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뱃길 따라 걸으면 ‘연두와 초록’ 내음에 빠진다 봄날의 산책 코스 매화동산~시천나루 선착장~ 정서진 노을 한동안 계절을 알리던 꽃 소식들로 호들갑스러웠다. 진달래도 개나리도 벚꽃의 눈부심도 끝을 맺었고 모든 것이 시즌 막바지인 양 곧바로 여름 이야기를 시작할 모양새다. 봄날이 서서히 가고 있다. 이젠 봄꽃을 떨어뜨린 나무마다 연둣빛 싱그런 나뭇잎이 초여름을 달리는 햇살에 투명하게 빛나고 있다.
▲ 경인아라뱃길 매화동산과 시천나루 주변도 바야흐로 초여름의 연두와 초록의 중간 색감이 투명한 계절을 빛내고 있다. 매화동산의 고요한 기품 속에서 힐링 매화 역시 이미 뒷모습을 보인지 한참 되었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여운을 즐길 수 있도록 고즈넉한 매화동산이 전통적인 멋을 품고 있었다. 인천 서구의 시천동에 위치한 매화동산은 서울에서 1시간 정도의 거리에 위치한다. 수도권 어디에서나 쉽게 길이 이어져서 인천 아라뱃길 검암역 근처의 아라뱃길을 따라 시천나루까지 쭉 달려 다다를 수 있다.
▲ 봄바람에 매화는 훌훌 날리고 한적한 매화동산은 고요한 기품을 즐겨볼 만하다. 한동안 매화꽃이 만개해서 은은한 매화 향기 속에서 봄기운을 누리며 힐링하던 매화동산이었다. 매화는 거의 다 떨어지고 그 여운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매화동산에서 천천히 시간을 보내는 모습들이다. 매화동산 도로를 따라 달리다가 보면 전통적인 담장과 한옥으로 들어가는 협문이 보여서 누구라도 잠깐 차를 멈추지 않을 수 없다.
▲ 매화의 열매인 매실 원액의 맛이 깊어지고 있는 옹기원이 볕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매화동산은 이름 그대로 매화나무가 가득하다. 40년 이상의 다양한 매화나무 종류가 있었고, 전통 공간답게 소나무와 대나무도 자란다. 매화동산 후원의 옹기원에는 옹기종기 장독대가 조성되어 있는데 안내글에 따르면 매화열매인 매실을 저장 관리 하는 곳이다. 매화나무 생산의 의미를 담았다는 얘기다.
▲ 매화꽃 거리를 걷다 보면 주변의 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검여(劍如) 유희강 선생의 생가마을이라는 널찍한 표지석이 꽃마루 옆으로 세워졌다. 산책하기 좋도록 길게 이어진 매화꽃 거리를 걷다 보면 주변의 볼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무엇보다도 검여(劍如) 유희강 선생의 생가마을이라는 널찍한 표지석이 꽃마루 옆으로 세워졌다. 기록에 따르면 검여 유희강 선생은 인천시 서구 시천동에서 태어난 서예가로 추사 김정희 이후 최고의 서예가로 꼽힌다. 나중엔 오른손이 마비된 병고 속에서도 불굴의 자세로 왼손으로 글씨를 썼다고 전한다. 인천은 이런 훌륭한 서예가를 배출했고 그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고 계승하기 위한 기념 공간으로 매화동산에 표지석을 세웠다. 표지석 옆으로 매화와 함께 쓰인 그분의 필체를 들여다보았다. 탐매도(探梅圖) 한평생 몇 번의 매화 핀 경치도 보기 어려워/ 내가 산에 들어가 그리려 하니 매화가 이미 피었구나/ 무성한 꽃망울 하늘을 향해 반쯤 기울고/ 뺨에 부는 산들바람 동쪽에서 불어온 듯/ 마을 앞 만 그루 나무는 천 그루로 그리고 / 오늘 밤 술잔은 다시 두 잔일세/ 그대 있어 맑은 흥취 함께 하니/ 짚신에 푸른 이끼 묻히지 않으려네 - 계축년 동절에 검여가 왼손으로 씀
▲ 봄이나 여름 맞이나 막상 길을 나서면 어디든 계절을 듬뿍 전하는 자연이 있다. 꽃마루에는 봄놀이를 하는 여행자들이 정담을 나누고 군데군데의 시비(詩碑)는 매화동산의 정취를 더한다. 봄이면 꽃들이 다투어 피어나는 마을이어서 이름조차 꽃뫼였다는 그 자리에 세워진 정자 꽃마루가 매화마을의 중심을 든든히 지킨다. 꽃철이 지난 후의 분위기 역시 한층 기품 있던 매화동산이었다.
▲ 경인아라뱃길 시천나루는 아라벚꽃길 40리길이 있는데 총연장 14.5km으로 라이딩과 트레킹을 즐기는 이들이 연일 모여드는 곳이다. 시천나루 매화동산에서 바로 이어지는 시천나루는 자동차로는 1~2분이고 걸어서는 10여분 정도의 거리다. 아라뱃길 따라 걷거나 자전거로 달리다가 잠깐 쉬었다 가기 좋은 곳이다. 기왕 쉬는 김에 꽃이 피었을 때는 꽃길 따라 산책하고 운하를 옆으로 두고 지날 때는 뱃길 따라 흐르는 물을 즐기는 시간이면 된다. 우선 시천교가 머리 위로 설치되어 압도한다. 그 다리 아래로 시천나루 선착장이 있는데 김포 왕복이나 편도 안내와 유람선 상품 안내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자전거 대여소도 있는데 이 모든 것은 언제나 미리 확인해 보는 것이 필수다. 그리고 시천교 아래 푸른색감의 조형물이 상징적인 포인트가 되는 듯 이곳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다. 물론 라이딩 행렬은 여전히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 자전거를 달리다가 쉬고 있는 외국인들도 눈에 띈다. 추상화가 몬드리안의 예술을 쉼터에 적용하여 독특함을 전한다. 시천나루에 드니 시천문화광장이라는 곳에 청춘들이 모여 앉아 그들만의 모임을 하고 있는 듯했다. 늘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날은 젊음 충만의 광장이다. 광장 옆으로 그네 시설이 있었는데 선과 면과 색상이 눈에 익은 듯하다. 몬드리안을 모티브로 해서 휴식공간으로 조성한 그네였다. 점·선·면을 이용한 추상화가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그의 작품이 이곳에선 잠시 라이딩을 멈추고 여유롭게 흔들거리며 쉬는 편안한 그네 디자인이 되었다.
▲ 아래뱃길 포토존을 지나 물길따라 저만치 보이는 목상교를 향해 달리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이들이 줄지어 고리를 잇는 모습들을 보게되는 곳이다. 나루 광장 저편으로는 경인아라뱃길이라는 상징적 관문을 시작으로 각종 물놀이 시설이나 바닥분수가 설치되어 있다. 머잖아 물놀이장이 개장하면 아이들이 노는 신나는 모습을 볼 수 있을 듯하다. 지금은 새우깡으로 갈매기를 유혹하는 젊은 청춘들이 꽁냥 거리고 그것을 구경하는 나그네들은 나루터 계단에 앉아 강바람 맞으며 곧 내려올 노을을 기다리고 있다. 아라뱃길의 일몰시간에 맞추어 바라보는 서구의 석양빛은 로맨틱하다고 하니 기회가 되면 노을 무렵을 기대해 볼만하다.
▲ 정서진의 노을종에 노을이 내린다. 은은함으로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정서진의 노을로 마무리 하다. 노을하면 인천에서 당연히 정서진을 빠뜨릴 수 없다. 아라뱃길을 달리고 돌아오는 길에 일몰 명소 정서진에서 멈춰 서서 가슴 떨리는 노을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하는 일은 얼마나 뿌듯한 일일지. 정서진(正西津)은 그 옛날 한양의 광화문을 중심으로 정확하게 서쪽에 위치한 곳을 일컬었다. 참고로 광화문 정동 쪽의 나루터마을인 강릉 정동진리 바닷가의 정동진(正東津)이었고 정남진(正南津)은 서울의 정남쪽인 전남 장흥군에 위치해 있다.
▲ 귀가길의 발걸음을 멈추고 멋진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로움에 감사하는 하루다. 이곳이 아라뱃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자전거를 타고 국토종단의 출발점이기도 해서 자전거를 탄 사람들을 유난히 많이 보게 되는 곳이다. 정서진 노을 벽에는 노을종이 은은하게 빛나는 시간이다. 그 양 옆으로는 음계 따라 그려진 피아노 건반 밟기 놀이를 하며 노을을 기다린다. 노을종 앞으로 물 빠진 갯벌이 펼쳐져 있는데 저 멀리 영종 대교 쪽으로부터 서서히 일몰이 번진다. 글·사진 이현숙 i-View 객원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