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암
미리암의 가혹한 처벌
미리암은 강인함과 경건함의 본보기로 여겨왔습니다. 그녀가 없었다면 모쉐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고, 나일 강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녀는 형제인 모쉐와 그의 아내 찌치포라를 걱정하는 마음에 아하론에게 말을 건넨 것뿐이라 추측할 수 있은데, 왜 그녀는 가혹한 벌을 받아야 했을까요?
먼저, 미리암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집트에서 어린 소녀였던 그녀는 어머니 요케베드와 함께 산파 일을 했습니다. 두 사람은 유대인 남자 아기들을 태어나자마자 모두 죽이라는 파라오의 칙령에 맞서 싸웠습니다.
또한 파라오가 모든 남자 아기들을 물에 빠뜨려 죽이라고 명령했을 때, 미리암의 아버지 아므람은 더 이상 아이가 생기지 않도록 아내와 별거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유대 민족의 지도자였기에 많은 이들이 그의 본을 따랐습니다.
미리암은 아버지를 향해 “아버지는 파라오보다 더 나쁘십니다! 파라오의 칙령은 남자아이들을 겨냥한 것이지만, 아버지는 사실상 유대인 여자아이들까지 없게 만들고 계십니다!”라고 비난했습니다. 그녀의 간청으로 아므람은 아내와 재결합했고, 모쉐가 태어났습니다.
모쉐의 어머니가 모쉐를 바구니에 담아 나일강에 띄웠을 때, 갈대 덤불 속에 숨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본 것은 미리암이었습니다(그녀는 이 아이가 예언된 구세주이며, 어떻게든 구원받을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모쉐가 친어머니에게서 젖을 먹도록 주선한 것도 바로 그녀였습니다.
나중에, 출애굽과 홍해의 갈라짐 이후, 미리암은 모든 여인과 소녀들을 이끌고 노래하고 춤추게 했습니다. 그녀는 모쉐와 아하론과 함께 유대 백성이 광야에서 지낸 40년 동안 그들을 이끌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유대인들은 그녀의 공덕으로 물을 공급받았습니다.
탈무드는 그녀의 두 형제와 마찬가지로, 미리암도 하나님의 “죽음의 입맞춤(the kiss of death)”으로 죽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녀의 영혼은 너무나 고귀하여 죽음의 천사조차도 그 영혼을 지배할 힘이 없었습니다
미리암의 죄
하나 바이스버그는 자신의 글 『Lighting Up』에서 미리암의 잘못을 다른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미리암의 일생 동안, 그녀의 삶의 초점과 본질은 가족의 단합과 화목을 증진시키겠다는 확고한 목표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열망은 그녀의 본질적인 자아이자 하나님을 섬기는 길의 일부였습니다.
미리암은 남동생이 고의로 아내와 떨어져 지내는 것을 목격했을 때, 가만히 있을 수 없었고, 그녀에게 있어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을 바로잡기 위해 항의를 표했습니다.
하지만 모쉐는 언제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다른 모든 예언자들과 달랐습니다. 따라서 그는 항상 의식적으로 정결해야 했으며, 이는 아내 찌포라와의 부부 관계를 삼가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미리암은 찌포라의 우연한 말을 통해 모쉐의 행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쉐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셨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그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여긴 미리암은 상황을 바로잡고자 모쉐의 형 아하론에게 모쉐를 비판했습니다.
아하론과 미리암 모두 예언자였지만 정상적인 가정생활에서 물러날 필요가 없었기에, 그들의 이해로는 모쉐에게도 그런 요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Sifrei, Behaalotecha 99)
미리암의 의도는 순수하고 바랐으나, 모쉐에 대한 근본적인 평가에서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모쉐는 독보적인 인물이었으며, 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예언자였습니다. 그토록 탁월한 예언자로서 타인보다 한참 앞서 있었기에, 그는 다른 어떤 개인—심지어 미리암이나 아하론처럼 위대한 예언자라 할지라도—과 동일한 잣대와 기준으로 판단되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습니다.
미리암은 올바른 의도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비판으로 인해 벌을 받았습니다.
중대한 의문
미리암은 선의에서 그런 행동을 했습니다. 그녀는 모쉐의 태도가 오만하다고 느꼈고, 다른 사람들에게 나쁜 본보기가 될까 봐 걱정했습니다. 그녀는 결코 모쉐를 비방할 의도가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녀는 모쉐에게 직접 따지지도 않았고, 오히려 그 상황을 더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아하론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그렇게 가혹한 벌을 받았을까요?
그것은 그녀가 바로 미리암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 민족의 지도자로서, 비록 모쉐에게 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느꼈더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그녀의 의무였습니다.
흥미롭게도, 이것은 미리암이 부당함을 감지했을 때 두려움 없이 목소리를 내지 않은 유일한 경우였습니다. 모쉐와 직접 대면하지 않고 아하론에게 찾아간 바로 그 순간이, 그녀가 실패한 유일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너에게서 나는 완전한 두려움 없음을 기대할 뿐이다”라고 말하는 듯, 하나님께 지적을 받게 됩니다.
죄를 기억하며
매일 아침 기도문에는 “여섯 가지 기억”이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너희가 이집트에서 나올 때 길에서 주 너희 하나님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신명기 24:9)
왜 이것이 우리가 매일 의식적으로 기억해야 할 여섯 가지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일까요?
흥미롭게도, 우리는 “미리암이 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암에게 행하신 일”을 기억하라는 지시를 받습니다.
미리암이 한 일은 너무나 사소해서 죄라고 부르기조차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녀는 그렇게 가혹한 벌을 받았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기준으로 정의를 집행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능력과 잠재력에 따라 고유하게 심판받습니다. 그리고 미리암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 이 행동(평범한 사람이라면 오히려 칭찬받을 만한 일일 수도 있습니다!)은 죄로 간주됩니다.
격자무늬 셔츠에서는 눈에 띄지 않을지도 모르는 작은 얼룩이, 흰 셔츠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을 생각해 보십시오. 미리암은 바로 그 흰 셔츠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사소한 잘못이, 그녀의 흠잡을 데 없는 배경 앞에서는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하느나께서는 모든 이에게 공의를 베푸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아무리 위대하고 거룩한 사람이라도 잘못을 저지르고도 '무사히 빠져나갈'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는 그 사람이 누구이며,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기대하시는지에 따라 각 개인에게 맞춤 제작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By Chaya Sarah Silberberg (the rebbetzin of the Bais Chabad Torah Center in West Bloomfield, Michigan)
Art by Sarah Kran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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