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6일(월)
* 시작 기도
주님...
주일 이후 한 주간의 첫 날이자 어느새 한 달의 마지막 주를 맞이합니다.
세월이 어찌나 빠른지 정말이지 ‘눈 깜짝할 새’가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이처럼 날아가는 새와 같은 시간을 잘 계수하여 시간을 구속할 줄 아는 지혜로운 자로 살게 하소서.
사위가 아직 어둡고 고요한 이 시간, 주를 뵈옵고자 말씀 앞으로 달려 왔사오니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주님이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잘 깨닫고 생명으로 받아 영생을 누리는 이 하루가 되게 하옵소서.
구약의 믿음의 선진들도 언약 안에 있으면서도 잘 넘어지고 쉬 자빠지는 모습에 적이 실망도 하지만 그런 모습을 통하여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인자하심을 보게 하소서.
슬픔을 당한 전도사님의 시댁 가족에게 하늘의 소망을 주시고 위로하여 주옵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본문 / 창 28:1-9
제목 : 언약 안에서 아들을 떠나보내는 이삭, 언약을 알지 못하고 무지한 채 현실만 즐기는 에서.
1 이삭이 야곱을 불러 그에게 축복하고 또 당부하여 이르되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고
2 일어나 밧단아람으로 가서 네 외조부 부두엘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네 외삼촌 라반의 딸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
3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4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5 이에 이삭이 야곱을 보내매 그가 밧단아람으로 가서 라반에게 이르렀으니 라반은 아람 사람 브두엘의 아들이요 야곱과 에서의 어머니 리브가의 오라비더라.
6 에서가 본즉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하고 그를 밧단아람으로 보내어 거기서 아내를 맞이하게 하였고 또 그에게 축복하고 명하기를 너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지 말라 하였고
7 또 야곱의 부모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으며
8 에서가 또 본즉 가나안 사람의 딸들이 그의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지라.
9 이에 에서가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 본처들 외에 아브라함의 아들 이스마엘의 딸이요 느바욧의 누이인 마할랏을 아내로 맞이하였더라.
* 나의 묵상
리브가는 에서가 헷 족속의 딸과 결혼한 것을 구실로 야곱을 떠나도록 이삭에게 채근한다.
그는 이삭에게 말하기를 에서의 결혼이 자기를 근심하게 하였고 만일 야곱까지 가나안의 딸들과 결혼을 하게 된다면 자기에게는 더 이상 즐거움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에 이삭은 야곱을 불러서 가나안의 딸이 아닌 외삼촌 라반의 딸들 중에서 아내를 맞이하라고 하며 축복하고 보낸다.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는 이삭의 축복은 창세기 1:28절에서부터 노아를 거쳐 아브라함과의 언약에 이르기까지 계속되는 선포 곧 케뤼그마를 담고 있다.
또한 이어지는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의 축복은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횃불언약을 다시 한 번 천명하는 것이다.
(창 15:13-14)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400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아브라함의 후손이 언제 가나안 땅을 떠나 이방에서 객이 될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이방에서 객이 되면 400년(4대) 만에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올 것이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는 것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다.
이삭은 야곱에게 지금 가나안 땅을 떠나 번성한 후에 다시 이 땅을 차지하라고 축복한다.
이삭의 이 말은 야곱이 가나안을 떠나 도착할 곳 곧 외삼촌 라반이 사는 땅 ‘밧단아람’을 이방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한편 에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야곱으로 하여금 가나안의 딸이 아닌 밧단아람으로 가서 아내를 구하도록 한 사실을 알았다는 말이다.
야곱은 아버지의 명을 따라 밧단아람으로 갔고 에서는 가나안 사람의 딸들 곧 자신의 아내들이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본처를 놔두고 이삭의 이복형인 이스마엘에게 가서 그의 딸 마할랏을 그의 아내로 삼는다.
이삭은 아브라함의 언약과 관련하여 밧단아람을 이방 땅으로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아들인 야곱을 자신의 품에서 떠나보낸다.
그런데 에서는 언약과는 무관하게 가나안 여자에 집착을 한다.
처음에는 헷 족속의 두 여자와 결혼을 하였고 이들이 아버지 이삭을 기쁘게 하지 못하자 이제는 이삭의 이복형인 이스마엘의 딸 마할랏을 아내로 삼는다.
어찌 보면 언약에 무지한 에서의 당돌하고 어리석은 행동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어째 됐든 가나안을 떠나 밧단아람으로 갔던 야곱은 20년 후에 가나안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그것은 아브라함의 언약과는 상관이 없다.
아브라함과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야곱의 시대에 그의 아들 요셉을 통해서 들어간 애굽이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의 약속은 궁극적으로 아버지 집 곧 영원한 하늘 본향이다.
(히 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 영원한 하늘 본향은 길과 진리와 생명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들어간다.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버지 집은 아들 안에서 아버지 안에 거하는 것으로 온전함이며 영원한 안식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은 선하고 인자하신 하나님께서 뒤에 따라오시면서 인도하심으로써 들어간다.
(시 23: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 아버지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나는 아버지 집을 찾는 자였다.
그 집을 찾고자 목마름과 허기짐으로 열과 성을 다하여 찾았다.
그곳에서 안식을 얻고자 찾고 또 찾았지만 그 어디에도 안식은 없었다.
다만 더욱 목이 마르고 더 많이 허기질 뿐이었다.
내 영은 삐쩍 말라만 갔고 찾으면 찾을수록 어찌 그리 목은 더 마른지 모른다.
그래서 사역에 온 몸을 바쳐 목숨 걸고 혼신의 힘을 다해 투혼 했다.
그런데 안식이 있는 아버지 집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결국 모든 걸 포기하고 사역을 접으려고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께서 복음을 듣게 하셨다.
복음을 듣는 첫 시간에 영생의 말씀이 내게 쏟아졌다.
그동안 영생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가?
셀 수 없이 많이 들었던 영생이었건만, 그동안 내게는 이 영생이 관념과 지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영생은 결코 지식이나 관념이 아니라 생명 그 자체이며 실재임을 나는 알지 못하였다.
그런데 통합복음을 들으면서 영생의 실재를 알게 되었고 그 날부터 말씀묵상을 통하여 지금까지 날마다 영생의 실재를 누리고 있다.
내가 찾아가는 그 무엇이 아니라 나를 찾아오신 우리 주님을 말씀으로 만나는 것이 진짜 영생이다.
내가 구도자로 찾아 나선 것은 대단한 일이지만 신에 대한 인식을 바르게 하지 못하여 눈에 보이는 그 무엇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만물 위에 계신 아버지이시며 또한 오늘 내 맘속에 계시는 아들이시다.
따라서 성전된 내 안에 거하시는 우리 주님을 외롭지 않도록 해야할 의무가 나에게 있다.
그것은 말씀 자체이신 우리 주님과 날마다 묵상을 통하여 교제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늘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처럼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말씀이신 주님을 방치해 두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나의 연인이며 주인이신 우리 주님과 늘 함께 하기를 원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 주님과 함께 눈을 뜨고 주님과 함께 눈을 감기를 원한다.
꿈속에서조차 주님과 함께 하기를 원한다는 말이다.
나의 생명 되신 우리 주님을 사랑합니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말씀은 도외시했던 나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주님이 말씀이요 말씀이 주님이심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저 지식과 관념으로 행했던 나의 죄를 불쌍히 여겨주소서.
생각으로는 벌써 천국을 100번도 더 갔을 터이나 나의 삶으로는 천국과 무관한 삶을 산 나의 죄는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드나이다.
오늘 나의 이런 비참함이 주님 앞에서 가감없이 드러나게 하시고 주님 안에서 초라한 자가 될지언정 주님을 무시하거나 배신하는 자가 되지 않도록 나를 장악하여 주소서.
주께서 이끄시는 인도함을 받고 오늘도 그 나라를 살기 원하오니 주님이 주신 생명이 나를 이끌어 가소서.
날 구원하신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