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10주년 기념 <코리안 드림, 그리고 中國夢>
지난 1월 12일(일) 오후 2시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이하 KCN) 10주년 기념행사가 서울대학교 호암교수회관에서 열렸다.
이날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창립멤버이자 현재 국립부경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중인 예동근 교수의 진행으로 중국동포 장률 감독과의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2000년 <11세>를 첫 작품으로 영화감독으로 활동해 온 장률 감독은 지난 해 12월 12일 다큐영화 <풍경>을 개봉했다. <풍경>은 한국에 나와 생활하는 이방인 외국인노동자의 한국생활 모습과 꿈 이야기를 들려주는 영화로, 한국인이 아닌 중국동포 감독이 바라본 시각이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장률 감독은 한국 영화계는 물론 국제적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을 만큼 인지도가 높고, 또 상업 영화가 아닌 ‘진실’을 담은 영화를 찍는 감독으로 독립영화계에 알려진 인물이다.
재한조선족유학생네트워크 10주년 기념행사를 앞두고 중국동포유학생들은 앞서 <풍경>을 단체 관람하고, 장률감독을 초청해 ‘꿈(夢)’을 주제로 대화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 다큐멘터리 영화 <풍경> 감독 장률에게 듣는다
한국에 와서 꾼 꿈중 가장 기억에 남는 꿈은 무엇입니까?”
한국사회의 일상이 된 풍경 '외국인노동자' … 14명에게 묻고 96분짜리 다큐 영화 찍어
▶예동근: 중국동포 출신 감독이기 때문에 이런 질문 많이 받아보셨을텐데, 영화 <황해>를 어떻게 보았나?
▶장률: “주변에서 자꾸 묻기도 하고 보라 해서 봤는데, 보면 격분할 것이다고 누군가 내게 말했는데, 나는 하나도 격분하지 않았다. 조선족이 다 저렇다 할수 없다. 소통의 과정인 것같다.
(한국 배우)김윤석씨가 직접 찾아와 연변말로 인사를 주고 받았는데, 김윤석의 연변말은 빈틈없다. 정말 열심히 공부한 것같다. 김윤석씨에게 말했다. 악마도 좋지만 소박하고 좋은 이미지 개릭터로 연기도 함께 해보자 했다.“
영화 <황해> 나홍진 감독이 2010년 12월 개봉한 스릴러 영화(156분)이다. 하정우, 김윤석이 조선족 배역으로 출연한다. 연길에서 택시운전사로 구질구질하게 생활하는 구남(하정우 역)은 6개월전 한국에 간 아내가 소식을 끊자 어떻게 해서든지는 한국에 가서 아내를 찾고자 한다. 그때 조선족 깡패 살인청부업자 면가(김윤석 역)으로부터 한국에 갈 돈을 받고 한국에 오게 되는데, 일이 꼬여 그만 구남은 한국경찰과 한국 조직폭력배, 그리고 면가로부터 쫓기는 신세가 된다. 누가 먼저 구남을 잡느냐는 상황속에서 한국조직폭력집단과 면가를 대장으로 한 조선족조직폭력배 사이에 무자비한 격투가 벌어지는 장면에서, 나홍진 감독은 조선족 깡패두목으로 내세운 김윤택을 칼과 도끼를 무자비하게 휘두르는 악역으로 묘사했다. 이 영화는 개봉되자 마자 조선족동포들은 “영화가 조선족을 지나치게 무자비하고 잔인한 이미지로 그렸다”며 항의가 빗발쳤다.
아마 한국인이나 중국동포들은 장률 감독에게 같은 감독 입장에서 한국인 감독이 만든 영화 <황해>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 했던 것이다. 장률 감독은 “영화감독은 다른 감독이 만든 영화를 잘 보지 않으려고 하는 습성이 있는데, 나 자신도 그렇다면서, 그래도 주위에서 하두 묻고 그러기에 보게 되었다”면서 “영화를 보고 별로 느낀 게 없다”는 입장을 밝히고 질문자의 질문에 답변을 준 것이다.
▶예동근: 이번에 개봉한 영화 <풍경>을 보았는데,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찍게 되었나?
▶장률: “2012년 겨울 전주영화제측에서 찾아왔다. 이방인을 주제로 한 삼인삼색전을 준비하는데, 나보고 참여해달라는 제안을 해온 것이다. 그때 내 마음에 늘 떠오른 풍경이 있었다.
1999년 처음 한국에 왔다. 그때 내게 비친 한국에 온 외국인은 관광객이었다. 2000년부터 영화 때문에 더 자주 왔는데, 외국사람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관광객이 아니라 힘들게 사는 외국인들...이것이 풍경처럼 보였다.
한국사람들한테 물어봐도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점점 더 많이 보이는 풍경인데 ‘잘 모른다. 낯설음’ 일상의 풍경이 되었는데..낯설게 보이는 것, 관심이 갔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다가가면 자연스러울까.
다큐라는 것은 보통 파고드는 것인데. 파고들면 그 사람들한테서 얼마나 힘들게 하냐
인터뷰를 하는데 굉장히 힘들었다. 불편하지 않은 조건은 무엇인가?
“꿈 중에서 인상적인 꿈은 무엇인가?” 물었더니 이런 원칙을 삼아 이야기하였더니 거부감이 없었다.
다큐를 하면서 공부했다면, 소통의 방식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주노동자의 꿈을 풍경으로 보게 되니까 소통이 쉬어졌다. 그것이 <풍경>을 찍게 되었다.
▶예동근: 감독님은 “누구나 다 영화감독이 될 수 있다”는 명언을 남기셨는데, 정말 누구나 다 영화감독이 될 수 있나?
▶장률: “누구라도 하면 된다. 전문학교 나오지 않은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감독을 한다. 기술적인 공부는 해야만 한다. 영화기술은 석달이면 다 배운다. 실제 영화를 찍어보니 그렇다. 묵직한 시간, 영화를 찍으면서, 묵직한 생각을 해보게 된다. "
1962년 생이고 연변대학교 중어문화과를 졸업한 장률감독은 원래 소설가였다. 그런데 그가 영화감독이 된 것은 영화 찍던 친구랑 술마시고 싸우다가 홧김에 영화는 아무나 찍을수 있다라고 말을 던진 것이 원인이 되었다. 결국 말을 지키기 위해 단편 <11세>(2000)를 찍었는데 그만 베니스 영화제 단편 부문에 초청받아 호평을 들었다. 이에 자신감이 붙었는지 내처 같은 소설가 출신 감독인 이창동의 지지에 힘입어 디지털 카메라로 데뷔작 <당시>(2003)를 찍고 로카르노 영화제에 가게 되면서 감독업을 시작하게 됐다.
장률감독은 주로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다. 다큐멘터리란 허구가 아닌 사실적 내용을 찍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든 것을 말한다.
<당시>(2003)는 방과 복도, 엘리베이터 안에 갇혀 사는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자유를 갈망하는 절절함을 보여주었다. 제목인 ‘당시’는 휘황찬란했던 당나라 시대에 유독 시의 형식에만은 엄격했던 것을 빗댄 은유였다. 제57회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 <경계>(2007)의 원제 ‘히야쯔가르’(hyazgar)는 사막과 초원의 경계란 뜻으로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하고 부유하는 삶을 빗대었다. 중국과 한국의 두 도시를 배경으로 한 연작 <중경>(2008)과 <이리>(2008)는 영화의 배경이 되는 지명을 그대로 제목으로 사용해 도시에 섞이지 못하는 인물들의 모습을 상징했다. <두만강>(2009) 역시 두만강을 경계로 한 조선족과 탈북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예동근:감독님은 10년간 백수생활을 한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지내셨는지..
▶장률: “잠시 쉬고싶다는 것이 10년간이나 쉬게 되었다. 그래도 다양한 활동을 하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그리운 시간이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에 예민하고 시간과 같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영화를 시작하니까 시간과 떠나 있는 것같다. 영화를 찍으면 공간부터 시작한다. 썰렁한 곳에 가면 감정이 나온다. 썰렁함...어릴적 성장 과정과도 연계 있는 듯하다.
장률 감독은 독특한 면이 있다. 기자도 장률감독의 영화를 다 보지는 않았지만, 2012년 12월 재외동포영화제에서 상영한 <두만강>을 보고 장률감독과의 대화의 시간도 가진 바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 관람객은 적었다. 썰렁함이 배겨 있었다. 그때 장률감독은 “재미없는 영화를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리고 “무슨 영화를 이렇게 재미없게 찍냐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고 장 감독은 허심탄회하게 말했다. 그래도 장감독은 스타일을 바꾸지 않고,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진실을 말해주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어왔던 것이다.
이번 조선족유학생들과의 대화시간에는 “상업영화도 좀 생각해 봐야겠다”는 말로 웃음을 끌어내기도 하였다. 장률 감독은 그의 영화속에 흐르는 썰렁함을 이렇게 해석해준다.
“처음부터 썰렁한 곳이 아니라 변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예동근: 서울에서 찍고 싶은 곳이 있다면 어디서?
▶장률: “그런 곳을 서울에서 찾는다면, 아마 충무로 인쇄소...디지털시대, 종이신문, 인쇄소리들, 어느 때 가면 그 소리마저 없어지지 않는가?
정리=김경록 기자
■ 청중과의 질의문답에서
30분동안 진행된 예동근 교수의 질문과 답변시간에 이어, 조선족유학생들의 질문에 답변을 주는 시간을 가졌다.
질문1: 풍경 마지막 부분..자전거가 나오는데, 이 장면의 의미는?
장률: “이 장면을 보고 누군가 공포영화 찍어도 잘 찍을 것같다고 말하는데(웃음) 베트남 청년이 공장에 있었다. 공장은 일하는 곳이지 사람이 잠을 자고 밥을 먹는 곳과 거리가 먼데, 그 공장 구석에 어린이 세발 자전거가 있었다. 이 생각이 계속 떠올라서 2. 3일 후에 다시 가서 자전거를 혼자 움직이게 해놓고 그것을 찍었다.
질문2: 이주노동자 가족, 썰렁한 것을 좋아하신다고 하였는데, 번창한 곳이 인기척 없는 곳으로 된 공간을 의미하는가?
장률: “사람이 따나고 기억이 없어진다. 썰렁한 곳에 가서 그 기억을 되찾는다. 우리 생활의 많은 문제는 기억이 끊어진다는 것에서 생긴다. 소중한 기억을 계속 끄집어 내는 것이 영화감독의 역할이 아닌가?
질문3: 망종, 두만강, 풍경...장률감독님은 사회적 약자, 소극적인 자, 이런 자에게 희망을 주는 듯한 마무리...영화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장률: “너무 절망스럽게 영화를 찍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 현실에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은데,..그런데 회피, 무관심..그래서 사회적 약자가 생긴다.
희망을 준다. 절대 그렇지 않다. 절망도 아니다. 적어도 더 나쁘게 되지 말자 하는 것이 영화의 정서이다. 다음 작품은 좀더 밝아지지 않겠는가? ...사랑.
@동포세계신문(友好网報) 제309호 2014년 1월 27일 발행 동포세계신문 제309호 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