이다. 지금 국사를 다루고
있는 것이예요. 이 기록들을 가만히 보면 왕시중이 사람이 좋
아서 아주 일들을 후하게 처리를 했어. 그걸 다시 따져 보자
는 것이오.
연화 이미 조사가 끝난 일이옵니다.
궁예 잘못된 조사라고 하였어. 나를 밀어내고 어린 아들들을 옥좌
에 올리고 저들이 나라를 농락하려던 대 사건이란 말이야. 나
를 죽이려고 하였어. 나를 죽이고 어린것들을 보위에 올리려
고 했소. 아시겠소, 황후? 돌아가시오.
연화 아버님을 풀어 주시오소서.
궁예 그렇게는 아니되오. 나는 법을 다스리는 데는 냉정해. 돌아가
오.
연화 못가옵니다. 아버님을 풀어 주시오소서.
궁예 돌아가고 하였소이다.
연화 폐하...?
궁예가 눈을 부릅뜨고 연화를 보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E) 폐하, 원봉성령 입시이옵니다.
궁예 들라하라. (연화에게) 돌아가시오. 국문을 하면 다 나오게 되
어 있소이다.
최응이 들어와 눈치를 본다.
궁예가 다시 소리지른다.
궁예 대전내관은 뭘 하느냐? 황후께서 돌아가신다. 뫼셔라.
대답소리와 함께 내관들이 들어와 허리를 굽힌다. 연화가 말한다.
연화 폐하께서 잘 처결하시리라 믿사옵니다. 아버님은 태자들의 외
조부이시고, 폐하의 장인이시고, 신첩의 아버님이시옵니다.
궁예 법은 법일 따름이오. 황제의 장인도 법 앞에서는 평등하오.
곧 북벌군 사열이 있을 것이니 갈 준비나 하시구료.
연화는 그렇게 보다가, 돌아서서 한숨을 쉬며 나간다. 궁예가 잠시 눈
을 감고 생각하다가 최응을 본다.
궁예 무슨 일이냐, 최응아?
최응 은부 장군의 내군들이 아지태 사건에 관련된 능달과 기전을
하옥시켰다 하옵니다.
궁예 그래, 잘하였구나. 석총이 일은 어찌 되었느냐?
최응 내군의 군사들을 보내어 전국에 흩어져 있는 법상종의 남은
무리들을 모조리 잡아 오라 일렀사옵니다.
궁예 잘하였다. 제놈들이 미륵을 모시는 종파라고..? 다음의 미륵
이 온다고..? 그것이 왕건이란 말이지..? 내 아우 왕건이....
최응 ........
씬 12 산야
어느 절에서 내군들의 군사들이 승려들을 끌어내고 있다. 한쪽으로 끌
어내고 한쪽으로 포박을 지어 가고, 아비규환이다.
씬 13 의형대 옥사
강장자가 계속 한숨을 쉬며 그렇게 앉아 있다.
능달, 기전이 함께 들어있다. 눈치를 보다가 능달이 묻는다.
능달 대부어른, 우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것이옵니까?
강장자 폐하께서 주관하신다면 체념들 해야 할 게요.
기전 체념이라니요, 대부어른?
강장자 살아 나가기 어렵다는 것이지, 허허허. 세상 돌아가는 꼴을
보니까 왕시중도 별 수가 없는 모양이오. 죽은 아지태에게 꼼
짝없이 끌려 다니고 있지 않은가 말이야. (사이) 세상은 재미
있어. 그토록 반대하던 그 아지태의 북벌이 다시 시작된다면
서? 허허.... 이러니 세상은 돌고 도는 것이란 말이야.
씬 14 황궁 앞
북벌군 총사 환선길, 부총사 유금필, 군사 왕식렴과 더불어 홍유, 배
현경, 김락, 이흔암, 천부장들이 많은 군사들과 함께 정렬해 있다. 그
한쪽으로는 왕건과 더불어 원극유, 박질, 박지윤 부자, 왕신, 태평,
능산, 최응, 종간, 은부, 복지겸, 금대, 장일, 임춘길 들이 모두 나와
있다.
황궁 뜰을 지나 궁예가 연화와 함께 상궁내관들을 이끌고 그 앞에 와
서 선다. 서서 한참을 본다.
왕건이 나서며 말한다.
왕건 폐하, 대 태봉국 폐하의 군대가 나라의 여망인 북벌을 위해
출진 준비를 마쳤사옵니다. 한 말씀 내리시오소서.
궁예 (감격처럼 돌아보며) 총사가 환장군이라고 하였는가?
환선길 예, 페하. 신 환선길이 북벌군의 총사를 맡았사옵니다.
궁예 하하하, 환장군의 용맹은 천하가 다 알고 있는 일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대 태봉국의 영광을 위해서는 북으로
가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이 주장하였고,
또한 대 사업을추진하였노라.
신료들 (면면이 지나치고)........
궁예 지난 날들을 살펴보면 참으로 고생도 많았고, 어려움 또한 컸
다. 그 의도는 좋았으나 결국 아지태가 선도한 북벌은 실패하
였다.
신료들 (다시 면면이 계속 지나치고)........
궁예 짐은 그것을 인정하노라. 그러나, 북벌은 계속해 필요하였고,
우리 제국이 나아갈 유일한 길이었음을 그대들은 알아야 할
것이니라. 북벌, 북벌........ 저 북쪽을 정복하는 것은, 우
리들의 영원한 과제이고, 꿈이다. 가라, 가서 옛 고구려의 도
성인 평양을 도모하고 계속해 당나라로 진군해 갈 것이니라.
가서 짐의 영광을 천하게 드러내도록 하라.
환선길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모두둘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궁예의 표정은 다소 들떠 있다. 환선길이 진군의 영을 내린다.
환선길 전군, 출군하라.
환선길의 명령이 몇 번씩 복창하면서 드디어 대군이 움직이기 시작한
다. 그들은 궁예 앞을 지날 때마다 군례를 올리며 그렇게 점차 황궁
앞에서 멀어져 간다. 끝도 없는 그 행렬에서....
궁예 이보시게, 왕시중.
왕건 예, 폐하.
궁예 이번의 북벌은 아무리 다시 생각해보아도 그 실속이 아주 커
보이네 그려. 주인이 없는 평양성을 도모하고, 북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현실성이 큰 계획이야.
왕건 망극하옵니다, 폐하.
궁예 그래, 짐의 생각은 확실히 옳은 것이었어. 북으로 가지 않으
면 안돼.
왕건 ........
궁예 왕시중이 나에게 좋은 선물을 주었어. 나는 다시 힘을 얻고
있어. 물론 내원이 왕시중에게 의견을 냈다는 것도 알고 있어
요.
종간 망극하옵니다.
궁예 (가고 있는 행렬을 보며) 이보게, 아우.
왕건 예, 폐하.
궁예 죽은 아지태는 나를 많이 섭섭하게 했어. 그리고, 교활했어.
그 죄를 다시 따져보고 있네 그려. 그 일을 너무 섭섭히 생각
말게.
왕건 그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모두들 ..........(눈치만 본다)
궁예 이미 사건의 기록을 볼 것은 다 보았네. 머지 않아 국문을 다
시 열 것일세. 그리 알게.
왕건 예, 폐하.
궁예 (군사들을 보며) 대단해. 역시 짐의 군사들이야. 암, 대단
해....
그런 그들의 모습에서 왕건과 연화의 모습이 잠시 스쳐간다.
박지윤과 신료들의 모습도 염려스러운 듯 왕건을 본다. 다시 궁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그 표정에서 디졸브 되면.....
씬 15 철원 저자 거리(밤)
왕건 일행들이 오고 있다. 왕건은 여전히 말이 없다. 태평이 눈치를
보다가 말한다.
태평 낮에 폐하께서 하신 말씀이 자꾸 걸리옵니다. 그 국문 이야기
말이옵니다.
능산 주군께서는 지금까지 아무 말씀도 아니하셨사옵니다. 뭔가 변
명이라도 하셔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폐하께서 그 사건을 다
시 조사하시는 일에 대해서 말이옵니다.
왕건 .........
태평 주군께서 일부러 사건을 흐지부지 하신 것은 아니옵니다. 처
음부터 폐하께서 그 위엄을 잃지 않으시고자 아지태를 가벼이
벌해 주실 것을 청해오셨사옵니다. 그러다보니, 일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옵니까?
왕건 어른을 모시는 사람들은 일의 결과에 대해서 불만을 가져서는
아니되네. 어찌되었든 드러난 모든 것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이야.
능산 위험에 처하실까 두려워서 드리는 말씀이옵니다.
왕건 허허허,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는 것일세. 뭘 새삼 따진단 말
인가? 아무튼 저 북벌이나 이번에는 제대로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네 그려.
그들 그렇게 간다.
씬 16 유천궁의 집 사랑
유천궁과 박지윤, 원극유, 박질, 복지겸들이 모여 있다.
유천궁 밤이 늦었는데, 어떻게 돌아들 가시지 않고, 이리로 오셨습니
까?
박지윤 아무래도 왕시중의 입지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것 같아서요.
복지겸 예감이 좋지가 않사옵니다. 또 한바탕 피바람이 불 것 같아서
말이옵니다.
유천궁 나도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토록 우애가 깊
은 폐하와 왕시중 사이에 뭐 별일이야 생기겠습니까만은....
박질 모르는 말씀이십니다. 지금 신료들이 하나같이 눈치만 보고
있습니다. 대부 강장자가 하옥되는 판이올습니다.
원극유 그것은 다분히 폐하께서 억지를 쓰시는 일입니다. 그렇게까지
할 이유야 없지요. 왕시중이 다 끝낸 사건을 가지고 말입니
다.
복지겸 폐하께서 내리셨던 법봉을 거두어 가셨사옵니다. 즉, 믿음과
신뢰를 다시 가져가 버린 것이옵니다. 그건 폐하께서 왕시중
과 황후마마의 정혼 이야기가 나온 직후의 일이옵지요.
박질 그렇습니다. 의심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일종에 의처증이라
고 할 수도 있는 일이올시다.
유천궁 입에 담기도 어려운 일이올시다. 아지태 그 자가 죽어가면서
결정적 사단을 벌려 놓았어요.
박지윤 그렇습니다. 의심은 또 의심을 낳고 계속 뿌리를 뻗게 되어
있어요. 쉽게 해결될 일이 아니올시다.
유천궁 허지만, 우리로써는 방법이 없소이다. 혹시 또 모를까? 그때
그 국혼을 내원 그 사람이 주관했으니 스스로 나서서 막으면
모를까? 어쨌든 좀 더 지켜보십시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
예요.
씬 17 황궁 외경
씬 18 동 내원
종간이 차를 마시며 생각이 많다. 여전히 은부와 함께 있다.
종간 오늘 떠나는 북벌군을 보니, 참으로 든든해 보였네. 왕시중이
나와의 약속을 지켰어. 그리고, 좋은 계획을 내 놓았고....
(한숨) 나는 왕시중에게 이 북벌의 청을 들어준다면 화해하겠
다고 했어.
은부 이미 물과 기름이옵니다. 그것이 잘 되겠사옵니까?
종간 어떻게든 왕건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폐하를 위해서라도 국문
을 다시 여는 것은 막아야 할 것 같아.
은부 누가 그 일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폐하께서 한 번 시작하시
면 끝을 보시는 분이시옵니다. 더군다나 지금처럼 의심이 극
에 달해 계실 때에는 아마도 불가할 것이옵니다.
종간 (긴 한숨) 어떻게 세운 이 나라인가? 왜 이렇게 쓸모 없는 일
들에 얽매여서 이 중요한 시간들을 허비해야한단 말인가? (사
이) 다행인 것은 법당에 있는 도인의 약이 다 되었다고 하네.
은부 그것을 정말 믿으시옵니까?
종간 믿고 싶어. 알아 볼만큼 알아본 도인일세. 문제는 폐하이실
세. 과연 그 약을 소화시키실 수 있으실 지 말일세....
은부 소인도 이야기는 들었사옵니다. 워낙 특별한 것인지라 드시고
나면 여러 가지 증상이 어렵게 나타난다 들었사옵니다.
종간 그것을 참고 이겨내셔야 한다는 것일세. 그렇지 않으면 지금
까지의 오랜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된다는 것이야.
은부 공연히 도인이라는 자가 빠져나갈 구멍을 찾고 있는 것이 아
니옵니까?
종간 그렇지가 않아. 실성한 자가 아니고서야 제 목숨 맡겨가며 백
일씩이나 잠을 안자고 기도를 드려서 약을 얻어낸단 말인가?
은부 그렇기는 하옵니다만은....
종간 자, 가보세. 오늘밤이야. 오늘이 백일 치성 끝에 약을 얻는
날이라고 하였네. 가보세.
은부 예, 내원어른.
종간 제발, 제발 그 약으로 폐하께서 효험을 보셨으면 좋겠네만
은....
씬 19 법당
동남동녀들이 언제나처럼 양쪽에 서 있다.
바람 소리 하나 없다.
도인은 어둠 속의 하늘을 보고 있다.
얼마만큼 그렇게 보고 있었을까? 하늘에는 달무리가 지어 있고, 짙은
먹구름들이 빠르게 흘러가고 있다. 도인은 무언가를 찾듯이 그 하늘을
보고 있다.
카메라 그런 도인의 얼굴을 서서히 조여들어 가며, 하늘과 도인을 번
갈아 보여 준다.
얼마나 그렇게 뭔가를 찾았을까? 도인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심하게
경련한다. 그리고, 눈을 크게 뜬다. 그렇다.
갑자기 유성 하나가 긴 꼬리를 물며 불길한 소리와 함께 떨어져 내리
고 있는 것이다.
도인은 절망하듯 한탄하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다.
종간과 은부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온다.
종간 (한참만에 조심스럽게) 오늘이 기도가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
소이다.
도인 .........
종간 어떻소이까? 그동안 참으로 지극하게 정성을 올렸소이다. 약
이 다 되었소이까?
도인 .........
종간 (다시 재촉하듯) 오늘이 백일이올시다.
도인 (헛소리처럼) 장성이 하늘을 찢으며 울고 갔소이다.
종간 그게 무슨 말이시오?
그러나, 대답이 없다. 도인은 다시 한 번 한숨을 땅이 꺼져라 쉬더니,
그예 일어나 큰 절을 한 번 올린 후 약탕기로 간다.
도인 그렇습니다. 오늘이 백일의 정성이 끝나는 날이옵니다. 약이
다 되었사옵니다.
종간 오, 그래요? 참으로 수고하셨소이다.
도인 (아이에게) 탕기를 내어라.
동남 하나가 사기 그릇을 내온다. 도인이 떨며 조용히 약탕기를 내려
덮었던 것을 조심스럽게 벗긴다.
그러면, 그 탕기에서 붉고 푸른 서기가 솟아오른다. 종간과 은부가 경
탄스럽게 보고 있다.
이윽고 약탕기에 약이 다 담긴다.
은부 오, 오.....! 참으로 빛깔이 신비하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산천의 온갖 영험있는 영초가 다 모인 것일세.
그러나, 도인은 아무런 표정이 없다. 그저 멍하니 약만 보고 있다.
도인 (E) 대 미륵이라 하여 평생 쌓은 도력을 가지고 구하려 왔더
니, 하늘이 계시를 내리는 구나. 장성이 울음을 울며 지나가
는 것은 황제의 수명이 오래지 않다는 것이다. 괜한 일을 하
였구나. 내 목숨도 이제 다 되었구나.
종간 참으로 고생하시었소. 폐하께 가십시다. 어서, 약을 폐하께
올리도록 하십시다. 내 그대의 공을 폐하께 아뢸 것이오.
도인 ..........
종간 뭣들 하느냐? 어서 탕제를 뫼시어라. 자, 가십시다. 도인도
어서 가십시다. 어서요.
동남동녀들이 따른다. 약탕기를 받쳐들고 그들은 서서히 법당에서 대
전쪽으로 향하고 있다.
씬 20 대전
궁예가 법봉을 만지며 생각이 많다.
가끔씩 허공을 보며 한숨을 쉰다.
펼쳐진 기록들이 놓여 있다. 술을 들이킨다.
각자의 면면들이 순간적으로 지나친다. (기 촬영분에서)
연화 (E) 얼마전까지만 해도 폐하께오서는 신첩과 함께 밤을 세우
시면서 지난날을 따뜻하게 얘기하시고 모든 일들을 자애스럽
게 말씀해주셨사옵니다. 헌데, 이러실 수가 있사옵니까?
궁예 (도리질 하며) 일이 그렇게 되었어. 이럴 수밖에 없어.
강장자 (E) 그 일은 이미 있는 그대로 말씀을 전해올렸사옵니다. 통
촉하시오소서.
궁예 아니야, 거짓말이야. 하나도 진실은 말하지 않고 있어.
최응 (E) 신은 폐하의 유일한 형제분이신 왕시중이 폐하의 의심을
받는 것에 대하여 깊이 우려하옵니다. 형제분이시옵니다, 폐
하.
왕건 (E) 말씀이 지나치신 것 같사옵니다, 폐하. 이 아우를 끝없이
자애 하시는 폐하이시옵니다. 하온데, 오늘 하시는 말씀은 이
아우가 차마 가벼이 들어 넘기기가 어렵사옵니다.
궁예가 도리질을 한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궁예 그래, 내가 옹졸해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이처럼 참을 수
없는 것은 내가 그 모든 것에서 소외되어 있었다는 것이야.
그럴 수는 없지. 더군다나 왕건아우도 내게 명확하지가 않아.
석총이 일도 그렇고 강장자와 태자들이 얽힌 역모건은 너무
쉽게 다루었어. 그 또한 의심할 수밖에 없는 일이야. 왜 그랬
을까? 왜....?
종간 (E) 폐하, 당치 않은 말씀이시옵니다. 그 일은 죽은 아지태의
말장난이옵니다. 현혹되지 마시오소서.
순간적으로 종간의 소리가 그렇게 지나치며 들려온다. 궁예는 다시 도
리질을 한다.
궁예 아니야. 황후의 일은 그렇다 치더라도 역모건은 이 기회에 다
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조치를 내려야 해. 그래야 해. 내가
바로 잡지 않으면 아무도 바로 잡지 못해. 내가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야.
궁예는 그렇게 기록들을 다시 덮으며 탁자를 친다. 그때 소리가 들려
온다.
대전내관 (E) 폐하, 내원께서 드셨사옵니다.
궁예 내원이?
씬 21 동 대전 복도
내원과 도인, 동남동녀들이 서 있다. 은부도 그 옆에 서 있다. 궁예의
소리가 들려온다.
궁예 (E) 뫼시어라.
씬 22 동 대전
내원이 도인과 더불어 약을 받쳐든 동남과 들어온다. 은부도 들어온
다. 궁예가 그들을 본다.
궁예 그건 무엇이오? 저 자는 누구이고?
종간 일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었을 것이옵니다. 백두산에서 온 도
인이옵니다. 폐하를 위하여 백일 동안 법당에서 치성을 드렸
사옵니다.
도인 .........(예를 올린다)
궁예 백두산 도인이라..? 그 옛날에 설도인과 같은 자인 모양이오.
종간 그러하옵니다. 이 도인은 그 동안 평생 닦은 도력으로 산천의
기와 영초를 모아 오늘에서야 약을 완성시켰사옵니다.
궁예 허허허, 약이라....약이라.... 백일간 치성을 드렸다....? 쓸
데없는 짓을 하였구료.
종간 들어보시오소서, 폐하. 일전에도 그 설도인이 폐하께 좋은 일
을 하고 가지 않았사옵니까? 신의 정성이오니 받으시오소서.
궁예 허허, 이거 참.... 그러고보면 사형께서도 꽤나 순진하신 데
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도인이니 도력이니 하는 것들이 다
무엇이란 말이오?
은부 폐하, 신들의 정성이옵니다. 받으시오소서.
궁예 그거 참.... 경들이 그러하니, 백일이라는 세월이 아까워서라
도 마셔야겠구료. 다시는 이런 짓 하지 마시오. 이리 주거라.
동남이 공손히 약그릇을 올린다.
궁예가 받아 약을 본다.
도인이 종간을 본다.
종간이 끄떡이며 설명한다.
종간 폐하, 드시기 전에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궁예 허허, 또 무엇이오?
종간 이 도인이 말하기를, 그 약은 처음 몸 속에 들어가면 오
장육부가 타는 듯 아프옵고, 혼백이 격노하여 끓어올랐다가
사흘이 지나면 모든 독과 병을 물리치며 함께 사라진다고 하
옵니다.
궁예 그래요?
종간 일시에 격한 반응이 나오시더라도 폐하의 옥체가 좋아지려고
하는 명현 현상이오니, 모든 것을 사흘간은 참아 주셨으면 하
옵니다.
궁예 하하하, 오래도록 고통을 당해온 몸이올시다. 그 사흘을 못
참겠소이까?
도인 ..........
종간 또 하나 있사옵니다. 그 약은 단숨에 모두 다 비워야 하는데,
그것을 조금이라도 다시 토해내면 약효는 그만큼 줄어들게 된
다 하옵니다. 단숨에 다 비우시오소서.
궁예 그렇게 하십시다. 허허허, 빛깔이 아주 좋구료. 얼마나 대단
한 약인가 먹어 보십시다.
도인 오래 도를 닦는 도인들이나 취할 수 있는 약이옵니다. 영초탕
이오니, 꼭 다 드시오소서, 폐하.
궁예 영초라...영초탕이라...?
궁예는 그렇게 그것을 입으로 가져간다.
모두들 숨을 죽이고 본다. 그리고, 궁예가 그것을 마신다.
조금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시고 두어 모금 째, 미처 반도 못 비우
고 그의 표정이 억~하며 중단된다. 모두들 놀란다.
궁예는 그렇게 한동안 정지되어 있다가, 다시 억~ 하며 구토한다.
도인 드셔야 하옵니다. 그대로 다 삼키시오소서. 어서 드시오소서.
종간 폐하...?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궁예는 더 큰 구토를 한다. 피가 울컥 넘어
온다. 그의 손에 피가 물들었다. 이미 약그릇은 떨어져 나뒹굴고 있
다.
은부 괜찮으시옵니까, 폐하?
이번에는 가슴을 움켜쥔다. 예전의 그의 고통소리가 격렬하게 들려오
기 시작한다. 눈은 충혈 되어 튀어나올 듯하고 가슴을 갈라지는 듯 하
다.
비명소리, 궁예의 비명이 계속된다.
종간과 은부들이 모두 달라붙었다.
종간 폐하, 괜찮으시옵니까, 폐하...?
궁예 독이다. 이건 독이야. 가슴이.... 가슴이 타는 것 같아.....
이것은 독이야...... 이 놈이 나를 죽이려고 온 놈이로구나.
아, 이놈이....
은부 어떻게 된 일이오?
도인 이미 말씀드렸사옵니다. 약이 강한 것이라고 말이옵니다.
궁예 (극한 고통을 느끼며) 요망한 놈이다. 이놈을 끌어내거라. 나
를 죽이러 온 놈이다. 이놈을 끌어내 죽여라. 어서, 어서 끌
어내거라.
종간은 어쩔 줄 모른다. 이 정도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궁예는 벌벌 기고 있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른다. 고통을 참기 어려운
것이다.
은부 정말로 독이 든 것이 아닌가? 그렇지 않고서 이러실 수가 있
는가?
도인 사흘이라고 했소이다.
궁예 저놈을... 끌어내거라. 어서, 저놈의 목을 쳐라. 어서, 어
서... 나를 죽이러 온 놈이다. 나를 죽이러 온 놈이야. 어서,
끌고 가지 못할까? 당장, 죽이거라. 어서, 당장!
은부 밖에 내군들 있느냐?
대답소리와 함께 내군들이 들어선다.
도인은 눈을 감는다. 종간이 나선다.
종간 폐하, 말씀드렸사옵니다. 사흘간이라 했사옵니다.
궁예 나를 노리고 온 놈이다. 어서, 목을 베어라. 이건.... 독약이
틀림없어. 도...독약이야.... 독약! 어서 끌고 가, 목을 베어
라. 어서...어서....!
종간 어의를 불러라.
은부 내가 보아도 영약은커녕 독약이 틀림없다. 아니면 엉터리 약
이던가... 괘씸한 놈이로구나. 폐하의 영이시다. 끌고 가 목
을 베어라.
종간 아니, 저...저.... 은장군, 사흘은 기다려 주겠다고 하였네.
은부 좋은 약이라면 이럴 리가 있겠사옵니까? 폐하를 보시오소서.
뭣들하느냐? 어서 이 자를 끌고 가라.
도인 이래서 좋은 도는 펴기가 어렵다고 하였느니.... 참다운 인군
을 만나 이 세상에 도를 펴려고 찾아 왔다가 그 사흘을 이기
지 못하고 어이없이 가는 구나. 허허, 내원어른, 궤념치 마시
오소서. 이미 알고 있는 일이었사옵니다. 허허허...
종간 이런, 이런.....
도인은 그렇게 끌려나간다. 어의가 들어온다.
궁예는 그렇게 뒹굴고 있다. 참기 어려운 통증인 것이다. 당황하는 종
간의 그 표정에서 디졸브....
씬 23 황궁 대전 외경(새벽)
군사들이 삼엄하게 경계를 서고 있다.
씬 24 다시 동 대전 복도
내관들과 내군들이 지켜 서 있다.
씬 25 다시 동 대전
궁예가 곧 죽을 듯이 고통스럽게 숨을 헐떡이고 있다. 비몽사몽간이
다. 비로소, 종간도 어쩔 줄을 모른다.
은부 이러다가 큰일을 당하는 게 아닌가 모르겠사옵니다.
종간 도인은 사흘이라고 하였네. 그 사흘간은....
은부 허나, 지금으로 보아서는 너무 어렵지 않사옵니까?
종간 허, 이거 참.... 애간장이 타는 구먼. 그 도인은 어찌하였는
가?
은부 지엄하신 영을 어찌 거역하겠사옵니까?
종간 허면..?
은부 (끄떡인다) 목을 베었다 하옵니다.
종간 이런, 이런...
궁예는 계속 헐떡인다.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수반하면서....
씬 26 백제 황궁 외경(낮)
견훤 (E) 태봉국으로 이미 첩자를 잠입시켰다?
씬 27 동 대전
견훤이 최승우를 보며 말하고 있다.
그 좌우로 능환, 능애, 추허조, 공직, 박영규, 김총, 애술, 최필, 신
덕, 신검, 양검이 자리해 있다.
견훤 믿을 만한 자인가?
최승우 예, 무진주에서 추천해 올린 자이온데,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
이 아주 강한 자였사옵니다.
공직 오랫동안 세상을 경험한 자인지라 아주 적절한 인물을 만났
것 같사옵니다. 좋은 결과를 알려 올 것 같사옵니다, 폐하.
견훤 허허허, 파진찬이 쓰는 계략은 그 옛날에도 아주 큰 효과를
보았어. 이번에도 기대를 해 보세나.
최승우 망극하옵니다, 폐하.
신덕 폐하, 태봉국에 관한 계책은 신들로써는 깊이 알 수가 없는
일이옵니다. 하오나, 폐하께오서 세우신 대야성 공략은 이미
그 준비가 완료된 지 오래이옵니다. 아직 공격령이 내려지지
않은 데에 대하여 장수들이 답답해하고 있사옵니다.
능환 그러하옵니다, 폐하. 대야성을 공격하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
까지 신라와 태봉국에 걸쳐 있는 전전선을 점검했사옵니다.
그 결과 태봉국은 지금 다시 시작한 북벌과 나라 내부 사정으
로 인하여 우리에게 큰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이 섰사옵
니다. 영을 내리시오소서.
애술 당연하신 말씀이옵니다. 신라는 늘 그렇듯이 상대가 움직여야
마지못해 대항하는 수동적 방어 자세에 있사옵니다. 병력을
움직이실 때가 되었사옵니다.
박영규 때를 너무 기다리거나 오래 방치해두면 결과를 그르치게 되옵
니다. 만발의 준비가 끝났사오니, 대야성을 함락하게 하시오
소서.
추허조 그리하시오소서, 폐하. 이제 때가 되었사옵니다.
능애 허락하시오소서, 폐하.
모두들 허락하시오소서, 페하.
견훤 그래, 짐도 오래 전부터 느껴 온 일이야. 그러고보면 짐도 이
제 아주 참을성이 강해졌어. 서둘러서 전쟁에 나가면 안된다
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야. 이번에 선봉은 누가 맡겠는가?
신덕 소장이 한 번 앞을 서보고 싶사옵니다. 허락해주시오소서.
견훤 오래 전에 짐이 손수 군대를 끌고 갔으나, 도모하지 못했던
성이야. 이번에는 기필코 그대가 한 번 내 꿈을 이루어 주게
나.
신덕 망극하옵니다, 폐하.
견훤 김총장군이 우익을 맡고, 최필장군이 좌익을 맡아. 그리고,
신검이와 양검이가 중군을 맡아 가도록 하라. 나머지는 예비
부대로 뒤에서 공격부대를 후원하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전쟁이란 서로의 이해관계를 잘 따져야 하는 것이야. 태봉국
과 태봉국의 명장이라는 왕건이는 지금 우리 파진찬이 혼자서
다 막게끔 되어 있어. 제장들은 이런 때를 놓치지 말고, 반
드시 신라의 관문을 열도록 하라.
모두들 예, 폐하.
견훤 그래, 이제 다시 기지개를 펴는 것이야. 신라로 가는 큰 길목
을 열고 나면 다시 저 태봉을 치게 될 것이야. 다시 시작하는
것이야.
씬 28 나주 관아 외경
씬 29 동 나주 관아 안
오씨와 다련군, 김언, 전이갑, 윤신달 들이 모여 있다.
전이갑 아니, 시중어른께서 어려움에 처해 계시다니요?
윤신달 조정의 사정이 그토록 어렵게 돌아가고 있단 말이옵니까?
오씨 지난 번 처형된 아지태의 사건을 재조사하신다 하시옵니다.
이것은 시중이신 우리 서방님의 신임을 의심하시는 것이옵니
다.
김언 그렇지요. 결국, 그런 얘기가 되는 것입니다.
다련군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소이까? 내 사위라서가 아니라, 왕시중
은 그 동안 몸을 아끼지 않고 모든 어려운 전선에 뛰어 들었
어요. 헌데, 아지태의 사건이니 죽은 석총대사의 미륵 사건이
니 해서, 아주 곤경에 처한 것 같소이다.
오씨 장군들께서는 누구보다도 저희 서방님을 도와주시는 분들이시
옵니다. 제가 말씀드린대로 이곳의 전선이 위험하다는 장계를
올린다면 그 구실로써 곤란함을 면할 수 있을 것 같사옵니다
만은....
전이갑 (끄떡이며) 좋은 생각이십니다. 사실 이 나주로 오셔야지요.
권력 싸움이나 일삼는 그런 황도에서 하실 일이 무엇이겠습니
까? 김장군, 구체적으로 안을 세워보십시다.
김언 알겠습니다. 그리 큰 일은 아니지요. 군사들을 전진배치 시키
고, 조금만 행동을 취하면 백제군은 바짝 긴장하여 전선을 바
꿀 것입니다. 그것을 조정에 보고하면 되는 것입니다. 백제가
쳐들어오니, 급히 왕시중을 보내주십사하고 말입니다.
다련군 바로 그것이올시다. 왕시중은 이곳에 있어야 합니다. 저대로
있다가는 무슨 변을 당하게 될지 모르게 되어있어요.
김언 서두르겠습니다. 듣고보니, 일이 급한 것 같습니다.
씬 30 왕건의 집 외경
씬 31 동 집 사랑
왕건이 태평, 능산과 더불어 생각에 잠겨 있다.
두 부인이 다과를 받쳐들고, 들어온다.
유씨 오늘은 입궁을 아니하시옵니까?
왕건 그렇소이다. 여기서도 할 일이 많소이다.
수인 (눈치 살피며) 서방님께 어려운 일이 많다 들었사옵니다.
왕건 부인들께서 걱정하실 일이 아니올시다.
유씨 그렇지만, 소첩들의 운명은 바로 서방님의 운명과 함께 하옵
니다. 폐하께서 국문을 하시게 되면 서방님은 어찌 되시는 것
이옵니까?
왕건 나를 국문 하는 것이 아니오. 지난 사건을 다시 조사하시는
것이오.
태평 그렇사옵니다. 마님들께서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소서.
유씨 어찌 걱정이 아니되겠습니까? 우리뿐만 아니라 조정 신료들이
모두 염려하고 있는 일이라 들었습니다.
능산 헌데.... 요며칠 이상할 정도로 황궁이 조용하옵니다. 북벌군
이 떠난지 벌써 사흘이옵니다. 페하께서 무슨 말씀이 있으실
법한데 말이옵니다.
왕건 글쎄....
태평 소인이 들으니, 법당에서 기도중이던 도인 하나가 폐하께 아
주 신령한 약을 지어 올리고 죽었다하옵니다.
왕건 죽어..? 그건 무슨 소린가?
태평 아주 영험스러운 약을 도인이 오랜 기도 끝에 만들어 올
렸사온데, 그 약효가 몹시도 강했다 하옵니다.
왕건 금시초문이로군. 그래서, 어찌되었다던가?
태평 폐하께오서는 격심한 고통을 느끼시다 못해 결국 도인을 오해
하여 죽이시고, 곧 잠에 드셨는데.... 아직까지 주무시고 계
신 듯 하옵니다.
왕건 뭐라? 그런 일이 있었어? 그런 일이.... 그러니까 영험을 보
았단 말이지? 그런 얘기가 아닌가?
태평 아마도 그러신 것 같사옵니다.
씬 32 황궁 대전
궁예가 아직도 잠에 취해 있다. 평화로운 모습이 아니다. 종간과 은부
가 보고 있다. 궁예는 아직도 심장을 헐떡거리며 무수한 땀을 흘리고
있다.
아주 고통스럽고 괴로운 표정이다.
은부 오늘이 사흘째이시옵니다.
종간 그러게 말일세.
은부 단 한 번도 깨어나시지 못하고 계시옵니다. 참으로 불경스러
운 말이옵니다만은 이러시다가 영영 눈을 뜨지 못하시면.....
종간 그게 무슨 소린가?
은부 너무도 답답하고 염려스러워 드린 말씀이옵니다. 벌써 사흘이
옵니다. 계속해 이렇게 고통스러워하시지 않사옵니까?
종간 ......(안타까운 한숨) 아닐세. 일어나실 것일세. 폐하께서
어떤 분이신가? 도인은 사흘이라고 하였어.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이야. 오늘.... 오늘이..... 일어나실 것일세. 가볍게 훌훌
털고 일어나실 것일세. 그리고, 새롭게 세상을 호령하실 것이
야. 암, 일어나실 것이야.
종간은 간절히 말하며 궁예를 본다. 궁예는 거퍼 가쁜 숨을
쉬고 있다. 금방이라도 숨이 멈출 듯이.....
그런 궁예의 표정에서...
< 106회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