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여기서 누누이 얘기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그 말은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이미 수천 년 전에 인도의 어느 왕이 백성을 위해 만든 말입니다.
백성들에게 최고의 교훈을 주기 위해 지혜로운 자들 수백 명을 모아 만든 백성에게 주는 최고의 명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세상이니 그 말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25만원. 누군가에겐 가족의 한 달 반찬 값, 누군가에겐 특급 호텔 케이크 값이다.
통근자의 월 주유비일 수도, 골프장 4시간 캐디피로 날아갈 수도 있다. 또는 전단 아르바이트로 번 아이 학원비, 한우 오마카세에서 법카 긁는 기분, 나라 위해 젊은 목숨 걸었던 참전 용사의 명예 수당, 코인 투자로 순식간에 잃어도 눈 깜짝 않는 돈일 수도.
25만원이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을 휘젓고 있다. 지난 4·10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전 국민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공약을 띄워 승리한 데 이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오는 30일 제22대 국회 개원 즉시 ‘1호 당론 법안’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여당은 결사반대다. 재정 건전성 악화, 물가 상승, 사실상 매표 행위, 입법부의 예산 편성은 위헌.... 구구절절 옳다.
그러나 뛰어봤자 25만원 손바닥 안이다. 구도는 ‘25만원 주겠다는 사람’과 ‘25만원 못 주겠다는 사람’으로 짜였다. 받아도 큰일 날 것 같지 않은 돈, 효용은 작지만 확고한 돈, 나만 못 받으면 빈정 상할 미묘한 액수의 돈이 여론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최근 서울의 한 은퇴자 등산모임에선 이 ‘25만원’ 때문에 분위기가 싸해졌다고 한다. 60대 참석자 A가 “이렇게 현금 퍼주기 포퓰리즘에 길들면 나랏빚이 얼마나 늘고 세금은 또 얼마나 늘겠느냐. 결국 장님 제 닭 잡아먹는 꼴인데”라고 말을 꺼냈다.
다른 회원들이 맞장구를 쳤다. “코로나 때야 워낙 경제가 안 돌아갔다지만, 지금 같은 고물가·고금리에 13조원을 또 뿌린다는 게 이해 안 된다” “간신히 카페 차렸는데 돈 더 풀리면 인건비와 임차료가 더 올라 폐업해야 할지도 모른다” “옛날 ‘고무신·막걸리 선거’처럼 민주당 찍은 사례금 주겠다는 거 아니냐, 세금이 이재명 쌈짓돈이냐”….
듣고 있던 50대 B가 “마음 편히 쓸 수 있는 돈이 생기면 경제가 돌고 소득 재분배 효과도 있다”며 “정부 예산이 600조원 넘는데 고작 13조 나눠준다고 큰일 나지 않는다. 물가는 이미 윤석열 정부의 경제 실패 탓에 올랐다”고 반박했다.
붉으락푸르락 실랑이가 오가던 중, C 회원이 A 무리를 향해 물었다. “그럼 25만원 나눠줄 때 혼자 안 받으실 거예요? 막상 못 받으면 화나실 텐데.”
이런 격론이 지역별 맘 카페, 직장 블라인드와 부동산 투자자·자영업자 커뮤니티마다 벌어지고 있다.
아무리 ‘여의도 대통령’ 공약이라지만, 민생 지원금 지급이 확정된 줄 착각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코로나 때처럼 이번에도 소득 하위 80%에 지급될 가능성이 크다며 ‘난 25만원 받을 수 있나 알아보기’ ‘민생 지원금 받는 법 여기서 클릭!’ 같은 김칫국 콘텐츠가 쏟아진다.
벌써 결제 플랫폼과 미용 기기 등 지원금 수혜주가 들썩이고, ‘25만원 받기’ 문자를 누르면 되레 25만원을 털어가는 피싱도 활개 친다.
총선 후 25만원을 두고 전국 여론조사를 했다. 찬성 46%, 반대 48%로 팽팽했다. 이 중 자신이 진보라는 응답자는 63%가 찬성했고, 보수는 70%가 반대했다. 소득과 학력, 직업별 의견 차이는 이렇게까지 크게 벌어지지 않았다. 예컨대 25만원을 가장 유용하게 쓸 법한 ‘주부’는 찬성 41%, 반대가 50%였다.
또 모든 연령대에서 반대가 우세했지만, 진보 성향이 강한 40~50대에서만 찬성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민생 지원금’이 25만원이 꼭 필요한 계층을 위한 민생 문제라기보단 정치 이념으로 갈라치기 좋은 이슈라는 얘기다.
코로나 한창때 내수 활성화를 명분으로 재난 지원금이 수차례 지급됐다. 추적했더니 당시 풀린 돈 중 소비로 이어진 건 30%에 불과했다. 민주당이 주장하는 승수(乘數·정부 지출이 수요를 창출, 쓴 돈 이상의 부양 효과를 낸다는 이론)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풀린 돈이 물가를 자극해 2022년 인플레율이 5.1%에 달했다. 당장 손에 쥔 몇 십만 원의 행복은 고착된 고물가로, 고금리 탓에 늘어난 빚으로, 경기 침체로 몇 배의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경제·경영 전문 작가인 최성락 박사는 “전 국민 지원금이 특히 나쁜 건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기 때문”이라고 했다. 1인당 25만원씩 총 13조가 풀리면 물가가 최소 1%는 오르는데, 월급 생활자의 실질 소득은 깎이지만 주식·부동산 등 자산 가격이 급등해 부자들만 웃는다는 것이다. 그는 “양심 있는 학자라면 찬성할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경제 원리를 이해 못하는 이들, 자산 상승이 기대되는 계층 일부는 침묵한다. ‘베네수엘라 꼴 될까’ 걱정하는 애국 시민도 남들 다 받는 돈 나만 못 받으면 섭섭한 게 인지상정. 코로나 지원금 논란 때도 여론조사에선 반대가 30%를 넘었지만, ‘줘도 안 받겠다’는 응답은 20%로 떨어졌다. 실제 수령률은 98%였다고 한다.
이것이 전 국민에게 똑같이 나눠준다는 보편 복지의 함정이다. 이상이 제주대 교수는 “어려운 서민만 지원하자는 선별 복지는 결국 혜택을 받지 못하는 중산층 납세자의 저항이 커 축소되기 십상이다. 반면 보편 복지는 계층을 뛰어넘는 ‘복지 동맹’을 구축해 조세 저항을 낮춰 복지를 늘리기 쉬워진다”고 했다. 보편 복지가 큰 정부를 표방한 좌파 집권을 쉽게 해준다는 얘기다.
따라서 민주당은 25만원이 어찌 되든 이득이다. 만약 정부가 선별·차등 지원으로 일부 수용하면 ‘이재명 작품’이 되고, 무산되면 ‘윤석열이 야박하다’고 몰아갈 수 있는 꽃놀이패란 것이다. 이 대표 지지자들은 “악마의 재능”이라며 열광하고 있다.
특히 이번 25만원은 이재명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부터 대선·총선마다 꺼내 든 ‘기본소득 서사’를 각인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본다. 기본소득은 재산과 소득이 얼마든, 일을 하든 안 하든 정부가 모든 국민에게 똑같이 지급하는 돈이다.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김대중의 남북 평화, 이명박의 청계천처럼 ‘이재명 기본소득’을 상징적 어젠다로 띄우려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년 전부터 이 대표를 지지하는 기본소득 전국 네트워크가 조직돼 군불을 때고 있다. 시중에선 ‘이 대표가 차기 대선 후보가 되면 연 100만~300만원의 기본소득을 공약할 것’이란 말이 돈다.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도 “25만원은 안 돼도 잃을 게 없는 이재명의 훌륭한 프레임”이라며 “자신의 기본소득 주장에 국민이 익숙해지도록 계속 밑자락을 까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무분별한 현금 복지로 물가 상승과 재정 악화가 현실화되면 무책임한 지도자란 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프레임은 세상을 보는 언어·사고 체계의 올가미를 뜻한다. 미국의 진보 언어인지학자 조지 레이코프가 20년 전 민주당원을 교육하기 위해 쓴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소개한 이론이다.
레이코프는 코끼리, 즉 공화당의 프레임을 일단 받아들이면 그걸 아무리 반박해도 상대의 메시지만 강화시킨다면서, “중요한 건 엄정한 진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우리만의 프레임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책을 유시민·조국·손석희 등 진보 인사들이 필독서로 퍼뜨리며 보수를 옭아맬 프레임 짜기에 집중해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 복지 시대를 열어젖힌 ‘무상 급식’이나 ‘보수=친일’ ‘검찰 개혁’ 프레임이 대표적이다. 지난 총선에서도 어려운 정책 설명보단 ‘대파’ ‘디올 백’ 선동이 휩쓸었다.
25만원도 전형적인 프레임 전쟁의 형태를 띠고 있다. 벗어나려고 할수록 빨려드는 블랙홀. 탈출할 방법을 아는 자, 아니 새로운 블랙홀을 만들 용자를 찾아야 할 판이다.>조선일보. 정시행 기자
출처 : 조선일보. 오피니언 아무튼, 주말. '여의도 대통령'의 꽃놀이패? 여론 블랙홀이 된 25만원
유시민·조국·손석희 등 진보 인사들이 언제나 똘똘 뭉쳐 좌파를 위해 움직이는데 안철수, 홍준표, 유시민이니 하는 인사들은 각자도생이나 꿈 꾸고 있으니 어떻게 코끼리가 움직이겠습니까?
대통령을 뽑는 것은 국민이 하지만 국회의원은 지역구민이 뽑는다는 사실을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