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 6 . 25 새벽..
북의 남침이 시작되었다.
북한군의 주공 1군단은 서울로..조공 2군단은 춘천 방향이다.
당시
전투 경험 일천한 짜가 김일성은
후미 안전지대 머무는 얼굴 마담 역할이고..
주공과 조공 역할하는 전선의 얼굴들은 대체로 중공 팔로군 출신들..
특이한 점은..
북의 군 지휘부에 남한 출신이 많고..
국군 지휘부에는 북쪽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한번 보자...
남한의 국군 수뇌부는 평안도 출신이 많은데
참모총장 채병덕을 비롯해 백선엽 ..김홍일.. 장도영 ..
손원일 제독 등등..
북측 수뇌부는 남한 출신이 많은데..
실질적으로 전쟁을 총지휘한 총참모장 강건은 경북 상주..
주공 1군단장 김웅은 김천 ..사단장 이영호 박성철도 경북..
조공 2군단장 무정은 함북이지만 ..함북은 조선조때 사민정책으로
경상도 사람이 다수 이주한 곳이기도 하다.
하기사
남북의 군사전력 격차가 워낙 커
특별한 일 없었다면 북의 짜가 김일성은
기습남침 2개월 안에 남한을 무난히 적화했을 거다.
그런데 특별한 일이 발생했다.
나이 75세의 노인이 일을 낸 것이다.
당시 남한 평균 수명을 40세 정도라 할 때
노인 나이 75세면 이미 무덤 속에 있거나 살아있어도 거의 주검 상태..
내지는 치매상태였을 노인이라 하겠는데.. 별난 괴력으로 일을 반전시킨 거다.
국제무대를 훨훨 날았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분 아니었으면 짜가 김일성 자손대대로
한반도를 떡주물르듯 지금도 주무르고 있을텐데..
무덤속 송장으로 생각하고 쉽게 덤볐다 나가 떨어진 그자들..
그자들에게 그 노인은 철천지 원수가 되었고..그후 노인은 가당치 않은 친일파로 덧칠
저자거리에서 지금도 악당들 애창곡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
산업화니 민주화니 하는데..
나라가 있어야 산업화도 가능한 거고
산업화가 되어야 민주화도 가능하다는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건국 대통령의 위대함은
산업화 민주화시대 대통령 업적보다 수천만배 귀하다 하겠습니다.
지난날 프린스턴대에는 윌슨이 있었고
당시 약소국 식민지 출신 이승만의 지도교수라 해서
두사람간 민족자결에 대한 의사소통이 꽤 있었나 봅니다.
그리고 얼마후 윌슨은 미국 대통령이 되고
약소국가 식민지 독립에 큰 힘이 된 민족 자결론을 외칩니다.
이런 배경으로 우리 한반도에서도 만세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고..
아무튼 민족자결주의는 우리 삼일 운동에도 결정적 영향을 줬고..
하지만 일본이 1차대전 승전국으로 당시에는 국제적 위상이 막강할 때라
우리의 독립까지는 이어가질 못하고..
그래도 2차대전 이후 식민지에서 신생 독립국으로 회생하는
발판 정도는 되지 않았나~~나름 추정합니다.
황해도 출신인 1875생 이승만..
오는 3월26일이면 탄신 150년이 되는군요...
같은 황해도 김구는 1876년생
역시 황해도인 안중근 1879년생..특별한 인연입니다.
*
이제 저는 수필 수상방에서 휴학 내지는 졸업해야할 시점에 와 있군요..ㅎ
그동안 따뜻한 분들과 교감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며..건강과 행복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첫댓글 역사공부 잘 했습니다 . 고맙습니다.
건강하십시요 .
예..감사합니다.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두편의 글 잘읽었습니다.
사관이 뚜렸하네요.
그런데 해방이라고하면 안 됩니다.
광복이지요.ㅎ
감사합니다.
사실 제가 섬세한 면이 덜 하고..
또 진보적인 면도 많아서 그랬나 봅니다..ㅎ
아무튼 광복회에서 경고장 오지 않도록
앞으로는 잘 살펴 나가겠습니다.
@가을이오면 반정부세력들은 그런걸로 큰그림을 훼손하려들어요.
그래서 조심해야죠.
@석촌 대선배님 말씀 제가 너무나 잘 압니다..아주 중요한 말씀이기도 하고요.
그런저런 말꼬투리 잡기 말이죠...하지만 제가 그라운드 파이터이기도 하고
또 진보 좌파 색깔도 꽤 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습니다..ㅎ
이승만 대통령이 잘못한 점도 있겠지만
대한민국을 건국했구 625 동란에서 전세계의 지원을 받아서 대한민국을 구한거를 인정해야 합니다
이승만 대통령을 폄화하는 분들은 이제는 그만 까불면 좋겠습니당
충성 우하하하하하
어휴..오늘 태평성대 선배님이
제가 제일 좋아하는 어휘를 사용하셨습니다.
까불면 죽는다~ㅎ
사실 이승만은
그 유명한 미국대통령 윌슨과 사제지간..
그것도 가까운 사제지간입니다...그러니 이제 그만들 까불어야겠죠..
1945년 8월 15일은 해방의 날이며, 1948년 8월 15일은 광복의 날이라 해야 한다.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같은 8월 15일을 두고 해방, 광복 표현을 달리 할까요?
그것의 같은 날이라도 의미가 다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1945년 8월 15일은 독립투쟁은 했지만, 외부로 인해 독립이 되었고,
1948년은 자주 주권 독립으로 광복이 맞는 표현이라 생각합니다.
카페지기님이
어려운 부분을 잘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도 일본이 패망하고 속박으로부터 해방은 되었으나
미군정으로 진행되었기에
1948년 8.15일 건국으로 주권을 말할 수 있는
이날이 광복 아니겠는가 이해를 합니다.
제가 디테일에 취약한데..ㅎ..덕분에 공부하여 실력을 키워 봅니다.
잠시 쉬시다,
이것 저것 따지지 말고 바로 오셔요.^^
거침없는, 빛이 날 정도의 필력으로
맺혀있는 체증이 내려가는 느낌입니다.
여고 친구와 저녁 8시에 전화하기로 약속 돼 있었지요.
인생의 황금기는 역시 청춘시대인
고교시절인 것 같고..그때 교우햇던 친구들이 가장 반갑기도 하죠.
콩꽃님 아마도 오늘 1시간은 이야기 꽃 피웠을 것 같습니다..ㅎ
저도 고교시절 입학하고 바로 봄철에 만났던 솔베이지 노래,엘리져를 위하여 등등
피아노 곡 몇곡 듣고 컴퓨터 앞에 앉아 답글 씁니다.
요즘은 왠지 정서적으로 강해져 그런지
부드러운 글들이 작문 안돼 말씀처럼 휴식 좀 할 생각입니다.
뮌소리래요
휴학은 학교 다닐 때
하는 말인디
주옥같은 님의 글
일일이 댓글은 못 달았지만
꼬박꼬박
한 글자 빼놓지 않고
읽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거둬주옵소서
홑샘선배님과 저는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꽤 있어 보입니다.
우선 고향이 같고..지금도 일면식 없지만 거주지가 이웃동네이고
게다가 한량기질이 있어 홑샘님은 장터 아주머니들 상대하러 시장으로 출정..
저는 산책을 핑계삼아 동네 아주머니들과 조우하는 재미로 개천변 산책로를 즐겨 찾으니..
성격도 왠지 소탈하고 화통한..그래 자주 다툴지라도 죽이 맞을듯한..ㅎ
음악 취향도 비슷해 보이고..아직 뵙지는 못했지만..결례일수도 있지만
화사한 봄날을 핑계로 대충 스케치해 봅니다.
그동안 수고많으셨습니다!
정신적으로 많은 피로감도 있으실텐데ᆢ
이제 조금 추스리시고 재충전도 좋을듯합니다
저도 댓글쓰는것도 만만치않은 에너지소비가
되던데요
가을님의 또다른글 기대하면서~~^^
아..예..감사합니다.
늘 읽어주시고 격려해 주심에
그 마음 간직합니다.
새봄이 썬시티님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오기 바랍니다.
우리는 우리선조들이 조국의 해방과 독립을 위하여 얼마나 피흘리며 험난한 세월을 보냈다는 것을 쉽게 잊고 삽니다. 대다수 나라는 건국대통령을 기리기 위해 화폐. 동상. 박물관 공항명칭 등으로 후손들에게 기억하게 만들고 나라의 정체성을 유지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지우기에 급급하니 나라꼴이 지금 이모양이 된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세력들을 본인들이 좋아하는 나라로 이민보내면 안될까요?
ㅎㅎ..예
그래도 함께 살아야겠죠.
세상이 전반적으로 재정비 되어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보수와 진보가
치열하게 경쟁하는..격돌한 후에도 뒷끝없이 헤어지고
또 다시 만나 열정으로 토론하는 후배 세대들이 되기를 간절히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