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걸렸다 / 민정순
나만 보면
말을 반토막으로 잘라먹는다
친한 사이도 아니다
오일장 생선가게를 지나는데
눈길이 마주쳤다
와 봐라 와 봐라,
흥정할 사이도 없이
푸릇푸릇한 고등어가
큰 놈으로 척 덤으로
얹히는 좌판
살까 말까 망설일 틈도 없이
검은 봉지 열어 두고
비릿한 바다 손질에 들었다
춘자 어부
정 많은 칼질이 분주하다
구이 한 마리 찌게 한 마리
가르는 배를 기다리는 나는
어느새 그물에서 펄떡이는
한 마리 생선
딱! 걸렸다
-- 시집 『따뜻한 모서리』 (지혜, 2023.09)
* 민정순 시인
경남 밀양 출생
2015년 월간 『한맥문학』 등단
시집 『따뜻한 모서리』
디카 시집 『시어詩語 가게』
밀양문인협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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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유아성욕 이론’을 발표했을 때, 그 충격은 대단했고,
그 이론 때문에 융과 아들러를 비롯한 대부분의 그의 제자들이 프로이트를 떠나갔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성욕보다는 식욕이 먼저라고 주장했고,
프로이트는 유한마담들의 불감증이나 치료해주는 호색한이라는 누명을 쓰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따지고 보면 ‘성욕이 먼저인가/ 식욕이 먼저인가’는 ‘닭과 달걀’의 문제와도 똑같지만,
그러나 생물학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식욕보다는 성욕이 우선한다고 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남자로 태어나느냐/ 여자로 태어나느냐?’에 따라서 그의 인생관과 세계관이 결정되고,
그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종족의 명령’에 따라서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
식욕이 자기 자신의 육체를 보존하는 것이라면 성욕은 그가 소속된 종을 보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인은 유한하지만 종족은 영원하다.
아무튼, 어쨌든, 식욕과 성욕은 우리 인간들을 살아 움직이게 하는 두 욕망이며,
이 두 욕망을 거절하거나 초월해서 존재할 수 있는 생명체는 없다.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듯이, 맛 있는 음식을 보는 순간, 그는 식욕의 포로가 된다.
맛 있는 음식은 그의 육체와 영혼까지도 사로잡으며 그의 이성과 감성을 마비시킨다.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니지만, “나만 보면/ 말을 반토막으로 잘라먹는다.”
“오일장 생선가게를 지나는데” “푸릇푸릇한 고등어”와 눈길이 딱 마주쳤고,
나는 “살까 말까 망설일 틈도 없이/ 검은 봉지 열어 두고/ 비릿한 바다 손질에 들어” 갔다.
“와 봐라 와 봐라”는 미식녀의 유혹의 손짓이 되고, 나는 그 미식녀의 유혹의 손짓을 어쩔 수가 없었던 것이다.
“와 봐라 와 봐라”는 꿩 앞의 매의 날갯짓이 되고, “와 봐라 와 봐라”는 불나방 앞의 불이고, 불꽃이 된다.
식욕은 천적이 되고, 흥정할 새도 없이 “춘자 어부”의 “정 많은 칼질”로 나를 사로잡는다.
“딱! 걸렸다.”
“구이 한 마리, 찌게 한 마리”의 미끼에 미식녀의 포로가 된 나는 딱 걸렸던 것이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까라는 말도 있고, 고양이가 생선가게를 그냥 지나갈까라는 말도 있다.
홍당무 앞의 당나귀라는 말도 있고, 벌통 앞의 곰이라는 말도 있다.
맛 있는 음식과 맛 있는 음식에 대한 기억과 추억은 그의 일생내내 그의 영혼과 육체를 사로잡는다.
식욕은 젖줄이고, 젖줄은 어머니 강이고, 이 어머니의 강을 따라 우리 인간들은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이,
그의 고향으로 돌아가 산란을 하고 죽는다.
식욕은 고향이고, 고등어는 민정순 시인의 고향의 맛이다.
그는 그의 일생내내 고향의 맛에 딱 걸렸고, 등 푸른 고등어처럼 팔딱팔딱 뛰다가 죽는다.
- 반경환 (평론가) 명시 감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