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다/바니빌라스 촘롱학교 봉사활동
안나푸르나에서 부르는 희망의 노래 글·사진 김영식 충북주재기자
|
◇ 네팔 안나푸르나 남면 베이스캠프(4200m)에 무사히 도착한 2006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 탐사대는 충북 지역 교사·학생 28명으로 구성되었다. |
충북 지역 교사와 학생 27명으로 구성된 2006년 제2차 히말라야 오지학교 탐사대는 1월 5일 네팔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탐사대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과 함께 네팔 산골 학교를 방문해 봉사활동을 하고 현지 학생들과 서로의 문화체험을 하기로 했다.
대원들은 3개월 전부터 각자의 학교에서 네팔에 가져갈 헌옷과 학용품을 모았다.
(주)반도스포츠(대표 강창호) 콜맨 사업부는 제1차 탐사에 이어 올해에도 어린이옷 150벌 등 많은 자원을 아끼지 않았다.
방콕을 거쳐 1월 6일 네팔 카트만두 공항에 도착해 안나푸르나 호텔에서 하루를 묵은 대원들은 7일 아침 전세버스로 카트만두 외곽의 바니빌라스 학교로 향했다.
바니빌라스 학교는 카트만두에서 차로 40분 정도 거리의 도심 속 빈민촌에 있는 초·중등학교다.
처음엔 캐나다 지원으로 설립되었다는데 지금은 지원이 완전히 끊겨버린 상태라고 한다.
지난 해 1차 탐사 때 의류와 학용품을 전달한 적이 있는데 이 학교 교장선생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찾게 된 것이다.
탐사대원들이 선물 보따리를 들고 학교로 들어서자 크고 맑은 눈을 가진 네팔의 어린이들과 선생님들이 반갑게 맞는다.
운동장엔 작년에 보이지 않던 화단이 잘 가꿔져 있고, 대청소를 한 듯 말끔하다.
나중에 물어보니 탐사대가 온다는 소식에 일부러 화단까지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들의 정성과 마음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코끝이 찡해온다.
대원들은 준비한 선물을 들고 삼삼오오 팀을 나눠 교실에 들어가 네팔 학생들과 책갈피 만드는 놀이 수업을 진행했다.
처음에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 서로 어쩔 줄 모르더니 금세 몸짓 손짓까지 동원해가며 의사소통을 해낸다.
네팔의 어린 학생들이 다 함께 한국에서 준비해간 재료로 종이를 곱게 접어 책갈피를 만드는 걸 보더니 현지 선생님들도 신기한 듯 따라 해본다.
놀이 수업 후엔 80여 명의 학생들에게 준비해 간 의류와 학용품, 동아제약에서 지원해준 의약품 등을 전달했다.
교문 바깥까지 한참을 쫓아 나오며 이별을 아쉬워하는 아이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내년에 다시 오겠다는 약속뿐이었다.
|
◇촘롱학교에서 탐사대원들과 네팔 어린이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 촘롱은 안나푸르나 남봉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 중 농가가 있는 마지막 마을이다. |
로지에서 열린 국제 축구대회
다음 날은 안나푸르나 산자락에 있는 산골학교를 찾아 나섰다.
우리는 카트만두 국내선 공항의 경비원으로부터 전신 마사지에 가까운 몸수색 검문을 통과하고 나서야 30인승 경비행기에 오를 수 있었다.
엄청나게 큰 비행기의 소음 속에서도 창밖으로 펼쳐지는 히말라야의 파노라마에 대원들 모두 넋을 잃었다.
30여 분 비행 끝에 도착한 네팔 최고의 휴양도시 포카라. 포카라 공항에서 인도 배낭여행 중이던 이윤주 대원이 중간 합류를 했다.
이제야 초등학교 4학년 권용찬, 중학교 2학년 김태우·김희정, 고등학생 박병규, 대학교 1학년 이윤주까지 학생 5명과 교사, 산악인으로 구성된 28명의 탐사대가 모두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포카라에서 입산신고를 마치고 페디로 이동한 후 본격적인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이 시작되었다.
가파른 산길을 30여 분 올라서자 다랑이 논과 네팔 시골동네가 나타났다.
옛날 우리 시골과 비슷한 풍경들이다.
초등학교 4학년인 용찬이와 중학생인 태우·희정이가 걱정스러웠지만 힘든데도 잘 참고 걷는다.
담푸스에 올라서자 안나푸르나 산군의 하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히말라야의 멋진 파노라마를 병풍삼아 마을길과 숲길을 걸어 오후 3시쯤 되어서야 목적지인 포타나에 도착했다.
포타나 로지에 짐을 풀고 나니 로지 옆 캠핑장에서 네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다.
탐사대의 박연수 부대장이 우리팀과의 시합을 제안하자 흔쾌히 승낙한다.
즉석에서 열린 네팔 대 한국의 국제축구대회. 우리쪽 선수는 용찬, 태우 등 어린 학생들과 나정흠 선생님을 비롯한 몇몇 어른들로 구성됐다.
해발 2000m가 넘는 고산지대에서의 축구시합은 역시 무리였을까. 우리 팀이 네팔 어린이팀에 보기 좋게 1:4로 지고 말았다.
다음날인 9일 아침에는 일찌감치 일어나 박연수 부대장의 구령에 맞춰 체조를 한 후 스틱을 한 곳에 모으고 파이팅을 외쳤다.
탐사대 막내 용찬이를 맨 앞에 세우고 시작한 트레킹은 데우랄리, 비촉을 거쳐 돌카에 도착, 안나푸르나 산군이 위용을 자랑하는 전망 좋은 자리에서 네팔 수제비인 덴뚝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오후 3시 30분쯤 안나푸르나 남봉과 히운출리가 장엄하게 보이는 란두룽에 도착하여 다시 로지에 짐을 풀었다.
대원들은 잠시 틈을 내 양말과 옷을 세탁하고, 로지 옥상에 올라가 장엄한 히말라야 산줄기를 쳐다보며 감탄사를 쏟아낸다.
저녁엔 ‘너비나’라는 16살 소녀의 현란한 네팔 춤에 이끌려 우리 대원 모두 모닥불 주위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10일에는 란두룽의 돌담길을 따라 계곡으로 내려간 후 다시 가파른 산길을 올라 지누라는 곳에 도착했다.
간단히 국수로 점심을 때우고 모디콜라강 계곡으로 30분 가량 내려가 따또바니 노상 온천에 몸을 씻었다.
온천욕을 했지만 가파른 길을 올라가다보니 몸은 다시 땀범벅이 되고 만다.
지누에서 가파른 능선길을 서너 시간 올라 촘롱에 닿았다.
촘롱(2050m)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 코스 중 농가와 학교가 있는 마지막 마을이다.
촘롱의 한 로지에 짐을 풀고 마을 우두머리와 학교운영위원장을 만나 촘롱학교 봉사활동에 대해 상의했다.
여기 있는 학교는 현재 정부군과 반군 마오이스트의 내전으로 인해 정부의 지원이 모두 끊긴 상태라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네팔은 세계 10대 빈곤국 중 하나인데 내전까지 끊이지 않으니 시골학교에 대한 지원은 엄두도 못내는 형편인 모양이다.
늦은 시각 로지 바로 아래에 있는 학교에 가보고 열악한 시설과 교육환경에 다시 한 번 놀란다.
아주 작은 규모의 학교에 학생수가 무려 150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트레킹을 마치고 내려오면서 학교를 다시 방문하겠다는 뜻을 전하고 돌아와 늦은 밤잠을 청했다.
|
◇ 안나푸르나 산군의 란두룽을 지나 촘롱학교로 가기 위해 트레킹 중이다. 지누에 닿기 직전의 마을에는 다랑이 논이 펼쳐져 있었다. |
촘롱학교 학생들과 벌인 한밤 축제
11일 시누아, 밤부를 거쳐 히말라야 호텔(2870m)에서 하루를 묵고 12일엔 데우날리를 거쳐 점심 무렵 아주 가파른 깔딱고개 돌계단을 올라 이날 목적지인 마차푸차레 베이스캠프에 닿았다.
시간상으로는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까지 갈 수 있었지만 탐사대원들 대부분이 히말라야를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이라 조심스러웠다.
13일 이른 새벽 단잠에서 깨어 안나푸르나 여신의 품으로 들어가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
다들 약간의 고소증세가 있었지만 컨디션은 양호한 편이었다.
막내 용찬이를 앞세워 어둠을 헤치고 출발했다.
점점 어둠의 장막이 걷히면서 안나푸르나 1봉(8091m)의 웅장한 모습이 우리 앞에 확연히 다가온다.
대자연의 장엄 그 자체다.
3시간 정도 숨을 헐떡이며 걸어 드디어 우리의 최종목적지 안나푸르나 남봉 베이스캠프(4130m)에 도착했다.
히운출리, 안나푸르나 남봉, 안나푸르나 1봉 등으로 이어지는 안나푸르나 파노라마에 모두 탄성을 자아낸다.
초등학교 4학년 용찬이를 비롯하여 탐사대원 모두 낙오자 없이 무사히 이곳에 올랐다.
산의 정상은 아니지만 우리는 우리만의 정상에서 희열을 만끽했다.
다들 지쳤지만 다음날 촘롱학교 방문을 위해 가까운 곳까지 내려가서 숙소를 잡을 욕심으로 벰부까지 하산하기로 했다.
늦은 저녁식사 후 내일 촘롱학교 학생들과 만난다는 들뜬 마음에 피곤함도 잊은 채 로지 앞마당에서 행사 준비와 시연활동을 벌였다.
고등학생인 병규와 나정흠 선생님의 태권도 연습, 윤영섭 선생님과 이선희 선생님의 꼬리잡기와 돼지씨름 시연… 적막한 히말라야 벰부에 밤늦도록 웃음꽃이 피었다.
14일 행사준비 관계로 나는 가이드인 핀죠를 데리고 탐사대원보다 일찍 촘롱으로 출발했다.
한참 내려오다 보니 길 옆 시골집 마당에서 어린이들이 꽃을 따서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촘롱마을에 도착해 학교운영위원장과 행사일정을 논의하고 있으니 탐사대원들이 속속 도착한다.
촘롱의 로지에서 점심식사를 간단히 마친 후 우리 대원들은 학생들에게 전해줄 선물을 들고 촘롱학교로 향했다.
학교의 조그마한 정문에서 아이들이 예쁘게 만든 형형색색 꽃목걸이를 탐사대원들의 목에 걸어준다.
아까 무심코 지나쳤던 어린이들이 생각났다.
학교를 방문하는 우리 탐사대에게 꽃목걸이를 선물하기 위해 꽃을 따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서 준비한 간단한 네팔식 행사를 치른 후 촘롱의 남학생들은 나정흠 선생님과 박병규 학생의 지도로 태권도 배우기 수업을 하고 여학생들은 나머지 탐사대원들과 종이접기로 책갈피 만들기 놀이수업을 했다.
학교는 잔뜩 구경나온 마을 사람들 때문에 우리 시골학교의 운동회처럼 되어 버렸다.
수업이 끝나자 윤석주 선생님의 풀잎피리 소리에 맞춰 아리랑과 네팔 노래 렛산삐리리를 다 같이 부르는 시간을 가졌다.
네팔식 꼬리잡기 놀이와 우리나라 꼬리잡기 놀이, 우리 전통놀이인 돼지씨름, 네팔식 닭싸움 등 몸으로 부딪치며 어울려 놀다보니 어느 새 탐사대원들과 네팔 학생들이 하나가 되었다.
처음의 서먹하던 눈빛은 사라지고 나중엔 서로 아쉬워하며 부둥켜안고 먼 훗날 또 만나자는 약속을 한다.
모든 일정이 끝나자 탐사대는 준비해 간 의류, 학용품, 의약품과 축구공, 배구공, 농구공을 학교 측에 전달했다.
로지에 돌아와 저녁 식사를 마쳤을 무렵 촘롱학교 학생들이 숙소를 방문했다.
학교 방문에 대한 답례로 네팔 민속춤 공연을 보여주러 왔다는 것이다.
마지막 날까지 우리 숙소 식당에서는 밤이 깊도록 탐사대원과 네팔 학생들이 함께 어울린 멋진 축제마당이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