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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마경훈목사의 설교 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마경훈목사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공통적인 메시지/ 요한계시록 2장, 3장
(설교자: 마경훈목사, 비전교회)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공통적인 메시지 (요한계시록 2장 3장) -마경훈목사 - YouTube
사도 요한은 교회를 이끌고 복음을 전하다가 밧모섬에 유배되었습니다. 밧모섬은 에게해에 있는 작은 섬으로 그 당시 로마 제국의 유배지로 사용되던 섬입니다. 그곳에 유배된 사도 요한이 주일에 예배를 드리다가 성령의 감동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요한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여주셨는데 그 계시의 내용은 속히 일어날 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종말에 관한 일들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요한에게 그 당시 소아시아에 있던 일곱 교회에게 편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일곱 교회에 보낼 편지의 내용을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2007년에 “소아시아 교회를 통해서 본 신앙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그 당시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대한 세 가지 해석을 했습니다.
첫째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는 그 당시 소아시아에 실재했던 일곱 교회를 말하는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이 해석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문자적으로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봐도 소아시아 지역에 실제로 존재하던 교회들입니다. 둘째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전 세계 모든 교회에게 메시지를 주시는 것이라는 견해입니다. 사도요한은 서신서의 말미마다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는 후렴구를 사용하여 각 서신이 특정 교회 하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이 해석도 타당합니다. 셋째는 신약시대의 7구분으로 해석하는 견해입니다. 왜냐하면 계시록 자체가 예언서이기 때문입니다. 미국 역사 신학교수 밀하임 박사는 신약시대를 7시대로 나누면서 그 근거를 계시록 2, 3장의 7교회를 통해서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세계적인 성경 종말론 학자인 이광복 목사님은 세 가지 해석을 다 받아드려 당시 7교회로, 전 세계 모든 교회 그리고 신약시대 7구분으로 봤습니다. 저 역시 이광복 목사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성경은 꼭 문자적인 의미만을 가지지 않습니다. 문자적 의미에 또 다른 2중적, 3중적 의미를 갖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 설교는 요한계시록 2,3장에 나오는 일곱 교회에 보내는 주님의 편지에 나타난 공통적인 메시지를 나누겠습니다.
1. 너희는 예수를 알라.
일곱 개의 편지는 먼저 예수님이 누구이신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겠습니다. 2:1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은 자신이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입니다. 여기서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로서 주의 종을 말하고 일곱 금 촛대는 교회를 말합니다. 그 증거가 요한계시록 1:20입니다. “네가 본 것은 내 오른손의 일곱 별의 비밀과 또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주님은 주의 종들을 능력의 오른 손으로 붙잡고 계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주님의 교회 가운데 함께 하십니다.
서머나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겠습니다. 2:8입니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은 모든 것의 알파와 오메가 이십니다. 모든 것이 예수님으로부터 시작 되었습니다. 천지만물도 예수님의 작품입니다. 인류의 역사도 예수님 의해서 시작 되었고 예수님에 의해서 마지막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분으로 지금도 살아계십니다.
버가모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겠습니다. 2:12입니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은 말씀의 능력으로 정의로운 판결을 하십니다. 당시 버가모에 주재하고 있던 로마 총독은 칼을 차고 있었고 즉석 사형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가장 정당한 판결과 사람의 생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달려있습니다. 예수님의 판단의 기준은 좌우에 날선 검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겠습니다. 2:18입니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시되” 주님의 눈은 불꽃 같습니다. 주님은 모든 것을 감찰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발은 빛난 주석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장엄하고 권능이 있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데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겠습니다. 3:1입니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곱 영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령을 말합니다. 일곱 별은 주의 종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교회 지도자들을 인도하시고 지도하십니다. 교회는 주님의 교회이기 때문에 주님이 교회를 이끄시는 것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겠습니다. 3:7입니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가 이르시되” 주님은 진리이시기에 진실하신 분입니다. 그리고 거룩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존재와 성품과 능력이 완전하게 거룩하셔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십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문을 열고 닫는 절대적인 권세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이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예수님이 닫으시면 열 사람이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보겠습니다. 3:14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예수님은 아멘이십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진실하시고 가능하십니다. 예수님은 충성된 분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되셨고, 자신의 양들을 구원하는 일에 충성하셨고, 자신의 양들을 인도하시고 지키시는 일에 충성되시며, 자신의 양들의 필요를 공급하시는 일도 충성되십니다. 예수님은 참된 증인으로 아버지를 증거하시고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임을 증거하시는 분입니다.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통해서 주시는 첫 번째 공통적인 메시지는 “예수를 알라”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예수님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아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예수님을 경배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고, 예수님을 아는 사람이 자신을 아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할 이유는 그분이 하나님께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이시고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 안에 영생도 있고 예수님 안에 천국도 있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도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예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지금은 우리가 예수님을 아는 것이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부활 후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면하듯이 예수님을 더 깊게 더 풍성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나를 아신다.
하나님께서는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통해서 전 세계 모든 교회에게 메시지를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는 우리 교회에 주시는 메시지이고 동시에 나 개인들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정확하게 아셨던 것처럼 우리 교회를 정확하게 아시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저와 여러분도 정확하게 아시고 계십니다.
시간 관계상 주님이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어떤 면을 아셨는지 시시콜콜 다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고요. 여기서는 주님이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아셨다는 부분만 간략하게 살펴보겠습니다.
2:2,3을 보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주님은 에베소교회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도 아셨고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드러낸 것도 아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참고 주의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셨습니다.
2:8에서는 주님께서 서머나 교회 교인들이 당하는 환난도 아셨고 궁핍도 아셨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들 같았으나 실상은 영적으로 부요하다는 사실도 아셨습니다. 주님은 자칭 유대인들의 비방도 아셨고 그들이 살상은 사탄의 회당이라는 것도 아셨습니다. 2:13에서는 주님께서 버가모 교회 교인들이 어디에 사는지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2:19에서는 주님께서 두아디라 교회의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셨습니다. 3:14에 보면 주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행위를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뜨겁지도 않고 차지도 않는 미지근한 신앙을 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데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에게는 그들을 아신다는 말씀을 직접적으로는 하지 않으셨지만 그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계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 대하여 모르시는 것이 없습니다. 시편 139:12입니다. “주에게서는 흑암이 숨기지 못하며 밤이 낮과 같이 비추이나니 주에게는 흑암과 빛이 같음이니이다” 다윗의 찬양입니다. 주님에게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주님에게는 흑암도 숨기지 못합니다. 주님은 밤도 낮과 같이 보십니다. 시편 139:16입니다. “내 형질이 이루어지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루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주님은 다윗이 어머니 뱃속에 잉태되기 전에 이미 그를 보셨고, 그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 것을 다 아시고, 주의 책에 다 기록하셨습니다. 사람들의 기록은 과거가 중심입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모르기 때문에 과거를 기록하지만 우리 주님은 미래도 다 아시기 때문에 우리의 미래까지 주의 책에 다 기록하셨습니다.
주님이 모든 것을 감찰하시니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사실 그 지식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감찰하신다는 말은 공감의 의미가 있고 우리에게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아무거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마태복음 10:30,31입니다.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31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주님께서는 복음 때문에 있을 핍박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참새가 팔리거나 죽는 것도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불가능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셨다고 하셨습니다. 그만큼 우리에게 관심이 많으시고 우리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신 아버지의 손에 모든 것이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 하나는 비교의식입니다. 비교의식은 두 가지 극단으로 나타냅니다. ①교만입니다. 남들보다 조금만 더 잘나거나 더 잘하는 것이 있거나 더 많이 가졌으면 교만에 빠집니다. ②열등감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 중에는 나보다 잘나거나 나보다 일을 잘하거나 나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사람은 비교의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왜냐하면 나의 나 된 것은 주님의 은혜이고 내가 부족한 것은 주님께서 채워주시고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나는 약하나 주님은 강하시고 나는 미련하나 주님은 지혜로우시고 나는 가난하나 주님은 부요하십니다.
3. 예수님은 해답을 아신다.
주님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칭찬과 책망을 하셨습니다. 하지만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는 책망은 없고 칭찬만 하셨습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주님에게 칭찬만 듣는 그런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도 주님에게 책망이 없이 칭찬만 듣는 주의 종과 성도들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주님은 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해결책도 주셨습니다. 만약 그들이 주님의 해결책을 따르지 않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할 것도 말씀하셨습니다.
2:5을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환난 중에도 주님을 위하여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않았습니다. 어려울 때 최선을 다해서 주님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은 처음 사랑을 버렸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주신 해결책은 ①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하라입니다. 나는 지금 왜 이런 신앙이 되었는가 원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②회개하라입니다. 회개는 죄를 슬퍼하고 죄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③처음 행위를 다시 가지라입니다. 열심히 했던 그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에베소교회가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15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버가모 교회에게 주신 해결책입니다. 그들은 거짓선지자에게 미혹 되었습니다. 그들은 발람의 교훈을 지켜 우상숭배와 행음에 빠진 것입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회개하지 않으면 주님께서 오셔서 그들과 싸우시겠다고 하셨습니다.
3:17,18을 보겠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은 교만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부자라고 생각했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보실 때 그들은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고 벌거벗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영적인 면을 모르고 교만에 빠졌습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해결책을 주셨습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이 금과 같은 믿음을 갖고, 의의 옷을 입어서 영적으로 벌거벗은 수치를 면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들이 성령으로 충만해서 영적인 눈이 열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사랑하셔서 그들을 책망하시고 징계하셨습니다.
주님은 모든 문제의 근원을 아십니다. 그리고 모든 문제의 해결책을 가지고 계십니다. 주님은 내가 가진 숨겨진 죄악도 아시고, 남들은 모르지만 나만 아는 것도 아십니다. 그것만 아니라 우리가 가진 문제도 아십니다. 감사한 것은 주님은 모든 문제의 해답을 가지고 계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의 방법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죄와 문제가 해결됩니다.
저는 저와 여러분이 주님께서 에베소교회에 주신 해결책을 적용해보시기를 권면합니다. 주님이 에베소교회에 주신 해결책은 ①왜 그렇게 되었는지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지금 왜 이런 신앙이 되었는가 원인을 찾으라는 것입니다. ②회개하라고 하셨습니다. 회개는 죄를 슬퍼하고 죄에서 떠나는 것을 말합니다. ③처음 행위를 다시 가지라고 하셨습니다. 다시 그때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4. 너희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라.
2:7입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주님은 나머지 여섯 개의 교회들에게도 동일하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전에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들이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를 받은 것은 신약의 교회와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받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말씀과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롬 8:14입니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성령으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습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의 인생길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사용하시는 방법 중에 하나가 마음의 소원입니다. 빌립보서 2:13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님은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행하십니다. 그 일을 위하여 성령님은 우링 안에 소원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소원을 따라 행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사람들은 사명과 비전하면 굉장히 거창하게 생각합니다. 피부에 와 닿게 말하면 사명과 비전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주신 소원입니다. 우리가 배라고 가정을 합시다. 하나님은 그 배의 선장이 되셔서 우리를 항구로 인도해주시는데 그 항구가 무슨 항구인지 아십니까? 소원의 항구입니다. 시 107:30입니다. “저희가 평온함을 인하여 기뻐하는 중에 여호와께서 저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소원의 항구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해야 합니다. ①마음의 소원을 분별하세요. 내 마음의 소원이 하나님의 뜻에 맞는가를 분별해야 합니다. 성경으로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면 일단 keep해 두십시오. ②내가 마음에 소원하는 것이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기도하면서 인도를 구하세요. 하나님께서 원하시지 않는다면 마음의 소원이 마치 거품이 꺼지듯이 꺼질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께서 그 소원에 불을 붙이실 것입니다. ③기도하며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시고 때를 기다리십시오. 언제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혹은 누구와 시작해야 할지 기도하며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④행동하십시오. 주님의 사인이 떨어지면 주저하지 말고 도전하십시오. 마태복음 7:7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찾는 것은 시기와 방법과 파트너를 찾는 것입니다. 두드리는 것은 시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를 받을 때 너무 먼 미래의 비전을 받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먼 미래의 비전을 받는다면 감사하지만 하나님은 대부분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킴 윅스라는 시각 장애인 성악가가 있었습니다. 6.25 때 두 눈을 잃고 고아원에서 자랐는데, 주한 미군의 도움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여 훌륭한 성악가가 되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을 믿고 빌리그레함 목사님의 집회에 함께 다니며 찬양과 간증을 했습니다. 그는 그때마다 이런 간증을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소경입니다. 저를 인도해 주는 사람이 제게 100m 앞에, 50m 앞에 무언가가 있다고 알려 주지 않습니다. 바로 앞에 계단이 있으니 발을 올리라고, 바로 앞에 물이 있으니 건너뛰라고만 말해 줍니다. 저는 그것을 믿고 그대로 따라 오늘까지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한 달 뒤, 10년 뒤, 20년 뒤의 일을 알 수 없어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경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마음의 소원을 따라서 행하십시오. 성령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으로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음성은 다양하게 들리는데 마음의 소원도 성령님의 음성 중에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가 많은 일을 했습니다. 그 일들 중에 상당 부분은 마음의 소원을 따라 행한 것입니다. 제가 마음에 소원을 받으면 저는 그 소원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인가를 분별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하면 어떤 방법으로 해야 할지 성령님의 인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음성이나 감동이나 기타 다양한 방법으로 사인을 보내주시면 시도했습니다. 이렇게 인도를 받다보니 우리 교회는 교회 크기에 비해서 크고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앙생활은 성령의 음성을 들으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5. 너희는 이기는 자가 돼라.
2:7에 보면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11에서는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게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2:17에 보면 주님은 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고 또 흰 돌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2:26에서는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3:5에서는 주님께서 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을 것이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아니하시고 그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와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3:12에서는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주님의 새 이름을 그 사람 위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3:21에서는 주님께서 이기는 자에게 주님의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시는데 주님이 이기시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시겠다 하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우리의 힘으로 이기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지난 금요일 설교에서 제가 대학생 선교회(CCC)를 설립한 빌 브라이트 목사님이 한 말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분은 “신앙생활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불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내 힘으로 발버둥 쳐서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그럼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가능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면 불가능합니다. 신앙생활은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붙잡으면 가능하고 십자가를 놓아버리면 불가능합니다.
우리에게는 몇 가지 적이 있습니다. 그 중에 최종적인 대적은 마귀입니다. 마귀를 이기지 못하면 마귀의 종이 되고, 마귀의 종이 되면 마귀와 함께 멸망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심하게 졸리면 눈꺼풀도 이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마귀를 이기겠습니까?
우리의 승리의 비결은 행동이 아니라 위치로 결정 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어디에 거하느냐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승리자이신 예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일을 멸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여서 자기가 이겼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와 부활로 마귀를 이기셨습니다. 창세기 3:15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마귀는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고 자기가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예수님의 발꿈치를 상하게 한 것 밖에 안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죄의 권세, 사망의 권세, 마귀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예수님은 마귀의 머리통을 박살내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자이신 예수님을 믿으므로 예수님 안에 거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입니다. 요일 5:4입니다.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가 할 일이 있다면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예수님을 떠나지 않고 예수님 안에 거하면 우리는 최종적인 원수인 마귀를 이기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소아시아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공통적인 메시지를 통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1. 너희는 예수를 알라.
2. 예수님은 나를 아신다.
3. 예수님은 해답을 아신다.
4. 너희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라.
5. 너희는 이기는 자가 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