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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篇 漢詩-사11部
석주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남쪽으로 고향 성주(星州)에 돌아가는 김 진사(金進士) 주(輳) 를 보내며 병인(幷引)
내가 김군 지원(金君志遠)을 안 지도 10년에 가깝다. 처사(處士) 성씨(成氏)의 집에서 김군을 처음 만났는데, 성씨의 사위 조군 사안(趙君士安)도 좋은 선비이며 김군과 정이 매우 친밀하여 마치 형제 사이와 같았다.
하루는 김군이 군산이우도(群山二友圖)란 그림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이우(二友)는 김군과 사안이고 군산(群山)은 이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곳이다. 그림은 조군이 손수 그린 것이고, 김군과 조군의 제서(題序)가 있었다. 그리고 나에게 한마디 글을 적어 달라고 하였다. 나는 붕우의 도리가 없어진 것을 탄식한 지 오래였는데, 지금에 붕우의 도리를 보았고 게다가 내가 종유(從遊)하는 사람들이었다. 비록 이 그림 속에 참여할 수는 없으나 그 후미(後尾)에 내 이름을 거는 것도 다행이기에 장구(長句)의 시를 읊어 두루마리 말미에 붙였다.
이로부터 만날 때도 있고 헤어질 때도 있었으나 대체로 불과 수십, 백 리 남짓한 거리에 살던 터라 때때로 서로 찾아가서 울적한 회포를 풀 수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군이 세상을 떠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김군마저 남쪽으로 귀향하였다. 아, 선비가 지기(知己)를 어찌 쉽게 얻을 수 있겠는가. 고금의 세월이 이토록 길고 먼데 한 세상에 함께 태어났고, 사해의 면적이 이토록 넓고 큰데 한 나라에 함께 태어났으며, 나라 사람이 이토록 많은데 유독 나와 이 두 사람이 한마디 말로 친교를 맺어 막역한 벗이 되었은즉 그 우의(友誼)의 숙연(宿緣)은 아마도 우연한 것이 아닐 듯하다. 그러나 한 사람은 불행히 일찍 세상을 떠났고 한 사람은 멀리 천 리 밖으로 떠나 백발의 노년까지 함께 사귀려던 나의 약속을 덧없이 무산시키고 말았으니, 이는 인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의 뜻인 것을 어이하리오.
비록 그렇지만 옛일을 생각하고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사람의 정이다. 이에 애오라지 소회(所懷)를 써서 증별(贈別)의 말로 삼는다.
우리 벗님은 세속을 벗어난 선비라 / 吾侯不羈士
그야말로 동남쪽의 훌륭한 인재로세 / 乃是東南美
갖은 고생을 겪으며 병란을 피하여 / 艱關避兵亂
서해 바닷가 지역을 전전하였어라 / 輾轉西海涘
고인의 마음과 용모를 지녔으니 / 爲人古心貌
문장은 그저 여사에 불과할 뿐 / 文藻蓋餘事
기한에 시달려 늘 분주하지만 / 飢寒走不暇
세상의 득실에는 무심하였어라 / 得喪無慍喜
나 또한 뜻이 강직한 사람으로 / 我亦骯髒人
백발이 되도록 저자에 살았는데 / 白首屠沽市
풍진 속에서 서로 만나자마자 / 相逢風塵中
한바탕 웃고는 지기가 되었어라 / 一笑許知己
서로 왕래한 지 팔구 년 동안 / 往還八九載
강호에서 호탕하게 술 취하였지 / 浩蕩江湖醉
오늘 아침에 찾아와 고별하고 / 今晨來告別
천 리 먼 남쪽으로 간다고 하네 / 千里適南紀
성산에는 옛집과 논밭이 있고 / 星山舊田廬
구름 낀 골에 산수도 좋은데 / 雲谷好山水
좋은 명성을 가지고 돌아가니 / 身持令名歸
평소의 뜻을 이뤘다 할 만하네 / 亦足償素志
더구나 사람이 세간에 사는 게 / 況人生世間
마치 물에 뜬 도경과 같아서 / 如泛梗相似
이리저리 가는 것 스스로 모르니 / 縱橫不自覺
만남과 헤어짐은 당연한 이치일세 / 聚散固其理
단지 가련하여라 녹피옹이 / 但憐鹿皮翁
몇 사람을 벗으로 사귀었는데 / 末契得數子
마음의 기약이 그만 어긋났으니 / 心期坐乖張
이내 가슴 누구에게 의지할거나 / 襟抱欲誰倚
평생에 막역한 벗인 조사안은 / 平生趙士安
세상을 떠나 호리로 돌아갔네 / 零落歸蒿里
떠나간 사람은 돌아올 수 없으니 / 逝者不可回
영원토록 길이 만나지 못하도다 / 萬世長已矣
그대마저 이제 결연히 떠나니 / 子又決然去
후일의 만남을 어찌 기약하리오 / 後會焉足持
산천이 아득히 휘감아 도니 / 川原莽回互
서로 보며 눈물만 흘리도다 / 相視各垂淚
이별 앞에 다시금 당부하노니 / 臨歧更贈語
진중하여 가는 길에 조심하고 / 珍重愼行李
북쪽으로 오는 기러기 만나거든 / 如逢北來鴈
부디 안부나 부쳐 주구려 / 願寄平安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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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내가 한가히 살며 하는 일이 없다 보니 나태한 습성이 들어 붕우와 서로 만나는 즐거움마저 끊어 버렸다. 그래서 도연명(陶淵明)의 시를 회심(會心)의 벗으로, 현학금(玄鶴琴)을 지음(知音)의 벗으로, 술을 망형(忘形)의 벗으로 삼았다. 이에 세 수의 시를 지어 이 뜻을 적어 둔다.
예악이 금도에게로 돌아가니 / 禮樂歸金刀
육지가 온통 강이 되었어라 / 平陸渾成江
몇 말의 곡식은 잠시 받은 것 / 斗粟聊爾耳
높은 절개는 굽힐 수가 없었지 / 高節不可降
가을 국화는 속된 물건 아니요 / 秋花非俗物
탁주는 내 단지 가득 담겼어라 / 濁醪盈我缸
평생에 오언시를 특히 잘 지어 / 平生五字句
예스러운 뜻이 극히 순후했지 / 古意極醇庬
나는 지금 백세의 뒤에 태어나서 / 吾今百世下
꿈결에도 노방께 절하고자 하노니 / 夢想拜老龐
마음에 와 닿는 곳 만날 때면 / 每到會心處
청풍이 북창에서 이는 듯하여라 / 淸風生北窓
위는 도연명(陶淵明)의 시권(詩卷)에 적은 것이다.
외로운 오동이 용문에서 자라서 / 孤桐生龍門
곧바로 뻗어 올라 높이 열 길이라 / 直上高十尋
아래로는 깊이 모를 물을 굽어보고 / 下臨不測淵
위에는 애절히 우는 새가 있었지 / 上有哀鳴禽
그 어느 때 그 오동나무를 베어 / 何年斸天骨
이 구중의 거문고를 만들었는가 / 製此丘中琴
한 번 연주하니 귀가 맑아지고 / 一鼓淸人耳
두 번 연주하니 마음이 화평해라 / 再鼓和人心
온 세상에 종자기가 없으니 / 擧世無鍾期
뉘라서 음 밖의 음을 알리오 / 誰知音外音
위는 현학금(玄鶴琴)에 적은 것이다.
세상길은 지극히 험난하니 / 世路極險巇
이내 몸이 어디로 돌아갈꼬 / 吾身安所歸
다행히도 국수재가 있으니 / 幸有麴秀才
그 풍미 나와 어긋나지 않네 / 風味不我違
평생에 술 따르는 늙은 사발 / 平生老瓦盆
백발이 되도록 서로 의지하노라 / 白首相因依
한 잔의 술에 만물을 잊노니 / 一盃遺萬物
어찌 다시 남의 구속을 받으랴 / 寧復爲人鞿
성인에 이르기 어렵지 않음을 / 聖處不難到
술의 덕이 그렇게 할 수 있어라 / 酒德能庶幾
높은 관작도 영화롭지 않거늘 / 未覺軒冕榮
초라한 집 하찮은 줄 어이 알랴 / 豈知蓬蓽微
지극한 맛이 진실로 여기 있으나 / 至味諒斯在
귀중한 줄 아는 이가 드물어라 / 所貴知者稀
이에 독성인에게 말하노니 / 回語獨醒人
취향에는 세상 시비가 없다오 / 醉鄕無是非
위는 국생(麴生)에 대해 적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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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균아행(麕兒行)
노루는 사슴과 비슷한 동물로 / 麕也鹿之徒
쓸개가 희기 때문에 곧잘 놀라는데 / 膽白故善驚
산도 좋아하고 물가도 좋아하니 / 喜山或喜澤
실상은 사슴과 같고 이름만 다르지 / 同實浪異名
깊은 숲 속에서 새끼를 낳으니 / 産子豐林中
새끼가 올망졸망 따라다니다가 / 纍纍相隨行
우연히 나무꾼의 손에 떨어지자 / 偶落樵夫手
길길이 날뛰는 게 얼마나 사나운가 / 跳擲何生獰
털과 뼈가 다 자라지 않았으니 / 毛骨未及壯
아직 잡아먹기에는 부족하구나 / 不足充炰烹
마치 아기처럼 슬피 울부짖으니 / 啼號若嬰兒
인정상 어찌 차마 죽일 수 있으랴 / 殺却豈我情
동복을 시켜 짧은 목책을 세우고 / 催僮樹短柵
가축과 같이 먹여서 길렀더니 / 飼之等養牲
사람만 보면 놀라 어쩔 줄 몰라 / 見人必傽偟
귀는 쫑긋하고 눈동자는 동그랗지 / 豎耳突眼睛
살살 쓰다듬으며 차츰 가까이하자 / 摩挲稍相近
점차로 놀라지 않고 가만 있더니 / 漸覺趨和平
마침내 길이 들어 성질이 순해져 / 終然擾且順
사람 소리에 좋아 어쩔 줄 모르네 / 傾倒喜人聲
그래서 언제나 먹이를 줄 때면 / 每遇當飼時
머리를 치켜들고 먼저 마중 오네 / 昂首先來迎
이는 본래 산야에 살던 동물이라 / 此物本山野
사람과는 함께 살지 않았는데 / 與人不相營
잘 먹여 기르고 길들인 덕분에 / 由其善畜養
습성이 마치 천성처럼 되었구나 / 習性若天成
하물며 우리네 사람과 사람은 / 況乎人與人
원래 한 동포로 태어났음에랴 / 元自同胞生
오랑캐는 비록 인륜을 모르지만 / 夷狄縱異倫
잘 다스려서 교화할 수 있어라 / 亦可就羈纓
소인과 군자의 차이란 것도 / 小人君子間
단지 터럭만 한 사이에 불과하니 / 只隔毫釐爭
애초에 어찌 나와 다르리오 / 初豈與我異
오직 성심으로 대해 주어야 하네 / 遇之當在誠
진실로 환심을 얻을 수 있다면 / 苟能得其懽
원수와 같은 적도 형제가 되고 / 敵讎爲弟兄
담소하는 사이 비위를 거스르면 / 笑談或失意
골육의 사이도 원수로 돌변하지 / 骨肉生五兵
달인은 만물을 똑같이 보아 / 至人齊萬類
사물에 순응하고 다투지 않나니 / 與物無所攖
어찌 군소배들의 작태를 배워 / 豈學群小態
고집을 부리며 마구 싸우리오 / 爭鬪紛硜硜
정녕코 동지들에게 이르노니 / 丁寧告同志
이 시를 그대들이 품평해 보오 - ‘且’가 어떤 본에는 ‘試’로 되어 있다. - / 此詩君且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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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조지세(趙持世) 위한(緯韓) 가 선공감 감역관(繕工監監役官)으로 압도(鴨島)에 갈대 베는 것을 감독하다가 자조(自嘲)한 작품에 차운하다
그대가 한창 장성할 때에는 / 君侯盛壯時
다른 젊은이들 기운이 꺾였건만 / 諸少氣欲盡
어느덧 장대하던 뜻을 굽히니 / 居然屈壯圖
단지 뛰어난 풍모만 남았을 뿐 / 但有毛骨緊
가슴속에 수만 갑병 들었나니 / 胸中萬甲兵
애오라지 필진을 시험해 보았지 / 聊復試筆陣
어제 그대 집의 말먹이꾼이 / 昨日君家騶
날개를 단듯 용맹을 떨치니 / 揷趐爭奮迅
함께 치달리던 사람들은 몇이었던가 / 騰馳凡幾輩
잠깐 사이에 기가 죽고 말았지 / 造次生悔吝
부귀 따위야 말해 무엇 하리오 / 富貴何足論
고금이 하나의 잿더미인 것을 / 今古一灰燼
어찌 쌓은 섶 아래에 깔린 채 / 何如積薪底
백발로 이은하는 것만 하리오 / 白首甘吏隱
보내온 시는 글자는 많지 않으나 / 來詩語不多
맛을 보고야 좋다는 것을 알겠나니 / 味求方覺雋
고인의 경지에 이르기 어찌 어려우랴 / 古人豈難到
세속에서는 어찌하여 헐뜯고 비웃는가 / 世俗那妨哂
땅에 던지자 벌써 금석의 소리가 나니 / 擲地已金聲
그대가 끝내 옥진할 것을 기대하노라 / 期君終玉振
원운(元韻)을 첨부하다
공경히 명을 받고 압도로 나가서 / 祗後出鴨島
가을도 다 간 때 풀베기 감독하네 / 監刈秋已盡
쓸쓸하게 갈대는 이미 시드는데 / 蕭蕭蘆葦晩
매서운 풍상은 많이 내리는구나 / 烈烈風霜緊
이른 아침 일꾼들을 내몰아서 / 侵晨驅役徒
굴비처럼 줄을 지어 걸어가도다 / 魚貫排行陣
예리한 낫은 초승달과 같으니 / 利鎌似新月
한 번 휘두르면 번개처럼 빨라라 / 一揮驚電迅
난초조차도 함께 베어낼 판인데 / 斬伐竝蘭蘅
쑥대 따위야 무에 아까울 것인가 / 蒿荻何曾吝
들판에 어느덧 붉은 흙 드러나고 / 平原忽已赭
강가에는 풀이 흔적도 없어졌네 / 大澤無餘燼
백구와 해오라기는 살던 집을 잃고 / 鷗鷺失舊栖
여우와 토끼는 숨을 곳이 없어라 / 狐兔不復隱
잠깐 사이에 풀이 산처럼 쌓이니 / 斯須積如山
작업을 훌륭히 완수한 듯하여라 / 課功若得雋
그러나 사업이 이 정도에 그치니 / 事業止於斯
이내 공명 스스로 비웃을 뿐일세 / 功名聊自哂
어이하면 군소배를 말끔히 베어 / 安得芟群小
왕의 위엄을 떨치게 할 수 있을꼬 / 致令王靈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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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1권 / 오언고시(五言古詩)
금산 군수(錦山郡守)로 부임하는 이자민(李子敏)을 보내며
그대는 신마처럼 뛰어난 자품이니 / 君侯神駿姿
재갈을 벗어 던진 준마와 같아라 / 如馬脫重銜
한 쌍의 눈동자는 맑게 빛나니 / 雙瞳淸照人
보배 거울을 막 꺼내 놓은 듯 / 寶鏡新開函
가슴속엔 천 권 서책이 들어 / 胸中千卷書
시상(詩想)을 주체할 수가 없어라 / 藻思不可緘
술기운 얼큰해 맘껏 붓을 휘두르면 / 氣酣恣揮洒
필세가 바람 받은 돛단배와 같지 / 筆勢爭風帆
웅장한 시구가 거침없이 쏟아지고 / 雄詞肆滂沛
고심한 구절을 공교히 다듬는다 / 苦語工鐫劖
화벽은 흠과 먼지가 전혀 없지만 / 和璧脫玷翳
초나라 사람들은 많이 비방하였지 / 楚俗多謗讒
우뚝이 높아 낭묘의 그릇인데 / 嶷嶷廊廟器
누가 옥석을 제대로 분간하랴 / 誰辨玉與瑊
일휘출수로 세 차례나 나가니 / 一麾三出守
큰 은택을 널리 펴지 못했지만 / 大惠斂莫咸
시종일관 굳은 절개를 지켰으니 / 終始執苦節
또한 탐욕스러운 자 경계할 만해라 / 亦足勵貪饞
고생하며 애써 음식을 장만하여 / 辛勤備滫瀡
지극한 정성으로 부모 봉양하리 / 奉養出至諴
나라 은혜 갚으려는 평소 마음은 / 平生報國心
위로 신명이 있어 환히 알리라 / 上有神明監
나는 일찍 그대와 면식이 있었으니 / 鄙夫早識面
낮은 잡목이 소나무를 의지하는 듯 / 蒲蘇倚松杉
재명은 비록 군후에 못 미쳤으나 / 才名雖不逮
뜻과 취향은 서로가 같았어라 / 氣味同酸鹹
그래서 강호에서 맘껏 노닐며 / 江湖極遊衍
해학과 담소를 서로 나누었지 / 諧笑相諵諵
술동이에 찰랑이는 술 좋아하고 / 開尊愛灧灧
술잔 바치는 섬섬옥수 가련했어라 / 捧盌憐攕攕
서로 친교 맺은 지 삼십 년 동안 / 結交三十載
군후 덕분에 심지가 평탄했는데 / 心地鉏磛嵒
백발의 노년에 이 어인 이별인고 / 白頭那此別
눈물이 흘러 내 옷깃을 적시누나 / 有淚霑我衫
가을바람 마른 잎새를 흔들고 / 西風振槁葉
새벽 기운은 찬 눈을 만드는데 / 曉氣成寒雪
돌아보며 가시는 길 생각하니 / 眷然懷往路
가파른 운산이 가로막혔어라 / 雲山鬱巉巉
어서 가서 좋은 정사 이루시길 / 行矣樹佳政
사또는 원래 비범한 인물이니 / 使君元不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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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관등행(觀燈行). 우인(友人)에게 보이다.
수미산에 있는 도솔천에서 / 須彌之山兜率天
사월 초파일에 금선이 탄생했는데 / 四月八日生金仙
심인(心印)이 서로 이어 등불을 전하여 / 心心相印比傳燈
해동에 들어온 지 몇 해나 되었는고 / 流入東華知幾年
한양의 부호들은 천하에 으뜸이라 / 漢陽豪富天下雄
등불 밝히고 유희 벌여 유풍을 전하네 / 張燈設戲傳遺風
분분한 큰 저택들 화려한 위풍 다투니 / 紛紛甲第鬪奢華
둘러친 비단 장막 푸른 허공에 잇닿았다 / 羅幃繡幕連靑空
금잔에 술은 담기고 꽃에는 안개 어리며 / 金樽酒重花滿烟
사롱의 은 촛불은 그 빛이 영롱하여라 / 紗籠銀燭光玲瓏
오봉이 춤을 추고 구룡이 꿈틀대며 / 五鳳毰毸九龍騰
십 리에 걸친 단청 대궐에 빛나도다 / 十里金碧輝觚稜
이날에는 금오가 밤 통행을 막지 않아 / 是日金吾不禁夜
풍악 소리 거리 가득 향 연기 어렸어라 / 笙歌滿路香烟凝
청루에는 곳곳마다 주렴을 걷었는데 / 靑樓處處捲珠箔
무리 지어 다니는 이들 호객도 많았건만 / 分曹作隊多豪客
번화하던 시절 얼마던가 인사가 바뀌니 / 繁華幾時人事改
눈앞 가득 창칼에 일월이 어두웠네 / 滿目干戈日月晦
구중궁궐이 홀연 폐허가 되고 말았으니 / 九重城闕忽丘墟
옛날에 함께 놀던 사람 몇이나 남았느뇨 / 疇昔同遊幾人在
타향에 나그네 되어 외로운 등잔 짝하니 / 他鄕作客伴孤燈
꿈속에 고향 찾아 아득히 운해를 넘는다 / 歸夢遙遙越雲海
배고파 누워 있는 게 걸핏하면 열흘 넘어 / 閉門飢臥動經旬
내일이 초파일 명절인지도 알지 못하노라 / 不覺明朝是佳節
어서 벗들과 모여 한 말 술을 마셔야지 / 速宜相就飮一斗
인간 세상 애환일랑 말할 게 못 되느니 / 人世悲歡不堪說
남아는 평생에 득의한 게 가장 좋은 법 / 男兒百年貴得意
무엇 하러 상심하며 백발 재촉하리오 / 何用傷心催白髮
옥충과 금속을 봐도 그저 무료하니 / 玉蟲金粟亦無賴
밤이 오면 꽃 사이로 달이 뜨겠지 / 夜來應有花間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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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취중에 주필(走筆)로 짓다.
하늘은 어쩌면 그리도 푸르며 / 天何蒼蒼
땅은 어쩌면 그리도 아득한가 / 地何茫茫
산악은 어쩌면 그리도 우뚝하며 / 山岳何崒崒
강해는 어쩌면 그리도 드넓은가 / 江海何洋洋
요순은 어쩌면 그리도 높고 컸으며 / 堯舜何巍巍
공맹은 어쩌면 그리도 바빴으며 / 孔孟何遑遑
도척은 어이하여 오래 살았으며 / 盜跖何以壽
안연은 어이하여 일찍 죽었으며 / 顔淵何以殤
영자는 무엇 때문에 어리석었으며 / 甯子何爲愚
기자는 무엇 때문에 미친 척했는가 / 箕子何爲狂
만물은 죄다 이와 같은 법 / 萬物盡如此
이 이치를 뉘라서 알 수 있으랴 / 此理誰能詳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 君不見
초나라의 간신들이 밝은 달빛을 가리니 / 楚國群陰蔽明月
굴원이 돌을 품고서 상강에 빠져 죽은 것을 / 屈原懷石沈江湘
또 보지 못했는가 / 又不見
한나라 조정의 제공들이 연소한 이 싫어하니 / 漢廷諸公惡年少
가의가 조정을 떠나 장사왕의 태부가 된 것을 / 賈誼去傅長沙王
봉황이 천 길을 날아 마침내 어디로 갈 것인가 / 鳳翔千仞竟焉往
백 이랑에 심은 혜초 향기만 속절없이 남았어라 / 蕙樹百畝空餘芳
재주가 있어도 반드시 쓰이는 것 아니고 / 有才不必用
덕이 있어도 반드시 드러나는 것 아닐세 / 有德不必彰
이사가 관문에 들어가자 진나라가 제국이 되었고 / 李斯入關秦乃帝
공명이 초려에서 나갔으나 한나라는 끝내 망했나니 / 孔明出廬漢終亡
세간의 성패는 본래 이와 같은 것이라 / 世間成敗本如此
힘인가 운명인가 누가 이를 주관하는가 / 力耶命耶誰主張
역생은 혀로 칠십 개의 성을 항복받았건만 / 酈生舌下七十城
그 자신은 솥에 삶겨 죽고 말았으며 / 不免身作鼎中烹
회음은 전쟁을 하면 반드시 승리했건만 / 淮陰戰勝攻必取
그 자신은 여자의 손에 죽임을 당했어라 / 不免身死女兒手
지모는 믿을 것이 못 되나니 / 智巧不可恃
예로부터 이와 같은 법이지 / 從古有如此
묻노라 백일의 금전 위가 / 爲問白日金殿上
어찌 청풍의 북창만 하랴 / 何似淸風北窓裏
더구나 장안의 대로에는 위험이 많아 / 況復長安大道多險巇
앞에는 태항이란 산이 있고 / 前有太行山
뒤에는 무협이란 물이 있으니 / 後有巫峽水
도깨비는 숲에서 나오고 뱀은 굴에서 나오며 / 魍魎嘯林蛇出竇
큰 곰은 서쪽에서 울부짖고 범은 동쪽에 앉았네 / 熊羆西咆虎東踞
수경은 사람 그림자 기다리고 / 水鏡俟人影
천루는 사람 말을 기록하며 / 天螻錄人語
그물이 양쪽 어깨에 걸려 있고 / 羉罿罣兩肩
주살이 양쪽 다리를 얽어맸으니 / 矰隿罥雙脚
척촌의 좁은 땅에 겨우 발을 붙여 / 寄立尺寸地
진퇴가 모두 자유롭지 못하지 / 進退俱不得
사람이 이런 곳에서 다니지 말지니 / 人生莫向此間行
부귀는 예로부터 오병을 낳는 법 / 富貴向來生五兵
그러기에 강동의 장계응은 / 所以江東張季鷹
다만 한 잔의 술을 사랑하고 / 但愛一杯酒
천년의 명성을 원치 않았지 / 不願千載名
그대의 교만한 기운과 많은 욕심 없애고 / 去子驕氣與多欲
많은 말과 많은 힘을 쓰지 마시라 / 不用多言與多力
교만하면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 驕則不自保
욕심을 부리면 그칠 줄 모르나니 / 欲則不知止
말은 끝내 소진을 거열(車裂)시키고 / 言終裂蘇秦
힘은 임비를 구제하지 못하지 / 力不救任鄙
채석강 위의 달을 좋아하지 말고 / 莫愛采石江上月
파릉교 위의 눈을 좋아하지 말라 / 莫愛灞陵橋上雪
절름발이 나귀 타고 시구 생각하는 건 냉담하고 / 蹇驢覓句只冷淡
큰 고래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건 믿을 수 없지 / 長鯨登天終怳惚
차라리 무하향에 큰 가죽나무를 심어 놓고 / 不如樹樗無何鄕
그 곁에서 한가히 노닐고 잠자는 편이 나으리 / 游居寢臥于其傍
육합을 방으로 삼고 / 六合爲室
만물을 양식으로 삼고 / 萬物爲糧
성신을 패옥으로 삼고 / 星辰爲佩
운월을 치마로 삼으며 / 雲月爲裳
욕망의 문을 막고 닫아서 / 塞兌閉門
도와 더불어 한가히 노닐며 / 與道翶翔
아래로는 황천을 밟고 / 下跐黃泉
위로는 태황에 오르나니 / 上登太皇
남아가 이러한 경지에 이르면 / 男兒到此
이것이 바로 대휴헐인 것이니 / 卽是大休歇
무엇 하러 세상에서 늘 악착같이 살리오 / 何用在世長蹩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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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시주가(詩酒歌)
두자는 가구를 탐내었고 / 杜子耽佳句
잠생은 순주를 좋아하였지 / 岑生嗜醇酎
그런데 나는 어떤 사람이기에 / 而我何如者
시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는가 / 愛詩兼愛酒
세상 사람은 모두 국량이 좁으니 / 擧世盡趢趗
이 두 분이야 말로 상우할 만해라 / 二老可尙友
인생은 목전의 일에 유쾌한 게 좋나니 / 人生快意貴目前
무엇 하러 덧없는 이름 만세 뒤에 남기랴 / 何用浮名萬歲後
내 붓은 손에서 떠나지 않고 / 我筆不去手
내 잔은 입에서 떠나지 않으니 / 我盃不離口
잠생은 나의 왼쪽에 있고 / 岑生在吾左
두자는 나의 오른쪽에 있어라 / 杜子在吾右
일생에 이와 같고 또 이와 같으니 / 一生如此又如此
지은 시 몇 수이며 마신 술 몇 말인가 / 詩凡幾首酒幾斗
인간 세상 한서가 바뀌는 것 아랑곳 않고 / 不管人間寒暑換
천상에 일월이 달리는 것도 묻지 않노라 / 不問天上日月走
요순을 옳다 여기지 않고 / 不是堯與舜
걸주를 그르다 여기지 않으며 / 不非桀與紂
빈천과 요절을 슬퍼하지 않고 / 不悲貧賤夭
부귀와 장수를 기뻐하지 않노라 / 不喜富貴壽
더러는 산에 오르고 물가에 가고 / 或登山臨水
더러는 꽃을 찾고 버들을 구경하며 / 或訪花隨柳
흥이 일면 취하고 취하면 시 읊나니 / 有興輒醉醉卽吟
만물이 나에게 무슨 상관이 있으랴 / 萬物於我知何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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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나는 광음(光陰). 장난삼아 우인(友人)에게 주다.
나는 광음이여 나는 광음이여 / 飛光飛光
네가 가는 것 누가 다그치느냐 / 爾行誰所迫
아침에 동해에 떠 저녁에 서극에 지니 / 朝出東溟暮西極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늘 그러하구나 / 昨日今日又明日
이와 같고 이와 같아 쉬지 못하니 / 如此如此不得息
세간의 인생도 틈 지나는 망아지 같네 / 人生世間駒過隙
소년 시절 한 번 놓치면 다시 얻기 어려우니 / 少年一失難再得
신후의 이름이 어찌 안전의 즐거움만 하랴 / 不知身後名何似眼前樂
청컨대 정위를 불러 나무와 돌을 물고 와 / 請呼精衛啣木石
사해의 물결을 메워서 평지를 만들고 / 塡四海之波化平陸
신농에 멍에를 메워 밭을 갈게 하고 / 駕神農以耕
후직을 불러 백곡을 파종하게 하여 / 召后稷播百穀
천 년을 봄으로 삼아 벼가 비로소 싹트고 / 千歲爲春禾始生
천 년을 가을로 삼아 벼가 그제야 익거든 / 千歲爲秋禾乃熟
천하 구주의 쇠를 모아 큰 낫을 만들어 / 九州之鐵鑄大鎌
수확하여 곤륜과 갈석보다 높이 쌓아 두고 / 穫而積之高於崑崙碣石
한량없이 많은 술을 빚으면서 / 釀作無限酒
천지의 원기로 누룩을 삼아서 / 元氣以爲麴
한 번에 구구라 팔십일만 섬을 마시고 / 一飮九九八十一萬斛
취하여 홍몽의 들판과 명행의 지역에 눕는다 / 醉臥鴻濛之野溟涬之域
큰아들은 적정자이고 / 大兒赤精子
작은아들은 위숙경이며 / 小兒衛叔卿
상아는 거문고를 타게 하고 / 令湘娥鼓瑟
자진은 생황을 불게 하나니 / 命子晉吹笙
무회와 궤거를 낮추어 초명과 같이 보나니 / 下視無懷几蘧等蜼螟
그 나머지 요 임금 순 임금 우 임금 탕왕 문왕 무왕 주공 공자 따위는 자질구레해 헤아릴 것도 없어라 / 其餘堯舜禹湯文武周孔瑣瑣不足程
때로 자운거를 타고서 / 時乘紫雲車
한가로이 팔굉을 벗어난다 / 容與出八紘
손으로 약목의 가지를 흔들어 / 手撼若木枝
꽃잎이 분분하게 떨어지면 / 花葉紛而零
모쪼록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 要令天下人
이를 주워 먹고 모두 장생하게 하리 / 拾以食之皆長生
거침없이 노래하는 뜻 여기 있으니 / 狂吟志在此
그야말로 너무 크고 허황하지 않은가 / 無乃太瓠落
이미 평생의 벗을 만나 보았으니 / 旣覯百年友
아무튼 노래 한 곡조 부를 수밖에 / 是不是歌一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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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오 도사(吳都司)를 따라 남하(南下)하는 호 수재(胡秀才) 경원(慶元) 를 보내며
내 듣건대 경호수의 연꽃은 / 吾聞鏡湖水荷花
그 향기 십 리까지 풍긴다지 / 十里傳香風
또 듣건대 회계산의 천봉은 / 又聞會稽山千峯
그 그림자 물결 속에 떨어진다지 / 影落波濤中
맑은 정기가 모여 가득 서렸으니 / 淑氣鍾精鬱磅礴
그 지역에 왕왕 인걸이 태어나네 / 其間往往生豪雄
하공은 이미 가고 고택만 남았으며 / 賀公已去餘古宅
난정의 고아한 모임도 적막하여라 / 蘭亭高會亦寂寞
후세에는 그 누가 천고의 뒤를 이을꼬 / 後來何者繼千古
사람들이 말하길 호생이 재주 탁월하다네 / 人道胡生材卓犖
호생은 나이가 젊고 풍골이 남다르며 / 胡生年少風骨殊
의기는 헌걸차서 속진을 벗은 학과 같네 / 意氣昂昂出塵鶴
위로는 부모 계시고 아래로 아우 있는데 / 上有爺孃下有弟
효성과 우애 천성에서 나와 예법에 맞아라 / 孝悌出天無失禮
가난해 힘써 일해도 봉양을 잘할 수 없어 / 力貧不足供珍羞
집 떠나 천 리 멀리 타향에 와서 살았는데 / 去家千里來遠遊
누선장군이 그의 재능을 알아준 벗이라 / 樓船將軍是知己
그를 끌어 막객으로 삼아 계책을 의논했지 / 引爲幕客資良籌
큰 돛배가 구름과 같이 부상을 경략하니 / 大帆如雲略扶桑
평생에 드문 장관은 자장을 능가했어라 / 百年壯觀超子長
지난해 강도성에 와서 머물렀는데 / 去年來住江都城
여염의 아이들도 그의 성명을 알았지 / 閭巷小兒知姓名
나는 당시 몰락하여 도시에 있던 때 / 我時陸沈屠市中
어느 날 만나자 평생의 친구 같았네 / 一日傾蓋如平生
미우 사이에서 그 심사를 알았으니 / 眉宇之間得心事
주사처럼 곧고 빙호처럼 맑아라 / 朱絲之直氷壺淸
내게 보이는 시문이 애옥을 울리는 듯하니 / 投我詩文動哀玉
건안칠자가 봐도 안색이 변할 만하여라 / 建安七子堪動色
용문의 정을 혼자서 들 수 있으니 / 龍文之鼎可獨扛
붓끝에 절로 천균의 큰 힘이 있어라 / 筆端自有千鈞力
부러워라 그대 재주 굴레 벗은 말 같으니 / 羨君才如不羈馬
일생 동안에 어찌 오래 빈궁하겠는가 / 一生豈是長貧者
스스로 한탄하노니 짧은 옷은 정강이 못 가리매 / 自歎短衣不掩骭
긴긴 밤을 소 입 아래에서 슬픈 노래 부르도다 / 長夜悲歌牛口下
다행히 나를 알아주는 그대를 만났으니 / 幸蒙夫子許知音
한마디 말 입에 나오면 황금이 가벼워라 / 片言出口輕黃金
가슴속은 후련히 트여 애증이 없으며 / 胸中恢踈無愛憎
시원스러운 변설은 쌓인 시름 깨뜨릴 만하지 / 快辨可破窮愁凝
객사에서 술 마시며 눈 내린 봉우리 보았고 / 客舍開樽對雪峯
강가에서 말 달리며 춘등을 구경했어라 / 江頭走馬觀春燈
좋은 놀이는 덧없어 다시 올 수 없으니 / 奇遊忽忽不可再
세간에 이별과 만남은 원래 이어지는 법 / 世間離合元相仍
그대 지금 남쪽으로 떠나 정휘를 쫓아가니 / 君今南去逐旌麾
장부가 기약한 바를 그 누가 알리오 / 丈夫所期誰得知
바야흐로 바다 건너며 큰 고래 베리니 / 方將跨海斬長鯨
어찌 자질구레하게 아녀자처럼 슬퍼하랴 / 肯作屑屑兒女悲
대로에서 두주를 마시며 높이 노래하노니 / 斗酒高歌臨大道
이별의 심정 그 슬픔이 방초와 잇닿았어라 / 離魂黯黯連芳草
호남은 예부터 지극히 아름다운 곳이니 / 湖南自古淸絶地
역로의 매화는 지금 한창 곱게 피었으리 / 驛路梅花今正好
부디 그대 한 가지의 봄을 꺾어서 / 煩君折得一枝春
멀리 강담의 초췌한 사람에게 부쳐 주오 / 遠寄江潭憔悴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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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운수정팔경첩(雲水亭八景帖)에 제(題)하다
맑은 새벽 산기운은 어찌나 흐릿한지 / 曉晴山靄何霏霏
안개인 듯 안개 아닌 게 정처가 없구나 / 如烟非烟無定所
처음 보니 비 기운이 띠고 오더니만 / 初看雨氣帶將來
이내 풍광이 이끌어 가 버리는구나 / 旋覺風光句引去
봉우리들이 원근에서 아련히 출몰하니 / 群峯出沒迷近遠
그야말로 파도 너머 섬들이 보이는 듯 / 正似波頭見島嶼
어드메 시인이 홀로 턱 고이고 보는가 / 何許騷人拄笏看
새 시는 응당 미망한 곳에 있으리라 / 新詩合在微茫處
위는 ‘화산의 맑은 안개〔華嶽晴嵐〕’이다.
산중의 다리는 적적하고 행인이 드문데 / 山橋寂寂行人少
띠처럼 펼쳐진 숲에는 보금자리 찾는 새 / 一帶平林見歸鳥
저녁 바람이 해를 불어 서쪽으로 잠길듯 / 夕風吹日欲西沈
찰랑이는 듯한 찬 허공엔 낙조가 남았어라 / 瀲瀲寒空餘返照
안개와 푸른 산 빛이 조화를 잘 이루고 / 浮嵐曖翠相發揮
하늘 저편엔 희미하게 작은 봉우리 몇 개 / 天際依微數峯小
그 누가 이 경치를 그림으로 그려 볼꼬 / 誰將此景作畫看
오직 용면의 솜씨라야 가능하리라 / 除是龍眠筆頭妙
위는 ‘갈현의 낙조〔葛峴殘照〕’이다.
높고 외로운 봉화대 가파른 산 뒤에 섰나니 / 高孤烽櫓臨峭頂
봉화 연기는 금미에서 나와 멀리 이르도다 / 候火遠到從金微
정히 변방의 경보를 청쇄에 보고하고 / 正將邊警報靑瑣
다시 좋은 경치를 형비로 보내 주누나 / 更輸佳致歸荊扉
작은 별이 저물녘 나타나 가물거리고 / 小星昏見欲明滅
반딧불은 가을도 다 지나 몹시 드물어라 / 踈螢秋盡偏依俙
여장을 짚고 머리 든 이는 그 누구인고 / 杖藜擡首者誰子
뜻이 시구 찾는 데 있고 시비는 없어라 / 意在覓句無是非
‘높고 외로운 봉화대〔高孤烽櫓〕’가 어떤 본에는 ‘봉화대가 외로이 솟았으니〔烟臺孤絶〕’로 되어 있다.
위는 ‘금릉의 저녁 봉화〔金陵夕烽〕’이다.
강돈이 물결 불어 고운 물결 뒤집히고 / 江豚吹浪浪花翻
날이 저물수록 차츰 바람이 세차게 분다 / 向夕稍稍風力迅
만곡의 용양은 그 어느 곳의 배인가 / 龍驤萬斛何處船
돛을 펴고 들쭉날쭉 안진을 펼치도다 / 掛席差池作鴈陣
멀리서 아련한 모습 한가한 듯 보이나 / 遠遠依依看似閑
먼 길을 가는 것이 단지 일순간이로세 / 終覺脩程秪一瞬
잠깐 사이 해 지고 돛 그림자 사라지니 / 須臾日落帆影盡
흐릿한 물 기운에서 백신이 생기는구나 / 水氣霏微生白蜃
위는 ‘압포에 돌아가는 돛단배〔鴨浦歸颿〕’이다.
강가의 집 울타리에는 하늘빛이 저무는데 / 江頭籬落天色暝
안개 낀 나무 흐릿하고 바람과 이슬 차도다 / 烟樹微茫風露冷
멀리 보이는 관솔불 별처럼 점점이 빛나는데 / 遙看松火燦星點
가까웠다 멀어지고 기우뚱하다 바로 서누나 / 乍近乍遠斜復整
뉘 집의 가난한 여인이 밤에도 길쌈하는가 / 誰家貧女勤夜績
어느 한가한 사람이 영성을 손질하는가 / 有底閑人理笭箵
또 다른 어등이 있어 극포로 돌아오니 / 別有漁燈歸極浦
물결에 한들한들 빛이 흔들리는구나 / 搖搖波浪光難定
위는 ‘강촌의 야화〔江村夜火〕’이다.
집 뒤에는 푸른 산이 겹겹으로 섰고 / 屋後靑山重復重
중간에 고찰이 구름과 솔숲에 감춰졌다 / 中有古刹藏雲松
승려는 염불하느라 밤에도 잠자지 않고 / 闍梨念誦宵不寐
새벽에 일어나 예불하고 종을 울리누나 / 曉起禮佛仍鳴鍾
몇 번이나 바람에 끌려 멀리까지 들렸던가 / 幾隨風引遠搖曳
혹 흐릿한 빗속에 차가운 소리로 울린다 / 或被雨翳寒容舂
유인은 적적한 중에 깊은 성찰하나니 / 幽人寂寂發深省
서쪽 봉우리에 지는 달 앉아서 생각한다 / 坐想落月低西峯
위는 ‘산사의 새벽 종소리〔山寺晨鍾〕’이다.
기러기는 부지런히 무슨 일을 하느뇨 / 鴻鴈營營爲何事
추운 곳 떠나 따스한 곳 찾아 늘 분주해라 / 去寒就暖常紛紜
몇 번이나 날아서 옥관의 변새 지났던가 / 幾行飛度玉關塞
몇 소리 울음이 추강의 구름을 깨뜨린다 / 數聲叫破秋江雲
물은 넓고 하늘은 길어 갈 곳을 잃고서 / 水闊天長迷所向
평평한 백사장에 해질 무렵 짝을 찾누나 / 平沙落日求其群
아마도 화살에 맞아 떨어진 짝이 있는지 / 恐有傷弓流落羽
달빛 아래 구슬픈 울음 어이 차마 들을꼬 / 月下哀鳴那忍聞
위는 ‘긴 모래톱에 내려앉는 기러기〔長洲落鴈〕’이다.
평평한 숲 흐릿하고 방초와 이어졌나니 / 平林漠漠連芳草
풀숲 사이로 멀리서 금릉 길을 알겠어라 / 草間遙識金陵道
금릉이라 서쪽으로 가는 길손도 많은데 / 金陵向西多旅人
저마다 세무에 끌려 다투어 빚 독촉하지 / 各牽世務爭追討
등짐 지고 부지런히 무엇을 위해 바쁜고 / 荷擔營營爲底忙
행렬이 길게 이어진들 무슨 좋은 일 있으랴 / 冠蓋翩翩有何好
남에서 오고 북으로 가는 것 어찌 끝나랴 / 南來北去豈終極
무한한 덧없는 인생들 이 속에서 늙는구나 / 無限浮生此中老
위는 ‘넓은 들판의 행인〔曠野行人〕’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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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술을 마시며 주필(走筆)로 짓다.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사암 박 정승은 / 君不見思庵朴政丞
집안 생활이 영락하여 산승과도 같아라 / 家居冷落如山僧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송강 정 상국은 / 君不見松江鄭相國
평생의 자기 처신이 참으로 청직하여라 / 百年行己能淸直
자신만 빈한하여 일생을 고생할 뿐이랴 / 豈但寒餓困一生
자손들 농사지을 땅조차 없게 했도다 / 復令子孫無地耕
환벽당은 텅 비어 잡초만 무성하고 / 環碧堂虛成草萊
배견와는 무너져 푸른 이끼만 남았네 / 拜鵑窩破空蒼苔
낙양의 거마는 그 얼마나 시끄러운지 / 洛陽車馬何喧喧
관복을 걸친 이들 모두 어진 인재로세 / 紆靑拖紫皆賢才
다투어 정을 헐뜯어 계제를 삼나니 / 爭將毁鄭作階梯
뉘라서 박을 칭찬해 재앙을 낳으랴 / 誰肯譽朴生禍胎
주문이 우뚝이 번화한 거리에 서 있는데 / 朱門峨峨臨九衢
한 사내가 돌아보면 천 사내가 굽실거리네 / 一夫顧眄千夫趨
보옥을 다 캐 와서 산악이 무너지겠고 / 斲來寶玉山岳崩
명주를 다 건져 내어 창해가 마르겠구나 / 漉出明珠滄海枯
비록 후손들이 억만년 길이 이어지도록 / 雖傳仍雲億萬歲
금은보화 아무리 써도 없어질 때 없겠군 / 金帛爛用無時無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체소 이 한림은 / 君不見體素李翰林
반평생 서책에 파묻혀서 서음이 되었어라 / 半世黃卷爲書淫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오산 차 비서는 / 君不見五山車祕書
사부를 가지고 상여를 능가하려 했어라 / 欲將詞賦凌相如
문장이 넉넉할수록 집안은 더욱 가난하니 / 文章益富家益貧
벼슬길이 비좁아 몸을 들여놓을 수 없었지 / 仕路狹窄難容身
산 사람은 영락하여 길가에 다니고 / 生者飄零趨路傍
죽은 사람은 묻혀 먼지 따라 사라졌네 / 死者埋沒隨埃塵
남아의 세상살이에는 따로 길이 있으니 / 男兒行世別有路
해묵은 서책 가지고 사서 고생하지 말라 / 莫把陳編徒自苦
한림은 맑고 깊으며 옥당은 높으니 / 翰苑淸深玉堂高
그중에 학사들은 뛰어난 영재 많으리 / 其中學士多英豪
화전에다 채필을 휘둘러 글씨를 쓰니 / 花牋彩筆恣揮洒
보는 이들이 어찌 진위를 가릴 수 있으랴 / 觀者焉能辨眞假
인생이 뜻대로 되면 이와 같을 수 있느니 / 人生稱意得如此
반양연허는 대체 어떠한 사람이던가 / 班揚燕許爲何者
술 한 잔 따라 소년에게 권하노니 / 爲酌一杯勸少年
영췌와 귀천은 정녕 하늘에 달렸다네 / 榮悴貴賤寧在天
그러므로 통색에 모두 자유로움을 아노니 / 故知通塞皆自由
저것으로 이것을 바꾸면 누가 어질겠는가 / 以彼易此知誰賢
차라리 인간사 시비를 모두 잊고서 / 不如是非都兩忘
날마다 취해 춘풍 앞에 거꾸러지는 편이 나으리 / 日日醉倒春風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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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2권 / 칠언고시(七言古詩)
철옹행(鐵甕行). 절도사로 부임하는 장만(張晩)을 보내며.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 君不見
철옹 같은 성 만 길로 솟았으니 / 鐵甕之城餘萬丈
높고 큰 성벽이 천하에 웅장해라 / 崇墉巨壁天下壯
한 사내가 칼을 잡고서 요충을 지키면 / 一夫按劍當要衝
천 사람이 개미 떼처럼 붙어도 못 오르지 / 千人蟻附不得上
살수를 굽어보고 백두산을 등지고 / 橫臨薩水負太白
서북쪽에 웅장히 솟아 보장이 되었어라 / 雄峙西方作保障
예로부터 진영을 두고 영변이라 불렀으니 / 古來設鎭號寧邊
이 뜻이 참으로 있어라 어찌 우연이리오 / 此意有在寧偶然
조정의 계책은 쉽게 헤아릴 수 없지만 / 廟堂成算未易測
이곳을 버리는 것은 만전책이 못 되지 / 棄此不守非萬全
듣건대 노로가 자못 기세가 굴강해 / 似聞老虜頗倔强
힘 쌓고 틈 노린 지 여러 해라 하니 / 畜銳伺釁今有年
성상께서 밤낮으로 몹시 근심하시어 / 至尊旰食勞聖躬
군신들 중에서 장수를 선발하게 하셨지 / 乃命擇帥群臣中
좌상은 맑은 감식안이 잘못 보지 않아 / 左相淸鑑無失擧
마침내 호부가 우리 공에게로 갔지 / 遂將虎符歸我公
우리 공이 지난날 북문을 지킬 때 / 我公頃者領北門
만 리 내리는 호령 우레와 질풍 같았나니 / 號令萬里如雷風
군중에는 일이 없어 투호만 할 뿐이고 / 軍中無事但投壺
한해에는 파도 안 일고 사막은 텅 비었지 / 瀚海不波沙漠空
돌아올 때 피리와 북소리 요란하더니 / 歸來正見笳鼓競
좌석이 따스하기 전에 이 임명 받았네 / 坐席未煖還此命
남아는 태어나면 천하를 횡행해야 하느니 / 男兒墮地重橫行
백신 바쳐 보국하려는 마음 잊지 않도다 / 百身報國心耿耿
기린금대에 옥녹로를 허리에 차고서 / 麒麟錦帶玉轆轤
안장에 앉아 질타하면 천 사람이 굽실거리지 / 據鞍叱咤千夫趨
철기는 기세등등 깃발을 휘날리는데 / 鐵騎驕騰旌旆揚
세찬 봄바람은 앞길에 불어오누나 / 春風浩浩吹前途
죽음으로 성 지키는 건 대수롭지 않아 / 嬰城效死是餘事
오랑캐 따위 안중에 없은 지 이미 오래 / 目中久已無西胡
백발의 이 야인은 어디서 그대 알았던가 / 野人白頭何所識
거리 북쪽 거리 남쪽에서 궁박했었지 / 巷北巷南曾偪側
덧없는 인생에 이합은 기약하기 어려우니 / 浮生離合固難常
공을 붙잡아 두고 싶으나 어찌 뜻대로 되랴 / 縱欲挽公那可得
그래서 짧은 노래 지어 출새를 노래하노니 / 故作短歌歌出塞
북쪽 구름 서글피 보며 눈물로 가슴 적신다 / 悵望關雲涕霑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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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3권 / 오언율시(五言律詩)
산재십사(山齋十事). 성 진사(成進士) 노(輅) 를 위해 짓다.
비가 그치자 하늘은 씻은 듯하고 / 雨罷天如洗
산이 추운데 달은 떠오르려 한다 / 山寒月欲生
알지 못하겠어라 온전히 둥근 달이 / 不知全魄露
반쯤 둥근 달과 비교하여 어떠한지 / 何似半輪明
땅이 환하니 개똥벌레 빛을 잃고 / 地白流螢失
숲이 성그니 잠자는 까치 드러난다 / 林踈睡鵲呈
오늘 밤에 도인의 뜻은 / 今宵道人意
맑음을 십분 더하였으리라 / 添得十分淸
위는 ‘동쪽 산 위의 맑은 달〔東岑晴月〕’이다.
시야 속 교외 들판은 외진데 / 望裏郊墟僻
차가운 안개는 곳곳마다 같구나 / 寒烟處處同
희미하게 작은 물가로 이어졌고 / 依微連小浦
길게 끌리어 흐르는 바람을 쫓누나 / 搖曳逐流風
묽은 흰빛이 막 나무를 감싸고 / 淡白初籠樹
옅은 푸른빛이 홀연 허공 가린다 / 輕靑忽掩空
지는 석양이 다시금 일이 많아 / 斜陽更多事
하늘 한쪽을 비춰 붉게 물들이누나 / 照作一邊紅
위는 ‘너른 들판의 저녁 연기〔平野暮烟〕’이다.
흐릿하게 강 가득 비 내리고 / 漠漠連江雨
쓸쓸하게 낙엽이 지는 하늘이라 / 凄凄落木天
성글게 내릴 땐 빗기어 햇살에 어리고 / 踈時斜映日
빽빽이 내릴 땐 멀리 안개와 어울려라 / 密處遠和烟
저물녘 빛은 시름겨운 눈길을 이끌고 / 暮色延愁望
차가운 소리는 취한 꿈과 싸운다 / 寒聲鬧醉眠
무단히 소슬한 뜻이 / 無端蕭瑟意
또 적요한 시편에 드는구나 / 又入寂寥篇
위는 ‘강성의 가을비〔江城秋雨〕’이다.
눈 머금은 하늘 허공 가득 캄캄하고 / 雪意連空黑
추위의 위세는 저물녘에 엉겼어라 / 寒威向夕凝
바람 따라 몰래 방문에 들어오고 / 隨風潛入戶
빗줄기와 함께 가늘게 등잔을 때린다 / 和雨細侵燈
술 데우려니 화로에 불이 없고 / 煖酒壚無火
시 읊으려니 벼루에 얼음이 있어라 / 哦詩硯有氷
여러 해 덮은 베이불 싸늘한데 / 多年布衾冷
오늘 밤에는 더욱 한기가 이는구나 / 此夜轉生稜
위는 ‘산촌의 밤눈〔山村夜雪〕’이다.
질그릇 모습이 몹시 예스럽고 / 瓦器形偏古
탁주는 이름하여 현자라 하누나 / 醇醪號是賢
은빛 기울이는 건 어찌 그렇게 하는가 / 傾銀何乃爾
푸른빛 드는 것도 그저 그러한 것이지 / 拈碧亦徒然
우연히 한가한 흥취를 일으키고 / 偶發閑中趣
이어서 취한 뒤에 잠을 자노라 / 因成醉後眠
돌밭에 가을도 한창 익어갈 제 / 石田秋正熟
애오라지 이로써 여생을 달래노라 / 聊此慰殘年
위는 ‘질항아리의 탁주〔瓦樽濁酒〕’이다.
작은 남새밭이 숲 곁에 있는데 / 圃小依林麓
가로놓인 밭두둑이 초정에 가까워라 / 畦橫近草亭
물 줄 때에는 도리어 항아리를 안고 / 灌時還抱甕
김을 맬 때도 경서를 놓지 않는다 / 鋤處不抛經
부추는 봄에 뿌리가 흰 것이 좋고 / 韭愛春根白
아욱은 이슬 젖은 잎 푸른 게 좋지 / 葵憐露葉靑
따서 현미밥에 반찬으로 삼으면 / 摘來供糲飯
그 쟁반에도 남은 향기가 있어라 / 飣餖有餘馨
위는 ‘작은 남새밭의 이슬 젖은 채소〔小圃露蔬〕’이다.
고요한 방에 아무 일이 없고 / 靜室無餘事
사립문은 저물녘에 비로소 열지 / 柴荊晩始開
아이 시켜 맑은 물 뿌리게 하고 / 敎童洒淸水
대나무 꺾어 먼지를 쓸게 한다 / 折竹掃輕埃
그저 뜰이 깨끗한 것 좋아할 뿐 / 但喜堦庭淨
손님 오는 것과는 상관이 없어라 / 非關車馬來
정녕코 함부로 쓸지 말아라 / 丁寧莫放手
자칫 비단 무늬 이끼가 다칠라 / 恐破錦紋苔
위는 ‘마당을 쓰는 아이 종〔童奚掃庭〕’이다.
한가하면 책 속의 글자 가지고 / 閑將卷中字
무릎 앞의 아이 녀석 가르치노라 / 試敎膝前兒
혀 놀리는 게 처음은 껄끄럽더니 / 弄舌初猶澁
붓 드는 것이 마침내 자연스럽구나 / 拈毫竟不疑
꾀꼬리처럼 좋은 소리 듣는 게 좋고 / 喜聞鸎語好
기러기 행렬 같은 글씨 놀라 보노라 / 驚見鴈行奇
괴이해라 옛날의 도 팽택은 / 遠怪陶彭澤
아들 책망하는 시 괜스레 지었구나 / 空題責子詩
위는 ‘글을 배우는 어린 손자〔癡孫學字〕’이다.
옥자를 마음에 늘 생각하고 / 玉字心長念
금편을 손이 절로 어루만진다 / 金編手自挐
붙은 찌가 가지런한 게 좋고 / 籤懸憐整整
흩어진 책은 비뚤어졌건 말건 / 帙散任斜斜
눈에 가득한 게 모두 신선 비결 / 滿眼皆仙訣
몸에 관계된 건 도가의 방책일세 / 關身是道家
그 옛날에 여 부자는 / 從來呂夫子
이로써 생애를 삼았었지 / 用此作生涯
위는 ‘서안에 쌓인 도서〔道書堆案〕’이다.
아침에 까치가 반갑게 짖더니 / 朝來烏鵲喜
오늘 밤은 이 어떠한 때인가 / 今夕是何辰
좌중의 손님은 낯익은 이들 / 在座非新輩
함께 밤을 보내느니 친구로세 / 連牀卽故人
맘껏 담론하며 속물을 버리고 / 劇談遺俗物
외로이 웃으며 천진을 드러낸다 / 孤笑發天眞
게다가 동이 가득 술이 있으니 / 更有盈尊酒
서로의 흉금 더욱 친밀해지누나 / 襟期轉覺親
위는 ‘자리에 가득한 친구〔親朋在座〕’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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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4권 / 칠언율시(七言律詩)
자민(子敏)과 이별하며 앞의 운자를 사용하다
타향에 병들어 누웠고 한 해도 저무는데 / 臥病殊方歲已闌
오늘 밤 그대를 보내는 것 어이 견딜거나 / 可堪今夕送君還
인생이 이에 이르니 이별이 괴로운 일 / 人生到此分離苦
진세는 종전부터 만나기가 어려웠어라 / 塵世從前會合難
해 아래 고향은 천 리 밖 꿈속이요 / 日下故園千里夢
천애 먼 귀로에는 만 겹의 산이로세 / 天涯歸路萬重山
진중의 옛 친구가 내 소식 묻거든 / 秦中舊侶如相問
마침내 요동의 관유안이 되었다 하오 / 終作遼東管幼安
차운(次韻)한 시를 첨부하다
등잔 앞에 석별의 정 나누며 밤늦도록 얘기하노니 / 惜別燈前語夜闌
그리운 도성 천 리 먼 곳을 일신으로 돌아가노라 / 故都千里一身還
근심을 같이해 이미 쇠병을 겸하였지만 / 同憂已是兼衰疾
서로 보살펴 그 누가 급난을 구제하리오 / 相呴誰能救急難
교우의 도는 오직 내가 물처럼 담담한데 / 交道唯吾淡若水
사람들의 정은 이렇게 산보다 음험하여라 / 人情乃爾陰於山
그 언제나 함께 심양에서 은거하여 / 何當共作潯陽隱
무릎이나 들어갈 작은 집에서 편안히 살꼬 / 容膝蝸廬占易安
옛 숲에 바람이 불고 석양은 차가운데 / 古林風叫夕陽寒
안개 저편에 쌍쌍이 보금자리 찾는 새들 / 烟外雙雙宿鳥還
성세인 지금 융마의 전란이 일어났으니 / 聖世只今戎馬亂
벗님과 이곳에서 이별하기가 어렵구나 / 故人於此別離難
외로운 배 떠나는데 하늘과 바다 잇닿았고 / 孤舟泛泛天連海
한 필의 말 느릿한데 눈은 산에 가득하여라 / 匹馬遲遲雪滿山
서글퍼라 수운 저편 서로 바라보는 곳에 / 惆悵水雲相望處
틀림없이 안부 소식 알리지 말게 하겠지 / 定應無使報平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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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5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삼가 오 도사(吳都司) 종도(宗道) 를 증별하며 삼십운
기기한 당대 조정의 호걸이요 / 曁曁當朝傑
당당한 세상에 드문 영걸이어라 / 堂堂間世英
시서로 처음 도를 공부하였고 / 詩書初學道
병법으로 우연히 과거에 급제했지 / 韜略偶成名
아량에는 사람들 모두 감복하나니 / 雅量人皆服
높은 풍모를 그 누가 겨루리오 / 高標孰與京
재주는 재상의 자리에 오를 만하고 / 才堪調鼎鼐
뜻은 외란을 평정하는 데 있어라 / 志在掃攙搶
씩씩한 기운은 풍운을 움직이고 / 壯氣風雲動
외로운 충성은 일월처럼 밝도다 / 孤忠日月明
천리마의 발굽에 향토가 부드럽고 / 驥蹄香土軟
매가 높이 나니 푸른 하늘 맑아라 / 鷹翮碧霄晴
일기는 진나라 변새를 떠나가고 / 馹騎辭秦塞
누선은 초나라 병사가 옹위하도다 / 樓船擁楚兵
선성을 내어 유견을 내몰고 / 先聲驅乳贙
남은 용맹은 분경을 제압하도다 / 餘勇掣奔鯨
교활한 괴수는 비록 죽었지만 / 巨猾雖云斃
요사한 기운은 다 걷히지 않았어라 / 妖氛未盡淸
부절을 나누어 절해를 방어하고 / 分符防絶海
부절을 남겨 고성을 진무(鎭撫)하니 / 留節鎭孤城
명령이 엄숙하매 군문(軍門)이 고요하고 / 令肅轅門靜
사람이 화합하여 고을이 평안했네 / 人和邑里平
영명하여 사물의 이치를 통달했고 / 英明通物理
자혜로워 백성의 마음을 얻었어라 / 慈惠得民情
옥장이 해를 넘도록 주둔하다가 / 玉帳經年駐
봄날에 만 리 먼 길을 가시누나 / 春天萬里征
행차 보느라 남녀 무리 떠들썩하고 / 觀光喧士女
은덕을 연모해 불쌍한 백성들 운다 / 戀德泣孤惸
훈업은 훗날을 기약하지만 / 勳業期他日
안위는 이번 길에 달렸어라 / 安危在此行
금인이 큰 것을 기다려 볼 터이나 / 佇看金印大
설산이 가벼워질까 외려 두렵구나 / 還恐雪山輕
바다 비는 군영 막사에 연이었고 / 海雨連營幕
강바람은 군대 깃발을 휘날린다 / 江風捲旆旌
가실 땐 화익을 재촉할 터이나 / 去應催畫鷁
돌아오는 건 꾀꼬리 울 때이리 / 歸及聽啼鸎
천한 이 몸은 어떠한 자인가 / 賤子爲何者
궁도에서 이내 생애 우습구나 / 窮途笑此生
무사음을 스스로 달가워하노니 / 自甘無事飮
불평명을 그 누가 알리오 / 誰識不平鳴
과분하게 초현의 예우를 입었고 / 濫辱招賢禮
깊이 하사의 정성을 받았어라 / 深紆下士誠
대를 쓸어서 곽외를 맞이했고 / 掃臺迎郭隗
자리를 비워 후영을 이끌었으니 / 虛坐引侯嬴
감격의 정이 더욱 간절하고 / 感激情彌切
아득한 마음에 절로 놀랐다오 / 蒼茫意自驚
괴구가 끝내 의탁할 곳이 있으니 / 蒯緱終有托
주리는 그 얼마나 영광스러웠던가 / 珠履一何榮
석별의 한이 도리어 천 갈래인데 / 別恨還千種
앞으로 가실 길 다시 얼마나 될꼬 / 前途更幾程
푸른 깃발은 햇살에 펄럭이고 / 碧幢翻日影
화각은 파도 소리에 섞여 울린다 / 畫角雜波聲
전별의 자리를 의의하게 열고 / 祖席依依展
석별의 술잔을 조금씩 따르누나 / 離觴細細傾
재가 된 마음은 한 치도 못 되건만 / 灰心不盈寸
서리 같은 머리털은 늘어나려 한다 / 霜髮欲添莖
기실은 하손과 같은 이가 아니요 / 記室非何遜
군사 참모로는 자형에 부끄러웠지 / 軍謀愧子荊
지기의 은덕을 갚지 못했으니 / 未酬知己分
고개 돌리매 눈물만 줄줄 흐른다 / 回首淚縱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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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5권 / 오언배율(五言排律)
동쪽으로 돌아가는 월사(月沙) 상공을 보내며 십육운
나라에 무쌍의 선비가 있으니 / 國有無雙士
공이 지금에 제일의 사람일세 / 公今第一人
젊은 나이에 옥서에 오르니 / 妙年登玉署
빛나는 명성 대궐에 알려졌지 / 華譽夾楓宸
덕망은 참으로 이와 같거니와 / 德望誠如此
문장은 게다가 짝할 이가 없었네 / 文章更絶倫
계책을 세워서 조화에 답하였고 / 運籌酬造化
붓을 휘둘러 사륜을 적셨어라 / 揮翰潤絲綸
새벽 단지에 검패를 찼었나니 / 劍佩丹墀曉
내 낀 꽃에 자금은 봄이었어라 / 烟花紫禁春
영광스럽게 성상의 은택 받으니 / 榮光承雨露
풍모가 신하들 사이에 우뚝했네 / 符采照臣隣
용로의 곁에서 부절을 받았고 / 受節龍鑪側
압수 가에서 뗏목을 탔어라 / 乘槎鴨水濱
성상의 마음 줄곧 공을 사랑해 / 聖情終不倦
각별한 은사가 종래에 많았건만 / 殊錫向來頻
세상사 어찌 예측할 수 있으랴 / 世事豈可料
사람 마음은 다 말하기 어려워라 / 人情難具陳
비록 마음은 나라에 바쳤지만 / 縱然心許國
몸에 병이 들었으니 어이하리오 / 爭奈病纏身
득상은 근심과 기쁨 겸하였고 / 得喪兼憂喜
행장은 굴신에 맡겨 두었어라 / 行藏任屈伸
무능한 이 몸은 과분한 권애 받아 / 踈慵叨末眷
전불해 주신 깊은 은혜를 입었나니 / 剪拂荷深仁
문에 오른 사람이 되기도 전에 / 未作登門客
먼저 막부에 들어간 손님이 됐지 / 先爲入幕賓
은혜를 보답하려면 결초해야 되고 / 報恩當結草
덕을 연모해 이미 띠에 써 놓았도다 / 戀德已書紳
후일에 만날 곳이 그 어디인지 / 後會知何地
이별의 시름에 이날이 아까워라 / 離愁惜此辰
천애 먼 곳에서 무한한 눈물을 / 天涯無限淚
뿌리며 가시는 뒷모습 바라본다오 / 沾洒望行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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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임하 십영(林下十詠)
이른 봄 숲의 나무 담담히 고고하고 맑은데 / 早春林木澹孤淸
무수한 산새들은 오르내리며 울어대누나 / 無數山禽下上鳴
어젯밤에 무단히 남쪽 시내에 비 내리니 / 昨夜無端南澗雨
시냇가에 다소의 풀싹이 돋아났도다 / 澗邊多少草芽生
위는 조춘(早春)이다.
성근 울타리 낮고 낮은 두세 집 / 疎籬短短兩三家
물은 지당 가득해 개구리 소리에 개 짖는다 / 水滿池溏吠亂蛙
산객이 꿈 깨니 산새가 지저귀는 소리 / 山客夢回山鳥語
새벽바람은 벽도화 재촉해 피우는구나 / 曉風催發碧桃花
위는 모춘(暮春)이다.
봄이 저물어 가도 비가 아니 오니 / 春事闌殘雨不來
들판 논엔 물이 없어 누른 먼지 이누나 / 野田無水起黃埃
늙은 농부 새벽에 문을 열고 나와 / 老農淸曉開門出
산 아래서 물줄기 찾느라 낮에도 안 돌아온다 / 山下尋泉午未回
위는 ‘가뭄 걱정〔悶旱〕’이다.
시냇가에 푸른 풀은 점차 자라고 / 澗邊靑草漸看長
섬돌 위 한가한 꽃은 흡족히 향기롭다 / 階上閑花滿意香
봉호에 발 걷으니 종일 내리는 비 / 蓬戶捲簾終日雨
작은 지당 그득한 푸른 물에 오리가 목욕한다 / 小池鳧浴綠汪汪
위는 ‘반가운 비〔喜雨〕’이다.
세속을 피하느라 연래에 시내 안 건너고 / 避俗年來不過溪
소당은 백운에게 나눠 주어 깃들게 했어라 / 小堂分與白雲棲
맑은 창 정오가 되도록 오는 사람이 없고 / 晴窓日午無人到
오직 있나니 나무 위에서 우는 산새들뿐 / 唯有山禽樹上啼
위는 무위(無爲)이다.
솔개와 물고기 태화 중에서 날고 뛰노니 / 鳶魚飛躍太和中
만물이 부침하는 건 한 기운의 움직임일세 / 萬物浮沈一氣融
봄비가 그칠 때 뜰의 풀은 푸르니 / 春雨歇時庭草綠
풀의 이 생의는 사람과 같아라 / 這般生意與人同
위는 관물(觀物)이다.
숲 아래는 맑은 시내요 시냇가에는 정자 / 林下淸溪溪上亭
정자 가엔 무수히 어지러운 봉우리 푸르다 / 亭邊無數亂峯靑
유인은 술 취해 누웠고 해는 저무는데 / 幽人醉臥日西夕
만학에 부는 솔바람에 술이 절로 깨누나 / 萬壑松風吹自醒
위는 계정(溪亭)이다.
이미 이내 신세를 산림에 부쳤으니 / 已將身世寄山樊
속객이 연래에는 문에 이르지 않누나 / 俗客年來不到門
네 벽에는 도서 쌓였고 등잔 하나 / 四壁圖書燈一盞
이 중에 참된 뜻엔 말을 잊었노라 / 此間眞意欲忘言
위는 독락(獨樂)이다.
이 마음은 색도 아니요 공도 아닌데 / 此心非色亦非空
방촌 속에 만 가지 이치 융회되었어라 / 方寸之間萬理融
본지풍광을 뉘라서 알 수 있으리오 / 本地風光誰解得
본래부터 모두 적연한 중에 있는 것을 / 向來都在寂然中
위는 관심(觀心)이다.
세간의 만사를 모두 잊어버리니 / 世間萬事摠相忘
안씨의 단표 그 일미가 유장하여라 / 顔氏簞瓢一味長
맑은 새벽 책을 덮고 눈을 감노니 / 淸曉卷書聊合眼
주렴 너머 가랑비 향을 사를 만하여라 / 一簾微雨可燒香
위는 존양(存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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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제화(題畫). 4수.자심(子深)을 위해 짓다.
백년 평생의 종적을 운림에 부쳤으니 / 百年蹤跡寄雲林
어불염심의 좋은 계책을 얻었구려 / 得計於魚不厭深
그 어느 놈 소아가 애써 사리를 알아 / 何物小兒剛解事
감히 천하를 가지고 내 마음을 흔들리오 / 敢將天下感余心
위는 허유(許由)이다.
말고삐 잡을 때에야 의인인 줄 알았나니 / 叩馬方知是義人
사생에 시종일관 한 은나라 백성이었어라 / 死生終始一殷民
마침내 심상한 풀인 고사리로 하여금 / 遂令薇蕨尋常草
산중에 남겨 두어 특별한 봄을 만들었네 / 留得山中別樣春
위는 백이(伯夷)ㆍ숙제(叔齊)이다.
칠리탄 여울 가에 겹겹으로 펼쳐진 산 / 七里灘頭數疊山
조대는 몹시 외롭고 흰 구름은 한가해라 / 釣臺孤絶白雲閑
평생에 후회하리 광노의 태도 보인 탓에 / 平生悔作狂奴態
헛되이 명성을 세간에 가득 퍼뜨린 것을 / 虛播聲名滿世間
위는 엄광(嚴光)이다.
시상의 물색은 융중과 비슷하니 / 柴桑物色似隆中
출처는 비록 달라도 기미는 같아라 / 出處雖殊氣味同
당시에 만약 삼고의 은혜 입었다면 / 當日若蒙三顧惠
진가의 천록이 끝나지는 않았으리 / 晉家天祿未宜終
위는 도잠(陶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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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김 구성(金龜城) 여율(汝㟳) 의 호정 팔경(湖亭八景)
비 온 뒤 짙은 구름 겹겹이 펼쳐지니 / 雨後濃雲重復重
이른 새벽 발 걷고 기이한 모습 보노라 / 捲簾淸曉看奇容
잠깐 사이 해가 솟아 종적이 없어지니 / 須臾日出無蹤跡
비로소 동남쪽에 두세 봉우리 보이누나 / 始見東南三兩峯
위는 ‘삼각산의 비 갠 뒤의 구름〔三角晴雲〕’이다.
희미한 햇살이 반짝반짝 찬 물결 비추니 / 微陽瀲瀲照寒波
무한한 새로운 시가 이에 이르러 많아라 / 無限新詩到此多
시인 위해 일각만 이 경치 머물게 해주면 / 可向騷人留一刻
군을 위해 술잔 잡고 희화에게 권하리라 / 爲君持酒勸羲和
위는 ‘삼각산의 낙조〔三山落照〕’이다.
푸른 연잎이 고개 돌려 서풍을 등지는데 / 綠荷回首背西風
사람은 누각에 기대고 물가 난간 비었어라 / 人倚樓頭水檻空
한밤중에 술 깨어서 가랑비 소리를 들으니 / 半夜酒醒聞小雨
차가운 소리가 유독 지당에서 들려오누나 / 寒聲偏覺在池中
위는 ‘연꽃 핀 지당의 밤비〔荷塘夜雨〕’이다.
갈대꽃은 흰 눈처럼 강가에 가득하고 / 蘆花如雪滿江干
대열 지어 기러기 떼는 이른 추위를 알린다 / 陣陣邊鴻報早寒
어드메 노 젓는 소리가 너희를 놀라게 했나 / 何處櫓聲驚着汝
일시에 날아서 저물녘 구름 속에 들어가누나 / 一時飛入暮雲端
위는 ‘갈대 우거진 물가의 가을 기러기〔蘆渚秋鴻〕’이다.
봄날 교외에 보슬보슬 비가 막 오는 때 / 春郊漠漠雨來初
부드러운 풀 평평한 모래는 그림보다 나아라 / 草嫩沙平畫不如
갈대 피리 한 소리 들리고 소 등은 편안해 / 蘆管一聲牛背穩
인간 세상에 편안한 수레 있는 것 나는 몰라라 / 人間未信有安車
위는 ‘동쪽 교외 목동의 피리 소리〔東郊牧笛〕’이다.
이내 낀 물가 흐릿해 시야 끝까지 어두운데 / 煙渚蒼蒼極目寒
홀연 흐르는 불빛 모래 여울 비춰 놀랐어라 / 忽驚流火照沙灘
이것이 고깃배인 줄을 분명히 아노니 / 分明知是漁舟子
성근 별빛이 물속에 잠긴 것으로 보지 말라 / 莫作疎星蘸水看
위는 ‘남포의 고깃배 등불〔南浦漁燈〕’이다.
서남쪽에 올리는 공물 도성에 몰려드니 / 西南貢賦湊王京
천 대열 돛단배가 물길 때맞춰 올라온다 / 千陣風檣趁水程
여기서 한양 거리 멀지 않은 줄 아노니 / 此去漢陽知不遠
뱃머리에서 행주성을 손으로 가리키는구나 / 船頭指點幸州城
위는 ‘봉상의 돛단배〔鳳翔風帆〕’이다.
변새에서 전해 오는 빛 난간 밖에 보노니 / 塞外傳光檻外看
해마다 해마다 늘 평안하다는 기별이로세 / 年年長是報平安
유인은 방추의 일을 알지 못하고서 / 幽人不識防秋事
구름 가에 떨어지는 쇠잔한 불빛 사랑한다 / 只愛雲邊落點殘
위는 ‘오도의 저녁 봉화〔烏島夕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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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곽산잡제(郭山雜題)에 차운하다 4수
부러워라 군의 문채 벗들 중에 으뜸이요 / 羨君文彩映諸郞
칠자의 새 시편은 성당의 시에 가까워라 / 七字新詩近盛唐
우스워라 나는 만년에 한묵을 멀리하여 / 自笑暮年疎翰墨
취중에 잠꼬대 같은 시 말이 안 되누나 / 醉中啽囈劇顚狂
관촉은 재가 되고 밤 시각은 더딘데 / 官燭成灰夜漏遲
미인은 마주 앉아서 실처럼 눈물 흘린다 / 美人相對淚如絲
이제부터 객사에 청청한 버드나무가 / 從今客舍靑靑柳
다시는 긴 가지 예전처럼 드리우지 못하리 / 不復長條似舊垂
바쁠 때가 어찌 고요할 때만큼 좋으랴 / 忙時爭及靜時好
즐거운 곳이 시름겨운 곳보다 많지 않아라 / 樂處不知愁處多
머리털이 백발 되는 것은 두렵지 않고 / 不怕鬢毛成白鶴
단지 동이의 술이 황아와 같음을 사랑하노라 / 但憐尊酒似黃鵝
흠뻑 취해 혼몽하여 비단 자리에 쓰러지니 / 多醉昏昏倒綺筵
베갯머리 관촉은 누구를 위해서 타고 있나 / 枕邊官燭爲誰燃
오경에 홀연 선성의 일을 꿈에 보았건만 / 五更忽夢宣城事
바로 지난밤에 이미 아득히 잊어버렸어라 / 只是前宵已惘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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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해장 팔영(海莊八詠). 윤경망(尹景望)을 위해 짓다.
천 겹의 봉우리들 그림 병풍 펼친 듯 / 千疊峯巒展畫屛
아침마다 시원한 기운이 창문에 가득해라 / 朝朝爽氣滿窓櫺
유인이 홀로 턱 괴고 구름을 보는 곳에 / 幽人拄笏看雲處
하늘 저편 한 올 푸른빛 가장 사랑하노라 / 最愛天邊一髮靑
위는 ‘영산의 푸른 산빛〔瀛山挹翠〕’이다.
바다는 망망해 아스라이 허공에 잇닿았나니 / 鯨海茫茫逈接空
풍이가 우레와 바람 타고 물결을 일으키도다 / 馮夷鼓浪駕雷風
건곤은 예로부터 동남방이 넓게 트였나니 / 乾坤自古東南豁
일월이 천지의 원기 속에서 부침하는구나 / 日月浮沈元氣中
위는 ‘바다의 파도〔溟海觀濤〕’이다.
동쪽 나루는 멀고 물은 허공과 잇닿았는데 / 東津迢遞水連空
일진의 돛대 위 까마귀는 안개 속에 아득해라 / 一陣檣烏杳靄中
평생에 물결을 헤치고 싶은 종각의 소원 / 宗慤平生破浪願
그 언제나 반 범의 바람을 빌릴 수 있을꼬 / 幾時容借半帆風
위는 ‘모래톱 나루의 먼 돛단배〔沙津遠帆〕’이다.
추운 허공에 번득번득 저녁 갈까마귀 날고 / 寒空閃閃暮鴉飜
붉은 해는 고운 빛으로 해문에 떨어지는구나 / 紅日亭亭下海門
그저 석양이 무한히 좋도록 할 뿐이요 / 但使夕陽無限好
일 많아서 황혼을 두려워할 것은 없어라 / 不須多事怕黃昏
위는 ‘위도의 낙조〔蝟島落照〕’이다.
강가에 시름겨운 빛 갈대꽃에 가득한데 / 江干愁色滿蘆花
멀리 시야에 긴 모래톱이 띠처럼 비꼈어라 / 望裏長洲一帶斜
어드메 푸른 하늘에 몇 줄의 글자가 / 何處靑天數行字
저물녘 바람에 불려 백구의 모래톱에 내려앉나 / 晩風吹落白鷗沙
위는 ‘갈대 우거진 물가의 기러기 행렬〔蘆洲雁陣〕’이다.
학정과 부저가 멀리 아련히 뵈나니 / 鶴汀鳧渚望依依
몇 곳 쇠잔한 마을은 대 사립이 닫혔어라 / 幾處殘村掩竹扉
강어귀에 깊은 밤 개 짖는 소리 들리니 / 江口夜深聞犬吠
밝은 달밤에 고기 잡아 돌아오는 줄 알겠네 / 月明知有打魚歸
위는 ‘죽서의 어촌〔竹嶼漁村〕’이다.
강가 외로운 성은 문이 닫히려는데 / 江上孤城欲閉門
수루의 찬 화각 소리 황혼을 알리누나 / 戍樓寒角報黃昏
몇 가닥 불어서 뜬구름이 사라지니 / 幾枝吹徹浮雲盡
그야말로 백사장에 달빛만 비치누나 / 正見沙汀月一痕
위는 ‘외로운 성 수루의 화각 소리〔孤城戍角〕’이다.
먼 숲에 막 뜬 해는 구리 징이 솟는 듯 / 遠林初日上銅鉦
아득한 극포는 눈 아래 평평히 펼쳐졌어라 / 極浦微茫眼底平
인가가 기슭에 있는 줄 멀리서 알겠노니 / 遙識人家在沙岸
강 너머에서도 피어오르는 연기가 보인다 / 隔江猶見亂煙生
위는 ‘극포의 밥 짓는 연기〔極浦炊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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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안락당 팔영(安樂堂八詠). 외구(外舅) 정 신창(鄭新昌) 사억(思億) 을 위해 제하다.
비 온 뒤 청산은 구름이 골짜기에 나오니 / 雨後靑山雲出谿
아침이 오자 삼각산은 동서의 방위 잃었다 / 朝來三角失東西
흰옷과 푸른 개가 잠깐 사이에 생기니 / 白衣蒼狗須臾事
새 시를 읊고자 하매 마음 절로 아득해라 / 欲賦新詩意自迷
위는 ‘삼각산의 아침 구름〔三角朝雲〕’이다.
천리 밖 옥관에서 불빛을 전해 오니 / 千里傅光自玉關
저물녘 구름 저편에서 작은 별이 깜박인다 / 小星明滅暮雲端
뉘라서 알랴 시골 노인 고개 돌리는 곳을 / 誰知野老回頭處
바로 봉래에서 말 세우고 바라보리란 것을 / 正想蓬萊立馬看
위는 ‘성산의 저녁 봉화〔城山夕烽〕’이다.
숲의 안개가 뿌옇더니 이어서 비가 되매 / 林靄霏微仍作雨
시야 속에서 있는 듯하다 다시 없는 듯해라 / 望中疑有更疑無
구태여 가서 원휘의 솜씨 빌릴 것도 없이 / 不須去借元暉手
이미 진신의 수묵도를 마주 대하고 있도다 / 已對眞身水墨圖
위는 ‘장림의 가랑비〔長林細雨〕’이다.
기슭에 무너진 모래가 작은 여울 감싸고 / 古岸崩沙擁小灘
끊어진 다리는 멀리 지는 석양빛 띠었어라 / 斷橋遙帶夕陽殘
여기에 다시금 나귀 탄 나그네가 있으니 / 此間更着騎驢客
그야말로 보는 사람 그림으로 그리면 좋겠네 / 政好傍人作畫看
위는 ‘끊어진 다리의 낙조〔斷橋殘照〕’이다.
안개 빛과 풀 색깔이 함께 어우러지니 / 煙光草色共氛氳
굽은 기슭 휘도는 물 가 멀리 흐릿하여라 / 曲岸回汀遠不分
알겠어라 초동이 소를 치는 곳에서 / 認得村童牧牛處
갈대피리 몇 소리 시내 저편에서 들리누나 / 數聲蘆管隔溪聞
위는 ‘안개 낀 교외 목동의 피리〔煙郊牧笛〕’이다.
들판 물가에서 허리춤에 낫을 찬 사람 / 帶索腰鎌野水濱
누렇게 마른 갈대와 억새 모두 땔감일세 / 黃蘆枯萩盡堪薪
땔감을 지고 가면서 노래하는 곳에 / 安知荷擔行歌地
오늘날의 주매신이 있을지 누가 알랴 / 不有當時朱買臣
위는 ‘갈대숲 언덕 나무꾼의 노래〔蘆岸樵歌〕’이다.
늦벼는 푸릇푸릇하고 올벼는 향긋한데 / 晩稻靑靑早稻香
논 사이 작은 길 비탈의 지당에 들어간다 / 田間小路入陂塘
어젯밤 서풍이 불어 서리가 흠뻑 내리니 / 西風昨夜淸霜重
만 이랑 짙은 구름 반은 누렇게 변했구나 / 萬頃濃雲一半黃
위는 ‘복평의 벼 베기 구경〔洑坪觀稼〕’이다.
바위 가에 작은 그물을 물속에 던지니 / 小網橫沈傍石磯
가을이 오매 자린이 살진 게 참으로 좋아라 / 秋來正愛紫鱗肥
돌아올 때는 언제나 석양이 다 질 무렵이라 / 歸時每趁斜陽盡
안개 낀 물가의 길에 옷은 비에 흠뻑 젖는다 / 一路煙汀雨滿衣
위는 ‘곡포의 투망질〔曲浦網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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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유거만흥(幽居漫興) 4수
늙어 가매 내 몸 부축할 짧은 지팡이 있으니 / 老去扶吾有短筇
자연 속의 삶 언제고 조용하지 않은 날 없어라 / 林居無日不從容
이른 새벽 걸어서 시냇가 바위로 가서 / 淸晨步到澗邊石
석양에 앉아 물결 아래 비친 봉우리 보노라 / 落日坐看波底峯
연못가 언덕은 겨우 사람이 오갈 만한데 / 池岸纔容人往還
양쪽 연못에 한쪽 산이 나누어 비쳤어라 / 兩池分蘸一邊山
푸른 연꽃 잎이 작아 물을 못 가리니 / 靑荷葉小不掩水
창포 사이 때때로 노니는 물고기 보여라 / 時見魚兒蒲葦間
물을 끌어 못 만들어 스스로 즐기노니 / 引水作潭聊自娛
평지에 파도가 문득 이와 같이 이는구나 / 平地波濤遽如許
나는 물결 바위에 떨어져 풍우가 요란하니 / 飛湍落石風雨喧
저편 기슭 인가에서 사람 소리도 안 들려라 / 隔岸人家不聞語
예전에는 시냇물 깊이가 한 자 남짓이었고 / 當日溪流深尺餘
양쪽 기슭은 좁아서 겨우 수레가 다닐 정도 / 兩岸狹窄纔容車
오늘 아침에 문득 창랑의 큰 물로 변하여 / 今朝化作滄浪水
벌써 물새들이 와서 물고기를 잡아먹누나 / 已有水禽來捕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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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제7권 / 칠언절구(七言絶句)
눈 온 뒤의 만흥(謾興) 3수
하룻밤 사이에 추위가 유달리 많더니 / 一夜寒威特地多
저녁에 세찬 바람 어부의 도롱이 젖힌다 / 晩來風力捲漁簑
애써 눈 녹인 물 찻물 끓이는 솥에 넣노니 / 强將雪水添茶鼎
천산의 저물녘 좋은 눈경치를 어이할거나 / 奈此千山暮景何
위는 권 명부(權明府) 반(盼) 에게 드리는 시이다.
성 위의 저녁에 고각 소리는 잦아드는데 / 城頭暮角欲吹殘
청유에 술 무거워 추위도 못 느끼리라 / 酒重靑油不受寒
다시금 생각노니 군중에서 북 치며 노는 곳에 / 更想中軍撾鼓處
바닷바람이 눈을 흩날려 깃발에 부딪치겠지 / 海風飄雪撲旌竿
위는 최 교련관(崔敎鍊官)에게 보인 시이다.
목 움츠리고 자는 모습은 추위에 언 거북 / 縮頸寒眠似凍龜
한밤에 거센 눈보라는 창 너머 듣고 아노라 / 中宵急雪聽窓知
은 술잔 같다는 묘한 말 그대 집안 일인데 / 銀杯妙語君家事
지금 그대는 도리어 몇 수의 시를 지었느뇨 / 今日還成幾首詩
위는 한 수재(韓秀才) 성(誠) 에게 보인 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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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주집 별집 제1권 / 오언절구(五言絶句)
촌거잡제(村居雜題) 3수
목마른 사람은 많이 우물을 꿈꾸고 / 渴人多夢井
주린 사람은 많이 음식을 꿈꾸는 법 / 飢人多夢庖
봄 온 뒤로 멀리 노니는 꿈을 꾸어 / 春來遠遊夢
밤이면 밤마다 강가 교외에 가도다 / 夜夜到江郊
어젯밤에는 달이 안개에 잠기더니 / 昨夜月沈霧
오늘 아침엔 산이 구름에서 나왔네 / 今朝山出雲
무단히 물결 위에 내린 비가 / 無端波上雨
세세하게 신발 무늬를 이루누나 / 細細作靴紋
어제도 한나절 동안 잠잤고 / 昨日半日睡
오늘도 한나절 동안 잠잤어라 / 今日半日睡
그렇지만 수향은 고향이 아니니 / 睡鄕非故鄕
애오라지 내 마음을 달랠 뿐일세 / 聊以適吾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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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1권 / 시부 1 ○ 막부잡록(幕府雜錄)
막부(幕府)에 일이 없어 이우린(李于麟)의 각야시(閣夜詩)의 운자를 써서 스스로 소견(消遣)하다 4수(首)
채한은 애오라지 한을 적은 것 / 彩翰聊題恨
돈이면 즐거움을 다 살 수 있나 / 金錢豈卜懽
세정은 유달리 삭막하거니 / 世情偏落莫
우리 도는 날로 더욱 어렵기만 해 / 吾道日艱難
긴긴 밤 은하수는 깜깜도 한데 / 永夜星河暗
산마다 눈비 내려 쌀쌀하구려 / 千山雨雪寒
짧은 저 등잔받침 나의 친우(親友)라 / 短檠吾石友
옛글에 와 비추어 읽게 해주네 / 來照古書看
궁도라서 한 있는 건 아니고말고 / 窮途非有恨
나라 일을 수고롭다 감히 말하리 / 王事敢言勞
신세는 늘 표류하는 목경(木梗)이라면 / 身世長漂梗
재주는 탈포하던 예전 그 솜씨 / 才名舊奪袍
밤 깊으니 등불 꽃 짧아만 가고 / 夜遙燈焰短
서리 차니 호각소리 더욱 드높네 / 霜重角聲高
서생이 병들었다 뉘 일렀는고 / 誰道書生病
시 이루자 기운이 절로 솟는걸 / 詩成氣自豪
고국은 하마 천리나 멀어졌는데 / 故國已千里
집에 보낼 편지 쓰긴 되려 게을러 / 家書還懶裁
구름은 한바다로 돌아를 가고 / 雲歸碧海去
기러기는 긴 강을 건너오누나 / 雁渡長江來
풍금(風琴)은 밤에 한결 운치가 나고 / 風瑟宵偏韻
피리소린 찬 새벽에 더욱 슬프네 / 霜笳曉轉哀
이역이라 애가 타서 끊어지려고 / 殊方腸欲斷
눈물이 망향대에서 다 밭았다오 / 淚盡望鄕臺
자진 가락 아쟁(牙箏)을 몰아치는데 / 歌催箏柱促
술 실은 배에 비쳐 등불은 맑아 / 燈炤酒船淸
빈집이라 바람 기세 차갑게 일고 / 虛閣風威冷
높은 성엔 북두(北斗) 자루 비끼었구나 / 高城斗柄橫
위태로운 길에서 세상 맛 알고 / 危道諳世味
오래된 나그네라 인정 보겠네 / 久客見人情
정랑(情郞)의 뜻을 감히 저버릴쏜가 / 敢負蕭郞意
동녘 담에 송생이 있는데그래 / 東墻有宋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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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시부 2 ○ 병한잡술(病閑雜述)
전오자시(前五子詩) 석주(石洲)는 말하기를 “5편이 모두 경한(勁悍)하고 침료(沈寥)하다.” 하였다.
나는 세상과 틀어져서 당로(當路)한 공경(公卿)들과는 능히 사귐을 맺지 못하고 오직 박예(薄藝)로써, 문단의 동맹(同盟) 두세 형제들에게 알아줌을 받았다. 그래서 밤낮으로 상종하여 혹은 창수(唱酬)로, 혹은 담론으로 서로들 절차(切磋)하면서, 한가로이 해를 마치곤 한다. 그 사람들은 바로 권필 여장(權韠汝章)ㆍ이안눌 자민(李安訥子敏)ㆍ조위한 지세(趙緯韓持世)와 나의 재종형 허체 자하(許䙗子賀) 및 소싯적부터 친한 벗 이재영 여인(李再榮汝仁)인데, 이 다섯 사람은 문장이 모두 세상에 드물고 때에 궁한 것도 마찬가지이니, 어찌 문인의 결습(結習)이 으레 곤고한 운명이란 말인가. 드디어 오자시(五子詩)를 지어 이로써 풍아(風雅)를 드날리고, 교정(交情)을 기술하여 때로 보고 스스로 위로하는 바이다. 그 차례는 연대별로 기록하고 지(地)로써 끝마쳤다.
허자하(許子賀)
우리 종족 진실로 신수하지만 / 吾宗固神秀
늙은 형이 더욱더 빼어났구려 / 老兄尤俊拔
예림에 기 세우길 기약했어라 / 藝林期立幟
사루에 하마 수레 갖추었다오 / 詞壘已戒轄
가을 우는 벌레에 가깝다지만 / 縱近號秋虫
제어하는 수달은 겨우 면했네 / 纔免祭魚獺
전기는 한 번 울음 막혔는데 / 翦驥閡一鳴
옥 안고도 세 번을 발꿈치 베였네 / 抱玉質三刖
퇴고는 백전을 배제하고 / 推敲捐白戰
나관은 청살을 다 보았네 / 羅貫極靑殺
완적(阮籍) 포조(鮑照)는 마땅히 비등할 거고 / 阮鮑當雁行
양웅(揚雄) 사마상여(司馬相如)는 막상막하일 걸세 / 揚馬庶燕頡
천안은 초균을 분별하건만 / 天眼辨楚菌
늘 보는 이는 볏짚에 비하느니 / 恒觀比藁秸
천고에 드문 것을 간직했으니 / 自保千古希
한때의 알력이야 만나건말건 / 任遭一時軋
내 인생 동지(同志)들의 힘 받았어라 / 我生賴壎篪
뭇 비방 마음대로 조잘대라지 / 群咻恣嘲哳
구만리 대붕새를 멀리서 보니 / 遙睇九萬鵬
빠른 나래 어찌 노상 닳기만 하리 / 逸翮寧長鎩
조지세(趙持世)
염옹은 진실로 나라의 보배로 / 髥翁誠國器
주대(周代)의 솥처럼 종묘(宗廟)에 오름직해 / 廟肆薦周鼎
출세하여 청운의 길에 오르니 / 致身自靑雲
주옥이라 그 어찌 다리 없으랴 / 珠玉豈無脛
평생 동안 고문에 온 힘 다하여 / 平生攻古文
칼질은 긍경을 다 거쳤네그려 / 奏刀經肯綮
시가는 음갱(陰鏗) 하손(何遜)의 무리요 / 詩歌陰何流
잔뢰는 반악(潘岳) 육기(陸機)와 치달리네 / 牋誄岳機騁
성명은 날로 더욱 드높은데 / 聲譽日翩翩
학(鶴)이 가을 듣고 설레누나 / 皐禽聽秋驚
맑은 결합 호올로 마음 아는데 / 雅契獨知心
의의 사귐은 문경을 하찮게 보네 / 義交鄙刎頸
하고 한 훼방 속에 거두어 주니 / 收之衆毁中
그 은혜 날 낳아 준 이와 같구려 / 恩與生我竝
산수의 지음(知音)을 의탁하고 / 山水托辨音
제호 관정을 허락하였소 / 醍醐許灌頂
그대의 드날림을 빌려주어서 / 輸君借軒騰
내게 미뤄 고고(孤高)를 지키게 하네 / 推我守孤迥
안민 제중(安民濟衆)의 여파가 원만해지는 날 / 康濟足餘波
강호에 낚싯배 기다리고 있을 거로세 / 江湖有煙艇
권여장(權汝章)
석주는 천하의 높은 선비라 / 石洲天下士
그 재주는 진실로 왕좌다마다 / 其才寔王佐
포부를 베풀어 쓰려 하잖고 / 抱負不肯施
궁곡에서 달갑게 굶주린 생활 / 甘爲窮谷餓
시를 하여 천규를 뚫어냈으니 / 爲詩透天竅
절창이라 뉘 능히 화답하리요 / 絶唱有誰和
왕유(王維) 맹호연(孟浩然) 의당 뒤에 있게 될 거고 / 王孟合在後
안연지(顔延之) 사영운(謝靈運) 역시 윗자리를 비워야 하지 / 顔謝亦虛左
창과 칼에 번개 서리 나열했는데 / 戈鋌列電霜
주옥 같은 해타 마구 쏟아지누나 / 珠玉霏咳唾
오늘에 이르러 사십 년인데 / 至今四十年
험상궂은 뻘길에 늘 헤매기만 / 泥塗飽轗軻
평생에 교칠 같은 거룩한 의는 / 平生膠漆義
풍류라 내 과실을 생략했었네 / 略我風流過
한유(韓愈) 맹교(孟郊) 겨우 일러 거공이랄까 / 愈郊僅驅蛩
어찌 감히 둘이 다 크다 말하리 / 豈敢曰兩大
때로는 외 글자의 깨우침 보고 / 時逢隻字警
심담이 깨어짐을 먼저 깨닫네 / 心膽覺先破
본래 기약 임천에 있었는데도 / 素期在林泉
결단 못하는 나는 참으로 겁쟁이 / 不決吾眞懦
이자민(李子敏)
동악은 특이한 지조 있으니 / 東岳有奇操
몸을 닦아 덕이 날로 진실하구려 / 禔躬德日悾
시를 지어 그 조업(祖業)을 이어받으니 / 作詩踵其祖
반강을 기울인 듯 콸콸 쏟누나 / 沛若傾潘江
무게 백 곡이나 나가는 문필(文筆)은 / 龍文百斛重
맹분(孟賁) 하육(夏育)의 힘이어야 들 것이요 / 賁育力能扛
소하(蕭何)의 세운 공이 제일이라면 / 酇侯功第一
장창(張蒼)은 지닌 재주 짝이 없다오 / 北平才無雙
홀로 서서 장수의 북채를 쥐니 / 獨立援將枹
깃발이 누워라 항복을 받네 / 旗旛爭受降
우리들이 비록 옛것을 저울질해도 / 吾輩縱銓古
바위 틈에 솟아나는 샘 물줄기라 / 有若巖泉瀧
언감히 가느다란 비파 소리로 / 敢以妙瑟唱
홍종의 두들김을 당해낼쏜가 / 敵彼洪鍾撞
강성한 진 나라가 늘 노려보니 / 强秦恣睥睨
추나 노가 나라 구실 어찌 하랴 / 鄒魯安能邦
세상사람 큰 골짝을 들여다보고 / 世人窺巨壑
항아리 독으로써 헤아리려네 / 欲測以罌缸
천추에 정해진 공론 있으니 / 千秋有定論
그대는 길 바꾸길 두려워 마소 / 改轍君無𢥠
이여인(李汝仁)
나는 작은 이 사내를 사랑하노니 / 我愛藐丈夫
더벅머리 시절부터 글월 빛났네 / 詞華自童丱
백가의 모든 말을 꿰뚫었어라 / 貫穿百家語
즐기기를 추환처럼 여겼소 / 嗜之如芻豢
서능은 고사 증거 우월하다면 / 徵事徐陵優
육기는 재주 많아 근심 불렀네 / 多才陸機患
격발도 빠른 데에 비유 못 되고 / 擊鉢未喩捿
영설은 게으름을 되려 비웃어 / 映雪還嗤慢
비단 짜서 봉의 무늬 구김살지고 / 組錦蹙鳳文
옥을 쪼아 화판을 아로새겼네 / 琢玉雕花瓣
여번이라 그 값이 절로 높은데 / 璵璠價自高
세속은 천히 보아 조롱하누나 / 俗賤爭嘲訕
시루에 교봉할 이 만난다면 / 詩壘値交鋒
나는 그대를 위해 좌단하리라 / 吾爲君左袒
비웃는 자 나라에 가득하더라도 / 笑者任滿國
그 실상은 속이기 어렵느니 / 其實自難贋
하향(下鄕)에서 의식(衣食)에 시달렸었고 / 下邑困桂玉
위도엔 근심 한탄 배불렸어라 / 危途飽憂歎
같은 병 함께 앓는 적막한 길손 / 寂寞同病客
하늘가에 해도 장차 늦어가는걸 / 天涯歲將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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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시부 2 ○ 병한잡술(病閑雜述)
열악(閱樂) 석주(石洲)는 말하기를 “여러 편이 모두 교경(皦勁)하고 초려(峭麗)하여 다른 작(作)과 같지 않으니 진실로 절창이라 하겠다.” 하였다.
느린 가락 서서히 대엽 따라 전해지자 / 漫調徐從大葉傳
뇌두는 갑자기 자지전을 노래하네 / 雷頭忽拍柘枝顚
세악을 번곡(翻曲)하여 연석(筵席) 맡에 연주하니 / 旋翻細樂當筵奏
두둥 어울려라 화단의 오현금(五絃琴)이 / 敎合花檀木五絃
현색 소리 두둥둥 드높고도 청초해서 / 摐摐絃索亮更淸
측조가 늦어가자 바로 구생을 하네 / 側調初闌旋灸笙
무두에 소매 떨쳐 아판이 촉급하니 / 袖拂舞頭牙板促
보허곡은 박자가 제삼성에 어울리네 / 步虛當拍第三聲
비파 가락 맨 처음 소량주를 둥둥 타니 / 琵琶初輥小涼州
한발 가진 젊은 만랑비구를 누르누나 / 捍撥紅蠻壓臂鞲
하얀 손결 전관에다 호색마저 곁따라라 / 素手轉關仍護索
사현은 자주자주 녹요곡을 퉁긴다오 / 四絃頻抹綠腰頭
네 동자 수수하며 마주 서서 줄 이루고 / 四童垂手對成行
푸른 비단 꽃무늬는 무상에 빛나도다 / 砑綠花紅燦舞裳
채색 소매 절반쯤 동지발에 걷어지자 / 彩袖半揎銅指鈸
곡두가 바뀌어라 소리 울려 딩글딩글 / 曲頭初換響丁當
요고를 떠메와서 중연에 배치하고 / 舁來腰鼓置中筵
차례로 채 두들겨 채색 소매 펄렁펄렁 / 輪得紅槌彩袖翻
자진 박자 급한 퉁소 정읍을 노래하니 / 催拍急簫謳井邑
팔반이 처음 돌자 소리 둥둥 드높아라 / 八盤初轉響塡然
침향산 밑바닥에 푸른 연이 피었는데 / 沈香山底碧蓮開
학은 쌍쌍 날개치며 갔다 도로 돌아오네 / 雙鶴翩翾去却回
채아가 뛰어나와 서로 대해 춤을 추니 / 跳出彩娥相對舞
처용의 수적삼을 끌어올 모양이군 / 綉衫將押處容來
홍문이라 맺은 채백(綵帛) 누 옆에 비꼈는데 / 紅門斜結綵橫樓
하얀 손결 알맞게 수구를 던지누나 / 素手當中擲綉毬
양정을 놀래어라 사람들은 갈채하며 / 驚着兩庭人喝采
발 밖에 와 치사하네 두주를 뺏었다고 / 向簾來謝奪頭籌
잡부를 멈춰놓고 청사를 연주하니 / 敎停雜部奏淸絲
양주에 측근되어 작은 피리 따라 부네 / 側近梁州小管吹
채색 구름 멀리 뚫어 가락 모래 맴돌아라 / 曲徹彩雲流不得
대랑은 처음으로 자고사를 부르는걸 / 大娘初唱鷓鴣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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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시부 2 ○ 병한잡술(病閑雜述)
후오자시(後五子詩) 석주(石洲)는 말하기를 “전오자시(前五子詩)에 비하여 역시 어느 것이 낫다 할 수 없다.”하였다. 서(序)와 시 한 편은 병화(兵火)에 유실되었는데 한 사람은 누가 되는지 알 수 없다.
정시망(鄭時望) 시망의 이름은 응운(應運)이다
시망은 시 얘기를 아주 잘하여 / 時望善談詩
온 밤이 지새도록 소리 안 멎네 / 徹曉聲嘐嘐
맑은 품은 양양을 바라다보고 / 淸或企襄陽
심각함은 맹교와 같기도 하지 / 苦則如孟郊
기를 찾아 생각이 묘한 데 드니 / 搜奇思入妙
퇴고의 번거로움을 못 면하누나 / 未免煩推敲
말을 타고 밖을 나가 술을 찾으니 / 跨馬出覓酒
가는 곳마다 모두 털어 대접해 / 所至皆傾庖
거나하게 취하자 거리를 쓸며 / 醉扶行欄街
아동의 조소도 아랑곳 않아 / 不卹兒童嘲
비박(鄙薄)한 내 일찌감치 친교를 맺어 / 鄙夫早綰帶
칠 속에다 부레를 넣은 듯하이 / 有如漆投膠
아양곡은 지음을 귀히 아는데 / 峩洋貴賞音
세상에선 모두가 이로 사귀지 / 世途皆利交
우선 장차 시사를 굳혀얄진대 / 且以固詩社
떠들어대는 말을 따를 수밖에 / 尙口從讙呶
조선술(趙善述) 이름은 찬한(纘韓)이다
동오에는 육기와 육운이 있듯 / 東吳有機雲
그대의 학이 가장 박흡하구려 / 君學最博洽
넓고 커서 문장이 극에 달하니 / 浩蕩極文工
옛법 엄숙히 갖추었어라 / 森然有古法
빛나빛나 벽제 기름 발라 놓으니 / 瑩瑩鷿鵜膏
갑 속에서 갓 나온 용천검(龍泉劍)일레 / 龍淵初出匣
굴가의 벽루(壁壘)를 갈아 뭉개고 / 屈賈壘初劘
반장의 진영을 새로 눌렀네 / 班張陣新壓
저 백정의 무리들 가소로워라 / 嗤彼白珽徒
물소의 갑옷을 겨루란 말가 / 能攖水犀甲
계맹의 사이에서 나는 놀지만 / 吾遊季孟間
힘 모자라 몸소 삽을 잡을 수밖에 / 力薄身操鍤
기검에 통달함을 구경하면서 / 賞其洞機鈐
사단(詞壇)의 맹혈(盟血)을 함께 발랐네 / 詞盟許同歃
어찌 저 제갈공과 같으리까 / 肯似諸葛公
점잖게 도복(道服)을 입은 모습과 / 雍容着顔袷
기헌보(奇獻甫) 이름은 윤헌(允獻)이다
그대는 곧 정승님의 아우이건만 / 君是相公弟
얼굴 여워 가난한 선비와 같네 / 癯然若寒品
어릴 때부터 고시에 전력을 하여 / 少小力古詩
침식을 잊었어라 노래와 읊음 / 諷詠忘食寢
가끔 가다 진미를 얻게 되며는 / 有時得眞味
감천을 잔에 따라 마시는 듯이 / 如酌甘泉飮
대편은 말달리는 기세라며는 / 大篇倏騁驥
소장은 깁 얽은 듯 찬란하여라 / 小章燦摛錦
낙송은 어깨를 견주려 들고 / 駱宋肩欲齊
하리는 혀를 되려 날름거리리 / 何李舌還噤
궁한 신세 찾는 것은 다만 쌀인데 / 窮途只索米
어느 뉘 후한 정의 연름을 하리 / 厚誼誰捐廩
동지들은 부침을 잘도 하는데 / 同調善浮沈
그대를 알기로는 내가 제일인걸 / 知君吾最甚
자주 와서 창수를 하는 게 좋아 / 數來可唱酬
천지는 누운 사람 용납하느니 / 乾坤容伏枕
임무숙(任茂叔) 이름은 숙영(叔英)이다
서하의 민첩은 무릴 뛰어나 / 西河敏絶倫
만권서를 모조리 구송한다오 / 萬卷悉口誦
구구(九丘) 팔색(八索) 고문을 통달하여라 / 古文洞丘索
굴원(屈原) 송옥(宋玉) 이소를 이어받았네 / 離騷踵屈宋
더욱이 병우(騈偶)의 사(辭)에 능하니 / 尤工騈驪辭
서릉(徐陵)ㆍ유신(庾信) 종자가 따로 있으랴 / 徐庾寧有種
상림부는 공연히 과장뿐이요 / 徒誇上林賦
감천송은 쳐줄 것도 별로 못 되지 / 未第甘泉頌
중원의 숨은 보를 분석해내고 / 中原析藏譜
백왕의 이은 통서(統緖) 열어보였네 / 百王剖紹統
뚫어지게 알아 극히 넓고 깊으니 / 洞曉極廣深
장고는 장차 크게 수용될 걸세 / 掌故行需用
격렬한 의논은 분방해라 꿰뚫은 박식 / 劇論恣貫穿
명확한 고증은 내 응당 두려워 / 明核吾當恐
사귄 정 푸른 솔을 가리키면서 / 交情指靑松
눈서리에 함께 나길 기약합시다 / 霜雪期相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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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부부고 제2권 / 시부 2 ○ 화사영시(和思潁詩)
감호(鑑湖)를 추억하면서
내 집은 어디멘가 감호의 서쪽이라 / 我家住在鑑湖西
천암이랑 만학은 회계와 같고말고 / 千巖萬壑如會稽
고기와 새 구경하며 산택엘 방랑하니 / 愛看魚鳥放山澤
명예 이욕 무엇하리 전제와 같다오 / 笑遺名利同筌蹄
우연히 부를 지어 봉래전엘 올렸더니 / 偶然獻賦蓬萊殿
무지개를 뱉어냈다 채필을 칭찬하네 / 爭賞彩筆如虹霓
금문에서 피세하니 색미에 시달리며 / 金門避世困索米
동락이라 십년을 가을 벌레 들었노라 / 東洛十聽秋蛩嘶
흰 옷은 새까맣고 살쩍 눈 같으니 / 素衣化盡鬢如雪
조주를 회상하매 가는 꿈이 희미하구나 / 回首祖州歸夢迷
공연스레 입을 놀려 늘 기휘(忌諱)를 저촉하니 / 空敎轉喉屢觸諱
끓는 국에 손을 데자 냉채도 불게 되네 / 未免懲熱仍吹虀
연작은 저 아각에 모인 것만 자랑하고 / 燕雀徒誇集阿閣
신룡은 가다 더러 사니(沙泥)를 밟는구나 / 神龍或自蟠泥沙
인간의 온갖 일이 진실로 이같으니 / 人間萬事固如是
다리 두고 청운의 사다리를 밟지 못해 / 有脚不踏靑雲梯
귀문관 저 밖에는 나그네 길 널찍하니 / 鬼門關外客路闊
같은 시대 젊은이들 금서대(金犀帶)를 띠었는걸 / 同時俊髦猶金犀
울안에 갇힌 새가 스스로 날지 못해 / 樊翮翩翾不自擧
슬피 울며 몇 번이나 남지를 그렸는고 / 哀鳴幾憶南枝棲
누른 잔디 바삭바삭 하늘은 바다 닿아 / 黃茆蕭蕭天接海
백주(白晝)에도 습기 짙고 갈대 순은 오복하네 / 瘴煙盡黑蘆笋齊
객실은 사뭇 더워 시루 속에 앉았는 양 / 客軒煩墊坐深甑
오동(梧桐) 그늘 한낮이면 채계가 우는구려 / 桐陰日午啼彩鷄
아무리 굶주려도 꾸어먹을 곳이 없고 / 忍飢無處通假借
장어[鰻魚] 냄새 사나워라 논에는 피도 많아 / 鰻魚苦臭田多稗
그대가 그리워도 만날 길이 없어 / 思君見君不可得
있는 술 뉘랑 함께 옥잔을 나눌쏜가 / 有酒孰共斟玻瓈
반생의 이별 회합 슬픔 기쁨 하도 할사 / 半生離合足悲喜
어이타 사람 일은 너무도 어김 많군 / 長嗟人事極多睽
다슨 기운 덕택 입혀 시든 물건 살려내면 / 陽和布澤但蘇槁
여기서 동쪽 길로 말 몰아 돌아가리 / 東路自此鞭歸驪
옛 동산 솔과 국화 상기도 삼경이라 / 故園松菊尙三逕
느지막엔 농사터에 묻히기로 결단했소 / 自斷晩歲安農畦
풍류와 구학놀이 우리들의 일이거니 / 風流丘壑吾輩事
붕정에 오를 생각 다시는 말아다오 / 鵬路莫更思攀躋
내 스스로 강건하고 그대 또한 건장하니 / 我自康健子亦壯
서로 손을 마주 잡고 탐승이나 하자꾸나 / 探勝不妨相提携
섬강(蟾江)이라 남도에 묵을 언약 있을진대 / 蟾宮藍島舊有約
그대와 짝이 되어 어느 제나 밭을 갈지 / 幾日伴子同耕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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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시부 2 ○ 속몽시(續夢詩)
농두류수가(隴頭流水歌)
언덕 머리 흐르는 물은 / 隴頭流水
처절처절 말 줄 모르네 / 鳴鳴不已
서로 높은 산을 바라보니 / 西望高山
눈물을 그칠 수 없네그려 / 淚不可止
아침 나절 저 높은 언덕에 올라 / 朝登隴坂
아스라이 진천을 바라보네 / 遙望秦川
천리라 나를 생각하는 임 / 念我千里
해 저물고 옷도 홑겹 / 日暮衣單
손으로 높은 가지 부여잡고 / 手扳高枝
발로는 깊은 구덩 디디었네 / 足扳深坑
산은 깊고 골을 돌아라 / 山幽谷轉
길이 어찌 평탄하리 / 路不得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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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시부 2 ○ 속몽시(續夢詩)
탑동제(蹋銅鞮) 8수
대제가 궂다고 나는 말하나 / 儂道大堤惡
대제가 좋다고 낭은 말하네 / 郞道大堤好
대제에는 아녀가 많기도 하니 / 大堤多兒女
노래 춤에 늙을 줄 모른다고요 / 歌舞不知老
내 수레는 탑연을 지나가는데 / 儂車度蹋衍
임 수레는 구수를 건너가누나 / 郎車涉溝水
문을 닫고 금송아지 재촉을 하니 / 閉戶催金犢
임이 보면 부끄러워 죽고 싶으리 / 郎見羞欲死
사람들은 한수가 깊다 하지만 / 人言漢水深
첩에게는 평지처럼 보이거든요 / 妾視平如地
사람들은 현산이 높다 하지만 / 人言峴山高
첩에게는 한 덩이처럼 보이고요 / 妾看如一塊
이는 원미(元美)가 고친 것이다.
따뜻한 봄 삼월이 저물어가니 / 陽春三月暮
한가히 손 이끌고 풀싸움하네 / 携閒鬪百草
광장에 가득 모인 십만 사람이 / 廣場十萬人
일제히 나를 좋다 소리를 치네 / 齊聲道儂好
의성에는 꽃이 참 볼 만도 하고 / 宜城花可見
번성에는 술이 참 마심직하지 / 樊城酒可沽
가면은 혼자서 가지를 않고 / 行不獨自去
삼삼으로 오오로 짝지어가네 / 三三五五俱
낭군은 날 불러 어딜 가냐고 / 郎喚儂何出
의성 거쳐 대제로 가는 거로세 / 宜城去大堤
꽃이 피고 꽃이 지는 그날 또 그날 / 花開花落日
다투어 춤을 추며 백동제 가락 / 爭舞白銅鞮
채찍 휘둘러 빨리 고삐 날리니 / 揚鞭疾飛鞚
닫는 말 갈기를 높이 얽었네 / 快馬高纏鬃
밟고 차라 좌우로 마구 쏴대니 / 䟤跋左右射
가리키며 독호공이라 일러주네 / 指道督護公
빠른 말은 건아를 만나야 하오 / 快馬須健兒
건아는 몸과 손이 하 억세거든 / 健兒身手强
다만 서로 사랑을 물을 뿐이지 / 但問相愛否
도로가 먼 것쯤은 헤아리지 않아 / 不計道路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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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시부 2 ○ 속몽시(續夢詩)
삼대령(三臺令)
깁 장막 수 저고리 비단 띠에는 / 錦帳繡襦羅帶
원앙에다 비취에다 부용이로세 / 元央翡翠芙蓉
자전이라 홍합이라 동녘 바람에 / 東風紫殿紅閤
천자님은 천만년을 누리옵소서 / 天子萬歲千春
대궐 뒤 대궐 앞엔 능수버들 춤을 추고 / 殿後殿前楊柳
못 남쪽 못 북쪽엔 부용 송이 향 풍기네 / 池南池北芙蓉
진루의 봉취를 원치 않아라 / 不願秦樓吹鳳
낙포의 유룡을 장차 보세나 / 且者洛浦遊龍
섬라(纖羅)의 긴 저고리에 더펄머리 드리우고 / 被纖袿委飛鬌
비파를 퉁겨대며 양아를 노래하니 / 揳鳴瑟謳陽阿
미인은 취하련다 낯이 반만 불그레해 / 美人欲醉朱顔酡
홑 비단치마 끌고 꽃신을 발에 신고 / 揄單羅躡文舃
춤을 춰라 노래하며 요석을 스쳐가니 / 舞激楚撇瑤席
들보 먼지 휘날려라 붉은 촛불 가물가물 / 梁塵霏霏暗紅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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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시부 2 ○ 속몽시(續夢詩)
상청사(上淸辭)
채색 깃발 금 부절(符節) 선환을 에웠으니 / 彩幢金節擁仙寰
용덕이라 초원(初元)에 하반이 모였구려 / 龍德初元集賀班
자전의 이른 새벽 광악이 울리는데 / 紫殿曉開聆廣樂
채색 구름 빛나빛나 옥경산을 비추누나 / 五雲輝映玉京山
경륜이랑 우개는 단궁에 모였는데 / 瓊輪羽蓋集丹宮
상서 구름 뭉게뭉게 대공에 빛나누나 / 勃鬱祥雲煥大空
무극이라 시방이 안개처럼 몰려와서 / 無極十方來似霧
일시에 가지런히 서주 속에 드는구려 / 一時齊入黍珠中
이 수는 원미가 고친 것이다.
붉은 수레 푸른 연이 제천에 모여들자 / 丹轝綠輦會諸天
붉은 봉 검은 용이 앞뒤에 옹위했네 / 朱鳳玄龍擁後先
기록 맡은 상궁에서 일제히 적을 들어 / 主錄上宮齊把籍
무릎 꿇고 옥황 전에 생록을 아뢰누나 / 跪陳生籙玉皇前
도강은 녹을 들고 나는 구름을 밟아 / 桃康執籙躡飛雲
소대에 들어와서 태을군을 뵈옵누나 / 來覲蕭臺太乙君
적서를 손수 펴서 옥자를 두루 보며 / 手展赤書看玉字
동장이라 팔하문을 한가로이 읽는구려 / 洞章閑讀八霞文
신령한 밤 범기는 화대에 은은하고 / 神宵梵氣隱華臺
난의 수레 용의 깃발 사면으로 열렸구려 / 鸞輅龍旂四面開
새벽녘 구천에서 여러 임금 모여드니 / 拂曉九天群帝集
대궐 앞에 처음으로 옥신뢰를 터뜨리네 / 殿前初放玉晨雷
이마에 모인 삼화 원에 조하는 오기(五氣) / 三花聚頂氣朝元
청우를 놓아 타고 옥혼으로 인사가네 / 放着靑牛覲玉閽
구단이 팔석을 겸했다고 말을 마소 / 休說九丹兼八石
다만 저 관윤의 오천언만 실었는걸 / 只輸關尹五千言
선동들도 사처(私處)에선 푸른 바지 입었는데 / 仙童私地着靑裙
새벽 일산 아금에는 붉은 구름 감겼구려 / 曉蓋俄金纈紫雲
구색이라 놀빛은 전에 가득 향기론데 / 九色霞光香滿殿
뭇 진인들 다투어 와 옥황님께 절 드리네 / 衆眞來拜玉皇尊
요지라 푸른 물은 단방을 둘렀는데 / 瑤池翠水匝丹房
귀대 서쪽 바라보니 오색이 빛나누나 / 西望龜臺五色光
칠진에서 절 올리고 지극한 도 구하니 / 再拜七眞求至道
옥함이라 작은 금당 떠받들고 나오누나 / 玉函擎出小金鐺
구곡산(句曲山) 금단은 자허에 가까우니 / 句曲金壇近紫虛
상원이라 오색의 운거가 와 머물렀네 / 上元來住五雲車
금낭이라 녹급에 진결이 숨었으니 / 錦囊綠笈藏眞訣
유주의 사부서를 자기 손수 꺼내주네 / 自授流珠四部書
요희의 궁궐이 경운을 둘렀으니 / 瑤姬宮闕壓瓊雲
삼원이라 대도군께 멀리서 예 드리네 / 遙禮三元大道君
새벽이자 시녀들은 단옥의 상자 열고 / 侍女曉開丹玉笈
보경의 자청문을 처음으로 전수하네 / 寶經初傳紫淸文
구름 도포 용 수레에 범 가죽 주머니라 / 雲袍虯輦虎鞶囊
활짝 열린 옥당에 손수 금함 받들었네 / 手捧金函敞玉堂
말 들으면 구전(九轉)의 금단이 다 이뤄져 / 見說碧腴丹已轉
취대에서 태진을 맞아다 맛본다네 / 翠臺邀得太眞嘗
동연을 실컷 타고 지성을 생각하니 / 厭乘銅輦憶芝成
부구에게 예배하고 상청으로 조회가네 / 因禮浮丘覲上淸
삼십이라 육봉에 흰 학을 잡아타고 / 三十六峯騎白鶴
옥피리를 불어라 봉황 울음 짓는다오 / 玉笛吹作鳳凰鳴
명성이라 상상봉에 옥평상 싸늘한데 / 明星峯頂玉床寒
백록이며 운거는 석단으로 내려오네 / 白鹿雲車降石壇
상서 기운 뭉게뭉게 붉은 깃발 휘황한데 / 紫氣蔥籠明絳節
바둑 한창 어울려라 도끼자루 썩어가네 / 樵柯將爛局初闌
나는 수레 용의 멍에 삼청에 조회하고 / 飛軒龍駕覲三淸
때론 현주에 내려 적성에 유희(遊戲)하네 / 時下玄洲戲赤城
옥녀봉 꼭대기에 단이 이미 엉겼으니 / 玉女峯頭丹已合
인간에는 무슨 일로 가평의 설이 있나 / 世間何事臘嘉平
단속이랑 하장은 구찬을 마쳤어라 / 丹粟霞漿已九餐
푸른 무지개빛 옷은 둥근 자니 물들였네 / 翠霓裙染紫泥漙
요지의 한번 이별 삼천 년이 지났는데 / 瑤池一別三千歲
소매 속의 반도는 이슬이 안 말랐네 / 袖裏蟠桃露未乾
홍포를 펄렁여라 채부를 잡아타고 / 彩鳧朝擧獸袍紅
날아 경관을 끌어 자궁으로 올라가네 / 飛引瓊棺上紫宮
밤이자 벽성에서 잔치 자리 흩어지니 / 向夜碧城化煙散
오색의 구름 속에 봉소 소리 들리누나 / 鳳簫吹送矞雲中
상아와 비단장막 이 역시 세상이라 / 象牙錦帳亦塵寰
계수는 푸르른데 대산ㆍ소산 뉘 부르리 / 桂樹誰招大小山
붉은 눈은 상기도 금정 속에 남았으니 / 絳雪尙殘金鼎裏
구름 사이 울고 짓는 계견이 혐의로워 / 却嫌鷄犬鬧雲間
단구라 일천 년에 늦게야 돌아와서 / 丹丘千載得歸遲
화표주(華表柱) 가을 밤에 우의를 다듬누나 / 華表秋宵整羽儀
요해의 밝은 달에 사람은 어디 갔나 / 遼海月明人不得
성 밖의 옹기종기 저 무덤을 바라보소 / 試看城外冢累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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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낙화(落花)
비낀 바람 심술인 양 고운 꽃을 뒤흔들고 / 橫風作意擺嬋娟
붉은 비 부슬부슬 하늘 가득 떨어져라 / 紅雨霏霏落滿天
영락없이 요지의 잔치 모임 흩어져서 / 恰似瑤池春宴散
타환 표계 금자리에 쌓인 것과 흡사하네 / 墮鬟飄髻積金筵
땅에 져서 휘날리니 점점이 향기롭다 / 落地飄紅點點香
늦바람 불어다가 은상 위로 올려놓네 / 晩風吹去上銀床
그 누가 알았으랴 적막한 봄 다락에 / 誰知寂寞臨春閣
서비의 반면장을 남겨 얻을 줄을 / 留得徐娘半面粧
처참한 비바람이 늦게 더욱 많이 오니 / 凄風苦雨晩來多
연기처럼 꽃이 져라 연인들을 울게 하네 / 墮素如煙泣綺羅
아마도 삼랑이 서촉(西蜀)으로 거둥하여 / 應是三郞西幸蜀
옥안이 마외파서 영락을 당했나봐 / 玉顔零落馬嵬坡
원망하는 나비들 떨어진 꽃 감싸주며 / 怨蝶慇懃護墮芳
작은 동산 비낀 해에 사람 애를 끊는구만 / 小園斜日斷人腸
동황(東皇)님은 상춘의 뜻 알기라도 한다는 듯 / 東君似識傷春意
회오리바람 불어보내 한 마당 춤을 추게 / 吹作回風舞一場
서글프기 그지없다 짙붉음 연붉음아 / 怊悵深紅更淺紅
한꺼번에 다 떨어져 작은 뜰에 가득 찼네 / 一時零落小庭中
검푸른 이끼 위에 머무는 게 나을 텐데 / 不如留着靑苔上
무슨 심사 바람 따라 서에서 또 동으로 / 猶勝吹吹西復東
번홍이 날아 떨어져 향진 속에 버려지니 / 繁紅流落委香塵
비바람 무정해라 한 봄을 보내버려 / 風雨無情斷送春
한고에서 패물 준 아낙네 아닐진대 / 不是漢皐捐佩女
응당 금곡에서 타루한 사람이리 / 定應金谷墮樓人
복사 오얏 다투어 부귀를 자랑하며 / 桃李爭誇富貴容
대나무 소나무를 쓸쓸하다 비웃누나 / 笑他篁竹與寒松
석 달이라 봄빛이 잠깐 사이 가버리니 / 須臾九十春光盡
소나무 대나무만 만겹으로 푸르른걸 / 惟有松篁翠萬重
떨어진 잎 바람 따라 저마다 날아가서 / 墮葉因風各自飛
하나는 주렴 위로 하나는 방죽으로 / 一飄簾幕一汚池
뉘라 알리 영욕이 모두가 천분임을 / 誰知榮辱皆天分
봉이가 마음 써서 그리된 것 아니라네 / 不是封姨用意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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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무산(巫山)의 장옥랑(張玉娘)과 작별하며 지어주다
하얀 살결 눈부시고 붉은 눈 짙어가니 / 白玉生煙絳雪濃
이슥한 밤 깁 장막에 연꽃이 흐느끼네 / 夜闌羅帳泣芙蓉
지나가는 저 구름도 양왕 마음 안다는 듯 / 行雲似識襄王意
뭉게뭉게 에워싸네 무산의 십이봉을 / 來鎖巫山十二峯
옥랑의 사는 집은 대제의 서편이라 / 玉娘家住大堤西
붉은 문에 수양버들 하늘하늘 늘어졌네 / 朱戶垂柳嫋嫋低
누가 생각하리 습지의 말탄 손님 / 誰念習池騎馬客
백동제 노랫소리 취해 듣고 돌아감을 / 醉歸聞唱白銅鞮
천후산 앞에는 풀이 정히 꽃다운데 / 天吼山前草正芳
영랑호 호숫가에 지는 꽃 향기롭네 / 永郞湖畔落花香
놀잇배에 한봄을 가득 싣고 돌아가니 / 畫船載得春歸去
옥퉁소 드높아라 제향을 향하누나 / 吹徹鸞簫向帝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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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연각(連閣)에서 피지(避地)하여 팔절(八絶)을 짓다
내 살던 집 장릉 땅 작은 저자 동쪽이라 / 家在長陵小市東
두어 칸 초가집을 한 해나 비워두니 / 數間茅屋一年空
아첨 꽂은 만축서(萬軸書) 어디메로 가버렸나 / 牙籤萬軸歸何處
도랑 속에 안 빠지면 흙 속에 묻혔으리 / 不落溝中卽土中
조회 파한 한길 거리 수창이 울리는데 / 朝罷天街響水蒼
꽃 버들 일만 집에 피리 소리 들끓었네 / 萬家花柳沸笙篁
임금이 하루 아침 통명전을 하직하자 / 君王一別通明殿
노래하고 춤추던 터 전쟁터가 되었다오 / 歌舞場爲戰鬪場
선친의 분묘를 한수(漢水) 가에 모셨으니 / 先子丘墳寄漢濱
세시마다 누가 있어 무덤을 쓸어 주리 / 歲時誰是掃墳人
서녘으로 송추 보며 애간장을 끊어라 / 松楸西望腸堪斷
하늘 가에 해 저무니 수건 가득 눈물 젖네 / 日暮天涯淚滿巾
서새라 관하는 몇 천리의 길이더냐 / 西塞關河路幾千
이별 후 소식일랑 어떻게 전한다지 / 別來音信若爲傳
난리만 눈에 가득 더부살이 신세 같아 / 干戈滿眼身如寄
어디메서 구름 보며 낮잠을 자볼거나 / 何處看雲費晝眠
변새 북쪽 흉한 칼날 상기도 못 꺾어라 / 塞北凶鋒尙未摧
재 너머 서쪽 오랑캐는 어느 때나 돌아가지 / 嶺西封豕幾時廻
해 저문 연대에 봉화 불빛 평안하니 / 煙臺日暮平安火
높은 성에 적 아니 온 것 앉아서 알겠구려 / 坐識高城賊不來
천 자 높이 굳은 성곽 백 자 깊이 참호에다 / 千尺金城百尺壕
날카로운 화살 센 활에 칼도 또한 길어라 / 矢銛弓硬且長刀
막사 앞에 탁을 치며 군사 서로 하는 말이 / 帳前擊柝軍相語
애당초 태수님이 굳게 못 지켰다고 / 太守元來守不牢
어디서고 생애는 하나의 병든 승려 / 到處生涯一病僧
고요한 밤 떡집에서 등불을 마주 앉네 / 靜夜茆屋對篝燈
호사스러운 옛 습관을 씻어내기 어려우니 / 豪華舊習銷難得
내일에는 평원에서 매 사냥을 약속하네 / 明日平原約放鷹
제강의 공자는 자하의 신선이라 / 霽江公子紫霞仙
이별 후 편지 소식 양쪽 다 아득했네 / 一別音塵兩渺然
지난해 오늘의 달밤을 생각하니 / 懷憶去年今夜月
눈 속에서 말 나란히 고천을 찾았다오 / 雪中聯騎訪姑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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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두 공부(杜工部)의 회고시(懷古詩)를 보운(步韻)하다
임금님 장전은 용만의 위라면은 / 天王帳殿龍灣上
원수님 깃발은 조령의 사이로세 / 元帥旌旗鳥嶺間
우서가 북새에서 날아온 것 보았을 뿐 / 只見羽書來北塞
봉화가 남산에 닿았단 말 들었으리 / 豈聞烽火到南山
가을 벌에 해지자 패잔병은 울어대고 / 秋原日落殘兵哭
역수에 바람 슬퍼 장사는 돌아가네 / 易水風悲壯土還
양양이라 어진 태수 병마를 이끌고 와 / 稍喜襄陽賢太守
관문 방비하려 드니 적이 기쁘구려 / 欲將戎馬備重關
쌍룡검 밤이 되면 갑 속에서 슬피 우나 / 雙龍夜吼匣中悲
세 치 혀론 제왕의 스승 되기 어려워라 / 寸舌難爲帝者師
교주(橋柱)에 쓴 장한 마음 나라에 바쳤지만 / 題柱壯心元許國
누에 기댄 흰 머리는 때를 잘못 만났다오 / 倚樓華髮不逢時
구치는 스스로 제갈량을 좇자 하나 / 驅馳自擬追諸葛
사부는 도리어 좌사 보기 부끄럽네 / 詞賦還慚比左思
만호를 문득 차고 서새로 떠나가니 / 便佩曼胡西塞去
곡성의 황석을 의심치 말아다오 / 穀城黃石莫相疑
울밑에 노인 꿇자 문간에 관리 고함 / 翁跪籬間吏叫門
두 습유 시 속에 석호의 마을일레 / 拾遺詩裏石壕村
관가에 세금 낼 날 바로 앞에 닥쳤으나 / 官家納稅時雖迫
늙은 아낙 주림에 지쳐 눈이 하마 어두웠네 / 老婦啼飢眼已昏
쇠붙이 모아 봐야 일착이나 될까말까 / 聚鐵只堪成一錯
뽑는 병정 끝내는 외론 혼백 되고 마네 / 抄兵終亦作孤魂
민생이 고달파도 가렴주구 끝없으니 / 誅求不厭民生困
눈에 띄는 시름거리 어찌 다 말로 하리 / 觸目端憂詎可論
고평이라 밤중에 조후의 진(陣) 벗어나니 / 高平夜出條侯壁
긴 화살 가을을 타 한제궁에 울리누나 / 長鏑秋鳴漢帝宮
제와 충은 백도로 와 성 밖에 진을 치고 / 梯衝百道屯城外
수천 무리 고각 소리 참호 속에 울리누나 / 鼓角千群響池中
도호의 가슴에는 황석공의 책략 있고 / 都護胸莊黃石略
장군의 칼솜씨는 백원옹을 배웠다오 / 將軍劍學白猿翁
목을 잘라 기에 걸고 피 마시며 귀환하니 / 歸鞍飮血旗梟首
고금의 영웅들 사업이 한가지네 / 古今英雄事業同
중국 군사 밤중에 넓은 요하 건너와서 / 天兵夜渡遙河闊
새벽같이 철기 달려 큰 기 높이 휘날리네 / 鐵騎晨驅大旆高
활 힘은 시위 얻어 처음으로 달을 당기고 / 弓力得弦初引月
검광(劍光)은 갑에 튀어 털도 불면 자를 듯 / 劍花騰匣欲吹毛
악한 무리 드설레어 초벽(楚壁)을 쌓았는데 / 鯨鯢賸築張皇楚
피리 북은 기꺼이 경병조를 환영하네 / 笳鼓欣迎競病曹
이역에 젖은 은혜 모두들 기뻐하니 / 共喜皇恩沾異域
축요로 말미암아 괴롭다 아니할지 / 祝堯無乃聖躬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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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덕원(德源)에서 민박(民泊)하며
한밤의 슬픈 호가(胡笳) 성 밖에서 불어대니 / 城外悲笳夜半吹
성가퀴 비낀 저 달 수심 어린 눈쌀 펴네 / 女垣斜月展愁眉
강물줄기 아득히 되의 진을 나누었고 / 河流遠坼單于壘
바다빛은 아스라히 대장기에 서리어라 / 海色遙明大將旗
누에 기댄 왕찬은 공연스레 부나 짓고 / 王粲倚樓空作賦
도보하는 두보(杜甫)는 시만을 읊었다오 / 杜陵徒步只吟詩
싸움터 핏물 흘러 이수(伊水) 낙수(洛水) 넘칠 적에 / 空聞戰血傾伊洛
어느 누가 적 물리칠 육출기계(六出奇計) 짜낼 건가 / 却敵何人出六奇
비낀 달이 산 머금어 짙은 안개 맑게 개니 / 斜月含山宿霧晴
하인들은 저희끼리 떠날 길 얘기하네 / 僕夫相對語前程
한밤중에 춤춘다고 그대는 괴이타 마소 / 中宵起舞君休怪
때 아닌 닭울음도 나쁜 것은 아니라오 / 未必荒鷄是惡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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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남전일난옥생연(藍田日暖玉生煙)의 칠자(七字)를 운으로 삼아 무산(巫山) 장옥랑(張玉娘)에게 유증(留贈)하다
비단 치마 물에 비쳐 쪽빛을 빼앗았고 / 羅裙照水色挼藍
해장술 낯에 올라 붉은 기운 갓 익었네 / 卯酒入面紅初酣
요쟁을 골라타며 강남을 꿈꾸는데 / 瑤箏閑品夢江南
시름을 따지는 양 봄 제비는 종알종알 / 評愁語燕春喃喃
가슴 앞에 속절없이 의남초(宜男草)는 달렸는데 / 胸前空帶翠宜男
한없는 이별 정은 삼월이라 삼질일레 / 無限離情三月三
흰 옥을 누가 져다 남전에 심었는고 / 誰將白玉種藍田
군자는 덕을 견줘 곧고 굳다 일컬었네 / 君子比德稱貞堅
아침 햇빛 내리쬐니 붉은 연기 뭉게뭉게 / 朝暉下燭生紫煙
보배 기운 무지개라 구천에 찬란하구나 / 寶氣成虹絢九天
그대 위해 환 만들어 가슴 앞에 달아주니 / 爲君作環繫胸前
행여나 형산에서 까치에게 던지리다 / 遮莫抵鵲荊山巓
새우 수염 문 발에 아침 해 쬐이는데 / 蝦鬚簾箔烘朝日
바람은 꽃을 날려 보슬에 적시누나 / 風送飛花沾寶瑟
홍조는 뺨에 돌고 눈시울은 거풀지니 / 紅潮暈頰眼生纈
반룡이라 금굴슬을 반이나 벗었구려 / 半脫盤龍金屈膝
석 달이라 봄빛도 어느덧 가버리니 / 春光九十轉頭失
강랑은 부질없이 채필만 바쁘구려 / 漫思江郞勞彩筆
향기 짙은 수 이불에 원앙새 다사롭고 / 香濃綉被元央暖
보채 누운 베개 밑에 검은 구름 어지럽네 / 寶釵落枕玄雲亂
붉은 촛불 훌치어라 바람은 장막 걷고 / 絳燭搖紅風捲幔
경루라 서쪽에는 은하수가 나직쿠나 / 瓊樓西畔低銀漢
새 울고 달이 지니 밤은 장차 반이로세 / 鳥啼月落夜將半
무산이라 십이봉에 봄꿈은 짧구려 / 十二巫山春夢短
원망 어려 목이 막힌 옥통소를 불어대니 / 雛鸞怨咽參差玉
복사 뺨에 추위 스며 가만히 한속(寒粟)이네 / 寒勒桃顋生暗粟
단장 흐린 낡은 눈썹 끊겼다 이어지고 / 粧褪殘眉山斷續
은 병풍에 새벽이라 붉은 촛불 눈물짓네 / 銀屛向曉啼紅燭
침상에서 일어나 난간에 함께 의지해 / 起來同凭闌干曲
봄 물에 목욕하는 원앙을 탐내 보네 / 貪看春水元央浴
꽃 떨어진 대제에 봄 물이 불었는데 / 花落大堤春水生
미인은 새벽이자 양양성을 벗어나네 / 佳人曉出襄陽城
다홍치마 풀싸움 꽃 밟고 거닐면서 / 紅裙鬪草踏花行
고운 노래 불러라 피리 쌍쌍 화답하네 / 艶歌吹和雙鸞笙
백마는 울어대라 붉은 고삐 감아쥐니 / 驕嘶白馬擐紅纓
버들 밖의 낭군님네 도리어 정이 들어 / 柳外郞君還有情
옥섬돌 이슬 방울 맑은 연기 젖었는데 / 瑤階露華濕晴煙
모란 머리 무거워 바람 앞에 조누나 / 牧丹頭重當風眠
붉은 치마 폭마다 홍전으로 만들어라 / 霞裙葉葉裁紅牋
미인은 자다 일어나 어깨를 가지런히 / 美人睡起齊香肩
먼 하늘에 채란이 소식을 부쳐오니 / 彩鸞消息寄遙天
반도는 열매 맺어 삼천 년이 지났다고 / 蟠桃結子三千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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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잠 상인(岑上人)의 축(軸)에 쓰다
금 시내 선들선들 숲 끝에 울리는데 / 泠泠金澗響林端
높고 낮은 쌓인 돌에 길은 서려 백 구빌레 / 亂石高低路百盤
꽃비는 살짝 젖어 솔이슬 떨어지고 / 花雨細沾松露滴
하늬바람 노상 보내 바다 물결 싸늘쿠나 / 天風常送海濤寒
경단이라 패엽 뒤지는 중 많잖은데 / 經壇貝葉僧翻少
탑원의 얽힌 배는 새가 쪼다 남았구려 / 塔院交梨鳥𠸌殘
심지를 고사에게 물을 기회 못 얻으니 / 心地未將高士問
서검을 손에 들고 안장 먼질 다시 터네 / 更携書劍拂塵鞍
쏟는 물결 골 부딪혀 운근을 파먹는데 / 崩濤舂壑嚙雲根
바위 구멍 다투어 높은 대사 쳐다보네 / 嵒竇爭瞻大士尊
뉘라서 법신 향해 망상을 일으키나 / 誰向法身興妄想
초지를 찾아서 참 근원을 물으리라 / 欲尋初地問眞源
바람 맑은 불전에 처마 방울 속삭이고 / 風淸佛殿簷鈴語
이슬 젖은 선지에 잘 새가 우짖누나 / 露濕禪枝宿鳥喧
다행이도 함께 온 목상좌 있고 보니 / 幸有同來木上座
날 붙들어 감원을 찾아가도 되겠구만 / 不妨扶我訪紺園
높이 솟은 쌍죽은 참 선비 알고말고 / 湧空雙竹識眞儒
금벽이라 누대는 법의 세계 닦았구려 / 金碧樓臺法界修
용은 바다 물결 차서 부처 뼈에 침노하고 / 龍蹴海濤侵佛骨
새는 꽃비 머금어 바윗머리 떨어지네 / 鳥銜花雨墮巖頭
기원이라 옛 일을 중이 능히 얘기하니 / 祇園舊事僧能說
선탑이라 맑은 밤에 길손이 머물렀네 / 禪榻淸宵客解留
마니를 얻어 내어 탁수에 비치어라 / 乞與摩尼照濁水
떠 있는 이 인생을 마음 깊이 깨달았소 / 頓令心覺此生浮
영한 바람 바달 불어 오산이 은은한데 / 靈風吹海隱鰲山
영롱한 금찰은 붉고 푸른 사이로세 / 金刹玲瓏紫翠間
놀이꾼은 느지막에 종소리를 따라 들고 / 遊客晩隨淸磬入
늙은 중은 갠 날에 푸른 산을 대했구려 / 老僧晴對碧山閑
몸 앞의 업장은 속절없는 탄지라면 / 身前業障空彈指
병 뒤의 공부는 다만 공놀리기 / 病後工夫只弄丸
꽃 날리는 천녀를 향하여 묻노니 / 識向散花天女問
용화의 모임 자리 거듭 참여 허할는지 / 龍華會席許重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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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낙산기유(洛山記遊)로 암 노석(嵒老釋)에게 주다
설악산 높아높아 창공에 꽂혔으니 / 雪嶽之山高揷空
일만 옥이 다투어 푸른 놀에 솟았구려 / 萬玉爭聳靑霞中
한줄기 꿈틀거려 오봉을 지어내니 / 蜿蜒一脈作五峯
바다 위에 금부용이 우뚝이 빼어났네 / 海上秀出金芙蓉
영도는 암암리에 보타와 어울려라 / 靈圖暗與寶陁合
유궁은 예부터 원통이 장엄하이 / 幽窟自古莊圓通
용천팔부들이 법종을 베푸니 / 龍天八部設法從
백호(白毫)는 빛을 내쳐 동쪽 바다 비추네 / 白毫光照滄溟東
금산의 장로는 부처님의 후신이라 / 金山丈老佛後身
석장 짚고 여기 와서 이궁을 얻었다네 / 一錫來瞰得異宮
백의의 대사가 진상으로 나타나서 / 白衣大士現眞相
마니 구슬 내려주어 묵은 업장(業障) 없앴다오 / 投下摩尼除宿障
전단이 옥을 바쳐 대가 땅에 솟아나니 / 旃檀貢玉竹湧地
경각 사이 화궁이 구름 밖에 세워졌네 / 頃刻花宮雲外創
채색 노을 창에 비쳐 벽에 어린 붉은 색깔 / 彩霞射牖丹寫壁
나는 듯 솟은 누각 빽빽이 마주보네 / 飛樓聳閣森相向
일곱 겹의 구슬발이 주전을 가리웠고 / 七重珠網鎖珠殿
세 발 달린 금오가 금방으로 날아들어 / 三足金烏翥金牓
향화에 정근한 지 자그마치 천 년이라 / 精勤香火一千年
장엄한 그 공덕 진실로 끝이 없네 / 功德莊嚴信無量
어느 해에 임금께서 자해를 순행했나 / 何年淸蹕慈海巡
암자마다 연이어 채장을 옮기었네 / 嵒竇聯翩移彩仗
임금께서 만월의 용모를 알아보니 / 重瞳親識滿月容
법뢰는 소리 흘려 공악이 울렸어라 / 法雷流音空樂響
새는 꽃비 머금어 천의에 떨어지고 / 鳥銜花雨墮天衣
용은 향운을 뱉어 어장을 감쌌다오 / 龍吐香雲籠御帳
그 향운 그 꽃비가 공중으로 사라지니 / 香雲花雨入空去
임금 행차 아득아득 물을 곳 없네그려 / 縹緲宸遊問無處
산문의 성사가 이보다 더할쏜가 / 山門盛事此最雄
노승들 이야기 지금도 들려주네 / 只今猶聞老僧語
내가 온 때 바야흐로 팔월달 맑은 가을 / 我來正値淸秋節
죽장에 짚신 신고 숲 속을 걸어가니 / 竹杖芒鞋步林樾
바다에 부는 천풍 산악을 뒤흔들어 / 天風吹海動雲根
바라보니 놀란 파도 불골에 침노하네 / 笑看驚濤侵佛骨
이화정 가에서 달 뜨기를 기다리니 / 梨花亭畔待初月
옥바퀴 돌아돌아 하늘로 떠오르네 / 玉輪輾出琉璃滑
계수나무 그림자 금계를 뒤덮으니 / 桂影婆娑遍金界
일천 바위 변하여 구슬 굴이 되는구만 / 千巖變作瓊瑤窟
선들선들 마치도 바람탄 열자인 듯 / 冷然似馭列子風
황학의 등에 올라 부구를 붙들고자 / 欲挹浮丘跨黃鶴
함께 간 풍류승이 티끌 생각 벗어나니 / 同遊韻釋出塵想
총채를 휘두르며 선 이야기 싫지 않아 / 揮麈談禪也不惡
법라의 혀끝으로 인천을 다 흔드니 / 人天掉盡法螺舌
부생이란 주착이 없다는 걸 깨달았네 / 頓覺浮生無住著
사리가 재촉하여 오경종을 두들기니 / 闍梨催打五更鍾
새벽녘 동쪽 방에 비단발을 걷는구나 / 曉上東房褰綉箔
둘러싼 향기 구름 양곡을 가렸는데 / 繚繞香雲掩晹谷
고래가 화주 끌고 푸른 하늘 날아가네 / 鯨引火珠騰碧落
문을 닫고 향 피우니 일 만 생각 맑아져서 / 焚香閉閣萬慮淸
부처님 설법하신 미타경을 다 읽었네 / 讀盡佛說彌陀經
미진을 건너갈 보벌도 빌렸어라 / 迷津已借寶筏渡
각로에서 다시 또 금승을 찾아가네 / 覺路更覓金繩行
이 몸은 황홀하게 극락 땅에 와 있는데 / 恍然身在極樂土
묘오에 어찌 꼭 명성을 봐야 하나 / 妙悟何必看明星
내 한평생 발걸음 모두 길을 잃었는데 / 平生投足摠失路
무슨 일로 하늘이 이 구경 막지 않지 / 何事玆遊天不阻
원컨대 이 몸을 유마에 기탁하여 / 願將身世寄維摩
우리 스님 짝을 삼아 부처님께 참여하리 / 長伴吾師參佛祖
언젠간 벼슬 놓고 행각을 머물리니 / 投簪他日住行脚
청련의 한 탑자릴 나에게 허해주오 / 一榻容我靑蓮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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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옥준 선사(玉俊禪師) 오기가(五嗜歌)
낙가선사(洛迦禪寺)에 노승이 있는데 이름이 옥준(玉俊)이었다. 도가 높고 깨달음이 투철하여 쌍림사(雙林寺)에서 그를 높였다. 그러나 세쇠한 행동에 구애를 받지 않아 사람들이 그를 등은봉(鄧隱峯)에 비겼다. 조사(祖師)가 평생에 즐기는 것이 있는데, 술마시기, 말부리기, 활쏘기, 장기두기가 그것이다. 내가 들으니 그는 부(府)의 기생 양대월(陽臺月)과 더불어 마등가(摩登迦)의 사(私)가 있었다고 하므로 색(色) 좋아하는 것을 보태어 오기가를 지어주는 바다.
내 들으니 승려들은 재주도 많다는데 / 吾聞浮屠之法多技能
이 스님 신통승으로 가장 이름이 났네 / 上人最號神通僧
뼈대는 금사자요 용력은 향상이라 / 骨雄金獅力香象
코는 수미산과 같고 이마는 가릉일레 / 鼻若須彌額迦陵
전신은 단정코 등은봉(鄧隱峯)이려니와 / 前身定是隱峯鄧
유색이나 무색이나 모두 다 초월했네 / 有色無色俱超昇
바라의 가벼운 때 내게 무슨 구애이랴 / 婆羅輕垢不我拘
때때로 가슴속에 승지(澠池) 같은 술을 붓네 / 胸次時澆酒如澠
큰 고래 들이마셔 온갖 냇물 다 마르니 / 長鯨吸盡百川竭
취하여 춤을 추다 꺾인 솔 몇 번이냐 / 醉舞幾見霜松折
악와의 좋은 말이 무지개를 뱉어 내어 / 渥洼龍種氣吐霓
갈기 세워 길게 울며 흘린 땀 피 같으니 / 奮鬣長鳴汗血流
금고삐 옥굴레로 얽매임을 받질 않아 / 金韁玉勒不得馬
조보ㆍ왕량 모두 다 두려워 물러나네 / 造父王良皆辟易
우리 스님 신통력은 금강을 운전하여 / 吾師神力運金剛
손으로 갈기 끌고 봉의 가슴 올라타니 / 手抳風鬃登鳳臆
바다를 갈라 가는 금시의 새가 날아 / 有如擘海金翅雕
벽력같이 내려와서 용궁을 격파하듯 / 霹靂下擊龍王宅
채찍 잡고 재갈 물려 산골 언덕 달려가면 / 垂鞭嚲鞚驀澗坂
닫는 토끼 나는 까막 모두가 못 미치네 / 兎走烏飛摠不及
중년에 활을 배워 초 나라 양유기(養由基)라 / 中年學射楚養叔
창 틈에 매단 이를 능히 쏘아 맞혔다네 / 懸蝨牖間能罷的
따뜻한 산언덕 더부룩한 풀숲 속에 / 山坡日暖草蒙茸
희게 칠한 과녁이 청림 속에 높이 걸려 / 粉鵠高掛靑林中
절진의 제공들이 관덕하러 모였는데 / 節鎭諸公會觀德
채색 깃발 나풀나풀 봄바람에 나부끼네 / 彩旣飄拂搖春風
방포에 비스듬히 금비구를 동여매고 / 方袍斜繫錦臂鞲
오호궁에 흰 화살이 반만큼 꼬여 있네 / 雪鏃半撚烏號弓
달이 둥글 별이 반짝 북이 둥둥 울리어라 / 星翻月滿疊鼓響
한 눈에 깨달았네 적수가 없다는 걸 / 目下便覺凡才空
때때로 일 없을 땐 장기를 차려놓고 / 有時無事著象棋
서른두 쪽 글자로서 용의 싸움 기발하네 / 三十二字龍鬪奇
차 달리고 말이 나가 병졸을 도와주고 / 車奔馬進翼兵卒
장수와 사졸 진영 굳혀 포화가 나르누나 / 將士堅營砲火飛
한낮의 긴 대청에 맑은 하늘 우박 소리 / 日午長廊響晴雹
으시대고 호통치며 자웅을 겨룬다오 / 憑凌絶叫爭雄雌
증병은 막 행군하는 한 나라 장수라면 / 增兵初似漢將行
감조는 이동하는 제 나라 진영과 같네 / 減竈還如齊壘移
도끼자루 썩어도 판은 아직 안 끝나니 / 柯消斧爛局未撤
인간이라 삼만 날을 혼자서 차지한 것 / 占斷人間三萬日
어찌 알리 천녀 마등가가 나타나서 / 豈知天女摩登迦
아난에 친압하여 당돌하게 나올 줄을 / 來狎阿難恣唐突
별 눈동자 꽃 얼굴 아름다운 그 용모에 / 星眸花面逞嬌容
구슬 같은 한 시름에 아름다운 말솜씨로 / 玉恨瓊愁翻巧舌
몸을 숨겨 막에 돌아와 불계를 깨뜨리니 / 潛身入幕破佛戒
자비심이 갑자기 애정으로 바뀌었어라 / 忽把慈悲變眞愛
정안이 뒤집혀 부정안이 이뤄지고 / 淨眼翻成不淨眼
욕계가 도리어 무욕계를 낳는구나 / 慾界還生無慾界
선상이 변하여 비단 요로 되어 있고 / 禪牀化作綉褥布
나황이 탈을 바꿔 유소가 달리다니 / 蘿幌幻出流蘇護
보리의 감로라 한 가닥 물줄기가 / 菩提甘露一派水
도리어 양대 향해 저녁 비가 되었다네 / 却向陽臺爲暮雨
몽우가 휘날리어 만다화 흩어지니 / 夢雨飛散曼陀花
예쁜 구름 한번 가라 찾을 곳 전혀 없어 / 嬌雪一去無尋處
뉘 알 건가 장막 안 일각의 즐거움을 / 誰知斗帳一刻歡
이제껏 임승들이 배를 쥐고 웃는다오 / 至今林僧捧腹語
우리 스님 우리 스님 진실로 환 잘하네 / 吾師吾師信善幻
이와 같은 풍류를 어찌 익히 볼 수 있나 / 物外風流渠見慣
원가가 기뻐해라 빚을 하마 갚았으니 / 冤家歡喜債已償
마음 씻고 피안을 오르기에 해롭잖아 / 未害洗心登彼岸
버들 뚫는 활 재주와 말 부리는 그 솜씨로 / 穿楊之藝善御技
어찌 멀리 전장에서 승리를 얻지 않겠나 / 何不遙收戰場利
아니면 군막에서 전략을 짜내어 / 不然運籌坐幄中
작전을 지휘하여 날랜 군사 부려보지 / 指揮戎機驅猛士
주지에 물결 쳐라 그 양을 뉘 말리리 / 波騰酒池量難涸
아들 나면 첨정이라 응당 나쁘지 않아 / 生子添丁也不惡
스님 위해 제하여 오기가를 지었노니 / 爲師題作五嗜歌
남겨 시인에게 주어 한번 서로 웃자꾸나 / 留與詩人共笑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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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청학산(靑鶴山)에 들어가는 양비로(楊毗盧)를 전송하다
비로는 해객 선생(海客先生)의 아들이다. 처음에 해객이 봉래산(蓬萊山)에 올라 넓고 큰 기운을 가슴속에 수습하고는 정기를 저축해 가지고 집에 돌아와 마침내 이 아들을 낳았는데, 뛰어난 형용과 드높은 재주가 봉래산과 서로 닮았으므로 인하여 비로봉이라고 자호(自號)하였다. 을미년(乙未年)에 장차 청학산으로 들어가려 하면서 나에게 장편시(長篇詩)로써 전별(餞別)해 줄 것을 요구하므로 나는 마침내 입에서 나오는 대로 글을 엮어 주었다. 이 때문에 말이 두서가 없다. 청학산은 명주부(溟州府)의 북쪽에 있는데 봉우리와 골짜기의 아름다운 경치가 봉래산과 비슷하다. 한 쪽에는 청학(靑鶴)이 와서 살고 있으며 그 안에는 구룡연(九龍淵)이 있는데, 바로 오대(五臺)의 동쪽이다. 비로가 이와 같다고 말하였다.
양곡의 서쪽 벽해 위에 / 暘谷之西碧海上
신오는 봉래산을 떠받들었네 / 神鰲戴出蓬萊山
드높은 일만 이천봉 / 嵯峨一萬二千峯
백옥을 연하 사이에 묶어 세운 듯 / 白玉束立煙霞間
층층의 바위와 큰 골짝엔 신선의 발자취 숨었으니 / 層硿絶壑祕仙蹤
정상(頂上)은 있으나 등반한 사람 없네 / 雖有絶頂無人攀
가장 높은 비로봉은 하늘에 꽂혔으니 / 最高毗盧峯揷天
여러 산이 자손처럼 둘러 있네 / 諸山環侍如兒孫
주름진 바위에는 옛이끼 끼어있고 / 奇巖襞積古苔鎖
우뚝 솟아 아스라히 제혼을 떠 괴었으니 / 斗起蒼然撑帝閽
저 높은 태산(泰山) 말고 / 始知嵩高岱宗外
또다른 높은 산 있음을 비로소 알겠네 / 別有突兀他山尊
부상의 여섯 용이 태양을 붙들고 / 扶桑六龍扶火輪
날마다 산허리를 감고 도네 / 日日每傍山腰行
봉황새 타고 선부(仙府)에 내려오니 / 驂鸞翳鳳下仙曹
열두 누대 옥청궁(玉淸宮)에 연해 있네 / 十二樓居連玉淸
뗏배를 탄 해객은 자하의 생각 / 乘槎海客紫霞想
붓 끝에 산천의 온갓 정기 거두었네 / 筆端收拾山精英
정신이 돌을 꿰뚫으니 돌도 갈라져 / 精神貫石石爲裂
큰 글씨는 봉우리와 웅장을 다투려 드네 / 大字欲與峯爭雄
미산은 소씨를 낳았고 오악은 보후 낳았으니 / 眉山挻蘇岳降甫
영기는 은은히 아침 구름과 통하네 / 毓靈暗許朝雲通
자개성(紫蓋星)의 신기 탯속으로 내려와 / 紫蓋神氣下中胎
비단 이불에서 기린 같은 아이 나오니 / 錦襁初脫麒麟兒
머리는 오악을 닮고 눈은 사해를 닮아 / 頭森五岳目四海
천하의 기남(奇男)이라 팔척의 장신 / 八尺長身天下奇
이마와 코는 우뚝한 바위인 듯 / 巉巖額鼻鑿峯房
비로봉의 진면목을 대한 듯하네 / 怳對毗盧眞面目
인공이 어찌 조화를 마음대로 하겠는가 / 人工豈可擅造化
일을 좋아하는 천공 기쁨이 지극하네 / 好事天工眞喜極
전신의 묵은 버릇 완전히 없어지지 않아 / 前身習氣未全磨
남 대하면 제자신 비로봉이라 하네 / 向人自道毗盧峯
세상에서 바야흐로 다리 있는 산을 보겠으니 / 世間方見有脚山
방장(方丈)ㆍ영주(瀛州) 해중에 떠 있음과 어찌 다르리 / 何異方瀛浮海中
미불 같은 사람에게 절 받기가 귀찮아 / 塵寰厭答米芾拜
선산에 고개 돌려라 돌아갈 흥 무르익어 / 回首仙山歸興濃
명주의 북쪽이라 오대산의 동쪽엔 / 溟州直北五臺東
지초 쌓인 궁궐이 허공에 솟아났네 / 芝成宮闕生虛空
뭇봉우리 나는 폭포와 동부를 이루었는데 / 攢巒飛瀑作洞府
그 아래는 주담이라 구룡이 숨었구려 / 下有珠潭藏九龍
일주의 층대는 쌍궐을 굽어보는데 / 層臺一柱俯雙闕
유월에도 하얀 눈 낙락장송에 휘날리네 / 六月晴雪飄長松
둥지 찾는 청학이 구름 짝해 날아드니 / 尋巢靑鶴伴雲飛
알괘라 이게 바로 요동의 정령위인 줄 / 知是遼東丁令威
흰 저고리 검정치마 말조차 또렷또렷 / 玄裳縞衣語星星
묻노라 비로 너는 어느 날에 돌아가지 / 問渠毗盧何日歸
돌 사립 적막해라 혜초 장막 싸늘하니 / 巖扉寥落蕙帳冷
만 골짝 솔바람을 뉘와 함께 들을 건고 / 萬壑松風誰共聽
북산이라 이문이 이뤄진 지 오래니 / 北山移文已勒成
어서어서 막대 소리 돌길을 울리도록 / 須把筇枝嗚石逕
산사람은 산을 아껴 아니 나니 / 山人愛山不出谷
이따금 조각 구름 처마 밑에 자고 가네 / 時有片雲簷下宿
천향은 망에 가득 달빛은 고요한데 / 天香滿室月色空
경쇠 소리 맑아라 안개 너머 떨어지네 / 疏磬冷冷煙外落
약로라 경권이라 몸 담을 곳 더없는데 / 藥爐經卷可棲遲
맑은 물 밝은 촛불 생계마저 넉넉하이 / 淸水明燭生計足
막대 하나 병 하나로 거뜬히 돌아가니 / 飄然甁錫返林泉
집을 나자 집 잊은 선이 되고 말았다오 / 出家已做忘家禪
산신령은 비로를 만난 것 하 기뻐 / 山靈應喜得毗盧
가장 높은 산마루에 올려 놓게 되었다오 / 置于最上之山巓
석름봉 천주봉은 항렬이 같다면 / 石廩天柱作同行
안탕산 부용산은 아우 언니 되었구려 / 雁蕩芙蓉爲弟昆
깎은 듯한 풍채 표표하게 우뚝 서니 / 風儀戍削表獨立
풍악도 이제부턴 안색을 빼앗기리 / 楓岳從今奪顔色
취한 잔나비 도사로 변할라 말고 / 勿使醉猿化道士
바위 틈에 노상 있어 괴석이 되었다오 / 長向巖間爲怪石
내 인생은 강해라 하나의 한객이니 / 我生江海一閑客
산 오르는 납극을 몇 켤레나 없앴는지 / 幾費登山雙蠟屐
종당에 옷 떨치고 천 길 비로 곧장 올라 / 會須振衣直上毗盧千仞岡
그대 함께 한번 웃으며 좁은 천지 내려보리 / 與君一笑下觀天地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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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회원당시(懷遠堂詩) 현산(峴山) 이 첨지(李僉知)의 집 마루에 제(題)하다
양양성 서쪽이라 대제의 북쪽에는 / 襄陽城西大堤北
이 가운데 아름다운 동네가 있네 / 中有林泉藏洞府
산은 끊기고 물은 감돌았는데 / 斷崖開麓水縈廻
단청은 신선의 집을 그려내었네 / 丹靑畫出神仙宇
풍경은 습가지와 방불하니 / 風煙彷彿習家池
정자와 누대엔 아름다운 나무 울창하네 / 亭榭蔥籠種芳樹
주인은 신선의 장수 누렸는데 / 主人眉壽亭喬松
대로 만든 수레 몰며 댓길을 울려오네 / 咿軋笋輿嗚竹路
오십 년 동안 구름과 노을 마시며 / 雲霞呑納五十年
시내와 산을 차지해 한가한 정취 만끽했네 / 占斷溪山飽閑趣
이수가에는 일로당이 처음 이뤄졌고 / 伊水初成佚老堂
망천에는 신이오를 쌓아 놓았네 / 輞川旋築辛夷塢
나는 봉황 같은 용마루는 추녀를 눌러 있고 / 甍翔鳳翼壓璇題
무지개 허리 같은 굽은 들보는 기둥을 받쳐 있네 / 梁屈虹腰承綉桂
열두 개의 그림 난간 꽃가지가 들어오고 / 畫欄十二花枝入
바람이 주렴(珠簾) 움직이니 붉은 비가 내리는가 의심하네 / 風動緗簾灑紅雨
용은 금방을 감았는데 자획(字畫)이 힘차니 / 蛟纏金牓字鬱律
공손랑(公孫娘)의 칼춤을 보는 듯하네 / 若見公孫龍劍舞
회원당이란 이름 무슨 의의인가 / 堂名懷遠亦何義
풍수의 남은 슬픔 토할 수 없어 / 風樹餘哀茹未吐
다시는 색동옷 입고 뜰 앞에서 장난할 수 없는데 / 綵衣無復戲庭前
서쪽으로 부모 산소 바라보니 안개만 자욱해라 / 西望松楸隔煙霧
책상머리에는 부질없이 육아시가 덮여 있고 / 牀頭空掩蓼莪詩
봄 이슬 가을 서리 밟으며 슬퍼하네 / 含愴春秋履霜露
부모 그리워하는 정성 화타(華陀) 편작(扁鵲)에게 붙이니 / 念親誠孝寓華扁
화석의 이름난 정자 나는 - 원문 빠짐 - 못하네 / 花石名亭吾不□
고령(高齡)에 즐거움은 선(善)의 보답을 받음이라 / 高年佚樂餉厚報
비로소 하늘의 부여 공평함을 알겠네 / 始識天公公賦與
수성인 남극성은 광채 더하니 / 壽星南極動光彩
지초 영춘은 사시사철 봄이라오 / 芝草靈椿春不暮
평생에 원노산을 알고자 했으나 / 平生欲識元魯山
구름 속의 봉황새 하도 높아 못 보았네 / 雲鳳層霄違快覩
자기관 밖에서 잠시 보이니 / 紫氣關外暫奉袂
아무것도 모르는 동자 특별한 예우 받았네 / 童子何知逢禮數
동자와 노인 엄연히 대조되니 / 鸞童鶴髮儼相映
경옥(瓊玉) 가루 줄줄 파리채에 떨어지네 / 瓊屑霏霏落談麈
술잔의 청아한 흥취는 공 북해인 듯 / 樽罍淸興孔北海
구학의 풍류는 사 태부와 같네 / 丘壑風流謝太傅
아름다운 시구로 화려한 집에 빛내지 못함을 한하니 / 恨無佳句賁華構
은미한 말로 비단 같은 문장 화답할 수 있으랴 / 豈有微言賡綺語
옥쟁반의 대추는 쌓놓은 구슬을 씹고 / 瓊盤大棗嚼堆珠
유리잔의 용다는 끓는 것을 먹네 / 瑠椀龍茶餐潑乳
꿈속에 황홀하게 대라천에 들어가니 / 恍然夢入大羅天
몸소 지륜을 몰고 현포에서 희롱하였네 / 身馭芝輪戲玄圃
나는 영해로부터 봉래를 찾아 / 我從瀛海訪蓬萊
삼베 버선과 푸른 행전으로 한가히 걸었네 / 布襪靑纏騁閑步
시내와 산 곳곳마다 집 지을 만한데 / 溪山隨處可結茆
다만 지주될 고사(高士) 없음이 한이라오 / 只欠高人爲地主
십묘쯤 되는 양선의 토지를 사 / 願買陽羨十畝田
가까운 곳에서 장자(長者)를 모신다면 / 隙地依仁陪杖屨
굳이 귀거래사(歸去來辭) 다시 읊고 / 不須更賦歸去來
의관 벗어 신무문에 걸 것 없네 / 經把衣冠掛神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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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이중화(李仲和)의 읍청정(挹淸亭) 사시운(四時韻)
춘(春)
정자에 제비 날고 지는 꽃이 향기로워 / 燕飛芳榭落花香
사모(紗帽)를 벗고 잠이 드니 낮꿈이 길었어라 / 閑脫紗巾晝夢長
연지분이 불지 않아 볼무늬 지워지고 / 蝶粉未滋收頰暈
아황이 퇴색하니 궁장이 닦여졌네 / 鵝黃初褪拭宮粧
시내 가득 비단 물결 난정에 침노하고 / 溪生錦浪侵蘭艇
주렴 두른 화로 연기 죽상을 눌러대네 / 簾繞爐煙鎖竹床
구십 일 봄절기는 바로 곧 한꿈이라 / 九十日春都是夢
다시금 시와 술로 연광에 보답하네 / 更將詩酒答年光
하(夏)
작은 못 넘실넘실 푸른 연 향기론데 / 小池晴漲碧荷香
비단 깃 생을 타며 날 따라 자라네 / 綿羽調笙趁日長
연기 띤 긴 대는 분탁을 드러내고 / 修竹帶煙呈粉籜
이슬 먹은 석류는 붉은 단장 시샘하네 / 石榴含露妬紅粧
부채는 더위 물리치며 비단 장막 흔들고 / 齊紈却暑搖羅幕
대자리는 시원함을 맞이하여 상아 상을 뚫어오네 / 湘簟迎寒透象床
시냇가에 모여앉아 하삭음을 즐기자니 / 溪上會拚河朔飮
업원의 침리는 갑절 빛이 나네 / 鄴園沈李倍輝光
추(秋)
누른 구름 천 이랑에 벼가 정히 향기론데 / 千頃排雲稻正香
돌 모에 물이 줄어 언덕모래 길어지네 / 石稜湍減岸沙長
국화는 삼추의 뜻 머금었고 / 黃花已作三秋意
단풍잎은 백보의 단장 이루었네 / 錦葉渾成百寶粧
한가히 독을 당겨 기장 술을 기울이고 / 閑引芳樽傾黍釀
다시금 달을 불러 침상을 비추도록 / 更呼華月照藜床
일년의 흥취는 가을이 온 뒤일레 / 一年佳興西成後
늙음을 한탄하여 저문 빛을 아낄쏜가 / 歎老何須惜暮光
동(冬)
고주는 따뜻해라 두장이 향기론데 / 羔酒初溫斗帳香
벽에 걸린 촛불은 눈물방울 길어지네 / 燭花垂壁淚偏長
추위 덮인 회나무엔 눈가루 휘날리고 / 寒豪檜頂瓊瓊屑
얼어붙은 매화꽃은 분단장이 가셨네 / 凍合梅眉落粉粧
옹기솥에 샘물 길러 팥죽을 끓이는데 / 瓦釜引泉煎豆粥
구들에 불을 지펴 광상을 덥히누나 / 地爐添火暖匡床
깁 이불에 파철을 감춰둘 게 무엇 있나 / 紬衾不用藏婆鐵
왼편에는 조운이요 바른편엔 맹광인데 / 左挾朝雲右孟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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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칠석(七夕)에 회포를 읊은 시에 서(序)하다
내가 계사년(癸巳年)에 명주(溟州)에 있을 때에 칠석(七夕)을 만나 12수의 율(律)을 짓고 8일과 9일에도 그 운(韻)으로 거듭 시를 지어 독전(牘箋)에 기록하였는데, 친구들이 돌려보다가 유실하고 말았다. 그 후 병신년(丙申年) 3월에 김여상(金汝祥)이 그것을 기록하여 보여주는데, 읽어보니 마치 다른 사람의 작품처럼 어리둥절해진다. 젊을 때의 작품이어서 비록 생소하긴 하지만 고심하여 지은 것을 다 버릴 수가 없어 이렇게 초고(草藁)로 등사한다.
예정의 으리으리 구천(九天)을 내려와서 / 霓旌隱映下層霄
이슬 젖은 은하에 오작교를 건너가네 / 露濕銀河渡鵲橋
금자는 이별한을 몇 번이나 봉했던고 / 錦字幾封傷別恨
옥루는 이제서야 가련한 밤 많겠군 / 玉樓今値可憐宵
구슬수레 창궁 향해 기린은 떠나는데 / 瑤軒輾碧獜將駕
밀촛불 붉게 타니 봉이 하마 녹았구려 / 蠟炬燒紅鳳已銷
쌓인 회포 말 다하고 눈물 이내 흩뿌리니 / 說盡幽情仍洒淚
서풍이 불어불어 가랑비 나부끼네 / 西風吹作雨絲飄
성교는 감돌아서 유성 향해 열렸는데 / 星橋繚繞向楡開
난선은 비스듬히 봉가를 나눠 오네 / 鸞扇斜分鳳駕來
맑은 은하 속절 없이 천 리처럼 간막히니 / 淸漢轉成千里隔
해마다 기껏했자 한 번 밖에 못 만나네 / 每年纔得一番廻
용당과 패궐에 상서 기운 자욱한데 / 龍堂貝闕祥煙合
구름 병풍 달 휘장에 새벽 빛이 재촉하네 / 月帳雲屛曙色催
소사에게 시집간 영아가 부러워라 / 應羨嬴娥嫁蕭史
옥퉁소 함께 불며 진대에 오르누나 / 玉簫吹伴上秦臺
용북 소리 끊기고 옥베틀 쓸쓸한데 / 龍梭聲斷玉機空
운금의 의상은 붉은 눈물 닦는구나 / 雲錦衣裳拭淚紅
어느 뉘 옛 기쁨을 쓸쓸하게 만들었지 / 誰把舊歡成落落
이별 한을 견딜세라 말이 절로 총총하이 / 强將離恨說悤悤
이불 속의 단꿈을 미처 꾸기도 전에 / 羅衾未暇酣香夢
어느덧 새벽이라 바람 소리 들리누나 / 琪樹俄聞響曉風
그래도 약을 훔친 예 처보다 낫다 마다 / 猶勝羿妻因竊藥
한평생 광한궁의 과부의 신세보다 / 一生孀宿廣寒宮
이슬에 옷 적시며 강루에 비겼으니 / 紗衣濕露倚江樓
산호의 한 횃대에 초생달이 떠오르네 / 一桁珊瑚上玉鉤
촛그림자 흔들리자 비단장막 새벽인데 / 紅燭影搖羅帳曉
푸른 연 향기 가득 작은 못 가을일레 / 綠荷香滿小池秋
바늘 꿰고 대 꽂아라 풍속을 따르거니 / 穿針揷竹隨流俗
졸이 미워 공을 구한 유유주를 비웃노라 / 悔拙求工笑柳州
채필을 손에 쥐니 무슨 말을 써야 하나 / 祇把彩毫吟底事
저 달도 오늘밤엔 시름 더욱 많은가봐 / 姮娥今夕轉多愁
거년의 오늘이야 절박하던 피난 시절 / 客歲玆辰避切時
비단으로 된 요에서 옥동자 태어났네 / 錦襁初脫玉獜兒
죽어감을 탄식한 안인 한을 누라 알리 / 誰知嘆逝安仁恨
무릴 떠난 자하의 슬픔까지 겹쳤다오 / 添作離群子夏悲
사람일이 일년 사이 이다지도 변할쏜가 / 人事一年傷變改
이 몸은 오늘에도 병에만 걸려 있네 / 此身今日病支離
아내 여읜 그리움 이 밤따라 더욱 심해 / 良宵倍覺歡情減
직녀성 마주보며 눈물 함께 흘린다네 / 却對天孫淚共垂
오랜 세월 친구 떠나 바닷가를 떠돌다가 / 漳濱流落久離群
하늘 가 옛 풍속을 문득 들어 기뻐했네 / 舊俗天涯喜忽聞
부질없이 채루 만들어 백과를 차려놓고 / 謾結彩樓陳百果
구름 속에 막혀 있는 견우성만 바라보네 / 共瞻河鼓隔層雲
뜰에서 장서복을 볕에 쬐지 못하고서 / 庭中未曝藏書腹
병을 안고 부질없이 걸교문만 읊조리네 / 病裏空吟乞巧文
소년 시절 어제인 듯 장안에서 노닐 적에 / 仍憶少年京洛日
어스름 달 옥루에서 홍군과 취했다오 / 玉樓微月醉紅裙
병이 많은 연내에 즐거운 일이 없어 / 多病年來樂事休
천애란 왕찬의 등루가 뜸해졌네 / 天涯王粲倦登樓
구름 걷힌 은하수엔 두 별이 어울리고 / 雲收河漢雙星會
이슬 맞은 오동잎 떨어지니 가을일레 / 露下梧桐一葉秋
상강 언덕 두형은 시인의 한이라면 / 湘岸杜蘅騷客恨
한궁의 흰 깁 부채 첩여들의 시름일레 / 漢宮紈扇婕妤愁
바늘에 색실 꿰어 앞을 다퉈 걸교할 제 / 綵針乞巧爭能巧
내 홀로 오구 짚고 원유편을 지어보네 / 獨把吳鉤賦遠遊
서리 이슬 으시시 저문 빛이 다가서니 / 霜露凄凄晩色侵
덩굴 덮인 마을골목 문이 굳게 닫혔구나 / 薜蘿村巷閉門深
고향에 가고파라 그 바람이 가엾은데 / 心歸故園悲寒望
병 시달린 야윈 몰골 해 저물까 겁난다오 / 病起殘骸㤼歲陰
만초는 제대로 양자댁에 나 있는데 / 蔓草定生楊子宅
초의는 그 뉘라서 여수의 다듬이질로 닦으련가 / 楚衣誰拭女嬃砧
갑자기 그 옛날 한양에 있던 시절 / 令人忽憶秦城日
등 밝히고 걸교한 일 생각나게 하네 / 隨俗香燈鬪綵針
해묵은 나그네 꿈 고기잡이 도롱이라 / 經年客夢落漁蓑
병에서 일어나니 흐른 세월 속절없네 / 病起那堪節序過
더위 지난 누대 위에 가을 부채 처량하고 / 送暑樓臺秋扇薄
추위 닥친 성 안에는 다듬이가 요란쿠나 / 近寒城郭暮砧多
바람이 장막 열자 초생달 밝아오고 / 風飜綃幕明纖月
이슬 듣는 지당에 시든 연잎 소리나네 / 露滴芳塘響敗荷
해마다 이 밤이면 견우 직녀 만나기에 / 今夕年年牛女會
기나긴 오작교가 은하수에 놓인다네 / 鵲橋千丈跨銀河
용면거사 화필이 그 굵기가 서까래라 / 龍眠彩筆巨如椽
여섯 자 교초에 취묵이 영롱하네 / 六尺鮫綃醉墨鮮
초벽에는 몇 년이나 분회를 발랐던고 / 椒壁幾年塗粉繪
달 속 항아 그날따라 시선에게 주었거든 / 月娥當日贈詩仙
견우가 물 마시자 유화는 떨어지고 / 星牛飮渚楡花落
영작이 다리놓아 금방이 달려 있네 / 靈鵲成橋錦牓懸
묵은 자췬 스스로 불어 화재를 당했으니 / 陳迹自吹回祿取
백운편 다시 짓긴 감당하기 어렵구려 / 不堪重賦白雲篇
얼음집 구슬궁궐 자신에 가까운데 / 氷屋珠宮近紫宸
떼를 타고 하늘 나루 간 일이 있었다네 / 靈槎猶得犯天津
시름 속에 짜는 비단 북 잡은 손 수고로워 / 長愁織錦梭勞手
지기석풀어 갖고 남을 주지 않았다네 / 解把支機不贈人
상계에서 노니는 것 해객이 어이 알리 / 海客豈知遊上界
엄군평(嚴君平)은 도리어 선진 구별하려 했네 / 君平還欲辨仙眞
흘려 들은 옛 이야기 진위를 알 수 없어 / 流得舊事迷眞贋
은하수를 바라보며 서글픈 생각 가져보네 / 悵望銀河獨愴神
택국에 가을 들고 귀밑머리 희었는데 / 澤國逢秋鬢雪侵
천침을 시새우는 가절 온 줄 들어 아네 / 忽聞佳節鬪穿針
다정케도 은하수엔 별이 서로 만나는데 / 多情河漢星初會
무심한 월중상아 달도 쉬이 지는구나 / 無意嫦娥月易沈
이 세상 형제들아 이별의 꿈 얼마런가 / 海內兄弟空別夢
천애의 차가운 이슬 이 마음 슬프고야 / 天涯霜露愴中心
문을 닫고 이 밤의 종기우를 싫어 말게 / 閉門莫厭終期雨
해마다 이 밤을 궂은 비가 적신다네 / 銀渚年年此夜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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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팔일(八日)에 다시 전운을 가지고서
아득한 생황소리 벽소를 울리는데 / 縹緲笙簧隱碧霄
은하수 오작들은 영교를 걷었다네 / 長河烏鵲輟靈橋
둘이 놀던 비취루 어제 저녁 그리워라 / 雙棲翡翠懷前夜
홀로 자는 항아는 오늘 밤을 함께하네 / 孀宿姮娥共此宵
은하수 차가워서 구름 잎새 몽롱하고 / 銀渚水寒雲葉暗
삐걱이던 베틀소리 촛불마저 다 꺼졌네 / 錦機聲軋燭花銷
서풍에 상사루를 남김없이 뿌려대며 / 西風灑盡相思淚
요공을 바라보니 옥절만이 나부끼네 / 悵望瑤空玉節飄
인포에 이슬젖자 봉악이 열리더니 / 露濕獜袍鳳幄開
푸른 깃발 서쪽으로 오작교를 건너오네 / 翠幢西渡鵲橋來
그리운 정 밤 새워 속삭이기 좋으련만 / 幽情正好通宵說
그 밖에야 일년 지나 돌아올 줄 뻔히 알리 / 此外應知隔歲廻
붉은 난간 옥 침대엔 달콤한 꿈 끝이 났고 / 朱檻玉床香夢罷
깁 병풍 은 촛불은 새벽빛을 재촉하네 / 繡屛銀燭曉光催
비단 이불에 자던 흔적 분명히 있으리라 / 羅衾餘澤分明在
제장을 다시 들어 거울에 비쳐보네 / 更把啼粧照鏡臺
은상도 적막하고 금유도 비었구나 / 銀床寂寞錦帷空
꿈 끊긴 원앙금침 새벽빛에 물들었네 / 夢斷鴛衾染曉紅
운개는 멀어가도 정만은 맥맥하고 / 雲蓋渡河情脈脈
일거가 길을 뜨니 이별도 총총해라 / 日車騰海別悤悤
삼경 달빛 휘영청 금경에 이슬 젖고 / 金莖露下三更月
오경 바람 옥수에 가을이 생동하네 / 玉樹秋生五夜風
채루에 과일 차려 걸교를 시새우니 / 瓜菓綵樓爭乞巧
주궁에 쌓인 시름 알 까닭 없고말고 / 豈知愁思閉珠宮
은하수 떨어져서 서루에 걸렸는데 / 絳河初落掛西樓
여섯 자 발 위엔 달이 아직 아니 떴네 / 六尺蝦鬚未上鉤
창해에 뜬 구름 석양빛을 재촉하고 / 滄海出雲催薄暮
벽오동에 비 스치니 맑은 가을 소리로세 / 碧梧經雨響淸秋
부용지 높다란 집 선계와 연결되고 / 芙蓉池館連仙界
강한의 좋은 풍류 제주가 가까워라 / 江漢風流近帝州
좋은 날은 지나가고 사람마저 안 보이니 / 過盡良辰人不見
곳을 따라 약로에는 한수만이 서려 있네 / 藥爐隨處伴閒愁
질병 많아 소년 심정 줄어만지니 / 病多情減少年時
조물은 무단히 작은 아이 희롱같네 / 造物無端作小兒
천지간에 이 몸은 이다지도 쉽게 늙나 / 天地有身嗟易老
강산 비록 좋다지만 슬픔도 자아내네 / 江山雖好却生悲
팽성 밤비에 영락 신세 애처롭고 / 彭城夜雨傷零落
촉도 외로운 구름 이별이 한스럽소 / 蜀道孤雲怨別離
쓸쓸한 가을 근심 초 나라 나그네 같아 / 秋恨滿懷同楚客
견딜 수 없어 머리마저 괴롭게 숙여지네 / 不堪頭角苦低垂
누가 야학을 계군에 있게 했나 / 誰令野鶴在鷄群
시끄러운 세상 일 듣기도 역겨워라 / 世故紛紛不欲聞
재주가 다했으니 꽃 토할 붓 없고 / 才盡已無花吐筆
병 많은데 능운부(凌雲賦)는 지어서 무엇하랴 / 病多何用賦凌雲
꽃 난간에 비 뿌리니 솔가루 휘날리고 / 花欄雨過飛松粉
연못에 바람 생기니 파문이 이는구나 / 荷沼風回起纈紋
옛 습성 버리기 어려운 줄 나도 알지마는 / 舊習自知除未得
채필(彩筆)로 석류빛 치마폭을 물들여 보고 싶군 / 彩毫思染石榴裙
맑은 경치 사람을 끌어 흥이 끝없는데 / 淸景牽人興未休
그 누가 늙은이를 남루에 오르게 했나 / 誰敎老子上南樓
나그네는 술상 앞의 바닷달에 취하였고 / 尊前客醉滄溟月
피리 속의 찬 기운은 - 원문 빠짐 - 가을에 일어나네 / 笛裏寒生□□秋
갈대꽃 차츰 피자 기러기 돌아오고 / 蘆雪漸披江雁到
붉은 꽃잎 지려 하니 연꽃이 근심하네 / 錦衣將落渚蓮愁
가을 바람 계수에 은자(隱者)를 불러내어 / 西風桂樹堪招隱
지산의 술놀이 벌이고 싶네그려 / 欲作芝山載酒遊
반악(潘岳)의 귀밑머리 해마다 희어가고 / 年年潘鬢二毛侵
앓고 나니 오동잎은 뜰에 가득 쌓여 있네 / 病起梧庭落葉深
성긴 대는 바람받아 멀리 소리를 내고 / 疏竹受風成遠籟
엷은 구름 해를 싸 층계 그늘 만들어라 / 薄雲籠日作層陰
높은 다락에서 더위 보내니 가을 부채 던지고 / 高堂餞熱抛秋扇
산성에 추위 이니 다듬이질 급하구나 / 山郭生寒急暮砧
듣건대 앞 여울에 게와 물고기 많다 하니 / 聽說前灘魚蟹富
아이들 이끌고 낚시나 만들어 보세 / 閑携兒輩學敲針
청계에 달 기다리며 도롱이 깔고 누웠으니 / 待月靑溪臥綠蓑
덩굴 얽힌 골목길에 지내는 이 드물구나 / 碧蘿門巷少經過
처마에 모인 뭇 산은 맑은 가을 빽빽하고 / 朝簷列岫淸秋密
골짝에 든 뜬구름 저물녘에 많구려 / 入峽浮雲薄暮多
남쪽 기러기 천리라 서신 전하지 않는데 / 南雁不傳千里信
서풍은 왜 이처럼 연꽃을 지우느냐 / 西風偏落一池荷
이별한 심정은 술로도 달래기 어려워 / 離情仗酒銷難得
애꿎게도 시인에게 은하만 읊게 하네 / 錯使詞人賦絳河
하수로 발을 엮고 옥으로 된 서까래라 / 蝦鬚爲箔玉爲椽
초황으로 바른 벽 채색도 선명하이 / 粉壁椒黃彩雘鮮
광한궁 달빛 속에 단꿈이 깨어지니 / 夢罷廣寒宮裏月
구곡동 신선을 손짓해 부르누나 / 手招句曲洞中仙
은병에 촛불 어둬 비단 금침 차가운데 / 銀屛燭暗羅衾冷
수주에 구름 드니 비단 장막 단 듯하네 / 繡柱雲侵錦幕懸
옛 놀이 돌아보니 적막한 오늘이라 / 回首舊遊今寂寞
미인아 보허편 노래하지 말아다오 / 美人休唱步虛篇
청운의 갈림길 대궐과 막혔으니 / 靑雲岐路隔□宸
여윈 나귀 변방 길에 나루 묻기 지쳤다오 / 關海羸驂倦問津
검은 경인에 새기니 술사와 같고 / 劍刻庚寅同術士
집은 정묘에 있으니 역시 시인일세 / 家居丁卯亦詩人
한가로운 풍정은 도원량이 부끄럽고 / 閑情有愧陶元亮
오 나라 말 그 누가 하계진 예뻐하랴 / 吳談誰憐賀季眞
백안해 마땅해라 버려두세 계곡에나 / 白眼自堪丘壑置
호두가 무엇하러 눈알을 그리겠나 / 虎頭何必與傳神
연꽃이 기울어져 흰 이슬 스며드니 / 蓮花中側露華侵
만들어낸 예의는 바느질이 필요 없네 / 製出霓衣不用針
바람은 패옥(佩玉)소리 가느랗게 보내오고 / 風送佩環聲細細
달은 주렴으로 침침한 그림자를 비치네 / 月窺簾幕影沈沈
마류의 차 소반은 용 서린 다리인데 / 龍盤瑪瑠茶煎脚
유리 술잔 개미 뜨니 중심이 볼록하네 / 蟻泛玻瓈酒凸心
바라보니 봉래산은 천 리에 아득해라 / 悵望蓬萊千里遠
향기는 아득하여 구름만 막혔도다 / 斷香迢遞隔重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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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부부고 제2권 / 부록 교산억기시
구일(九日)에 또 짓다
- 원문 빠짐 - 높은 의기 저 하늘을 육박하니 / □□高義薄層霄
부질없이 시혼을 애태우네 / 空把詩魂役灞橋
좋은 모임은 서음을 나누지 못하였는데 / 佳會未成拚暑飮
맑은 이야긴 누구와 한가한 밤 보내려나 / 淸談誰打破閒宵
바람은 대 흔들어 푸른 연기 깨지는데 / 風敲檻竹蒼煙碎
이슬은 파초를 꺾어 녹납이 사라졌네 / 露折庭蕉綠蠟銷
서악의 노사는 지금도 건강한지 / 西嶽老師今健否
아마도 쑥대처럼 나부낌을 웃으리라 / 說心應笑斷蓬飄
높은 누에 바라보니 바다 하늘 열렸는데 / 高樓晴望海天開
해 지자 외론 돛대 만리에서 떠오누나 / 日落孤颿萬里來
외진 곳이라 갑자기 지난 괴롬 생각나라 / 窮塞忽思前歲苦
조그만 뗏목에 이 몸 싣고 돌아오네 / 尺槎仍寄此身廻
나이 많은 삼로는 바람 점쳐 출발하고 / 長年三老占風發
물 길이라 일천리에 노질을 재촉하네 / 水驛千程捩舵催
병 나으면 앓던 날을 생각할 게 무엇 있나 / 痛定不須思痛日
꿈만은 오히려 몰운대에 맴돈다오 / 夢魂猶繞沒雲臺
반악 귀밑 서리치고 육탁은 비었는데 / 潘鬢霜吹陸橐空
괴론 얼굴 술에 의해 잠시나마 붉어지네 / 苦顔憑酒暫生紅
교룡은 봄이 와도 동면 아직 못 면하고 / 蛟龍生水猶蟠蟄
세월은 공이 뛰듯 너무나 바쁘구려 / 烏兎跳丸太悤悤
먼지 쌓인 칼집엔 천자검이 낮에 울고 / 塵匣晝鳴天子劍
초 나라 옷 가을이라 대왕풍에 젖누나 / 楚衣秋濕大王風
황금만 부질없이 연대 위에 쌓놓았지 / 黃金漫積燕臺上
대궐에 침범하는 되놈 칼 막지 못해 / 未御蠻鋒慧紫宮
백척루에 호기롭게 높이 누워 / 高臥元龍百尺樓
벽에는 번약이요 갑 속엔 순구일세 / 壁懸繁弱匣純鉤
패기 떨어지니 늙음이 재촉되고 / 壯心零落催遲暮
가절은 찾아들어 저문 가을 당했구려 / 佳節侵尋値晩秋
먼 길이라 검각산에 서신은 드문데 / 長路音書稀劍閣
나그네 꿈속에 도주를 점쳤지요 / 旅窓魂夢卜刀州
한기 이는 산천에 단풍과 귤 많으니 / 寒生楚望多楓橘
부를 짓고자 하여도 송옥의 근심을 어찌하랴 / 欲賦其如宋玉愁
언젠가 무산의 정담하던 밤 생각하니 / 曾憶巫山夜語時
맑은 연못 물이 불어 고기떼 숨었었지 / 滿池淸漲落魚兒
한 자리에 모여 빗소리 듣자던 약속 / 誰知聽雨一床約
도리어 그리움이 천리 슬픔 될 줄이야 / 便作停雲千里悲
가선과 무삼으로 흥을 함께 못 나누고 / 歌扇舞衫抛洞興
영매와 강수는 이별을 한탄하네 / 嶺梅江樹歎將離
어느 때나 다시 또 그대를 따라가서 / 何時更逐仙槎去
동해의 벼랑에서 낚시나 배울 건고 / 東海盤崖學釣垂
사장에 마주 달려 무릴 뛰어나니 / 竝轡詞場盡出群
반악이라 육기라 예전 소문 틀림없어 / 潘江陸海協前聞
문장은 옥갑에 넘실대는 물이라면 / 文雄玉匣差差水
시는 묘해라 춘공에 떠있는 뭉게구름 / 詩妙春空藹藹雲
기어는 하 수부를 만나기 어려운데 / 綺語罕逢何水部
금장은 심휴문을 그 누가 이으리요 / 錦腸誰繼沈休文
이별 회포 못 다 풀고 해는 저무니 / 離懷不盡西流日
다홍치마 팔폭에 눈물 적시누나 / 淚洒明霞八幅裙
할미새 언덕 위에 그린 정 끝이 없어 / 鶺鴒原上恨難休
반평생 떠도는 넋 신기루를 맺었구려 / 半世魂飄結唇樓
풀 가득한 사지에 부질없는 꿈만 있고 / 草滿謝池空有夢
밤이 차니 강피는 쓸쓸하기만 / 夜寒姜被不禁秋
구름을 바라보니 소식 전할 기러기 없고 / 看雲雁路無來信
빗소리 듣노라니 깊은 시름 이는구나 / 聽雨鷄窓起遠愁
어느 날 자형꽃 아래 모여서 / 何日紫荊花下會
채색옷 마주 앉아 이전 놀이 얘기할꼬 / 彩衣相對說前遊
난초의 자태 먼지 하나 묻지 않고 / 蘭姿不受一塵侵
겹사립에 안개 낀 채 이 밤도 깊었구나 / 霧鎖重扉此夜深
무협의 채색 구름 한서린 꿈을 싸고 / 巫峽彩雲籠恨夢
대제의 성긴 비는 시름을 맺는구려 / 大堤疏雨結愁陰
강설을 달이노라 막 불을 지폈고 / 爐莊絳雪初安火
단하로 옷 지으니 다듬이질하지 않네 / 衣製丹霞不搗砧
이별의 한으로 마음이 즐겁지 못해 / 離恨未將和目說
치마 깁는 바느질 어느 뉘게 의지하리 / 縫裳誰仗女穿針
도롱이 삿갓에다 이 몸은 맡겼으니 / 行藏都付笠兼蓑
꿈속에 세월은 어느덧 지나가네 / 未覺光陰夢裏過
구름 걷힌 먼 산은 일천 상투 쭝긋쭝긋 / 雲盡遠崖千髻立
비 뒤의 갠 물결엔 한 상앗대 우뚝하이 / 雨餘晴漲一篙多
한거한 골목은 풍귤을 의지하고 / 閑居門巷依楓橘
만년의 의상은 기하를 꿰맸구나 / 晩歲衣裳綴芰荷
누가 알랴 황계에서 낚시질하는 뜻을 / 誰識釣璜溪畔意
돛단배 가지고 홍하를 건너련다 / 欲將舟楫濟洪河
대숲의 비탈에 두어 칸 집 얽으니 / 披竹依崖架數椽
아침 저녁 바다 놀 선명도 하이 / 海霞朝夕助澄鮮
선실이 아니건만 뜰에는 철봉 날고 / 庭翔鐵鳳非禪室
허리엔 금승을 차니 바로 주선일세 / 腰佩金繩卽酒山
음동엔 손 드무니 창해가 붙어 있고 / 陰洞客稀蒼薢合
석단엔 구름 엉겨 벽라가 달려 있네 / 石壇雲老碧蘿懸
세상 일이 이 정취 해칠까 혐의하여 / 猶嫌世故侵閑趣
남화경 내외편을 다시 읽는다오 / 更讀南華內外篇
삼부를 동신에 주달치 못하는데 / 未將三賦奏彤宸
어느 곳 강담에 나루가 또 있을꼬 / 何處江潭更有津
다시 동서남북 길손이 되었어라 / 復作東西南北客
신세 험한 이 사람을 그 누가 어여삐 보리 / 誰憐歷落嶔巇人
형산서 옥 안고 우는 화씨가 애처롭고 / 衡山泣玉悲和氏
우저에서 무소 태운 태진이 가소롭네 / 牛渚燃犀笑太眞
모든 일이 적멸(寂滅)을 얘기함만 못하니 / 萬事不如談寂好
병석을 휴대하고 금신께 예배하세 / 欲携甁錫禮金神
정연이 어찌 속연의 침해를 받으랴 / 淨緣寧被俗緣侵
명리란 본디 석괘침과 같은 거라네 / 名利纔同石掛針
달사는 하마야 득실을 개의치 않거니 / 達士已能齊得失
지인이 어찌 꼭 부침을 분변하리 / 至人何必辨浮沈
가슴속엔 제세안민의 계책 갈무리하고 / 胸韜濟世安民策
마음엔 모토를 나눌 생각 끊었다오 / 意絶分茅裂土心
그 누가 회계 땅 왕 내사처럼 / 誰似會稽王內史
빼어난 대 맑은 여울에 산음서 취해볼거나 / 淸湍脩竹醉山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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長篇 漢詩-사11部.끝.

첫댓글 장편 한시(長篇 漢詩) 게재에
수고함을 엿보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오늘도 좋은 자료 잘 가져 가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댜양한 장편 한시 울려주셔서
감상 잘 했습니다
感謝드립니다~~^^&♡
長篇 漢詩 많은 자료들을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수고가 참 많으셨습니다.
시원한 저녁시간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