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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압주의>
우리는 이따금, 무인도에 살게 되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곤한다.
오두막집을 짓고, 낚시를 하며 유유자적하게 살아가는ㅡ
요컨대 자신만의 우주를 갖고 싶어한다는 것이겠으나 곧 이러한 상상이
'섬'을 하나의 괴리된 공간으로서 인식한다는 반증이며, 이는 실제로 타당하다.
섬은 적절한 교통수단 없이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철저한 고립계이며,
육지와 괴리된 까닭에 섬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은
경위가 어떻게 되었던 간에 널리 알려지기 힘든 경우가 있는 것이다.
다행히도 '관덕정 살인사건'은 그 참상이 너무 충격적이었으며
수사과정에서 광범위한 조사가 필요했던 탓에
매스컴과 언론을 통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자세한 현장정보나 단서는 여전히 묘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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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의 모습>
때는 1997년 8월 14일.
제주시내 관덕정 인근의 옛 법원청사 철거 공사현장에서
벌거벗겨진 채로 버려진 여성의 사체가 발견되었다.
사체의 상태는 매우 참혹하였는데, 얼굴과 뒤통수, 목덜미에 심한 구타의 흔적이 있었고
유두는 도려내졌으며 음부는 찢기는 등 훼손되어있었다.
경찰은 신원조사를 통해 피해자가 관덕정 부근의 단란주점에서 일하던 고 모씨(당시 32세)임을 알아냈다.
경위는 이러했다.
고 모씨는 자신이 일하던 단란주점의 여주인인 현 모씨와 함께 일을 끝내고
새벽 늦게 귀가하던 중이었는데 현 모씨가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습격을 당했다.
범인은 현 모씨는 피투성이가 된채로 내버려둔후, 고 모씨를 공사현장으로 끌고가 무참히 살해한 것이다.
현 모씨는 지나가던 행인에게 발견되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경찰은 사건현장을 중심으로 단서와 목격자를 찾으려 노력했으나
사건이 새벽의 시내에서 일어난 점, 순식간에 벌어졌다는 점 때문에
이렇다할 단서를 포착할 수 없었다.
실제 사건현장에서는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현장에 떨어진 유일한 단서인 담배꽁초에선 혈액형이 A형이라는 것밖에 알아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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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발생 23일 후, 9월 6일.
수사가 미궁으로 빠지려던 찰나, 경찰에게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가 살인범이다. 너희는 뛰어봐야 나는 날고있다. 너넨 못잡는다. 나를 못잡는다"
전화는 다섯번이나 걸려왔고, 경찰은 이 전화가 걸려온 공중전화의 위치를 파악,
지문을 조사하여 추출한 후 조사 끝에 김 모씨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김씨는 경찰 조사 결과 8월 3일과 9월 23일에 관덕정 인근에서 강간미수와 특수강도를 저지른것으로 드러났다.
이전 사건에서 김씨는 피해자의 머리를 둔기로 내려찍는 수법을 사용했는데
그것이 이번 사건과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심문을 시작하였고
김 모씨는 관덕정 살인사건을 자신이 저질렀음을 자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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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백에 의하면(이때 관덕정 살인사건에 대한 정보는 김모씨에게 주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김 모씨는 새벽에 관덕정 인근을 지나던중
두 여자가 싸우는 것을 보고 돈을 훔칠 목적으로 현 모씨를 돌로 내려친 뒤
핸드백을 들고 도망가려는데 고 모씨가 쫒아와 핸드백을 돌려달라고 하자
근처의 공사현장으로 끌고가 살해했다는 것이었다.
자백을 받아들인 경찰은 사건 처리에 들어갔고
김 모씨는 사건현장을 태연하게 재연하였다.
사건은 그렇게 종결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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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모씨는 막상 재판정에서는 혐의를 부인하였다.
범행 재연까지 모두 끝내놓고, 이를 취재하러온 신문기자에게
'나 안했어, 안했어'라고 돌발행동을 하더니 마침내 혐의를 부정하고
나머지 범행또한 모두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물적증거가 전무했던 경찰은 순전히 김 모씨의 자백이 정황상 일치한다는 것이
유일한 무기였으나 김 모씨가 이를 부인하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또한 김 모씨의 혈액형은 담배꽁초에서 검출된 것과 다른 O형이었다.
결국 재판부는 김씨가 범인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김씨에게 특수강도와 강간미수 혐의만 적용해 징역 8년형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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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모씨 모친과의 인터뷰>
김모씨는 재판장에서
"사건 이전에 폭행을 당해 경찰서에 찾아갔으나 전과자라는 이유로 믿어주지 않았다.
그래서 앙심을 품고 공중전화로 전화해 범인이라고 자백했다.
자백한 내용은 TV와 신문에서 본 걸로 대충 진술한 것이다" 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김 모씨는 언론에 노출되지 않은 사실-
정확한 사건 발생위치와 범행도구가 돌이라는 것, 그리고 옷색깔과 피해자에게 쇼핑백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있었기 때문에 김 모씨가 적어도 목격자일 수 있다는 추측을 바탕으로
조사하였으나 별다른 성과를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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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에 의해 목격된 또다른 용의자의 몽타주. 이것 외에 이 용의자에 대한 정보는 없다>
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단순 강도 목적에서 살인으로 변질된 것으로 보이지만
시체를 심하게 훼손하였다는 점에서 단순히 이사건만으로 그치지 않은 연쇄살인의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그리고 2012년 7월 12일 오전 7시경. 제주 여성 피살사건이 발생하였다. (일베 대망생이 관련한 사건 맞음.)
이 사건에서, 사체가 파훼되었고 피해자의 물품이 보란듯이 버려진 채로 있었다는 것에서
관덕정 살인사건과의 유사성이 발견되어 같은 범인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혹이 돌았다.
그러나 범인이 잡힌 시점에서 관덕정 살인사건의 공소시효는 2주 남짓 남은 상태였고,
결국 양자간의 관련성을 밝혀지지 못했으며
2012년 8월 14일, 공소시효가 종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