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3일 연중 제4주간 (토) 복음 묵상 (마르 6,30-34) (이근상 신부)
사도들이 예수님께 모여 와, 자기들이 한 일과 가르친 것을 다 보고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는 따로 외딴곳으로 가서 좀 쉬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오고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음식을 먹을 겨를조차 없었던 것이다.(마르6,30-31)
쉬다에 해당하는 말이 몇 가지가 있는데 오늘 복음은 '아나파우오'를 쓴다. 파우오가 영어 pause에 해당하는 쉰다는 뜻인데, 아나ana는 '아주 완전히'라는 강조 어미다. 그러니까 이 쉼은 일하다가 너무 힘드니가 그냥 잠시 숨을 고르는 느낌보다는 뭔가 잠깐 멈추어선다는 의미가 강한 말이다. 더군다나 음식 먹을 겨를조차 없었다고 하니 쉼의 강제성보다는 아주 많이 분주한 사태가 더 강조되니, 마치 분주하고 바쁜 우리 시대의 쉼처럼 여겨지기 쉽다.
그러나 여기서 쉼은 잠깐 멈춤이다. 이건 달려가던 관성에 제동을 거는 일. 외딴 곳으로 멋스럽게 번역하였지만 사람들의 환호와 자신의 강렬한 성취욕 따위로부터 거리를 두는 곳을 의미한다. 그렇게 한껏 달뜬 질주의 본능에 멈춤의 강력한 명령을 보내신 셈이다.
멈춤. 잘 나갈 때 멈추기 참 힘들다. 오히려 뭔가 강제로 브레이크가 걸렸을 때, 그제야 뭔가를 돌아본다고 하기 쉬운데, 그 때의 돌아봄은 그야말로 브레이크가 아니라 질주의 본능에 더 충실한, 한마디로 질주의 또 다른 이름일 경우가 태반. 멈추어서 더 잘 달릴 것을 궁리하는 셈이니.
그러나 여기 복음 속 멈춤은 외딴 곳에서의 멈춤이다. 뭔가 쌓아가기 위한 쉼이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놓고 다시 시작하기 위한 멈춤. 다시 파견된 원천으로 돌아가는 멈춤.
외딴 곳의 쉼이란 물 들어올 때 배를 저어야 한다는 세상의 절절한 지혜를 배반하는 행위다. 사실 멈추어야 할 때란 잘나가는 시절의 매일 밤, 끔찍한 실패의 시절의 매일 밤이다.
출처: https://www.facebook.com/simonksyi/posts/pfbid0voDN6GmHmeGQDNmH7UrT11AJ72pfeaYaBTU5aKP8aLzgnGQvUGn1zcDJmZrrvm8N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