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새 날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오늘은 여신도 대구연합회 총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망설이고 망설이던 저로 이 공동체의 실행위원으로 봉사하게 하셔서
복음과 생명을 전하게 하신지 어느 새 7년째로 접어듭니다.
이제 꽃들이 피고 열매가 익어가는 것을 보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모든 것 주님께서 하셨습니다!!
오늘의 행사도 주님 주신 은혜로 충만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합니다.
더러워진 영혼을 덮어 정결케 하여 주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0.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11.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13.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19.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이 성의 옛 이름은 루스더라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21.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22.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 하였더라
(본문 주해)
10~11절 : 이삭의 축복을 다시 받고 길을 떠난 야곱, 두렵고 외롭고 힘드는 여행길이 시작되었다. 야곱이 어떤 곳에 이르렀을 때에 해가 저물었으므로, 거기에서 돌 하나를 주워서 베개로 삼고, 하룻밤을 지내게 된다.
이때 야곱은 청년이 아니라, 70세 이상으로 추정된다.
12~15절 : 그날 밤 꿈에 야곱은 하늘에 닿은 사닥다리를 보게 되는 놀라운 꿈을 꾼다.
그것은 땅과 하늘이 연결된 사닥다리에 하나님의 사자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장면이요, 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성도가 하늘과 연결되는 복을 예수님 때문에 받고 사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하늘과 땅을 연결하시는 이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이미 야곱에게서 보이시는 것이다.
또한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한다.
천사들이 야곱이 잠들었을 때 그의 얼굴을 보기 위해 사다리를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에게서 하나님의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할 메시아의 영광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버지와 형을 속인 야곱을 한 마디도 책망하지 않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약속하신 그 언약을 야곱에게 직접주시는 것이었다. 야곱의 입장에서 보면 이삭에게서 두 번 이 언약을 받고, 이제 세 번째로 하나님께 직접 이 언약을 받는다.
1) 이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2) 네 자손이 땅에 퍼질 것이며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을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3) 이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하며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16~22절 : 잠에서 깨어난 야곱은 두려움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돌베개로 삼았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기름을 붓고 그곳 이름을 벧엘(하나님의 집, 베트:집, 엘:하나님)로 칭한다. 기둥을 세우고 기름을 붓는 것은 기념과 성별을 뜻한다.
서원을 하는데 ‘나를 지키시고 먹고 입을 것을 주시고 아버지의 집으로 평안히 돌아오게 하시면’ 이라는 조건을 건다.
이미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는데도 또 조건을 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자기의 행위를 보탬으로 자기의 안전을 확인하고자 하는 인간의 연약함이다.
이때 야곱이 한 서원이 세 가지이다.
첫째,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먼저 나타나셔서 너의 하나님이라고 이미 말씀하셨다.)
둘째, 이곳에 하나님의 전을 짓겠다고 한다. (예배를 드린 적은 있지만 하나님의 전을 짓지는 않았다.)
셋째,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한다.(그런데 한 번도 십일조를 드렸다는 기록이 없다. 단지 자기 목숨을 살리기 위하여 형 에서에게 엄청난 선물을 보내는 것뿐이다.)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을 하였지만 서원은 서원이고 자기의 뜻대로 산다. 그러니 후에 계속하여 속임을 당하는 삶을 살게 되고 그 과정에서 할 수없이 벧엘로 다시 올라오게 된 것이다.
(나의 묵상)
30여 년 교회를 다니면서 수도 없이 ‘주님의 임재’ 또는 ‘주님과의 동행’ 또는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등에 대한 표현을 보고 들었다.
그런데 남들이 다 누리는 그 은혜가 내게는 너무도 아득하다고 느낄 때가 많았었다.
물론 어느 한 순간은 좋은 때도 있어 ‘아, 이게 은혜인가 보다’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대개는 막연했다. 그래서 주님과의 동행을 스스로 최면을 걸 듯이 생각해 보기도 하고, 또 남들 앞에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아는 체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의 열심이 바로 주님이 나를 사랑하는 증거라고 생각했었다.
야곱의 마음이 이러했을 것 같다.
야곱은 형의 장자권의 축복을 가로채기까지 했지만 하나님에 대한 그의 생각은 막연했던 것 같다. 그저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시고,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정도로만 생각했던 듯하다.
그런데 그 외롭고 두려운 도망자의 길에서 직접 나타나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 놀라움을 본문은 ‘두려움’으로 표현했다.
내게도 이런 두려움이 있었다.
그것은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날이 계속 이어짐에 따라 숙제처럼 의무감으로 하던 묵상이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말씀하시고 내 마음을 만지시는 주님을 느꼈을 때였다.
“야곱은 잠에서 깨어서, 혼자 생각하였다. '주님께서 분명히 이 곳에 계시는데도, 내가 미처 그것을 몰랐구나.' 그는 두려워하면서 중얼거렸다. "이 얼마나 두려운 곳인가! 이 곳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집이다. 여기가 바로 하늘로 들어가는 문이다."”(16~17절, 새번역)
이 야곱의 마음이 곧 내 마음이다.
그곳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이 그 곳을 ‘벧엘’로 부른다.
나의 벧엘, 내가 하나님을 만나는 곳, 하늘로 들어가는 문은 바로 말씀 묵상의 자리이다.
막연했던 하나님의 은혜를 분명히 체험하게 된 것이다.
“구스인이 그의 피부를, 표범이 그의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냐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렘13:23)
그저 자신에게 듣기 좋은 말에 감격하거나, 자신이 한 일에 만족하여 스스로 도취되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나라는 존재는 죄악 된 본성의 구제불능인 인간이라는 것을 말씀을 통해 알게 되는 것이 은혜의 출발이었다.
그리고 인간으로서는 전혀 불가능한 그 일-죄를 없애는 일-을 예수님께서 당신의 보혈로 다 덮어주심으로 대속해 주심을 알게 되는 것이 은혜인 것이다.
아들의 생명을 받은 자로서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 주님과 교제하니 이제 그 두려움은 단순한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 넘치는 경외감인 것을 알게 된다.
기쁨의 경외감을 가진 나는 주님 앞에 야곱처럼 조건부로 서원하지도 않고, 인간의 어쭙잖은 결단과 결심도 드리지 않는다.
왜?
창세전 내게 아들의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그 생명을 내게 주셨으니 주님은 이미 분명한 나의 하나님이신 것과 또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이 자리가 나의 벧엘, 영원하신 아버지께로 열린 문인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일조만이 아니라, 나의 전부를 드리고자-입술만의 고백이 아닌-기도하며 성령님을 의지하며 살기 때문이다.
그런데 벧엘의 이 놀라운 경험으로 야곱은 얼마나 변화되었는가?
야곱은 변화되지 않았다.
경험은 경험이고 삶은 삶이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야곱이 애굽으로 들어가 130세에 바로를 만나 험악한 세월을 살았다고 말하며 바로를 축복하는 자로 서게 하시기까지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하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부인하는 삶을 훈련하게 하신다.
언약의 백성이 말씀을 떠나 살면 고생의 문이 활짝 열린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연단하시기 때문이다.
한두 번의 경험이나 체험을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고 사는 자가 아니라, 날마다 말씀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디.
말씀 앞에 나아가면 조건을 달아 하나님과 거래하고자 했던 은밀한 마음까지도 십자가에 못 박게 되고,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자가 된다. 그것이 나를 부인하는 삶인 것이다.
나의 변화는 주님 손에 달려있는 것이니 스스로의 기대치라는 탐심까지 십자가에 못 박고 잠잠히 그리고 힘 있게 주님만을 의지할 뿐이다.
매일 말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은 매일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 그분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그것은 언약의 백성이 되어 영생의 복을 누리고, 복음과 생명을 온 천하에 전하는 자로서 사명을 마칠 때까지 주님께서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음성이다.
그리고서 현재를 종말로 사는 자 되어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다.
(묵상 기도)
주님,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여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되는 자가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데 순적하게 쓰이는 도구로서 열심을 내게 하옵소서.
날마다 벧엘의 하나님을 만나게 하셔서,
날마다 주님의 약속의 말씀을 듣고 또 듣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세월을 허송하지 않게 하시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과 생명을 전파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의지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