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채기 난 소나무, 시대의 아픔을 증언하다
곽 흥 렬
마침내 청량산淸凉山을 찾았다. 요즈음같이 교통망이 사통팔달인 시대에 뭐 그리 어려운 일이라고, 근 스무 해나 되도록 벼르고 별러 온 끝에 그제야 밟아 보는 봉화 땅이다. 천년고찰 청량사를 품에 안고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세며 골골을 감돌아 흐르는 물줄기가, 풍수지리 쪽으로는 완전히 손방인 나이건만 한눈에도 범상치 않은 품새로 다가온다. 무어라 꼬집어 표현하지 못할 무형의 기운에 일순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항용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그러한 속설은 대체로 들어맞는 말이지만, 그러나 그 말이 이곳에서만큼은 동의할 수 없는 소리일 것 같다. 예부터 ‘영남의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어 왔고 보면 빼어난 산세가, 내디디는 걸음걸음마다 화등잔만 해진 눈으로 “와! 와!”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든다. 옹기종기 이마 맞대고 들앉은 대가람의 전각들을 발아래 굽어보며 천천한 걸음으로 등행길에 오른다.
깊숙이 팬 골짜기를 건너고 가파른 등성이를 넘으며 팍팍한 다리를 타박거리길 거지반 두 시간 가량은 지났을까. 8부 능선쯤에 이르자 군락을 이룬 소나무 숲이 눈앞에 나타났다. 꽉 비틀어서 짜면 금방이라도 푸른 물이 뚝뚝 들을 것만 같은 청청한 빛깔이다. 온갖 공해에 찌들 대로 찌들어 생기를 잃어버린 대도시 변두리의 푸르죽죽한 소나무들과는 그 품격부터가 완연히 달라 보인다.
이러한 내 판단은, 그러나 얼마 못 가서 한참 허방을 짚은 꼴로 밝혀지고 말았다. “허허” 헛웃음이 나왔다. 가까이 다가가는 순간 두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몸피가 어른 허리통 굵기 정도만 되는 그루란 그루는 온전한 것을 찾기가 힘들 만큼 거의 다 밑둥치에 커다란 상처 자국을 안고 서 있는 게 아닌가. 제대로 자라질 못해 구불구불 외틀어진 형상이 마치 뇌성마비 장애인을 보는 것 같다. 세월의 풍상에도 질긴 목숨 부지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염려스러움을 넘어 애처롭기까지 하다.
다름 아닌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저지른 만행 탓이었다. 우리 한반도가 그들의 식민통치로 고통받는 동안, 사람은 물론이고 애꿎은 나무마저 이렇게 생이 다하는 날까지 씻을 수 없는 흉터를 안은 채 살아가야 할 운명이 되고 말았다. 일제가 이 땅에서 쫓겨간 지 어언간 반세기하고도 다시 삼십여 년, 강산이 바뀌어도 일여덟 번이나 바뀔 만큼 기나긴 시간이 흘렀건만 아직도 그때의 상흔은 여기저기에 옹이처럼 박혀 지난날의 참혹했던 민족의 비극을 말없이 불러일으킨다. 살아 있는 역사 교과서라고 할까.
절통한 만행의 현장에,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 높고 험악한 곳까지……. 만일 불행히도 그들의 치하에서 한 세기 가까이만 흘렀더라면 이 강토, 이 산하의 숲이란 숲은 아예 회복 불능일 정도로 깡그리 망가지고 말았을는지도 모른다. 그러고도 그들은 중․고등학교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는가 하면, 독도를 두고 자기네 영토라며 억지 주장을 펴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 뻔뻔스러움, 그 무례함의 끝은 도대체 어디까지란 말인가.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 일제의 발악은 극으로 치달았다. 총알을 만든다며 우물가의 세숫대야에서부터 어린아이들 밥숟가락에 이르기까지 놋쇠란 놋쇠는 모조리 긁어모아 갔는가 하면, 전투기 연료로 사용한답시고 조금 쓸 만하다 싶은 소나무에는 송진을 뽑느라 닥치는 대로 생채기를 내어놓았다. 송진을 정제해서 비행기 연료로 사용하는 방법을 어찌어찌 알아내었던 모양이다. 참으로 애석하게도 끝끝내 몰랐어야만 좋았을 기술을.
이 산마루 근처의 소나무들도 그들의 손아귀를 피해 가지는 못했던가 보다. 밑둥치마다 V자형 빗살무늬 선명한 톱날 자국이 낙인처럼 찍혀 시대의 아픔을 생생히 증언해 준다. 그 볼썽사나운 모습에 부르르 치가 떨리고 와락 분기가 솟구친다. 왜 송진은 품고 있어 그리 학대를 받아야 했던가. 거기서 기름이 나와 본들 얼마나 나온다고. 병아리 눈물만 한 양에 지나지 않았을 송진 기름으로 버티면 얼마를 더 버티겠다고. 덕분에 입이 없어 말 못 하는 그 불쌍한 목숨붙이들이 깊디깊은 산중에서 겪었을 육신의 고통인들 오죽하였을까.
상념에 잠긴 채 눈앞에 벌어진 광경을 한참 동안 무연히 바라다보고 있자니, 불현듯 우리의 지난 시절이 떠오른다. 영문도 모른 채 느닷없이, 혹은 징용으로 혹은 정신대로 끌려가 차마 인간으로서 감내하기 힘든 모진 핍박과 학대와 멸시에 시달림을 받아야만 했던 가엾은 조상들. 제대로 자라지 못해 비꼬이고 외틀어진 소나무들은 영락없이 그 시절의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아닌가. 꽃다운 청춘 제대로 피어 보지도 못하고 저들의 흉포한 발길질에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으니……. 그 원통함, 그 분노, 그 한스러움이 한 그루 한 그루 나무 나무마다에 고스란히 새겨져 상기도 울먹이고 있는 듯하다.
수많은 종류의 수종들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소나무가 그처럼 수난을 당해야만 했던 것일까. 그저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만일 우연이었다면 우연치고는 너무 기가 막히고 매가 찰 노릇이다. 아니, 아니다. 결코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이렇게 불리는 애국가의 가사에서처럼, 우리 한민족이 예부터 소나무를 정신적 표상으로 삼아 기려 오고 있음을 생각하면, 유독 소나무만을 골라서 괴롭힌 데는 우리의 민족정신을 말살하려는 저들의 내밀한 흉계도 은연중 깔리어 있었음이 분명하리라. 아, 이 철천지원수들! 천추에 용서받지 못할 오랑캐 족속들! 비통스러운 심사로 허공에다 대고 울분을 토하며 불끈 종주먹을 날린다.
그러다가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찬찬히 살핀다. 용케도 그들의 손길을 피해 하늘 높이 죽죽 뻗은 젊고 푸르른 소나무들이 군데군데 눈에 들어온다. 이 온전한 소나무들의 우람찬 기상을 보면서 한 점 구김살 없이 자라나는 우리의 이세들을 떠올린다. 그 아이들이야말로 장차 이 나라, 이 민족을 짊어지고 나갈 대들보 아닌가. 우리가 비록 문명개화에 한발 늦었던 탓으로 한때는 일제의 가혹한 채찍질에 피눈물 흘리는 설움을 감내해야 하는 처지가 되었었지만, 이제는 한류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신세대로부터 세계 역사의 무대에 나서서 당당히 어깨를 겨루어도 결코 주눅 들지 않을 충분한 자질과 역량을 읽는다. 그 꿈나무들이 있어 우리는 오늘의 밝은 희망을 말할 수 있으리라. 내일의 부푼 기대를 꿈꿀 수 있으리라.
이런 생각이 들자 조금 전까지 울울하던 기분이 스르르 풀어진다. 그러면서 잘 익은 술에라도 취한 듯 마음이 흥그러워 온다. 내딛는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 <오메이트 시니어> (2025년 3월 13일자)
첫댓글
네, 36년의 세월을 억울하게 당하며 살아 왔지요.
그것은 우리가 힘이 없었기 때문이며,
조정과 관리의 우둔한 정치 행보였습니다.
식민시대를 벗어난지 어언 80 여 해,
우리는 그동안 힘을 뭉쳐 열심히 살면서,
자녀들 교육에 힘쓰며 애쓴 덕분에
지금은 일본을 능가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지나간 역사를 교훈 삼아,
근현대사를 바로 잡아야 합니다.
사이비 애국자에 국민이 우롱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처럼 이제 우리나라가 일본을 앞선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고생고생하며 살아오신 조상님들에게 조금은 면목이 서는 것도 같습니다.
앞으로 더 잘해야 하건만 지금 정치판의 일그러진 행태를 지켜보면서 참으로 걱정이 많아지는 건 모든 국민이 느끼는 공통점이겠지요.
왜정말에는 송진채취한다고 큰소나무에는 다 상처를 냈습니다
문경새재와 아산 봉곡사 노송에는 그당시 상처가 아직 남아있습니다
방방곡곡 어느 데 할 것 없이 그들의 손아귀를 피해 간 곳이 없지 싶습니다.
좋은 글... 읽고 갑니다.
우리 젊은이들도 함께 읽을 수 있으면
참 좋을톈데... 고맙습니다...
공감하는 말씀입니다.
젊은이들이 읽어 주었으면 참 좋을 텐데 그들은 무어리도 읽는 데보다는 보는 데만 관심이 많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