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엘리사벳 비쉬엘 데 아제스
프랑스 러 블랑의 샤토 데 아제스에서 그 지방의 영주인 안토니 비쉬엘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죠안 엘리사벳 마리 루시로 세례를 받았으나, 항상 엘리사벳을 사용하였다.
그녀는 프와티어 근방의 수도원에서 교육받았으며, 그녀의 부친이 의회의 몰수령으로부터 가족의 재산을
성공적으로 방비한 뒤에 사망하였다.
그녀는 1796년, 그녀의 모친과 함께 프와티에 근교인 베티네스로 이사한 후부터 혁명 정부의 사제들과 무신론자들을 배격하면서 시골에서 홀로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1797년, 그녀는 성 안드레아 푸르네(축일:5월13일)를 만나 가까운 친구가 되었는데, 성 안드레아는 그녀가 교육에 종사하면서 병자와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베푸는 수도회 창설에 따른 규칙을 주었다.
1804년, 그녀의 모친이 운명하자, 그녀는 프와티에의 가르멜 수도원의 수련자가 되었으나,
섭리회로 가서 푸르네 원장이 계획하는 수녀들의 공동체 일원이 될 준비를 하였다.
이리하여 엘리사벳은 어린이를 가르치고 병자와 노인들을 돌보는 공동체의 책임을 맡게 된 것이다.
이 단체는 1807년에 서원을 하였고, 1816년에 프와티에의 주교로부터 승인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여, 1811년과 1830년 사이에 60개 이상의 수도원이 생겼다.
이 수녀회가 보통으로 성 안드레 사도 수녀회로 불렸으나 공식적인 명칭은 십자가의 딸 수녀회이다.
엘리사벳은 점잖하고 온순한 여성으로, 많은 여행으로 경험을 얻었고,
또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극히 단순한 여성으로 비쳤다.
그녀가 1834년에 임종할 때, 바스크 사제인 성 미카엘 가리코아츠(축일:5월14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그녀는 성 미카엘이 베타람의 성심 사제회라 부르는 선교회를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1947년 교황 비오12세깨서 시성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