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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슈아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니이다.' (요한복음17장3절 말씀)
샬롬. 우리 구주 예슈아 그리스도안으로 있는 진리와 믿음에서 난 새 생명으로 한 지체된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우리가 함께하여 한 주(主)안 으로 살아있는 유다형제의 손을 빌어 말세지말을 살고있는 우리에게 경계로 주신 주님의 편지를 대하고 있습니다.
※ 유다서 22절 말씀입니다.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 καὶ 》οὓς μὲν ἐλεεῖτε διακρινομένο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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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시간은 καὶ [kaí] 카이 로 그 뜻은 ''그리고'' ''또'' '"~에" '더하여''로, 우리가 그간 함께 하였던, 21절의 "그리스도의 긍휼에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함께 첨가하여 더 가질 것을 권합니다.
※ 이 시간은 그 여덟번째 단어로 헬라어 διά [dia] 디아 로 그 뜻은 '~을 통하여' '모든 곳을 거쳐가다' 입니다.
※ 오늘 주신 단어도 오래전에 함께 아주 일부분('~통과하여' 성령행전) 한시간을 살핀바이나,
오늘 시간은 "모든 곳을 거쳐가다, 마12:43, 눅11:24, 행9:32" 뜻 부분 말씀을 함께 살펴 지나시기로 하겠습니다.
※ 세가지 주제관주 말씀부문을 잘 살피니 베드로전서 5:8~9절의 말씀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니라' 》(벧전 5:8~9)
※ 지난시간까지 벧전5:8절의 대략을 살폈고 오늘 시간부터는 벧전5:9절 말씀과 뜻 관주들을 함께 살피시기로 하겠습니다.
● 9절 말씀은 배고파 우는 사자처럼 삼킬자를 찾는 마귀(8절)를 대적 하여 이기는 방법으로,
9절 상반절에《 믿음을 굳게 하여 》대적하라 입니다. 곧 믿음을 굳게하는 방법과 인내《 영생에 이르기 까지 》가 되겠습니다.
※※ 오늘은 그 여섯번째단어로 헬라어 γλῶσσα, ης, ἡ [glōssa] 글로사 로 그 뜻은 '혀' '눅16:24' '나누어진 불꽃' 입니다.
※ 오늘 시간도 뜻관주로 주신 누가복음 말씀절 부문을 함께 살피시면,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눅 16:24) 입니다.
※ 오늘 말씀은 종교지도자분(Religion player)들 께서 피하고 싶은,
어떤 비유가 아닌 인생과 그 나중의 실재(내세)를 주께서 말씀으로 조명하여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 말씀 본문(눅16:19~31) 은 성경전체에서 가장 엄숙한 단락 가운데 한 곳으로,
말씀은 단순한 비유가 아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입게되는 것에 관한 가장 큰 증거중 한가지로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의 내세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경고의 말씀 입니다.
일부 종교기독교의 성경학자들이 본문을 여타 비유처럼 가볍게 취급함으로서,
그 말씀가운데 담긴 엄중한 사실을 슬그머니 지나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주의 가르침 말씀은 있는(실재하는) 사실의 증거 입니다.
※ 주께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종교건축가)들에게,
“너희가 어떻게 지옥(γέεννα, ης, ἡ 게헨나)의 판결을 피하겠느냐? ”(마23:33)라고 질문하시고,
멸망하여 가는 자들로 인하여 슬퍼하셨음을 우리가 보았습니다(눅19:41).
그들(지옥 음부에 해당하는 자 들)이 당할 고통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그 형벌이 더 훨씬 강력할 것을 아시는 주께서 오죽하면 자신이 그 영광의 보좌를 떠나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오셨을까?
그러므로 그의“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아들을 믿지 아니하는 자들 에게는 생명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음을 증거하십니다(요3:36),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더라" (눅16:19)
주께서 한 부자에 대하여 이름을 밝히지 아니한 채 그의 호화롭게 사는 삶 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호화로이”는 헬라어 “λαμπρῶς [람프로스]”인데,
“소리지르다”를 뜻하는 "κράζω [크라조]”에서 유래한 것으로 “화려하게, 찬란하게, 훌륭하게, 굉장하게”을 뜻하며,
우리말 사전에는(모습이나 생활이)사치스럽고 화려하게 생활 한다는 뜻입니다.
※ 말씀가운데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자색(비로드비단) 옷은 “왕” 같은 대우를 받는 삶을 살았고, “고운 베옷을 입었다”는 것은 자신의 의로운 품행을 과시하는 표현으로,
그 사회의 사람들로부터 존경받는 삶을 추구하였음을 말합니다.
말씀가운데서는 '그가 자기의 삶을 허랑 방탕하게 살았다고 말씀하시지 아니하셨고 불의를 행하였다는 말씀도 없습니다.
또한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거나 적개심을 가졌거나 반대 하였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는 우리사회 일반인들중 부유층에 사는 사람들의 삶처럼 그저 아무 근심 걱정 없이 세상에서 안락한 삶을 호화롭게 희구하며 살았던 것으로 말씀에서 명시주십니다.
"그런데 나사로라 이름 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그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눅16:20)
그런데 그 부자의 호화롭게 사는 집 대문에는 나사로(Λάζαρος, ου, ὁ)라 이름 하는 한 거지가 헌데 투성이로 버려진 채 있었음을 말씀 합니다.
'나사로'는 히브리어 엘르아살(אֶלְעָזָר 엘'아자르', '하나님의 도움만을 바라다'뜻)의 헬라어식 이름입니다.
“거지”는 헬라어 "πτωχός, ἡ, όν [프토코스] 로 이 말은“웅크리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구걸하는, 의지하고 사는, 불쌍한, 가련한, 하찮은, 빈약한, 무력한, 거지(얻어먹고 사는)”를 말합니다.
이는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알고자 하나 그런 여러 여건들이 부족(하루 하루의 생존문제등)하여 영적으로 가난(약하고 천하다)함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헌데”는 헬라어 “ἕλκοω 헬쿠”인데“상처, 종기”을 뜻하는, “ἕλκος, ους, τό 헬코스”에서 유래한 것으로“궤양을 일으키다, 상처로 고생을 하다”을 뜻하는데,
나사로는 중한 병을 앓고 있으면서 그 집문앞에서 구걸을 하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그 부자는 자신의 호화로움을 누리는 것 외에는 그의 주위 사람들에게는 별 관심도 긍휼 함도 없었음을 말씀합니다.
그는 그의 집 대문에서 구걸하며 죽어가는 나사로에게 제공한 것은 무관심과 냉대였음을 말씀합니다.
※ 율법에는“네 형제가 가난하게 되어 빈손으로 네 곁에 있거든 너는 그를 도와 거류민(손님)이나 동거인(식구)처럼 너와 함께 생활하게 하라”(레25:35)고 하셨는데,
그 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알려고 하지 않고 외면 하였음을 말합니다.
"그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눅16:21)
거지 나사로는 그 부자의 집에서 먹다가 버린 음식물 찌꺼기를 주어 배를 채우려고 하였지만 그것도 여의치 아니했는데, 그것(부스러기들)을 개들이 먼저 와서 그것을 먹어 버리고 심지어 나사로가 상처로 말미암아 고통 하는 헌데의 상처(피)를 개들이 핥았음을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친절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나사로는 그것을 핥는 개를 쫓아버릴 기운조차 없음을 말합니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눅16:22)
본절에서 부터는 거지 나사로와, 호화롭게 살던 부자의 죽음을 대조시켜 사람의 죽은 후에는 어떻게 되는가를 명명백백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은 비유가 아니고. 실재로 존재하는 사후의 일을 보여지는 그림처럼 말씀주시고 있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으매 하늘에서 천사들이 내려와 나사로는 그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습니다.
아브라함의 “품”은 헬라어로“κόλπος, ου, ὁ 콜포스”인데, “품, 가슴, (많은 배들을 안전하게 품는)항만”을 뜻합니다.
사전적 의미로는, 어떤자의 “품”에 안기는 것으로서의 가슴. 또는 따뜻하게 감싸 주거나 보호해 주는 환경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또한 이 말은 가장 가까이서 따뜻하고 정다운 교제(사귐)를 함께 누리는 것을 의미 합니다.
즉 아브라함의 품이란 아브라함이 있는 장소(낙원)에서 그들(항만의 여러 배들처럼 여럿들)과 함께 따뜻한 사랑의 사귐ㆍ나눔을 말한다 하겠습니다.
부자는 천사의 손에 받들려 낙원에 이른 나사로와는 대조적으로 그가 죽은 자로의 장사를 지냈다고 말씀을 주시고 있습니다.
물론 세상에서는 그는 죽었을 때에 그의 가족과 친척 그리고 친구들의 슬픔 속에서 안타까운 이별을 하며 호화로운 부잣집 장례를 지냈겠지만 내세에서 그의 영과 혼을 영접하는 자를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눅16:23)
그(부자)를 맞이한 곳은 아브라함의 품(낙원)이 아니라 고통 받는“음부”라고 합니다.
음부는 헬라어 "ᾅδης, ου, ὁ [하데스] 로 지하세계 즉 분리된 영혼의 거처를 말하는 히브리어 "שְׁאוֹל [스올] '지옥'"이란 구약의 단어를 헬라어로 옮긴것이랍니다.
음부는 고통 받는 곳으로 표현되고 있는데 바로 우리가 듣고 여러 모양으로 상상하는 지옥을 말합니다.
육체는 나사로나 부자나 그 시체는 죽어서 똑같이 땅 속에 뭍히어 그 시체는 부패하고 썩어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죽은 사람의 몸(육체)이 아닌 속사람 영과 혼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말씀합니다.
주께서는 그들도 마치 육체를 가진 것처럼 증거 표현을 하십니다.
“그가 지옥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낙원)에 있는 나사로”를 보았음을 말씀하십니다.
이로 볼 때 사람이 죽으면 육체가 아닌 또 다른 몸(혼의 몸)이 남아있고 의식이 살아 있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 대학병원등 상급의료기관 중환자실 의료 종사자께서 죽은것 같으나, 다 듣고있다는 말씀들을 하심이,
죽었다가 수일 후 깨어난 사람들의 여러 증언들을 듣고이겠습니다)
부자(부함만을 좇는 자)와 나사로(종교mammon가치인, 현실에 뒤쳐진 낙오자)의 운명이 이세상과 내세가 완전히 뒤 바뀌었습니다.
※ 오늘 시간은 여기까지 하고 내일시간 부자와 나사로의 말씀부문을 더하여 함께 살피시겠습니다.
할렐루야! 하나님께 다함께 영광을! 샬롬
첫댓글 아멘
아멘.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