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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미힐미] 19
S#1. 도현의 사무실 (18부 64씬)
여전히 놀란 얼굴로 리진을 바라보고 있는 도현이고.
밝은 얼굴로 그런 도현을 바라보고 있는 리진.
리진 : (밝게 웃으며) 같이 있자면서요?
도현 : 그냥 같이 있자는 거지, 비밀주치의가 필요하단 말은 아니었는데요? 일단....이미 한번 종료된 계약이구요.
리진 : 계약이야 새로 하면 되죠.
도현 : 제1조 1항. 을은 갑을 비롯한 다른 인격들과 사랑에 빠지지 않는다.
리진 : 지키라구요?
도현 : 제가 얼마 전에 그 조항을 위반해서 엄청난 위약금을 물었거든요.
리진 : 뭐....변제해줄게요. 쌍방과실이니까.
도현 : 근데 말이죠, 제가 그 조항을 앞으로도 지킬 자신이 없거든요.
리진 : 음...그건 좀 곤란하네. 그럼....제 1조 1항은 새로 고쳐 쓰는 걸로.
도현 : 어떻게?
리진 : 갑과 을은 어떤 난관이 있어도 함께 한다.
도현 : 좋네요. 그럼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려놓고, 다시 시작해볼까요? 리셋. 스타트. (하고는 양 팔을 넓게 벌리면)
리진 : 나보고, (도현의 가슴팍을 가리키며) 거기, 뛰어들라고?
도현 : (미소를 지으며 끄덕이는)
리진 : 더럽게 비싸게 구네. 절실한 사람이 오든가!
하는 순간, 리진의 손을 확 잡아당겨 그대로 안아버리는 도현.
씩 웃으며 안기는 리진.
S#2. 기준의 사무실 (18부 63씬 연결)
책상 앞에 앉아 태블릿에 뜬 리진의 얼굴을 보고 있는 기준.
기준 : 오리진이....진짜 차도현이었어...?! (기막힌 듯 헛웃음 짓다가, 서류봉투를 기울이면,
댕그렁 책상 위로 떨어지는 사물함 열쇠! 가만 집어 들고 보며) 이게....과연 어떤 키가 될까, 응? 차도현.
S#3. 도현의 사무실 앞 (낮)
안실장 초조한 표정으로 손목시계와 사무실 문 쪽을 번갈아 쳐다보며 기다리며 서있다.
아...이 사람들이 진짜, 나올 생각을 안 하는 두 사람.
참다 참다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안실장.
S#4. 도현의 사무실 (낮)
여전히 마주 안은 채 미소 짓고 있는 도현과 리진.
안실장 :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며) 어지간히들 하시고 마무리 하시죠, 이제.
도,리 : (화들짝 떨어지는)
안실장 : (도현에게) 일 하셔야죠. 주총의 총책임을 맡는 위원장 직책은 종전에 놀고먹던 부사장 직책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도현 : (억울한) 아니, 제가 언제 놀고먹었다고...저는 그때도 나름 열심히 일했,
안실장 : (OL) 이번 주총은 총성 없는 전쟁터가 될 겁니다. 적이 누구인지, 복심이 무엇인지 명확한 만큼,
허점을 보여서도, 틈을 내줘서도 안 됩니다. 상대의 수를 먼저 읽고, 공격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두셔야만 합니다.
도현 : 네...
안실장 : (박수 한 번 짝 치며) 자, 허리 업(hurry up)!
도,리 : (아쉽지만 움직이는데)
안실장 : 오리진씨는 집에서 대기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리진 : (응?) 왜요? 나는 차도현씨의 비밀주치의이자 위장비선데?
안실장 : 비밀주치의 채용은 위원장님 마음이지만, 비서 채용은 제 소관입니다.
리진 : 우와, 안실장님 저한테 지금 갑질, (하다가) 위세 부리시는 거예요?
안실장 : 잊으셨나본데, 여긴 승진그룹이고, 회사엔 위험한 눈이 많습니다. 오리진씨를 위해섭니다.
도,리 : ......! (잊고 있었다)
S#5. 승진그룹 / 복도 (낮)
안실장의 말을 떠올리며 주변을 경계하며 걸어오고 있는 리진, 서태임이라도 만나면 큰일이다.
아무래도 불안한지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는데,
막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기준, 리진을 발견한다.
기준 : !!! (다가오며) 오비서?
리진 : (움찔했다가, 보면)
기준 : (반가운 미소로) 맞네요, 오리진씨.
리진 : (어쩔 수 없이 인사하며) 안녕하세요, 사장님.
기준 : 회사엔 어쩐 일이예요? 차부사장이랑 같이 컴백한 건가?
리진 : (둘러대는) 아니요. 퇴사할 때 미처 못 가져간 짐이 있어서 찾으러,
기준 : ? (리진의 빈손을 보면)
리진 : ...왔는데, 생각해보니까 인생지사 공수레공수거인지라, 관두기로,
기준 : (귀여워서 피식 웃고는) 나랑 차 한 잔 할래요?
리진 : (경계와 긴장으로 보는데서)
S#6. 카페 (낮)
리진과 기준 음료를 놓고 마주 앉아있다.
리진 여전히 경계모드 풀지 않고 음료를 마시는데,
기준 : 실은 제가 오리진씨한테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리진 : !!! (음료를 푸욱 내뿜는) 죄, 죄송합니다.
기준 : 아우, 당황했나보네. 미안해요. 오리진씨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의 관심이 아니라, 다른 의미였으니까.
리진 : 제가 생각하는 의미는 뭐구, 사장님이 생각하는 의미는 뭔데요?
기준 : 남자로서의 관심은 아니란 뜻입니다. 아직은.
리진 : 아직은?
기준 : 뭐 남녀일은 모르는 법이니까.
리진 : 농담 따먹기 하려고 부르신 거면 저는 이만, (일어나는데)
기준 : (OL) 정신과 의사시죠?
리진 : ! (탁 돌아보면)
기준 : (보며, 미소로) 혹시 예전에 우리...옷깃이 스친 인연이 있다는 거 알아요? 석호필 교수님 방 앞에서.
리진 : ? (보는데, 퍼뜩 떠오르는)
# 인서트 (7부 58씬)
리진이 쏟은 짐들을 함께 주워주던 기준.
리진 : ! (보면)
기준 : 회사에서 봤을 때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정신과의사가 비서가 되는 일이...썩 자연스러운 일은 아니거든요.
리진 : (웃으며, 여유롭게) 뭐...짝꿍이 간절히 원하니까 해준 거죠.
기준 : (픽 웃고는) 어쨌든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됐는데, 최근엔 다른 일로 더 관심이 생겼습니다.
리진 : 다른 일, 어떤 일이요?
기준 : (관찰하듯 보며) 짐작 가는 바가 없으세요?
리진 : 전혀 없는데요.
기준 : 그럼, 오리진씨에게는 서프라이즈가 되겠군요, 이번 주총이.
리진 : ! (어떤 느낌에 보며) 주총과 제가 무슨 상관이 있는데요?
기준 : 제가 이번 주총에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 예정인데, 그 파티가 끝나면 아마 오리진씨는 굉장한 부자가 되어 있을 겁니다.
리진 : (불안하지만, 짐짓 웃으며) 아우, 말만 들어도 좋네요. 빌게이츠 정도?
기준 : 승진가의 직계들이 가지는 대주주 정도.
리진 : !!! (표정 굳는, 알고 있구나....)
기준 : (관찰하듯 보며) 단, 제 편에 서주신다면.
리진 : 어쩌나요. 제가 태생적으로 편 가르기를 싫어해서요. 돌려서 하는 말은 절대 못 알아 먹구요.
(손목시계 보며) 어쩌죠? 제가 좀 바쁜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야겠는데. (일어나려는데)
기준 : 아직 할 말 남았는데?
리진 : 저 이미 퇴사했고, 여긴 회사 아니고, 사회에서 만나면 갑과 을도 아니고,
그러니까 저 가고 싶을 때 가도 되거든요. 그럼. (가고)
기준 : ......(보다가, 피식 웃으며) 귀엽네. 시간 좀 걸리겠어. (웃고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착신되면)
알렉스 건은 어떻게 됐습니까? 사물함은 찾았습니까?
S#7. 전철역 사물함 근처 + 카페 (낮)
최실장 : (난감한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우편물 소인이 찍힌 지역을 중심으로 찾아보게 하고는 있는데,
이게 사막에서 바늘 찾깁니다. 골탕 먹이려는 수작이면, 일부러 다른 지역에서 우편물을 보냈을 수도 있구요.
기준 : (OL) 떡밥입니다. 살짝 맛보고 입맛이 당기면 입금 하라는. 찾기 쉬운 곳에 있을 겁니다.
떡밥을 던진 건 일종의 파워게임이고. (짜증 섞인) 머리를 좀 쓰세요, 제발! (에서)
S#8. 호텔 방 (낮)
커튼이 쳐진 어두운 방 안.
바닥에 뒹굴고 있는 술병들.
피떡과 술떡이 된 알렉스가 엎드린 자세로 침대 위에 널브러져 있다.
누군가 촤악— 하고 방안의 커튼을 친다.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
알렉스 찡그리며 눈을 뜬다.
창문을 등지고 놓인 일인용 안락의자에 누군가 앉아 알렉스를 보고 있다.
알렉스 : (찌푸린 채로) 누...누구야, 당신?
도현 : (나지막이) 오랜만이야 알렉스.
알렉스 : ! (순간 겁먹은 표정으로 침대 아래로 숨으며) 시...신세기?
도현 : (자신을 경계하는 친구의 모습이 서글픈) 나야, 차도현. (생수병을 내밀며) 마셔. 술이 좀 깰 거야.
알렉스 : (그제야 경계를 풀고는, 몸을 일으키며 여유 있는 미소로) 뭐야, 너였어? 놀랬잖아 인마.
(생수병 받아 마개 따며) 잘 지냈냐? 한국엔 영영 안 들어갈 것처럼 굴더니 어떻게 된 일이야?
도현 : (연민으로 보다가) 내가...너한테 큰 잘못을 한 거 같다.
알렉스 : (짐짓 얼굴의 상처를 스윽 만지며 쿨한 척) 이거? 니가 그런 것도 아닌데 뭘.
야, 근데 신세기 그 자식은 여전하드라. 승질이 아주 뭣 같은 게,
도현 : (OL) 너한테 내 비밀을 말하는 게 아니었어.
알렉스 : (침대에 걸터앉으며) 이제야 거래할 마음이 생긴 모양이네?
도현 : 처음 니 협박을 받았을 때 니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게 아니었어. 그게 마리화나 값이 되고, 코카인 값이 되고,
도박비가 될 줄 몰랐어. (진심인) 미안하다. 내가 널 망쳐놨어.
알렉스 : (빈정 상해, 서늘해지며) 착한 척은 여전하네.
도현 : 그때 내가 널 친구로 욕심내지만 않았어도...널 친구라 믿고 내 비밀을 털어놓지만 않았어도...
비밀을 지켜 달라 부탁하지만 않았어도...우리가 이렇게 만날 일은 없었겠지.
알렉스 : (생수병을 거칠게 탁 내려놓으며) 금액이나 제시해! 내 입은 생각보다 무겁지 않아!
도현 : (상관없이) 니 입을 통해 비밀이 밝혀지든 말든 겁내지 말았어야 했어. 밝혀지면 밝혀지는 대로 감당할 용기가 있었어야 했어.
나쁜 자식, 널 믿은 내가 개자식이다, 주먹 한 방 날리고, 끝낼 일이었어.
주먹 한 방 값이 이렇게... (마음 아픈) 우정을 갈라놓는 거액이 될 줄 몰랐어.
알렉스 : (노려보는 채로) 설교 잘 들었고, 그래서 얼마를 내놓을래.
도현 : (일어나며) 거래는 없어. 니 입을 통해 내 비밀이 폭로되면... 그때 다시 올게. 주먹 한 방 날리러. 넌...아직 내 친구니까.
(문으로 향하고)
알렉스 : (서늘하게 노려보는)
S#9. 호텔 복도 (낮)
도현 방문을 열고 나와 복도를 걷기 시작하면, 기다리고 있다가 따르는 안실장.
안실장 : 이대로 괜찮겠습니까?
도현 : (친구의 변한 모습이 마음 아픈) ......
안실장 : 시한폭탄의 타이머를 제거 안한 느낌이 들어서...주총도 얼마 안 남았는데 확실히 입막음시키고 다짐을 받아두는 편이....
도현 : (OL) 저 친구 도박 빚은 해결됐습니까?
안실장 : 네. 지시하신대로 일단 급한 건만 처리했습니다.
도현 : 미국행 비행기 티켓하고, 여비, 당분간 지낼 아파트, 약물재활센터 수속도 부탁드립니다.
중간에 다른 데로 새지 않도록 사람도 한 명 붙여주시구요.
안실장 : ...(보다가) 거래는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도현 : 거래가 아니라 속죄와 연민입니다.
안실장 : 속죄와 연민이라니요.
도현 : 그동안 비겁하게 살아왔던 내 인생에 대한 속죄. 나처럼...다시 시작하게 해주고 싶다는 연민.
안실장 : ......
S#10. 호텔 방 (낮)
서늘하게 굳은 표정으로 침대에 앉아있는 알렉스. 그 위로,
도현 : (E) 니 입을 통해 내 비밀이 폭로되면...그때 다시 올게. 주먹 한 방 날리러. 넌...아직 내 친구니까.
동요되듯 눈빛이 흔들리다가 억누르듯 생수병을 거칠게 바닥에 던져버리며,
알렉스 : 잘난 체 하지 마! 이 개자식아!!!
붉어진 눈으로 씩씩대며 있다가....
결심한 듯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알렉스. 착신되면,
알렉스 : 사물함의 위치를 알려드리겠습니다. (눈빛 위로)
최실장 : (E) 찾았습니다!
S#11. 기준의 사무실 (낮)
기준 : (휴대폰 귀에 붙인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확실합니까?
S#12. 다른 전철역 사물함 근처 + 기준의 사무실 (낮)
최실장 이제 막 알렉스가 보내온 열쇠를 사물함에 꽂고 있다.
열쇠를 돌리면, 딸깍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최실장 : (열쇠를 돌려보고는 감격의) 확실합니다! 꼭 들어맞아요!!!
기준 :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확인했습니까?
최실장 : (흥분의) 잠시만요.
문을 덜컹 여는 순간, 텅 비어있는 사물함!
최실장 : (벙....찐) 낫띵....아무 것도....
기준 : !!!
S#13. 달리는 도현의 차 안 (낮)
뒷좌석에 앉아 두툼한 서류봉투를 열어보고 있는 도현.
안실장 : (운전하며) 알렉스가 알려준 사물함에서 가져온 물건입니다. 차기준 사장 쪽에 떡밥으로 던질 예정이었답니다.
마지막 순간에 마음을 바꿨지만...
도현, 봉투 안의 물건을 꺼내보면, 대여섯 장의 DVD들.
보며, 짠하게 피식.... 웃는 도현.
도현 : 전부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영화네요.
안실장 : (황당해서) 네? (허 웃으며) 재기발랄한 떡밥이네요.
도현 : (짠한 미소가 생기며) 원래부터 유머러스한 친구였어요. 영화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고, 유쾌하고, 똑똑하고....
안실장 : 미안하다고 전해달랍니다.
도현 : ......
안실장 : 그나저나, 저쪽에선 이렇게 반격의 패를 준비하고 있는데, 우리 쪽도 뭔가 저쪽을 공략할 패를 준비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도현 : 이번 주총은 투명하게 진행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안실장 : 글쎄 그게 안 통한다니까요.
도현 : (단호한) 이미 회장님께도 말씀드렸습니다. 이번 주총은 회장님의 방식이 아닌 저의 방식으로 치르겠다고.
안실장 : (심란한)......
도현 : 모두에게 공평하게 진행될 겁니다. 차영표 사장이든 회장님이든 공평하게 조사해서
그동안 승진을 얼룩지게 만든 온갖 비리와 오류들을 빠짐없이 바로잡을 생각입니다.
안실장 : 그건 차차 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일단은 주총에서 저쪽을 꺾을 패를 쥐시는 게 급선무, (하는데, 울리는 휴대폰,
핸즈프리로 받는) 네. 안국입니다. (두 눈이 커지며) 찾았습니까? 알겠습니다. 바로 그쪽으로 가겠습니다. (끊는)
도현 : 무슨 일입니까?
안실장 : 저번에 만났던 외식업체 직원인데, 민서연씨의 운전기사였던 사람과 드디어 연락이 닿았답니다.
도현 : !!!
S#14. 쌍리 / 2층 거실 (낮)
함께 빨래를 개고 있는 리진과 지순영.
문득 고개 들어 가만히...지순영을 바라보는 리진. 그 위로,
# 인서트
기준 : 제가 이번 주총에서 서프라이즈 파티를 열 예정인데, 그 파티가 끝나면 아마 오리진씨는 굉장한 부자가 되어 있을 겁니다.
리진 : (불안하지만, 짐짓 웃으며) 아우, 말만 들어도 좋네요. 빌게이츠 정도?
기준 : 승진가의 직계들이 가지는 대주주 정도.
리진 : ......(떠올리고는, 나지막이) 엄마.
지순영 : (역시 빨래 개는 채로) 왜.
리진 : 내 친엄마는 왜 날 승진가 저택에 그냥 놔뒀을까?
지순영 : ! (멈칫, 보는)
리진 : 내가 승진그룹의 후계자가 되길 바랬던 걸까?
지순영 : ......(보다가, 다시 빨래 개며) 설사 그랬다 하더라도, 지 새끼가 상처받는 거 알고도 야심을 앞세웠을까.
리진 : 그럼 왜 날 당장에 안 데리구 나왔어?
지순영 : 엄마니까.
리진 : 뭐?
지순영 : 너 상처받고 있는 거 알구 몇 번이나 데리고 나가려구 했대. 그때마다 그 남편이란 사람이 못하게 했나봐.
애는 내 호적에 올랐으니, 나가려면 당신 혼자 나가라구.
리진 : 대체 왜? 뭐 때문에 날 안 놔준 건데?
지순영 : 애증이었겠지. 그 사람...실은 니 엄마 좋아했나 보드라.
리진 : ......
지순영 : 그러니 새끼 두고 어미 혼자 나올 수가 있었겠니? 몇 번을 부탁하고, 설득하고, 몸부림치다가....결국은 그렇게...
사고로 허무하게 가버린 거지.
리진 : ......
지순영 : (약간 울먹여지며) 니 엄마 미워하지 말아. 그 사고만 아니었어도 니 엄마 어떻게든 너 데리구 나와 살았을 거야.
그날 뭔가 느낌이 이상했는지....나한테 전활 거는 바람에 니가 내꺼가 됐지만....
리진 : ......
도현 : (E) 단순 사고가 아닐지도 모른다니....
S#15. 택시 회사 사무실 (낮)
도현과 안실장, 종이컵 커피를 앞에 두고 민서연의 옛 운전기사(지금은 택시회사 사장이 된)와 대화중이다.
기사 : 확실한 건 아니고, 그냥 그때 승진가 고용인들끼리 그런 말이 오가긴 했어요.
도현 : 근거는요? 그렇게 생각한 근거가 있을 거 아닙니까?
기사 : 그날 회장님의 운전기사가 새로 왔더라구요. 원래 기사였던 양반은 갑자기 장염에 걸려 입원을 했다나 어쨌다나...
도, 안 : (같은 느낌으로 쳐다보고)
기사 : 암튼 그 새로 들어온 기사가 차건호 회장님하고 민서연 사장을 공항까지 모셨는데, 그게 또 이상하다는 말이지....
안실장 : 뭐가 말입니까?
기사 : 사고 난 차량이 공항도로가 아닌 외곽에서 발견됐거든.
도, 안 : !! (뭔가 수상쩍은)
기사 : 급한 계약 건으로 비행기를 타셔야 하는 양반들이 부러 먼 길을 돌아갈 리는 없잖아요.
게다가 이런 저런 수상한 점이 많았는데도, 수사가 종결됐단 말이지. 단순 졸음운전사고로.
S#16. 승진그룹 로비 (낮)
도현, 안실장과 함께 로비를 걸어오고 있다. 그 위로,
기사 : (E) 그러니 이거 뭔가 권력이 개입된 거 아니냐.... 입방아들을 찧어댄 거지.
안실장 : 백 프로 다 믿을 필욘 없을 겁니다. 썩은 고기에 날파리가 꼬이듯 재벌가에는 늘 루머가 따라붙기 마련이니까.
도현 : (생각에 잠겨 있는 채로) 당시 차건호 회장과 민서연 사장의 계약이 파기될 경우, 누구에게 가장 이득이 됐을까요....?
안실장 : 네?
도현 : 아니면....누가 그 두 사람을 가장 미워했을까요?
S#17. 차준표의 병실 (낮)
침상에 잠들어있는 차준표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는 신화란.
신화란 : 당신 이용해서 미안....근데 다행히 도현이가 마음을 바꿔먹고 다시 회사로 들어갔어. 당신 덕분이라고 생각할래.
차준표 : ......
신화란 : 억울하면 그만 좀 일어나봐...일어나서 우리 도현이 편에 좀 서 줘봐. 응?
차준표 : ......
S#18. 승진그룹 / 회장실 (낮)
책상 앞에 앉아 전화를 받고 있는 서태임.
서태임 : 별일이구나. 네 쪽에서 날 먼저 청하다니. 잘됐구나. 겸사겸사 함께 점심이나 들도록 하지. 장소는 남비서를 통해 전하마.
(끊고는, 잠시 뭔가 생각해보다가,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거는) 한 채연양? 나, 서태임 회장이에요.
백진숙 : (E) 우리 채연이랑 도현이가 뭐?
S#19. 윤자경의 갤러리 일각 (낮)
백진숙 : (부르르) 웃긴다, 진짜. 누구야, 어디서, 대체 뭐라디?
윤자경 : 열받을 거 없어. 지난번 호텔에서 채연이 비틀대던 거 본 사람 여럿이야. 그거 본 사람들 한마디씩 안 했겠니.
채연이가 적극적으로 해명했으면 좋은데, 것두 아니구.
백진숙 : 거야... 걔가 대꺼리할 가치가 없으니까.
윤자경 : 솔직하게 말해봐. 채연이가 너한테 뭐라 안 그래?
백진숙 : (얼버무리며) 몰라.. 그냥 예전 같진 않나보드라. 둘이.
윤자경 : 너 뭐 알지? 이런 말까진 내가 자존심 상해서 안하려고 했는데, 니 딸 우리 기준이한테 싫증났다지?
그래서 도현이 붙잡겠다디?
백진숙 : (움찔) ......
윤자경 : (짐작이 확신이 되고) 허. 못된 기집애. 되먹지 못하게, 어디서,
백진숙 : (OL, 빽) 야! 윤자경!! 그만 안 할래, 너!!
윤자경 : (움찔)
백진숙 : (터지며) 버스 지나갔고, 배 떴고, 날 텄어. 채연이 회장님 만나서 얘기 다 끝냈댄다. 도현이랑 지 사이 인정해 달라고.
알어, 내 딸이 욕먹을 짓 한 거. 아는데, 욕하려면 나 없는 데 가서 해주라.
나 니 친구기 전에 채연이 엄마야. 걔 내 딸이라구우우.
윤자경 : !!!! (기함하는 데서)
S#20. 일식집 별실 (낮)
좌식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서태임과 도현.
서태임 : (물 잔을 들어 마시다가, 탁 보며) 아직도 헤집을 과거가 남았니? 갑자기 그 사고 얘긴 왜 꺼내놓는 거야.
도현 : 저쪽에 덜미를 안 잡히려면, 모든 의혹의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서태임 : ......(보다가, 물잔 내려놓으며) 당시 나를 둘러싸고 찧고 까불던 입들이 많았다.
남편과 며느리 사이를 질투했다느니, 그 둘을 없애고, 아들을 회장으로 만들기 위해 차 사고를 사주했다느니...
입으로 옮기기가 부끄러울 정도로 추잡한 소문들이었지.
도현 : 그럼 회장님은 그 날 자동차 사고의 배후가 아니란 말씀이십니까.
서태임 : (쓰게 웃으며) 나에 대한 불신이 생각보다 깊구나.
도현 : 자업자득이십니다.
서태임 : 니가 어떻게 생각하든 난 아니야. 쓸데없는 데 시간낭비 말고, 주총에 도움이 될 만한 패를 집어 들어.
(하는데, 똑똑 노크소리) 쓸 만한 패가 하나 들어오는구나.
도현 : (의문으로 서태임을 보면)
종업원이 열어주는 문으로 들어오는 채연!
도현 : ! (놀라서 보고)
채연 : (여유 있는 미소로) 오랜만이다, 차도현?
도현 : ! (서태임을 보면)
서태임 : 나는 다음 일정이 있어서 그만 일어나마. (자리에서 일어나면)
채연 : (깍듯하게 목례하며) 차후에 뵙겠습니다, 회장님.
도현 : (간파하고, 피곤한 듯 눈을 감아버리는데서)
S#21. 기준의 사무실 (낮)
기준, 손에 쥔 사물함 열쇠를 달랑달랑 공중에 띄운 채 바라보고 있다가 냅다 바닥에 던져버린다.
알렉스에게 놀아난 사실이 불쾌하고 또 불쾌한데.
이때 삐--- 하는 소리와 함께 팩스가 들어온다.
기준 성가신 표정으로 도착한 팩스용지를 홱 빼내서 확인해보는데,
노크소리와 동시에 뛰어 들어오는 최실장.
최실장 : 방금 미국 쪽 백컴퍼니에서 알렉스강과 차도현 위원장님 관련 자료를 팩스로 보냈다는데 받아보셨습니까?
기준 : (조용히 하라는 듯, 한 손 들어 막으며, 서류를 바라보던 눈이 점점 커지는데서) !!!
S#22. 일식집 별실 (낮)
마주앉아 있는 도현과 채연.
채연 : 표정 없으니까 무섭다. 뭐든 감정 표현을 좀 해봐. 놀랍다거나, 황당하다거나, 피곤하다거나, 돌겠다거나, 뭐든...
그래야 나도 거기에 맞는 대응을 하지.
도현 : 채연아.
채연 : 기준 오빠 때문이면 걱정 안 해도 돼. 이미 커밍아웃했으니까.
도현 : 내 마음은 이미 다른 사람 줬어.
채연 : 이번 주총에서 니 편에 힘을 실어 줄 거라고 했어. 그걸로 지난 시간 니 마음 아프게 한 거 보상하고 싶다고.
도현 : 그 사람한테 준 마음은 다신 못 가져와.
채연 : 그렇게라도 널 갖고 싶다고. 꼭 가져올 거라고.
도현 : 이건 집착이야. 승부근성이야. 사랑 아니야.
채연 : (마침내 터지며) 그럼 날 건들지 말았어야지!!!
도현 : (보고)
채연 : 그래야 내가 안 흔들렸지. 그래야 내가 미치질 않았지! 내가 애써 평온하게 지켜온 꽃밭을 짓밟은 건 너야!
도현 : (무거운 심정으로 보다가) 이제 너한테....말할 때가 온 거 같다.
채연 : (붉어진 눈으로 노려보며) 뭐를?
도현 : 옛날에 내가 널 포기했던 이유. 그랬다가 다시 널 흔든 이유. 그래놓고 이렇게 또 널 거부하는 이유.
채연 : 어쭙잖은 변명 늘어놓을 거면 관둬. 안 통할 뿐더러 지겨워.
도현 : 길지 않아. 한 단어면 충분하니까.
채연 : (피식) 한 단어? 남녀상열지사에 얽힌 복잡다단한 심리를 어떻게 한 단어로 표현할 건데? 응?
그런 단어가 세상에 있기나 하냐고!
도현 : (바라보는 위로)......
기준 : (E, 충격의) D.I.D......
S#23. 기준의 사무실 (낮)
책상 앞에 앉아 팩스 용지를 보며 충격으로 멍....한 기준.
기준 : 그 얌전한 차도현이...다중인격 장애....?
# 인서트
-클럽에서 세기와 스치던 기준(1부 57씬).
-대회의실에서 피를 흘리던 도현(3부 37씬).
-강한병원과 석호필 얘기에 심하게 동요되던 도현(6부 49씬).
-회의실에서 기준에게 깐족대던 세기(10부 37씬).
# 현재
믿을 수가 없는 충격에 허...허...헛웃음이 나오는 기준.
S#24. 일식집 앞거리 (낮)
역시 충격으로 멍...한 얼굴로 일식집 문을 열고 나오는 채연. 후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 위로,
도현 : (E) 내 비밀을 알게 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해. 두려워하거나, 타인에게 발설하는 걸로 쾌감을 느끼거나,
자신은 정상임에 안도하거나, 이용하거나, 연민하거나, 괴물 취급을 하거나....
S#25. 일식집 별실 (낮)
담담한 얼굴로 혼자 남아 앉아있는 도현. 그 위로,
도현 : (E) 넌 어떨까? 내 비밀을 알고도 여전히 날 갖고 싶을까?
담담히 앉아 있다가...문득 휴대폰을 꺼내 단축키를 누르는 도현.
S#26. 쌍리 / 리진의 방 + 일식집 별실 (낮)
청소기 밀고 있다가, 휴대폰 울리는 소리에 끄고 확인하는, 표정 환해져서 받으며,
리진 : 아우, 뭐야. 내일 가기로 했는데 그새 보고 싶어진 거임?
도현 : 한 번만 더 말해주세요.
리진 : ? (벙...쪄서) 뭐를요?
도현 : 나 좋아한다고.
리진 : 아니, 너무 하는 거 아니에요? 나도 여잔데 말이야, 맨날 이딴 거나 시키고 말이야,
도현 : 안 좋아합니까?
리진 : (뭔 일이 있었구나 싶은) 아니요. 좋아합니다. 내가 차군을 아주아주 많이 좋아해요.
도현 : (그제야 마음이 편안해지며, 미소가 생기고) 보고 싶어요.
리진 : (가만히 수줍은 미소가 생기고)
S#27. 기준의 사무실 (낮)
기준, 책상 의자에 앉아 야구공을 공중에 던졌다 받았다하며 생각 중.
뭔가 결심한 듯 공중에 뜬 야구공을 확 낚아채는 순간, 안으로 들어오는 차영표.
기준 : (일어나며) 오셨어요?
차영표 : (소파로 가 앉으며) 무슨 일로 오라가라야 젊은 놈이.
기준 : (소파로 와 앉으며, 웃는) 제가 아버지 사무실로 찾아가면, 아버지 빽쓰러 다닌다고 억울한 소문나요.
차영표 : 용건부터 말해 용건부터. 나도 결재할 서류가 산더미야.
기준 : 주총 전에 자리 한 번 만들어주세요.
차영표 : 자리? 무슨 자리?
기준 : 회장님하고, 차도현, 아버지와 저, 이렇게 네 사람만 은밀히 만날 수 있는 자리요.
차영표 : ! (촉이 서며) 뭔가 잡은 거냐? 혹시....그 아일 만난 거야?
기준 : 아니오. 그보다 더 확실한 팹니다. 주총까지 갈 필요 없겠어요.
패를 뒤집는 순간, 회장님과 차도현 두 사람 모두 승진을 포기할 수밖에 없을 테니까.
차영표 : ! (보는데서)
S#28. 쌍리 외경 (밤)
S#29. 쌍리 / 리진의 방 (밤)
바닥에 앉아 트렁크에 짐을 싸고 있는 리진이고, 벽에 기대서서 무거운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리온.
리온 : 거길 꼭....다시 들어가야겠냐?
리진 : 같이 극복하기로 했다고 했잖아.
리온 : 극복을 꼭 한 지붕 덮고 해야 돼? 출퇴근해도 되잖아.
리진 : 너도 겪어봤잖아. 차군의 인격들이 어떤지. 언제 어디서 어떤 짓을 할지 몰라. 옆에서 지켜야 돼.
리온 : 글쎄 그걸 꼭 니가 해야 하냐고. 계약도 끝난 마당에.
리진 : (멈추고, 보며) 지금 그 사람 옆엔 아무도 없어. 나한텐 아빠도 있고, 엄마도 있고, 너도 있지만, 그 사람은 지금 혼자야.
리온 : (알지만 괜히) 그 사람이 왜 혼자야. 고아야?
리진 : 우리 가족은, 내가 고통스러워 할까봐,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내 기억을 덮어줬지만,
그 사람 가족은 자신들의 치부를 감추기 위해 그 사람의 기억을 덮었어. 그 사람의 기억이 선명해질수록 두려워해.
리온 : ......(보다가) 그래서 니가 가서 뭘 해줄 건데?
리진 : 조각난 차군 마음을 함께 맞춰보고 싶어. 그렇게 해야 나도 과거의 고통에서 완전히 치유될 거 같아.
리온 : (답답해서 고개 돌려 외면해버리는) 니가 그 사람 의사가 돼주든, 친구가 돼주든, 가족이 돼주든, 다 상관없는데,
리진 : 상관없는데?
리온 : 남자 여자는 안 돼.
리진 : ......! (보는)
리온 : (외면한 채) 그 사람이 가진 장애 때문만은 아냐. 물론 너 고생할 거 생각하면, 그것도 영 안 걸리는 건 아닌데,
무엇보다 엄마가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일이 커져.
리진 : ! (그 생각은 못해봤다)
리온 : (그제야 보며) 페리의 본명이 실은 차도현이고, 승진가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가만 계시겠냐? (하는 순간)
지순영 : (E) 리진아!
리진,리온 : ! (긴장하고)
지순영 : (들어오며, 짐 싸고 있는 리진에게) 너 정말 다시 갈 생각이야?
아우, 뭐 하러 또 그 변덕스런 재벌 노친네 비위를 맞추러 들어가?
리진 : 벌써 가기로 약속했는데 어떻게 해 그럼. (하며, 리온에게 말하지 말아달라고 고개 젓고)
리온 : ......(갑갑한 심정으로 뒤돌아 나가버리는)
S#30. 쌍리 뜰 (밤)
짐 가방을 들고 앞장서는 오대오. 그 뒤로 표정이 좀 굳은 리온.
좀 뒤에 리진과 지순영이 리온의 차 쪽으로 걸어오고 있다.
오대오 : (중얼중얼) 아, 그 노친네 망령이 났나. 날이나 밝거든 부르지 애를...
지순영 : 리진아, 엄만 왠지 너 거기 안 갔으면 좋겠어.
리진 : 왜 또오.
지순영 : 그냥 엄마 촉이 그래. 뭔가 안 좋아. 이 일 그만 뒀으면 좋겠어.
오대오 : 이 사람이 근데. 애 일하러 가는데 저주를 퍼부어도 유분수지, 그게 엄마가 할 소리야? 당신이 무당이야? 신탁 받았어?
지순영 : 당신이야 말로 그게 부인한테 할 소리야!
오대오 : (무시하고, 리진에게 다정한) 리진아, 엄마 말 신경 쓰지 말어. 이거 어디다 실어줄까? 뒷좌석에 실어줄까? 아님 트렁크에?
리진 : (따뜻해져서 웃으며) 뒷좌석에.
오대오 : 오케이! 뒷좌석에! (하며, 차 뒷문 열고)
리진 : (보며, 찡해져서) 나는 참....행복한 사람 같아. 엄마. 힘들 때 언제든 돌아올 수 있는 베이스캠프가 짱짱하잖아.
리온 : (그런 리진을 보며)......
S#31. 달리는 리온의 차 안 (밤)
리온 운전하고 있고, 조수석의 리진.
리진 : ......(리온을 보는)
리온 : ......(운전만) 앞 봐. 신경 쓰여.
리진 : ......(시선 정면으로)
리온 : ......(한숨처럼 눈 감았다 뜨는)
S#32. 도현의 집 앞 + 리온의 차 안 (밤)
리온의 차가 와서 멈춘다.
그 헤드라이트 불빛에 언젠가 처럼 집 앞에 서서 리진을 기다리고 있는 도현의 모습.
리진 : 어? 나와 있네? (미소가 생기더니 얼른 안전벨트를 풀고 내린다)
리온 : ......(그런 리진을 바라보다가, 안전벨트를 풀고 내린다)
S#33. 도현의 집 앞 (밤)
리진 : (도현에게 다가오며) 아우, 집 앞에 벤치 하나 사다놔야겠네.
도현 : (웃다가, 문득 리온 쪽을 본다)
리온 : (뒷좌석에서 리진의 짐 가방을 내려 끌고 오는, 도현에게 가볍게 목례하고, 리진에게 짐 넘기며) 간다. (하고 뒤돌아서는데)
도현 : ......(보다가) 오리온씨.
리온 : (멈칫 선다)
도현 : 저랑...술 한잔 하시겠습니까?
리온 : (돌아본다)
리진 : (두 남자를 쳐다보며)
S#34. 이자카야 (밤)
뜨거운 김이 피어오르는 국물요리와 사케를 시켜놓고 앉아 말없이 술을 마시고 있는 도현과 리온.
리온 : (잔을 훌쩍 비우고는 다시 술병을 들어 따르려면)
도현 : (말없이 술병을 뺏어가 리온의 잔에 따라주며) 죄송합니다,
리온 : (보면)
도현 : 인연을 끊어달라는 부탁...들어드리지 못했습니다.
리온 : (피식 웃으며) 누굴 탓해. 동생이 공범인데.
도현 : 죄송합니다.
리온 : (마시고, 자작하며) 예전에 차도현씨가 제게 했던 말 기억합니까?
# 인서트 (9부 61씬)
도현 : 우리 두 사람...어쩐지 묘한 인연인 거 같군요.
리온 : 좋은 인연이 되길 바랍니다.
# 현재
리온 : 우리 두 사람...아니 우리 세 사람...과연 좋은 인연일까요?
도현 : ......(말없이 술을 마시고)
리온 : 리진이는 본의 아니게 승진가의 유일한 혈육인 차도현씨의 자리를 뺏은 셈이 됐고,
차도현씨는 본의 아니게 리진이의 이름을 뺏은 셈이 됐고,
도현 : (그건 아니라고) 오리온씨.
리온 : 두 사람 덕에 나는... (잠시 멈췄다가) 리진이 옆에 설 자리를 빼앗겼고...
도현 : ......!
리온 : 가끔 그런 생각을 해봐요. 만일 그때....승진가의 어른들 중 단 한사람만이라도 탐욕을 내려놨더라면...
지금 우리 세 사람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도현 : ......(자작하는)
리온 : 또 이런 생각도 해보죠. 리진이를 그냥 지 엄마랑 미국에서 살게 내버려뒀더라면,
아니, 승진가에서 너그러운 마음으로 리진일 가족으로 받아 들여 줬다면....
도현 : ......
리온 : 만일 그랬다면.....어쩌면 리진이랑 내가 아니라, 차도현씨와 리진이가 쌍둥이로 자랐을 수도 있었겠구나.
도현 : ......!
리온 : 그렇다면 차도현씨가 아닌 내가....(한참을 말을 못 잇다가) 남자가 되었을 수도 있었겠구나...
도현 : ......!
리온 : 이번 일을 겪고 쭉 고민했어요. 리진이에게 있어 나는 어떤 자리여야 할까...어떤 자리를 선택해야 할까...
그리고... 힘들게 선택을 했습니다.
도현 : (보며)
리온 : 리진이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오빠가 되어주기로.
(찢어지는 마음 감추고 담담히) 지금 리진이에게 필요한건 남자가 아니라... 가족이니까...
도현 : (미안하고, 마음 아프고)
리온 : 누군가 찢어지는 마음으로 내놓은 자립니다. 그러니까.... 리진이를 잘 지켜주세요. 다시는 아프게 하지 말아주세요.
도현 : (붉어진 눈으로 외면하고)
리온 : (떨쳐내듯 마시는)
S#35. 이자카야 앞 거리 (밤)
취기가 도는 얼굴로 걸어오고 있는 도현과 리온.
리온 : 먼저 들어가십시오. 저는 좀 걷다가 대리 불러 가겠습니다. 그럼... (목례하고 돌아서는데)
도현 : (OL) 죄송합니다.
리온 : (멈칫 선다)
도현 : 21년 전의 일이...오리온씨 한테까지 끔찍한 나비효과가 될지 몰랐어요.
리온 : ......
도현 : 그래도 저는 우리 세 사람...좋은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온 : (돌아본다)
도현 : 아니, 반드시 좋은 인연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리온 : (보며) ......
도현 : 제 비밀을 알고도 두려워하거나, 이용하거나, 연민하거나, 괴물취급하지 않은 사람은
오리진씨와 오리온씨가 처음이었습니다.
리온 : ......
도현 : 저 뿐만 아니라 제 인격들까지 사람대접 해준 사람은 두 사람이 처음이었어요.
그러니까...나쁜 친구라도 돼주겠다던 약속 지켜주셨으면 합니다.
리온 : (피식) 너무들 하는 거 아냐 나한테? 남자는 안 되고 오빠, 연적은 안 되고 친구하라고?
도현 : 죄송합니다.
리온 : 그럼 당신은 나한테 뭘 해줄 건데?
도현 : 좋은 친구가 돼드리겠습니다. 제 목숨을 공유해도 좋을 만큼의 친구.
리온 : ......(보다가, 피식) 뭐지? 뻥치지 말라고 무시해야 되는데, 묘하게 땡기는 이 기분은?
도현 : 본의 아니게 아프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리온 : (피식) 전 이미 꽤 오래 전부터 굳은살이 박혀놔서요. 제 심장은 근육이 반 굳은살이 반이거든요.
친구제안은 일단 접수시켜 놓겠습니다. 그럼....(뒤돌아가고)
도현 : ......(보며)
S#36. 다른 거리 일각 (밤)
리온 짐짓 취기를 부리며 노래를 흥얼거리며 걸어오고 있다. 그 위로,
S#37. 플래시백 몽타주
-공항에서 도현을 사이에 두고 소동을 벌이던 리온, 리진. (1부 28씬)
-공항에서 ‘사랑한다, 오리온’ 하면서 포옹하던 리진. (7부 68씬)
-쌍리. 도현을 못 보게 담요로 리진을 덮어버리던 리온. (13부 44씬)
-바닷가. 도현과 리진의 이별을 아프게 바라보던 리온. (16부 25씬)
-포켓몬스터 로켓단을 흉내내는 리진과 리온. (11부 22씬)
-리나와 함께 달리다가, 리온의 등에 올라타던 리진. (17부 41씬)
S#38. 거리 (밤)
떠올리며 쓴 미소가 생기는 리온. 그 위로,
리진 : (E) 잘못했어. 안 그럴게. (*17부 40씬의)
리온 : (피식 웃으며) 잘못했지 그럼. 너 나한테....무지 잘못했어.
리진 : (E) 그러니까 오빠 안 해준다는 말 하지 마. 어릴 때부터 그 말이 제일 무서웠단 말이야.
리온 : (붉어진 눈으로 웃으며) 그래...해줄게. 오빠 해줄게. 다른 건 안 할게....오빠만 해줄게....
그렇게....홀로 리진을 떠나보내는 리온의 모습에서.
S#39. 도현의 집 앞 (밤)
세워진 도현의 차 본넷 위에 걸터앉아 도현을 기다리고 있는 리진.
뒤돌아 도현이 올 방향 쪽을 기웃거려 봤다가, 손목시계를 봤다가,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는데...
집을 향해 걸어오다가 그런 리진을 발견하는 도현. 가만히...바라보다가, 옆으로 와서 털썩 앉는.
리진 : (움찔해서) 놀래라. 언제 왔어요?
도현 : (미소로) 방금.
리진 : 술 많이 마셨구나.
도현 : 응.
리진 : 뭐야. 목소리는 차도현인데, 말투는 신세기야? 느닷없이 웬 반말?
도현 : 옛날에 우리 친구였어.
리진 : 그래서 말 놓자고?
도현 : 되는대로. 나오는 대로. 그날 기분대로.
리진 : (뭔가 있었음을 알겠는) 뭔데. 왜 그러는데요? 오빠가 뭐라 그래?
도현 : (그저 미소로, 리진을 뚫어져라 바라보기만)
리진 : 뭐야? (자기 얼굴 좀 만지며) 내 얼굴에 뭐 묻었어?
도현 : 보고 싶어서.
리진 : 보고 있잖아.
도현 : 그래도 보고 싶어서.
리진 : 유행가 가사잖아 그거.
도현 : (웃고는) 우리...반드시 행복해지자.
리진 : (웃으며 고개 끄덕이는) 응.
별이 총총 뜬 밤 하늘 아래.
본넷 위에 앉아 마주보며 웃는 도현과 리진의 모습이
본넷 위에 앉아 마주보며 웃는 어린 도현과 리진의 모습으로 디졸브 되는 데서....F.O
S#40. 강한 병원 외경 (낮)
S#41. 강한 병원 / 석호필의 방 (또는 병원 일각) (낮)
석호필 앞에 나란히 와 앉아 있는 도현과 리진.
석호필 : 인격이 분리된 원인이 된 상처기억도 떠올렸고, 각각의 인격들이 생겨난 배경도 얼추 알게 됐으니,
인격들을 설득해 협조만 얻어낼 수 있다면, 이제 융합치료에도 서광이 비치겠군.
도현 : 기억도 거의 돌아왔고, 이젠 극복하는 일만 남은 거 같습니다.
석호필 :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찾아와. 보다 심층적인 기억에 접근하려면 최면이나 아미탈 요법을 쓸 수도 있고.
정신적 외상을 치료하려면 장기적으로 EMDR을 시행하는 것도 방법이야.
도현 : 일단은 둘이서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리진을 보며 미소 짓는) 곁에 훌륭한 주치의도 모시고 있으니까요.
리진 : 같은 과거, 같은 상처를 공유한 사람들끼리 기억의 퍼즐조각을 하나씩 맞춰나가고 상처조각들 역시 재구성해 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끔찍했던 기억도 점점 덜 아프게 되지 않을까 해서요.
석호필 : 그래....뭐 서로가 서로에게 원인과 결과가 되는 두 사람이니,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강력한 치료제도 될 수 있겠지.
근데 말야....(쩝) 대충 눈치는 챘었지만, 너무 티내는 거 아니야?
하며 보면, 소파에 나란히 앉은 리진과 도현의 꼭 붙잡은 손.
석호필 : 이거야 원, 꼭 내가 주례사라도 읊어줘야 될 것 같잖아.
도,리 : (얼른 손을 빼고)
석호필 : 아니 뭐, (심드렁하게 도현 슥 보며) 수년간 알아온 환자와 제자가 나 몰래 썸 탄 걸 뭐라 할 수도 없고.
(리진 슥 보며) 의사로서 자각이 있는 거냐고 질책하기엔, 둘이 보통 질긴 인연이 아니고.
(풀썩 웃어버리며) 어쩌겠나, 축복해주는 수밖에. 두 도현이가, 함께 잘 이겨내길 바라네....
도,리 : 네, 감사합니다. (환하게 웃고)
S#42. 강한 병원 복도 (또는 적당 장소) (낮)
가운에 양손을 넣은 채 생각에 잠겨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 석호필.
석호필 : 21년 전, 사건의 피해자 두 사람이 한 명은 치료자가 되고, 한 명은 환자가 되어 만났다....
게다가 환자의 마음이 조각난 원인이 바로 치료자 때문이었다....? (문득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며) 괜찮으려나....두 사람....
S#43. 도현의 집 외경 (낮)
S#44. 도현의 집 / 서재 (낮)
탁자 위에 조각 케이크와 홍차, 향초 등이 마련되어 있고.
예전처럼 면담 분위기를 꾸며 놓고 마주앉아 있는 도현과 리진.
리진 : 일단 억지로 인격들을 없애려고 애쓸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어차피 인격들도 차도현씨의 일부분이고 또 상처조각들이니까,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도현 : 그 말은 즉, 내 안의 다양한 모습들과 욕망, 상처 또한 나라는 걸 인정하고 포용하라는 말이죠?
리진 : 바로 그거죠! 그래야만 비로소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있다, 이 말이지,
도현 : (고개 끄덕이고) 그럼 이제 뭐부터 시작해야 하나요, 선생님?
리진 : 글쎄.....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음.....조각난 기억 맞추기부터?
도현 : 그럼, 오선생님부터 기억나는 게 있으면 말씀해 보세요.
리진 : 나부터?
도현 : 안 좋은 기억도 있었지만, 좋은 기억도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 좋았던 기억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리진 : 음.... (생각에 잠기며) 엄마가 자동차 사고로 돌아가신 지 얼마 안됐을 땐데....그 날은 내 생일이었어요.
어린 도현 : (노래 부르는, E)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 합니다~
S#45. 지하실 (플래시백)
어린 리진 앞에 촛불을 켠 조각 케잌을 놓고 노래하는 어린 도현.
(예의 팔각성냥곽과 타다 남은 성냥개비 하나가 바닥에 뒹굴고 있고)
리진 : (E) 처음엔 엄마가 금방 날 데리러 올 거라고...엄마만 오면 이곳에서 나갈 수 있다고 철썩 같이 믿다가,
헛된 꿈이란 걸 깨닫고 무척 상심했을 때였죠.
어린 도현 : 사랑하는 도현이의 생일 축하합니다....도현아, 생일 축하해.... (박수치고) 촛불 꺼, 도현아.
어린 리진 : (힘없이 웅크리고 있다가 마지못해 후, 불어서 끄고)
어린 도현 : (미안한) 커다란 케잌을 가져오고 싶었는데....이것밖에 못 가져왔어. 한번 먹어봐.
어린 리진 : .... (내키지 않지만 억지로 한 입 먹고)
어린 도현 : 맛있어?
어린 리진 : (먹어보고 아주 약간 웃는) 응. 맛있어....
어린 도현 : 이거 봐, 도현아. 도우미 아줌마한테 부탁해서 가져온 거야.
(작고 가느다란 폭죽을 꺼내 불붙이면, 반짝반짝 터지는 작은 불꽃)
어린 리진 : (그제야 환해지며) 와...이쁘다....
어린 도현 : (리진이 기뻐하자 좋아서) 다음에는 진짜 큰 불꽃놀이 구경하러 가자.
어린 리진 : (신나서) 응. 갈래! 꼭 갈래!
S#46. 도현의 집 / 서재 (낮)
리진 : 엄마가 돌아가신 뒤로 처음으로 기쁘고 행복했던 기억이었어요.
도현 : (미소로) 다행이네....행복했다니... (하다가) 아, 그러고 보니... 오리진씨의 생일은 내 호적상 생일이기도 해요.
리진 : ! (미처 생각 못했었기에) 어, 그렇게 되나?
도현 : 그럼 앞으로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생일이 되겠네요. 다음 생일에 같이 불꽃놀이 보러 갈까요, 우리?
리진 : 좋죠! 꼭 가요, 꼭.... (하는 순간 퍼뜩 떠오르는)
리진 : (E) 근데 내가 불꽃놀이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 인서트(5부 16씬)
세기 : 보고 싶어 했잖아. 오래 전부터.
리진 : (짠해지며, 마음의 소리, E) 세기는 다 기억하고 있었구나..... 근데 차군은....뭔가 기억나는 좋은 기억이 없어요?
도현 : 음... (한참 생각해보다가) 아, 그러니까 내가 승진가에 들어온 지 얼마 안됐을 때였어요...
S#47. 플래시백 (낮)
아직 민서연이 죽기 전, 지하실에 어린 리진이 학대받기 전의 상황.
잔디밭에 앉아 혼자 풀죽은 얼굴로 잔디를 쥐어뜯고 있는 어린 도현.
곰인형을 안은 어린 리진이 뒤에서 살금살금 다가와 왁 놀래키고는, 어딘가로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그런 어린 리진을 의아하게 보다가 따라가는 어린 도현. 일련의 모습 위로,
어린 도현 : (E) 압도되는 듯한 저택, 엄하고 무서운 할아버지, 그 집에 온 뒤로 갑자기 무섭게 변해버린 아버지 때문에...
주눅 들어 있을 때였어요. 그날도 구구단을 다 못 외워서 야단을 맞았죠.
어린 리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도현을 앉히고는 자신도 앉는다.
앞에 이미 소꿉놀이 세트와 장난감들이 세팅되어 있다.
어린 리진 : 나랑 소꿉놀이 하자. 나는 엄마. 너는 아빠 해.
어린 도현 : 소꿉놀이?
어린 리진 : 어. (곰인형을 옆에 놓더니) 얘는 아기. 이름은 나나. (속닥이는) 실은....하늘나라 가신 우리 아빠가 남긴 선물.
어린 도현 : !!! (놀라서 보면)
어린 리진 :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선 말하지 말랬는데, 너한테는 말해도 될 것 같아. 그러니까....비밀이야. (새끼손가락 내밀면)
어린 도현 : (손가락 걸며, 고개 끄덕이는) 알았어. 비밀.
어린 리진 : 참, 내가 구구단 쉽게 외는 법 가르쳐줄까?
어린 도현 : 정말? (눈 반짝 빛나며 보면)
모랫바닥에 작대기로 구구단을 쓰고, 알파벳도 쓰고, 그림도 그리며 환하게 웃는 두 아이의 모습에서.
S#48. 도현의 집 / 서재 (낮)
도현 : 처음엔 승진가 저택에 적응 못하고 늘 달아나고만 싶었는데.... 오리진씨가 있어서....견딜 수 있었어요.
먼저 구원받은 건 나였어.
리진 : (미소로) 다행이다....나도 차군한테 슬픈 기억만 안겨준 건 아니라서.
도현 :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습니까?
리진 : 전혀 기억 안나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거든요. 엄마는 내가 좀 더 크면 알려주겠다고 해놓고 돌아가셨고.
도현 : (보다가) 오리진씨.
리진 : (보면)
도현 : 우리가 할 일이 떠올랐어요.
리진 : (!!) 뭔데 그게?
도현 : 어린 시절의 우리를 위로해주러 갈까요?
리진 : 음....어떻게?
도현 : 잊었어요?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척 꺼내들더니) 나 재벌. 있는 건 돈 밖에 없거든.
리진 : 지금 돈 자랑 하는 거예요?
도현 : 네, 어필할 수 있는 조건은 다 써먹을 생각입니다. (일어나며) 갑시다.
리진 : 지금요?
도현 : 네, 지금 당장..... (리진의 손을 잡아 일으키고)
문 쪽으로 향해 가는 두 사람, 서재 문을 확 열어젖히면,
S#49. 지하실 (낮)
끼이익, 컴컴한 지하실 문을 열면 환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밝은 미소로 두 손을 맞잡고 그 문을 나서는 어린 도현과 어린 리진.
눈부신 빛 속으로 걸어나가는 두 아이의 모습에서.
S#50. 도현의 집 앞 (낮)
밝은 미소로 눈부신 햇살 속으로 걸어나가는 도현과 리진. 환하게 웃는 두 사람의 모습 위로,
(M) 밝은 음악 시작되며,
S#51. 놀이공원 (낮)
롤러코스터 따위의 놀이기구를 타는 도현과 리진의 모습.
천천히 정상을 향해 레일을 따라 올라가는 열차.
침 꿀꺽 삼키고 주먹 불끈 쥐며 긴장하는 두 사람.
드디어 정점에 도달해 잠시 멈춰서는 열차. 다음 순간 아래로 확 하강하면,
와~ 사람들의 함성 소리와 함께!
# 인서트
하강했던 롤러코스터(혹은 후룸라이드 정도)가 다시 올라오며,
어린 도현과 어린 리진의 모습으로 바뀌는!
# 현재
달려가는 롤러코스터 안에서 와~ 함성을 지르며 두 손을 번쩍 드는 도현과 리진!
S#52. 놀이공원 내 기념품점 (낮)
메모지를 들고 기념품 가게로 들어서는 리진과 도현이고.
도현 : (리진의 손에 든 메모를 보고) 그게 뭡니까?
리진 : 음....인격들을 위한 선물 리스트를 만들어봤거든요. 인격들을 잘 달래려면, 뇌물을 좀 먹여놔야 될 거 같아서요.
도현 : (피식) 뇌물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다 불법입니다.
리진 : 말이 뇌물이고. 다들 좋아할 만한 선물을 한번쯤 해 주고 싶었거든요. (인형을 고르며) 나나한텐 등이 안 터진 새 곰인형....
페리박한텐 낚싯대랑 맥주.... (피식 웃으며) 저번에 쌍리 왔을 때 아빠의 회심작인 신의 물풍선을
입에 대지도 못하고 기절했거든.
도현 : 페리박 선물이라면....저건 어때요? (어딘가를 가리키고)
리진 : (따라서 보면 작은 모형 배쯤 진열되어 있고) 아, 괜찮겠네. 저기 이름만 적어넣으면 되겠다. (웃는데)
도현 : ..... (보며, 약간 복잡한 표정 되는)
리진 : (문구류 보며) 요섭인 시를 쓰고 싶대요. 다이어리랑 만년필 어때요?
도현 : 것도 괜찮은 생각이네요.
리진 : (마스코트 머리핀이나 머리띠 정도) 아, 이건 요나가 좋아하겠다. 기집애, 하도 말을 안 들어서
주고 싶은 맘이 싹 달아나긴 하지만. 암튼 세기보다 더 다루기 힘들다니까. (하다가 멈칫) 그런데... 세기는....
대체 뭘 사주면 기뻐할까요? 전혀...모르겠네.... (표정 차츰 가라앉는 데서)
도현 : (그런 리진을 바라보며) ......
S#53. 놀이공원 일각 (낮)
벤치 혹은 파라솔 아래 앉아 음료를 마시는 도현과 리진,
리진 : 저번에 차군을 불러내는 바람에 세기가 그렇게 들어가버린 게 마음에 걸려요.
가장 깊은 상처를 가진 만큼, 분노가 높아지면 폭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불을 지른 것도 그런 이유겠죠.
도현 : 실은....세기가 아버지 목숨줄을 쥐고 회장님을 협박한 적이 있었어요. 아마...승진을 오리진씨한테 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리진 : !!! (보면)
도현 : 세기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너무 커서, 그 분노를 어떤 식으로든 풀지 않으면 절대 사라지려 하지 않을 겁니다.
리진 : 차도현씨한테....아버진 어떤 사람이었어요?
도현 : (멈칫 했다가) 한때는.....다정하고 좋은 아버지였어요. (그리움과 원망이 뒤섞여 복잡한 표정이 되는 위로)
차준표 : (E) 진짜? 진짜 아빠한테 배 사줄 거야?
# 인서트(17부 6씬)
어린 도현 : 응. 배에 이름도 새겨줄게. 뭐라고 새겨줄까?
차준표 : 음....(생각해보는 척 하다가, 퍼뜩) 페리박. 페리박호! 어때?
어린 도현 : 오케이! 페리박호!
# 현재
리진 : !!! (놀라서 보는) 페리박호라면....설마....!!!
도현 : 최근에야 기억이 났어요. 내 마음 속엔 학대자인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있지만,
한때 다정했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과 죄책감도 함께 남아 있었던 겁니다. 그래서....페리박을 만들어낸 거겠죠.
리진 : ....그럼 지금은 어느 쪽이 더 강한 것 같아요? 원망? 아니면 그리움?
도현 : .... (보다가) 오리진씨는 어떻게....그렇게 담담한 겁니까? 원망하고 또 원망하고 저주를 퍼부어도 모자란 사람일 텐데....
리진 : (흠....한숨 내쉬고) 실은....잘 모르겠어요. 처음 사진을 보고 기억을 떠올렸을 때는 너무 무서워서 몸을 가눌 수조차 없었는데,
의식 없이 누워만 있는 모습을 신문으로 보니까... 저 사람이 정말 그 사람인가....싶기도 하고. 뭔가 허무하달까....
도현 : 세기는 오리진씨가 조금이라도 아파하거나 원망하는 마음을 비치면, 언제고 달려가 아버지의 목을 조를 겁니다.
리진 : !!! 그건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닌데요?
도현 : 하지만 오리진씨가 여전히 안전하지 않다고 느끼거나, 아버지로 인해 고통 받는다고 느끼면, 언제든 가능성이 있습니다.
리진 : (피식 쓴웃음) 그럼....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가해자를 용서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도현 : ......
리진 : 불쌍하네 우리들....
도현 : ......
S#54. 차준표의 병실 (낮)
산소호흡기로 낮게 숨 쉬는 소리만이 들려오는 고요한 병실.
죽은 듯이 잠들어 있는 차준표의 모습.
어느 순간 손이 까딱 움직이며 약간 위로 들렸다 내려오는....!
S#55. 도현의 집 외경 (밤)
S#56. 도현의 집 / 거실 (밤)
불 꺼진 거실 일각,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선물을 옹기종기 쌓아놓은 것처럼,
커다란 나무 화분 아래 곰인형을 비롯한 인격들의 선물들이 한꺼번에 놓여 있다.
그때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며 그 선물들 중 낚싯대를 조심스레 가져가는 누군가의 손!
카메라 틸업하면, 바로 페리박이다!
S#57. 도현의 집 / 리진의 방 (밤)
리진, 침대에 잠들어 있는데, 누군가 리진을 흔들어 깨운다.
리진 : (잠결에 눈을 가늘게 뜨면)
페리박 : (특유의 장난끼 서린 미소로) 아따, 뭔놈의 잠을 누가 엎어가뿐져도 모르게 자분당가.
리진 : (놀라) 페리박!
페리박 : 암만, 나여 페리박. 나가 이별인사하러 안 왔소잉.
리진 : !!!
S#58. 도현의 집 / 주방 (밤)
탁자 위에 먹음직스런 치킨이 놓여있다.
페리박 벌써부터 치킨 다리 하나를 잡고 암팡지게 뜯는 중이다.
페리박에게 집에서 가져온 맥주를 따라주는 리진.
잔에 거품이 넘치자 얼른 받아들어 입을 대는 페리박.
페리박 : 캬~ (단번에 반 정도 마신 잔을 탕! 내려놓으며) 워매, 엄니, 징허게 맛나분 거. 역시 야참으론 치맥이 최고라니께.
리진 : (웃고) 그렇게 맛있어요?
페리박 : 아따, 그라제. 두 말 허면 잔소리고 세 말 헐라치면 중범죄고. 색시 집에 가거들랑 나의 말을 꼭 전해주드라고.
대오 성이 맹근 맥주가 이 페리박이 시상 나와서 마신 맥주 중에 젤루 맛나드라고.
.... 좀 아까 헌 말도 잊어분지지 말고 꼭 도현이 갸헌티 전해주고.
리진 : 왜 갑자기 떠날 생각을 하셨어요....?
페리박 : 그것이사 나가 질로 어른인께로. 나가 솔선수범을 봬줘야 아그들이 나으 뒤를 바짝 따라올 거이고,
그래야 도현이 쟈도 쪼까 편해질 테니께.
리진 : ...... (왠지 짠하게 보면)
페리박 : 왜 그렇게 보고 지랄일까잉. 색시 나헌티 뭐 할 말 있당가?
리진 : 그때....가죽 잠바 사건 때 나 구해주러 오신 거 맞죠?
페리박 : (맥주잔을 입에 대며 손 사레를 친다)
리진 : 21년 전 불속에서 절 구해주지 못해서....미안해서....그쵸?
페리박 : (비운 맥주잔 내려놓고) 아따 뭔 소릴 씨부린당가, 시방. 맥주도 마셨겄다, 나가 쪼깨 바쁘니께 당부 하나만 할라네.
리진 : ......?
페리박 : 우리 아그 잘 부탁허네잉. 나가 색시 덕분이, 참말로 색시 하나 딱 믿고 이제사 훨훨 먼 여행을 떠날라네.
(따뜻하게 보며) 건강허소.
리진 : (찡해져서) 페리박...
페리박 : 옴마, (하품 나오며) 잠이 쏟아져불구만. (하더니 가만히 식탁 위에 엎드리는)
리진 : (바라보며 눈가 붉어지는)
S#59. 도현의 무의식
미련도 후회도 없는 편안한 표정의 페리박, 예전의 차준표처럼 낚싯대를 척 어깨에 메고 닫힌 문 앞으로 걸어간다.
기대에 찬, 조금은 아쉬운 듯 숨을 한번 크게 쉬고 문을 열면,
눈앞에 펼쳐지는 드넓은 바다, 갈매기 소리, 그리고 바다 위에 떠있는 하얀 배 한 척,
배에 써져있는 페리박호!
흐뭇한 미소가 입가에 번지는 페리박의 표정 위로,
어린 도현 : (17부 6씬, E) 내가 사줄게.
차준표 : (E) 뭘?
어린 도현 : (E) 배.
차준표 : (E 좋아서, 놀라는 척) 진짜? 진짜 아빠한테 배 사줄 거야?
어린 도현 : (E) 응. 배에 이름도 새겨줄게. 뭐라고 새겨줄까?
차준표 : (E) 음.... (생각해보는 척 하다가, 퍼뜩) 페리박. 페리박호! 어때?
어린 도현 : (E) 오케이! 페리박호!
차준표 : (E) 너 아빠랑 약속했다? 꼭 사줘야 돼? (사람 좋게 웃어주고)
S#60. 도현의 집 / 주방 (밤)
리진, 눈물 고인 채로 잠든 도현을 바라보고 있다.
잠에서 깨듯 가만히 고개를 드는 도현.
리진 : .....깼어요?
도현 : ...... (여운이 가시지 않은 표정)
리진 : 방금....페리박이 떠났어요.
도현 : (알고 있는)......
리진 : 페리가 차군한테 이 말 꼭 전해달라고 했어요.
도현 : .....?
리진 : 자유롭게 살라고 전해달래요. 자유가 어떤 뜻인진 잘 알거라면서.
도현 : (어쩐지 눈가 붉어지는, 그 위로)
어린 도현 : (E, 17부 6씬) 자유롭게 사는 게 뭔데?
차준표 : (E, 17부 6씬) 음...남이 이렇게 살아줬으면 좋겠다싶은 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내가 생긴 대로 사는 거.
내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사는 거. 그렇게 살아도 안 혼나는 거.
도현 : ...... (고개를 숙이는)
리진 : ......(도현의 옆자리로 가서 가만히 안아주는)
S#61. 서태임의 저택 / 거실 (밤)
신화란, 나이트가운을 걸치고 나오다가, 다이닝룸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는.
S#62. 서태임의 저택 / 다이닝룸 (밤)
서태임, 혼자 외로이 긴 탁자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고 있다.
의자를 당겨 기역자로 앉는 신화란.
신화란 : (스트레이트 잔을 내밀며) 저도 한 잔 주세요, 어머님.
서태임 : .....
신화란 : (흥, 웃고는 자작하며) 잠이 통 오질 않네요. 병원에서 처방 받은 수면제도 영 약발이 떨어졌는지 듣질 않고.
실은 우리 도현이한테 장애가 있다는 말을 듣고부터 이래요, 제가. (쭉 마시고)
서태임 : (보며) ......
신화란 : (비식) 제가 이 지경이 되니까 전에 없이 이런 생각이 들대요. 어머니 당신도 그동안 꽤 힘들었겠다.
(자작하며) 누워만 있는 아들을 보는 마음이 얼마나 찢어졌을까...
서태임 : 너도 나이를 먹는 게지, 쓸데없는 생각을 다 하고.
신화란 : (술을 단숨에 들이키며 인상을 쓰는) 아무래도 이 집 터가 차씨들한테는 별로 안 좋은 거 같지 않아요?
서태임 :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대체.
신화란 : 차씨 집안에 차씨는 온 데 간 데 없고 서씨랑 신씨가 남아서 지키는 꼴이잖아요. 그래서 해본 소리에요.
서태임 : ......(술잔을 드는데, 그 위로)
신화란 : (E) 민서연 그 여자 딸 말이에요.
서태임 : (멈칫 보면)
신화란 : 우리 도현이가...그 아일 만났어요.
서태임 : (놀라서 손에 술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로) !!!
S#63. 도현의 집 / 리진의 방 (밤)
리진, 침대에 잠들어 있는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서는 인기척.
리진의 침대로 천천히 다가와 서는 누군가의 그림자.
전혀 모른 채 곤히 잠든 리진을 미동 없이 바라보며 서 있고....
잠시 후, 벽 위에 검정색 라커로 뭔가를 그리는 누군가의 손!
드디어 방문이 스르르 열리고 그림자 나가고 나면, 벽 위에 커다랗게 그려진 X라는 글자에서..........F.O
S#64. 도현의 집 외경 (아침)
도현 : (벙찐, E) 대체 이게.....뭡니까?
S#65. 도현의 집 / 리진의 방 (아침)
도현, 멍한 표정으로 벽 위에 그려진 X라는 글자를 보고 있다.
리진 :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나도 모르겠으니까 그걸 물어보려고 차군을 부른 거잖아요.
안실장 : (급히 들어오며) 방금 상황실 CC-TV를 확인했습니다. 외부 침입은 없었고, 동이 틀 무렵 이층으로 올라가시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위원장님께서 쓰신 게 분명합니다.
리진 : 그럼... 설마....? (도현을 보며)
도현 : (리진을 보며) ....설...마?
안실장 : (도현과 리진을 보며) 서, 설마?
동시에 : 새로운 인격 출현?!!!!! (동시에 벽에 글자를 보며) 엑스!!!!
놀라는 도현과 리진, 안실장의 표정에서 엔딩.
-<킬미 힐미> 19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