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에 가면 다산신도시가 있다.
그러나 다산신도시와 다산 정약용의 출생지이자 말년에 여생을 보낸 능내리 마재와는 약간 거리가 있다.
능내 마현은 뒤에 얕은 산이 있고 뒤에는 운길산이 버티고 있으며 과거엔 광주 땅이었고 군소재지였던 남한산성과 가깝고 현재 시청이 있는 경안으로 가려면 강을 건너 더 가면 광지원이고 영남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강을 이용하면 서울도 잠깐이었고 춘천이나 여주 원주가 멀지 않았던 곳이며 지금은 육상교통의 발달로 쇠퇴했다.
양수리에서 만난 강이 넓어져 서울로 접어 드는데 과거엔 여느 강처럼 흘렀었다.
다산 정약용은 마재에 집이 있었고 아버지 정재원은 첫째 부인이 죽고 두번째 부인을 얻는데 정약용은 두번째 부인인 윤씨의 소생이며 정약용이 어릴 때 병사하고 계모인 김씨가 시집을 와 자식들 특히 어린 정약용을 잘 돌봐 주었고 정약용의 형제들은 당대 실력자로 정치에 참여를 하나 천주교 박해로 인해 남도로 유배를 떠나는 데 흑산도로 유배를 간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죽고 그 곳에서 두형제를 남겨두기도 한다.
정약용 역시 18년 유배를 가서 그리고 마재에서 여생을 보내며 많은 저술을 만들었는데 이중에는 당시 발표를 하지 않고 감춰서 전해진 것도 있었다고 한다.
지금처럼 자유로운 국가가 아니고 책의 내용에 따라 당쟁으로 인한 귀양과 죽음이 있던 시기이니 조심해야 했고 초야에 있어도 왕의 명령이 있으면 성은으로 알고 달려가야 하던 시기이기에 선택을 받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니었다.
정약용의 아들 중엔 정학유가 있으며 농가월령가와 관련이 있다.
정약용의 생가는 복원을 한 것이고 집 바로 뒤에 묘소가 있고 조상들의 묘는 원래 충주 금가의 하소라는 곳에 있어 간혹 강을 따라 가거나 육로로 가서 참배를 했다고 한다.
마재마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로 남동향이며 강을 건너면 바로 퇴촌면 분원이며 겨울엔 언 강을 그냥 건넜고 어릴 적 정약용은 외지에서 강을 건너는 외지인들을 통해 다양한 견문을 익혔다고 전해진다.
생가가 있는 마당과 담 넘어 길엔 각종 조형물이 있고 실학박물관도 있어 다양한 실학의 학파와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다.
당시 세계의 정세와 우리나라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중농학파 , 중상학파 그리고 국학파등 다양한 유파들과 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담헌 홍대용, 성호 이 익, 추사 김정희, 연암 박지원 그리고 영조와 정조등 조선후기 왕들에 관한 것도 간단히 정리되어 있다.
비슷한 것들이 안산이나 수원에도 있긴 하지만 실학에 관해서는 더 정리를 잘 해 놓은 것 같다.
강에서 바람도 쐬고 인근 식당에서 시간도 보내면서 한번 방문하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