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철 KT 감독. 스포츠조선DB[대구=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이번 한번 때문에 이러겠나. 몇번을 참았는데 어젠 넘어갈 수가 없었다."
이강철 KT 위즈 감독이 보기드물게 뜨거운 분노를 터뜨렸다.
평소 브리핑에 임하는 이 감독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하다. 감독을 맡은지 3년차지만, 올해 나이 55세. KBO리그 사령탑 중엔 맷 윌리엄스(56) KIA 감독 다음 가는 야구 선배다. 브리핑 스타일 역시 팀과 선수들에 대한 애정을 친근하게, 조용조용 풀어내는 스타일이다.
9일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둔 그의 분위기는 전혀 달랐다. 쉽게 말을 꺼내기 어려울 만큼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전날 KT는 KIA에 먼저 4점을 내주고도 어렵게 따라붙어 5대5 무승부를 기록했다. 선발로 나선 에이스 데스파이네는 집중력을 잃은 투구 끝에 1⅔이닝만에 교체됐다.
데스파이네 이야기가 나오자 이 감독의 표정은 한층 어두워졌다. 그는 깊은 한숨을 토한 뒤 작정한 듯 속내를 쏟아냈다.
"2스트라이크 잡아놓고 안타 볼넷 안타 볼넷, 투수가 베이스 커버도 안 가고 쳐다보고 있고. 야수들 세워놓고 투수가 뭘 하는 건지. 누누이 몇번을 참았는데, 어젠 도저히 넘어갈 수가 없었다. 던지기 싫다는 소리 아닌가. 아주 잘못된 행동이다."
KT 선발투수 데스파이네. 수원=허상욱 기자 wook@sportschosun.com/2021.09.08/박찬호에게 첫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내줬을 때, 데스파이네는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중견수의 홈송구가 날아올 때까지 파울 라인 안쪽에서 엉거주춤 서있었다. 보통이라면 이미 홈플레이트 쪽으로 이동해 포수의 뒤를 지켰어야했다.
김선빈의 1루 땅볼 때는 더욱 심각했다. 1루수가 타구를 잘 막았지만, 데스파이네의 1루 커버가 터무니없이 늦었다. 접전 상황에서 공까지 떨어뜨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이 감독은 레이저빔 같은 불꽃 시선을 쏘아냈다.
"컨디션이 안 좋고 실력이 안되면 뭐라 하겠나. 최소한의 성의를 보여야지. 이런 행동은 용납할 수 없다. 이런거 내버려두면 팀이 안 돌아간다. 이야긴 안했지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후반기 첫 등판 삼성전 기억하시나. 3연패 당한 다음 경긴데 슬슬 던지다 얻어맞고(3⅓이닝 6실점). 참고 지켜보는 것도 한계가 있다."
평소 그는 선발투수를 쉽게 교체하지 않는 편이다. 경기 초반 부진에도 어느 정도의 공 개수를 채우게 한다. 선발투수와 불펜 양쪽 모두를 고려한 선택이다. 위기나 투수 교체시 박승민 투수코치 대신 직접 마운드에 올라가 투수를 격려하는 모습도 자주 포착된다.
외인인 데스파이네와 쿠에바스는 더욱 특별하다. 특히 데스파이네의 4일 휴식에 대한 이 감독의 배려는 각별하다. 어떤 투수를 칭찬할 때나 "데스파이네가 (4일 로테이션을)해주는 덕분에 다른 투수들이 더 힘을 낼 수 있다. 감독으로서 참 고맙다"는 말을 덧붙인다.
선수들의 훈련을 지켜보는 이강철 감독. 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하지만 전반기 8승6패, 평균자책점 2.45의 수퍼에이스가 올림픽 휴식기 이후 완전히 고꾸라졌다. 후반기 6경기 평균자책점이 무려 6.04에 달한다. 이닝 이터의 명성이 무색하게 평균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있다.
화를 내도 말투는 조곤조곤했다. 이런 사람이 화나면 더 무섭다. 한번 터져나온 격정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이 감독은 타이거즈 최다승(150승)에 빛나는 KBO 레전드 투수다. 그의 코칭 철학은 '기본에 충실하라'는 것.
"우리 선수들, (1군)올라오면 정말 열심히 한다. 어떻게든 한발 더 뛰고, 이기려고 한다. (데스파이네 교체 후)분위기 바꾸고 따라가서 동점 만들지 않았나. 그게 감독인 내가 해야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