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화를 안 하는 건지, 못 하는 건지
노병철
주위에 한의사 선배도 있고 친구도 있고 후배도 있다. 그리고 한의사 지인들이 많아 여태 한의원 가서 돈 내고 침 맞은 적은 없다. 그러다 돈 낼 일이 생겼다. 점쟁이에게 대들다가 조금 있으면 당신 몸에 병이 올 것이라고 자기가 모시는 장군님이 전하라기에 콧방귀로 여겼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몸에 이상이 왔다. 풍(風)으로 분류하는 구안와사(口眼喎斜)가 온 것이다. 양방에선 말초성안면신경마비라는 명칭 대신에 자기네 말로 벨 파시(Bell's palsy)라고 부르는 병이 와서 입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급하면 뭔 짓이든 다 한다고 유명하다는 한의사 세 명과 양의사 1명 물리치료사 3명을 붙였다. 안 받는다는 돈까지 줘가면서 말이다.
얼굴 외피뿐만 아니라 입안 구석구석에 침 맞고 심지어 발가락 끝에도 침을 찌르는데 오줌을 지릴 정도다. 이야기를 듣던 신경과 의사는 그냥 약 먹고 물리치료나 열심히 하라면서 대수롭잖게 이야기한다. 약 보름 정도는 진행하다 그 후부터는 급속히 좋아지기 시작하는데 이때 안면근육에 물리치료와 마사지를 부지런히 해서 근육이 굳는 것을 막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즉 죽을 병은 아니니 괜한 요란 떨지는 말라는 말이다. 점쟁이에게 대들다가 병 걸렸다는 이야기까지 꺼내다간 나만 완전 등신 될 것 같아 참았다.
구안와사를 바이러스 감염이라는 양방의 진단과 중풍이라는 한방의 병에 대한 접근은 완전히 달랐다. 실상 열이 나면 열을 내리기 위해 찬물로 닦아내는 양방과 열을 더 내게 만들어 치료하는 한방의 극단적인 처방에 많이 당황하게 된다. 원래 몸은 완전체인데 사용하다가 한쪽이 무너진다는 허준의 동의보감, 태어날 때부터 무너진 채로 태어난다는 사상체질을 만든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을 보면서 과연 이 나라의 한의사는 어떤 처방을 근거로 병에 접근하는지 사실 궁금했다. 설마 몇천 년 전 고대 의학서인 황제내경을 근거로 하지는 않겠지 하는 판단 때문이었다.
“어부들도 초음파 탐지기를 쓰는데, 한의사만 사용하지 못한다.”
나의 궁금증은 이상한 곳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맥만 잡아서 병을 알아낸다는 것은 현대의학의 혜택을 충분히 받고 자란 세대라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한의계가 진단학이 약하다는 것을 너무나 절실히 알기에 현대의료기기 사용을 촉구하기 위해 많은 로비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더는 침과 약초, 뜸으로 치료하는 방향이 사람들에게 먹혀들지 않아 뭔가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피부 미용기구를 건드렸다. 남자들은 잘 모를지도 모르지만, 여자들은 너무도 잘 아는 IPL을 한의원에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Intensive Pulsed Light’
한문으로 도배를 한 한의학에 영어가 도입된 것이다. 그러자 의사협회에선 발끈했다. 의료영역을 지키라는 것이다. 한의사 쪽에선 이것도 의료영역이라는 주장을 폈다. 결국 재판으로 갔다.
“의료법 위반”
대법원판결이다. 한의학의 기초이론인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한 장상론, 경락론, 상형약리론에 근거한 뜸, 침, 한약 그리고 도인술 등 전통 체조법, 양생술 같은 것은 한의사 면허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반면 의사는 물리, 화학, 생물 등 기초 과학에 근거해 해부, 생리, 유전, 발생, 면역, 내분비대사학, 영상의학, 종양학, 핵의학 등 현대의학의 이론에 근거해 약물치료와 외과적 치료를 하는 것이라고 가르마를 정확하게 타준 것이다. 법원의 판단은 명확하다. 의사는 병원에서 침이나 뜸을 하면 안 되고 한의사는 한의원에서 의료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조상으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방식으로 치료하라는 것이다. 즉 다시 말해 배운 것만 똑바로 하라는 이야기다. 자꾸 옆에 떡이 커 보인다고 껄떡거리지 말라는 일침이다.
의료일원화라는 말이 나온 지 30년은 더 된 것 같다. 12개 한의대를 나온 한의사가 갈 곳이 없다는 지적을 여러 차례 했다. ‘한의대’도 ‘의대’로 취급하는 이상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이건 인근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 중국이나 일본은 이렇게 분리하지 않는다. 의대에 들어와서 기본 과정을 마치고 한의 양의로 구분되기에 이런 의료 기기 사용에 왈가왈부가 없다. 이렇게 만들자고 수없이 외쳤지만 서로의 이득이 있는지라 쉽게 바뀌지 않는다. 관심조차도 없을 뿐 아니라 일부는 전통 운운하며 한의학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고 난리다. 한의학을 이상한 의학으로 몰려고 하는 행위가 아니라 한의학 발전을 위해서라면 의료일원화가 정말 필요하다. 이게 국민 건강을 위한 일이란 말이다.
아직 살날이 많이 남았다는 전제하에 양 한방 안 가리고 좋다는 치료는 다 받았다. 침도 맞고 양약도 먹고 물리치료도 하고 마사지도 하고. 정말 한 달 만에 입에 제자리로 돌아왔다. 침도 흘리지 않았고 잠잘 때 눈도 감을 수 있었다. 집사람이 애들에게 말한다. 너희 아빠 치매기만 보이면 바로 정신병에 넣어야지 잘못하면 다 함께 정신병원 가게 된다고. 담배 끊는다고 하다가 엄청난 금단증상으로 난리 피운 것은 난리 축에도 안 들어간단다. 친구가 입이 돌아간다면서 전화가 왔다. 느긋하게 전화를 받았다. 집사람이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나를 쳐다본다.
“그냥 한 달만 있으면 저절로 낫는다고. 괜히 유난 떨지 말고.”
첫댓글 사회 모든 시스템이 인간 중심, 생명 중심으로 새롭게 구축되어야 함을 일깨워주는, 아주 유머러스하게 잘 표현한 수필 입니다.
의료 분야와 관련해서 작가가 지닌 풍부한 소양을 엿볼 수가 있어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작품입니다. 최고!!!
우리나라의 이익단체들,
정치 경제 공무원사회를
다 포함해서, 의사들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모두가 내로남불이지요. 유당선생도 누구보다
의료쪽으로 내용을 훤히 아실 터이니 말입니다. 앞으로는 시골사는 사람, 중소도시 사는 사람 병들면 서울쪽으로 가야
치료할 수 있다고 마지막
남은 재산 다 쓸어넣고
가난하게 살아야할 처지아닙니까? 우리나라가 잘 살게 되었다고 큰 소리쳐도 권력이나 돈을 쫒는 욕망은
있는 사람들이 더 크니 걱정입니다.
나는 한의사 양의사 타협은
불가하다보고 간호사들과
의사들의 타협도 불가하다보고 병원도 큰 병원의
새끼 병원들이 웬만한 지역에나가서 자리잡아 세력을
확대할 것으로 봅니다.
돈 안되는 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이 생겨야 사회가
선진구조로 가는법인데
이 부분도 아득하고 의사들
숫자를 적정 숫자로 조정하는 일도 늘 시끄러우니...
유당선생께서 정론을
쓰기 시작하니 글에 힘이
붙습니다 그려. 축하합니다.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글이 재미가 있고 정보제공 측면에서도 읽을거리가 좋습니다. 항상 마지막에 반전까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