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4) 생일 축하합니다!

[이주호]

인간은 태어나면 생일이라는 소중한 하루를 부모님으로부터 선물로 받는다. 아기나 아이들은 자기 생일이 다가오면 부모님께 선물을 사달라고 조르거나 떼를 쓴다. 떼를 쓰는 건 아마 청소년기 아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나의 생일은 일반 가정집에서 자란 분들과는 달리 평범하지 않았다. 잔치나 행사와도 비슷했다.

송년회는 보통 테이블 위에 다과를 놓고 무대에 MC를 초청하여 행사를 거행한다. 그리고 행사 진행이 끝나면 뷔페식을 한 뒤 식을 마친다. 일반인의 생일은 MC도 없고, 식을 진행하는 사내 임원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요소들을 빼면 보육원에서 보낸 첫 생일과 비슷했다.

1월 24일은 평범한 나의 생일이고, 처음 기억하는 생일은 여덟 살 때이다. 그 전의 생일은 기억나지 않는다.

여덟 살 이전의 사진은 겨우 두 장뿐. 하얗고 거친 글씨로 쓰여진 ‘RED’. 양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반다나를 머리에 둘러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웃은 사진, 유치원 졸업식 때 세 명의 친구들과 나란히 의자에 앉아 카메라를 올려다본 사진. 두 사진을 지긋이 내려보자 기억이 되살아났고, 힘겨운 날엔 이것이 버팀목과 같은 거름이 되었다.

이 보육원은 조금 더 어릴 때 살았던 곳이다. 유아기 시절부터 유년기 시절, 그리고 청소년이 되기 전까지 여기서 쭉 생활해 왔으며, 생활자 간의 잦은 다툼이 있던 곳이었다. 싸움이 발생하면 교육을 명목으로 때에 따라 전원 훈계를 받기도 했다. 생활자들은 생활원이라는 우물 안에 사는 개구리였다. 우리는 '작은 비밀의 정원'에서 순수함을 간직한 채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

1월임에도 불구하고 별로 춥지 않은 유독 따뜻한 겨울이었다. 며칠 전부터 내렸던 눈이 풀장 뜰과 길목 둘레에 쌓여 약간의 서림만 느껴졌다. 중천에 뜬 해는 바닥에 깔린 얼음을 천천히 녹여내고 있었다. 신정이 되어도 눈이 안 내렸기에 우리들이 직접 눈을 치워야 하는 걱정은 덜어졌다. 걱정을 유발하는 눈이 아주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새벽이 되어도 잘 일어났다. 소변이 마려울 때면 새벽에 화장실로 가는 도중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저 멀리 내려다본 수위실의 누런 불에 비친 채 삽을 들고 나오는 아저씨가 보였다. 아저씨는 묵묵하게 제 할 일을 잘 해내는 멋진 어른이었다. 쌓인 눈을 한 줄씩 밀고 나가는 모습이 마치 목표를 정하고 하나씩 처리하는 올바른 계획형 인간의 모습이었다. 눈이 잘 쌓이지 않는 이유는 아마도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알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격주로 돌아오는 수요일은 '수(水)'요일이라서 ‘수영하는 날‘이었다. 아침에 깰 때부터 친구들은 이미 수영장에 도착한 것처럼 한창 들떠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나서 여름방학 숙제가 끝나는 순서대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수영하기에 앞서 밥을 먹는 일은 내게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음식을 잘 씹지도 못할뿐더러 씹은 음식을 (사실, 제대로 씹지도 않았지만) 목 뒤로 삼키는 과정은 어렵고 복잡한 과정이었다. 이것은 꽤 오랫동안 변함없었던 불안정한 습관이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오은영 박사님에 따르면, 아이가 음식을 잘 먹도록 돕기 위해서는 식사시간을 즐겁게 만들어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린아이일수록 질식에 대한 공포가 커서 음식을 삼키는 것을 거부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행동에 대한 대안은 '아이가 음식을 잘 섭취하게끔 도와주는 것이고, 식사시간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한다. 어릴수록 공포가 크다는 것은 정신이 예민하며 안정성이 보장된 정상 범주 밖으로 노출되어 있기에 신경적으로, 심리적으로, 그 외 다양한 문제로 민감하다는 뜻이다.

나는 촉각이 매우 예민한 아이였다. 친구들과 같이 있을 때 별다른 이유 없이 싸움을 시작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은 상황에 내키는 기분대로 행동한 것도 보통 사람들보다 예민한 이유에서였다.

’어떻게 하면 예민한 아이를 진정시킬 수 있을까?‘

바로 여유를 주는 것이다. 환경을 새롭게 바꾸려면 어른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 식사하는 공간을 여유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고, 식사를 하는 동안 웃는 얼굴로 대화하고, 큰 음식이 있다면 작게 잘라주는 것이 방법이다.

여유 있는 공간을 만드는 법은 그리 어렵지 않다. 아이가 편한 마음으로 있을 수 있게끔 안정적이고 안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몬스테라 화분을 식사자리에서 보이는 곳에 들여 놓는다던지, 보드라운 상아색 커튼으로 창문을 살며시 가리던지 하는 것들이다. 그리고 아이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기다려주고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신경 쓰는 것이 예민한 아이를 도우는 최선의 방법이다.

나의 식사시간은 대부분 우중충 했다. 정해진 식사시간에 밥을 다 먹지 못하면 복도로 쫓겨나 음식이 담긴 큰 사기 접시를 들었던 경험도 많았다. 선 채로 울며 밤 11시가 넘도록 깨작깨작 잘 넘어가지도 않는 밥을 억지로 먹기도 했다. 편식은 생활했던 시설의 규율에 어긋나는 이탈행동이었다. 이처럼 좋지 않은 버릇은 훈계와 매를 맞아가면서 천천히 고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 날만큼은 달랐다. 아침밥은 고소한 야채죽과 김장김치, 꼬들꼬들하고 달콤한 무말랭이가 나왔다. 시뻘건 볶음멸치도 나왔다. 이가 약해 딱딱한 음식을 잘 씹지 못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괜찮았다. 야채죽에 멸치볶음을 말으면 멸치가 눅눅해졌고 씹기에 편했다. 밥을 ’잘 못 먹는‘ 입장에서 그날의 아침밥은 부드럽고 삼키기 쉬워서 '괜히' 더 맛있었다. 경험이란 반찬을 인생이라는 몸에 꼭꼭 눌러 보양하는 것처럼, 앞으로의 우리 인생의 반찬이 만족스러운 만찬이 되길 바랐다.

식사 후 수녀님은 분홍 꽃무늬 자루에서 수영모와 수영 바지를 꺼내 우리에게 나누어주셨다. 우리가 배급받은 물품에는 각 생활자의 이름이 매직 마카로 쓰여 있었다. 간혹 남의 것을 빼앗는 아이가 있었는데 그럴 때면 나는 그 애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자 내놔."

타락한 홍길동이 빙의된 아이는 대꾸했다.

"내가 언제 뺏었냐?"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결국에 누가 주도했다는 것을 따질 새도 없이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UFC 매치 일정이 정해지면 선수끼리 대면하다가도 우발적으로 주먹을 내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럴 땐 의료팀과 매니지먼트팀이 대기하여 선수를 관리하겠지만 외딴곳에서 만일 그러한 일이 발생했다간 둘은 거침없는 등짝 스매시가 제지할 예정이었다.

우리 근처에 어른이 있다면 어그러진 상황은 쏜살같이 빠르게 정리되었다. 하지만 어른이 없으면 이야기는 달라졌다. 서로 할퀴거나, 팔을 물어뜯거나, 제대로 맞지도 않는 주먹질을 산성비처럼 퍼부었다. 나는 허공에 주먹을 잘 날리는 고수였다. 애석하게도 어느 자리를 채우는 중요한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복싱에서는 이것을 섀도복싱이라고 했다.

친구가 싸움을 시작해도, 내가 시작해도 결과는 늘 좋지 않았다. 멋모르던 어린 시절에는 벌어지는 행동이 장난인지, 사고인지 모를 일들이 참 많았다. 다투는 우리들의 언성이 높아지기 전에 수녀님은 무서운 심판의 표정으로 난쟁이들을 번갈아 보았다. 결국 우리 둘은 허공 주먹질을 멈추어 물안경을 마저 받고 생활실을 떠났다.

수영장으로 가는 길은 정말 가까웠다. 생활하는 건물로부터 약 삼백 미터만 걸어가면 도착하는 곳이었다. 수영장 앞에는 수압 펌프를 관리하는 관리실이 있었고, 그 앞에 탁구 경기장만 한 공간이 있었다.

공터의 수호를 관장하는 네 명의 사내 대장군들. 그들은 보육시설을 관리하는 대표 기사님들이었다. 남자 기사님들은 총 다섯 분, 혹은 그 이상이었지만, 경기에 참여하는 사람은 대체적으로 교체 선수까지 해서 다섯 명 정도였다.

오리 버스 기사 아저씨와 불고기 아저씨, 수영장 아저씨, 목공소 아저씨가 2인 1조로 한 팀으로 족구를 하고 있었다. 심판석에는 언제나 그랬듯 윤 씨 기사 아저씨가 앉아계셨다. 우리끼리 그 스포츠를 발탁구라고 했지만, 정식 스포츠명은 족구라고 일컫는다. 나와 친구들은 붉은색과 노란색, 진한 녹색, 하늘색 페인트로 칠해진 오래된 난관을 붙잡고 '우리 팀 이겨라~!' 외치며 재미있게 구경하곤 했다. 폐품을 버리러 갈 때, 수영하러 갈 때, 점심밥을 먹고 학교로 다시 올라갈 때, 산으로 갈 때. 네 명의 아저씨를 응원하는 관객은 주로 우리 초등학생들이 도맡았다. 이따금 보육교사 선생님도 아이 같은 마음으로 구경하셨다. 관리실을 지나쳐 다른 장소로 가기 전, 아이들이 이곳으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는 족구 구경이 주된 목적이었다.

친구들이 수영장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었다. 물건을 보관하는 사물함은 잠금장치 따위가 없었다. 때문에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등 작은 사건사고도 빈번히 일어났다. 그런 행위를 두고 우리는 '닦았다(훔치다), 닦였다(도난당했다)'라고 했다. 몇몇 아이들은 발탁구에 집중하다 보니 '수영장에 가야 할 생각'이 잠시 닦이기도 했다. 이 초등학생들은 공이 하늘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떨어지는 게 그렇게 좋았나 보다.

초등학교는 초등부와 고등부가 있다. 1~3학년은 초등부, 4~6학년은 고등부. 수영장 내부는 두 개의 풀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입구와 가까이 있는 얕은 풀장은 초등부, 그 옆에는 수심 2M의 고등부 전용이 있다.

우리 같은 꼬맹이가 고등부 전용 풀장으로 간다면 안 좋은 사단이 날텐데. 뻔한 결과였다. 나는 비교적 정해진 규율을 잘 지킨 편이었고, 예민한 성격은 그곳의 생활에 작은 도움이 됐다. 조금 자라고 나서는 정 반대였지만 말이다.

수영은 서로 물 뿌리기 아니면 개인 연습으로 끝이 났다. 물 뿌리기는 물장구, 물대포, 물벼락 같은 여러 가지 기술로 주먹대신 치고받는 특급 히어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마음껏 쏟아부을 수 있었다. 수영장 변두리에 한 번씩 지나가는 어른들에게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지만, 초등학생들에게 조심이란 사치였다.

다 편 손가락을 살짝 오므린 채로 머리는 한 팔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 양팔을 번갈아 가로질러, 다른 한 손이 물속에서 올라올 때 입을 열어 숨을 내뱉고 다리를 붙여 하나씩 위아래로 첨벙첨벙 굴러 헤엄치면 '자유형 연습'. 두 팔로 물을 반원형태로 가르면서 다리를 개구리처럼 접었다 펴서 헤엄치면 '접영 연습'. 배를 물 밖으로 뒤집어 한 팔씩 뒤로 물레방아 돌리듯 다리를 번갈아 헤엄치면 '배영 연습'이다.

우리는 주로 자유형과 배영, 잠수 연습을 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유독 몸집이 작았기에 작은 풀장에서 이러한 연습을 해도 큰 무리는 없었다. 초등학생 3학년이 되면 저학년의 막바지에 이르는데 이때부터는 정식적으로 큰 풀장에서 놀 수 있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수영을 가르치는 선생님을 따라 교습을 듣다 보면 닫힌 문이 천천히 열리는 듯한 신비하고 새로운 경험을 맞이했다. 어린 시절의 모든 경험들은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작은 벽돌을 하나씩 쌓는 노력을 했다는 것. 기억을 되짚어보면 지금까지 겪은 모든 일들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이따금 수녀님이나 보육 선생님이 없으면 몰래 큰 풀장으로 잠수하는 친구가 있었다. 그날은 그 친구가 호되게 혼나는 날이었다. 보통은 물러서는 게 상책이지만 '그 누구도 아이의 호기심을 가둘 수 없다'는 사실을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수영이 끝나면 몸에 코팅된 화학성분을 지우려 까슬까슬한 타올로 몸을 문지르며 샤워를 했다. 작은 지퍼 가방에 들어있는 미니어처 샴푸 앰플과 작은 비누를 샤워실로 들고 와 머리를 감고 몸을 박박 씻었다. 행여 수영장 소독물 냄새가 몸에 배길까 오랫동안 샤워실에서 나오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그 친구는 높은 확률로 지각생이 되었다. 지각이 빈번한 아이는 소중한 추억을 회상하며 그만의 첫 에세이를 쓰고 있다.

물에 젖은 쥐는 저체온증에 걸리기 쉽다. 기존 온도에서 2~3도가 낮아지면 오한이 생기고 열이 난다. 급격히 낮아진 온도를 보완하기 위해 몸속 열에너지는 서로 충돌하여 생체학적인 변화를 발생시킨다. 나는 비록 죽을 정도의 위기를 수영장에서 겪은 건 아니지만, 물에 빠진 생쥐는 빠른 생각과 행동에 유난히 취약했다.

샤워기에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물을 끄는 것 자체가 무지 귀찮았지만, 혼나지 않으려면 다른 아이들과 함께 발을 맞춰야 했다. 나올 준비가 끝나면 우리들은 냅다 생활실 건물로 달려갔다. 겨울이라 수영장 입구부터 퍼런 입술을 덜덜 떨면서 비탈이 심한 언덕길을 내려왔다. 언덕길을 뛰어내려오는 도중에 넘어지는 걱정은 미리 접어두었다. 평범한 일상이니까. 뼈가 부러지거나, 이빨이 깨지거나, 피가 많이 나지 않으면 괜찮았다. 아이들은 그렇게 또 넘어지고 다시 달려갔다. 다시 돌아가야 할, 지금의 우리가 있게 해 준 집으로.

건물에 도착하고 나서는 두 칸씩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갔다. 몸이 힘들 땐 일부러 뛰어가지 않았다. 오랜 시간 사용된 기계 같았던 몸은 녹이 슬고 기어끼리 갈려 보다 많은 스크래치를 내었고 속도가 느려졌다. 인체학적으로 보면 기계의 성분과는 한참 달라도 기계는 기계. 어정쩡한 우리였다.

시설 현관(느티나무 앞 중간문)에 들어서게 되면 '네가 이기냐! 내가 이기냐! 내기'가 시작되었다. 보상은 고무로 된 딱지였다. 각자 호주머니에는 소설 <아가미>의 주인공 곤의 등비늘처럼 반짝거리는 고무딱지가 빵빵한 건빵처럼 들어있었다. 내기에서 지면 인생의 모든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고무딱지를 넘겨야만 승리에 대한 보상이 주어졌다. 지지 않기 위한 방법은 오직, 5층에 도착할 때까지. 생활실에 도착할 때까지 전속력으로 달려야만 했다. 빼앗고 싶으면 빨리 가야 했고 빼앗기고 싶지 않으면 빨리 가야 했다. 숙원으로 숙성된 다른 차원의 빛바랜 꿈처럼. 집(보육원)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파란 빨래 통에 젖은 수영복을 담았다.

그때 갑자기, 피로한 몸이 무언가로부터 뒤로 끌려갔다. 입구 컷. 세 명의 친구들은 인질극처럼 작은 몸뚱어리를 붙잡고 복도 저 멀리까지 나를 끌고 갔다. 해저 생물을 채취하는 목적으로 샘플 통으로 생물을 가두고 강제로 인양하듯 장수부들의 예상치 못한 잠복이었다. 화가 났다. 하지만 그 친구들은 붙든 팔을 쉽게 놓아주지 않았다. 개울가 올챙이를 놓지 않겠다는 신념과 각오를 어디 지원서에 써 놓은 모양이었다.

약 5분 뒤, 생활실 안에 있던 다른 한 친구가 생활실 문을 열면서 모두 방으로 오라고 했다. 아이들은 나를 내팽개치고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어이가 없어 찬 바닥을 짚고 일어나 온기 가득한 생활실로 따라 들어갔다.

하얀 유리 문간을 넘으면 창문을 통해 생활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녀석들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여기서 보면 모를 줄 알았지?‘

낮은 창문을 넘보는 일은 어려운 일이었다. 까치발을 들어봐도 간신히 점프를 뛰어야 볼 수 있는 내부는 천장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반에서 키가 가장 작았던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이득을 못 보고 다시 생활실 문을 열었다.

"생일 축하합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생일케이크 팡파르를 터뜨리며 생활실 입구에서 반갑게 맞이했다. 눈앞에 장난기 어린 친구들이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다.

나를 이곳으로 이끈 것은 누구인지. 당신들은 대체 누구인지.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 오랜 시간 동거 동락했던 어린 시절과의 만남이었다. 나를 진심으로 사랑해 주는 사람들, 우리의 거처이자 안전지대였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이주호~ 생일 축하합니다~!!"

마냥 기뻤다. 그 경험은 공허한 마음을 빈틈없이 채워준 남는 행복이었기에 복에 겨워 눈물 흘릴 줄도 몰랐던 철부지로 살아왔다. 첫 생일파티를 떠올려보면 그토록 가슴 벅찬 감정을 느낀 적은 없었다. 나는 엄마 수녀님과 친구들의 축하를 받으며 책상 앞으로 다가갔다. 공부시간엔 공책이 올려져 있어서 지루했지만, 생일에는 음료수와 과자, 햄버거가 있었고 따뜻하고 호기로와 보였다. 하얀 일회용 접시에 담긴 다양한 사탕과 과자, 먹음직스럽게 우아한 자태로 포장된 햄버거... 온 세상을 다 가진 것만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생활반의 생일 축하는 친구들과 돈독해지게 된 강력한 계기이기도 했다. 2002년 1월 24일, 나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가 되었다.

그날 저녁, 공책을 펴고 일기를 썼다. 그림 일기장에 그려진 아이는 세상 풍파를 겪고도 살아남은 갈대처럼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때를 상기할 때마다 미소 비슷한 것이 심장을 시큰거리게 했고 에밀레종의 울림에 준한 넋두리를 뱉었다.

세상 풍파를 혼자서 억지로 견디려는 마음에 쉬이 웃지 못하게 되어 한편으로는 슬프고도 애석했다. 여덟 살 처음 알았고, 처음 경험한 첫 생일을 떠올릴 때면 아이처럼 울었다. 그저 좋아서 울었다.

철 없이 살았던 그때가 너무도 그리웠다. 친구들과 싸워도 금방 다시 친해졌던, 작은 행복에 감사할 줄 알았던, 살아가는 것에 진득한 호기심을 가지고 재미있어하던 시절이.

생일인 날이 해마다 돌아올 때면 내 눈빛의 명암은 자주 뒤바뀌었다.

어떠한 곤욕함을 겪어도 매사에 모든 것에 흥미를 가지는 마음으로. '아이의 눈을 가지고 세상을 깊이 있게 바라보도록 노력해야겠다'는 강렬하고도 충격적인 안목을 준 신과 스티븐 호킹께 뼈저리게 감사했다. 고마워요. 모두들. 엄마들. 친구들. 그리고 우리들의 아버지. 신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