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여점 하에서는 제대로 된 경쟁이 이루어지질 않습니다. 명작이든 허
접한 졸작이든 3~4천권정도 균일하게 팔리는 것이 바로 대여점 시장입니다
한권 가지고 수십명이 빌려 보는데 굳이 많이 살 것도 없죠. 결국 부수 차
이가 안납니다.
혹시, 4천권이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4천이라는 부수는 단과학원이 하
루 아침에 근처 학교에 뿌리는 연습장 숫자보다도 적은 양입니다.
자, 이런 상황에서 돈을 많이 벌려면 만화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
러분은 아주 쉽게 "끝내주는 명작을 만들어!"라고 하시겠지요? 그게 현실
적으로 쉽고 어렵고는 접어두고라도, 그건 별로 현명한 돈벌이 방법(?)이
아닙니다.
정답은 많이 그리는 겁니다. 이 상황에서 돈을 벌려면 그저 권수가 많
은 만화를 만드는 수밖에 없습니다. 히트작이라고 해도 1만 2천권이 고작
입니다. 1/3의 노력으로 3권 찍는 게 훨씬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되지요.덕
분에 지금 김X모 같은 3류 만화가가 돈방석에 앉아 있지요.
이건 [마이클 조던에게 시급으로 연봉을 주는 셈]입니다. 슛을 넣던 말
던 리바운드를 하던 말던 경기장에서 뛴 시간만큼만 선수들에게 돈을 주는
상황을 생각해 보세요. 어떤 선수가 죽어라고 뛰어 다닐까요? 그 상황에서
어떻게 마이클 조던같은 엄청난 선수가 나올 수 있을까요?
정성들여 잘 그리고, 뛰어난 스토리를 가진 만화보다는 그저 빨리빨리
쓱싹 그려서 단행본을 뽑는 만화가 더 돈을 벌고 환영받는 세상, 이런 곳
에서 과연 명작이 나올 수 있을까요? 영원한 명작으로 추앙받는 <아키라>
그 여섯권이 완결되기 까진 10년이 걸렸습니다. 한국이라면 오오토모 카츠
히로같은 작가는 진작에 굶어죽었겠지요.
한국만화계엔 스타가 없습니다. <누들누드>의 작가 양영순씨가 만화로
번 돈이 5천만원입니다. 누들누드를 모르는 분은 안계시지요? 양영순씨는
98년 당시 최고의 신인이며 만화계의 혜성이었습니다. 5천만원이 많다고
생각하십니까? 일본이었다면 그 정도 작가는 이미 벤츠를 몰고 있었어야
합니다. 스타라고 하기엔 너무도 비참한 액수지요. (단행본 5권까지 내려
면 몇년이 걸립니다. 5천만원은 연봉도 아닌 겁니다. 대강 연봉 3년치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작가들은 일본만화와 경쟁해야 합니다. 그들은 만
화왕국 일본에서 잡지/단행본 모두 판매하는 시장 아래에 있으니 안정적인
수입을 가지지요. 도저히 같은 경쟁조건이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독자
들은 일본의 평작도 아닌, 최고 히트작들과 한국 만화를 비교합니다. 작가
들에겐 참 팍팍한 세상이지요.
하지만 판매해 보세요. 한국만화는 지지 않습니다. 진다면, 그걸로 좋
습니다. 국제경쟁시대에 한국만화는 원래 틀린 것이었나 보지요. 도태되는
것도 할 수 없죠. 하지만 경쟁도 못해보고 지는 건 억울합니다. 잘 그린
만큼 평가받는 대결을 해보고 나서 지고싶습니다. 우리 작가들에겐 그 정
도의 자존심은 있습니다. 한국만화를 사서 보자 혹은 한국만화는 사보고
일본만화는 빌려보자? 이런말 할 만큼 자존심 버린 작가는 아직 없습니다.
우리 저작권은 중요하고 남의 저작권은 별 거 아니다라는 생각도 비겁한
거구요. 여러분은 그냥 일제/국산 따지지 마시고 [여러분 보시기에 재미있
는 만화]를 사주세요. 그러면 됩니다. 작가들은 일본만화를 두려워 하지
않습니다. 실력으로 밀려서 졌다면 그냥 인정하고 물러설 각오를 하고 있
습니다.
대만과는 달리 우리 만화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달리 우리에게
보호벽이 있어서 아직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은 오직 뛰어난 작가
들이 있다는 것 뿐입니다. 쟁쟁한 작가들이 있어주었기 때문에 아직 우리
만화는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아직은요.
적어도 [잘 그린 만큼 댓가가 주어지는 상황]을 만들어 주고 나서 실력
탓을 했으면 합니다. 무임승차를 하면서 승차감이 어떻다 불평을 할 수는
없겠지요?
===ANTI===
대여점이 그나마 만화가를 먹고 살린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내가 빌려
서라도 봐주니 고마운 줄 알아라"라는 사람들도 아주 많더군요. 하지만 생
각을 해보세요.
>1권가지고 10명이 빌려보면 작가한테는 얼마가 돌아가죠?
정답: 300원
>1권가지고 99명이 빌려보면 작가한테는 얼마가 돌아가죠?
정답: 300원
어디 가서 아무 만화가나 잡고 빌려보는 독자들한테 고맙냐고 물어보세
요. 누가 감사를 표할 지 정말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