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한 교회의 목사님과 장로님들이 우리 몽골국제대를 방문했다. 나는 우연히 지나가다가 그들을 소개받았는데,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가 그중 한 장로님과 마주쳤다.
그가 내게 물었다.
장로님 : “정말 하버드 나왔수?”
나 : “…예.”
장로님 : “근데 왜 이딴 대학에 있는지 모르겠네.”
나는 ‘이딴 대학’이라는 말에 화가 나고 답답했다. ‘아니, 장로님이라는 분이 헌신과 선교에 저토록 이해가 없나?’
그런데 집에 돌아와 기도를 드리는데 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하나님께서 내가 마음에 원망을 품고 그를 판단한 걸 가르쳐주셨다.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본질적인 이유를 알게 하셨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게 학교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이 없었다.
나는 몽골에 와서 학교의 어려운 모습을 보면서, 1개월 정도 힘든 적응 기간을 보냈다. 그래서 당시 같이 하버드대를 졸업한 친구들이나 미국 교수님들에게 내가 이 학교에 있음을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았던 게 주님의 빛 가운데 드러났다.
그런 마음이 있기에 다른 사람의 말에 마음이 상했다는 걸 알았다.
그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어디에 속해 있는지로
너를 평가하지 않는다.
네가 내게 누구이며 어떤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는가가 중요하단다.’
우리가 어떤 지위로 있는지는 하나님의 관심사가 아니다. 그저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서 보실 뿐이다. 우리는 그분의 사랑 앞에 모든 걸 내려놓을 수 있다.
선교사가 선교지에서 겪는 또 다른 갈등이 있다. 바로 지위와 신분으로 서로를 판단하며 힘들어하는 일이다.
한 예로 교수로 사역하기 위해 온 어느 목사님을 ‘형제님’이라고 불렀다고 노여워하거나, 어느 목사님이 평신도 선교사를 ‘집사님’으로 불렀다가, 신분을 구별하여 상하관계를 만들려 한다며, 선교사가 상처를 받는 경우가 있었다.
문제는 내 존재가 상대의 평가와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에 있다. 이것이 서로를 판단하며 상처 받게 한다.
그러나, 내 존재는 남들의 평가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는가에 달려 있음을 깊이 묵상함으로써만 우리는 서로 찌르기 쉬운 판단의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리커버 에디션] 내려놓음, 이용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