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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귀의 독 무대였던 마을에 예배당이 세워지니 가장먼저 발악하는 마귀가 나에게는 서모를 음독케하는 시련을 주었고 예배당을 건축하는 목수에게 고통을 안기기 시작했다. 낮 예배를 마치고 아이를 찾으니 아이가 없어진 것이다. 모두나와 찾았는데 나중에 보니 물에 떠 내려간지 이미 몇시간이 지나서였다. 그래도 성령님의 역사하심은 여전 하셔서 무리없이 교회당의 외형을 세우고 나니 만족하고 감사했다.
초기를 뒤돌아보니 참 이선동 선생과 그의 모친은 참으로 고생 많이 했다. 오늘의 교회가 있기까지 그 모자의 헌신과과 희생이없었던들 지금의 교회는 생각할 수가 없다. 지금은 그들은 소식이 없지만 어디에 있던지 여호와의 가호가 있기를 바랄 뿐이다.
어느 교회이든 그렇겠지만, 미중교회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초창기에는 나왔으나, 나중에 돌아가는 안타가운 사연이 많은 교회다. 목회자들도 무수히 오셨으나 이곳 시골에서 희망을 갖고 목회할만한 곳이 되지 못했기에 얼마 있지 않아도 갈 곳만있으면 미련 없이 떠나곤 했었다.
그러므로 어린 자녀를 둔 목회자는 자녀 교육문제 때문에도 도시로 나갈 수밖에 없고, 나이 많으신 분이라 하드라도 생활이 되지 않으니 굶고서 어떻게 목회를 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니까 왔다가 가고, 가니 또 오고해서 피차가 수난 겪었고 교인 중에서도 희망 있는 젊은이들은 도시로 도시로 나가 고회는 늙으신 분들의 차지였다.
지금은 축산도 하고, 그래서 농촌도 생활의 여유를 갖고 살지만, 그때만 해도 제일차 경제개발 5개년계획이 초기 단계인지라, 겨우 새마을 운동이 시작되기는 했지만 결실을 보기에는 미흡하여 농촌생활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 참으로 절망적 이었기에 너나 할 것 없이 도시로 나가는 것이 유행처럼 되었고, 그것도 못하는 몇 몇 젊은이들이 집에서 농사일에 종사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들이 도리어 당당해 하는 모습 앞에..............참 부끄럽다.
교회가 때로는 교인과 목회자와의 반목도?................. 그러다가 보니 오해의 골이 깊어져 서로가 고통당하고 수난 받으며 애태우던 시절이 그 얼마나 되었는지?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니고 시대가 환경과 여건이 만들어낸 하나의 부산물이 아니겠는가? 그 틈바구니 속에서도 은혜 받은 분들이 계셨기에 오늘날까지 교회를 받들어 섬기고 문 닫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나는 고향을등지고 부산으로 무작정 떠났다. 60년대말 그때는취직은 하늘에 별따기, 우선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하면서 부산에서 가장 큰 충무로 침례교회(지금 부산 침례교회)에 출석 하면서 약 1년을 지났다.
당시 영도 청학동에 거주했는데, 주인 아저씨가 나가는 영주교회에서 부흥회를 한다고 같이 나가자기에 따라나섰다. 강사 목사님은 감리교회의 거성 박재봉 목사님이셨다.
그때 이미 70대가 되셨는데, 강대상은 옆으로 놓고 책상을 앞에놓고 의자에 앉으셔서 말씀을 전하셨다. 목사님의 설교가 시작되었다. "가빈사현처 국난사양신(家貧思賢妻 國亂思良臣; 집이 가난하면 어진 아내를 생각하고 나라가 혼난에 빠지면 어진 신하를 생각 한다)이라는 동양 명언이 있습니다. 오는날 교계에서나 사회에서의 필요한 인물을 요구하는 시대입니다.
이사야 59:16절에 있는 말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살피시는 것은 죄악이 관영한 사회에서의 그래도 혹 쓰실 인물이 있는가? 하고 살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헬리의 철인 디오게네스는 백주에 횄불을 들고 사람찾으려 다녔다고 합니다. 그의 친구가 여보게! 자네 미쳤나? 하늘을 한번 처다보아라, 그래 하늘을 처다보니 저 하늘 반공중에 둥근해가 두둥실 떠 있습니다.
그래 이 휘황 찬란한 벌건 대낮에 횃불을 들고 왜 거리를 쏘다니노? 그는 철인다운 대답을 했습니다. 세상이 하도 암흑해서 ,세상이 하도 암흑해서, 사람 찾으려 다니네. 그는 과연 어떤 인물을 찾았기에, 이 대명천지 밝은 날에 횄불을 들고 거리를 쏘 다녔겠습니까?
지금 읽어드린 말씀중에 나오는 사도요한은 과연 어떠한 인물입니까? 그는 구약의 종말이요 신약의 시초가 되는 이 전환기에 태어났습니다. 전환기는 언제나 위기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이 위기에 난 청년 사도 요한은 나라의 위기와 민족의 영광과 존귀와 자손만대의 삶을 위해서 의식주의에 전적으로 구애받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 ,그 사명을 제일로 했던 것입니다. 그는 만고 불변의 정금같이 그의 지조는 변치 아니하고 일로매진 했습니다 죽음이 열 다섯개가 다가와도 마음의 지조를 변치 아니하고 소명의식에 불타는 청년 세례요한
의를 위해서 정을 위해서 죽음앞에 떨지 아니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제일로한 위대한 기독청년 세례요한! 그는 날때 났습니다. 시대적 요구의 인물이었습니다."
마치 높은 층암절벽 위에서 쏟아지는 폭포수 같이 말씀이 웅번쪼로 마구 쏟아저 내리는데, 그 분위기는 살벌하고 삼음하기까지했다. 전률과 공포가 음습해 왔다. 목사남의 눈에서는 불이튀는것 같았다. 무서워 바로 처다볼수 없었다.통회자복이 이곳 저곳에서 터지기 시작했다.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작용하는 듯 했다. 나는 처음으로 이런 집회를 보았다.
언젠가 자신도 모르게 일어셔서서, 손짖 몸짖을 하시는데, 눈빛과 얼굴 표정은 감히 처다 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로 청중을 압도 하였다.
................계 속............... |
첫댓글 저 보다 먼저 기독인의 삶을 살아 오신 님의 지난 발자취를 느낄수 있는 글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이런 지난 날이 있기에 우리는 기록을 통해 회상할수 있고 ~~
비록 그 시절이 험난했어도 돌이켜 보면 미소를 지을수 있는 것은 지난날의 역경을
다 이겨낸 사람의 여유겠지요. 그런 지난 날속에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였음 결코
사람의 역사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석연치 않은 지난날인 것 같습니다.
연세가 있으신것 같으신데 ....그럼에도 간결한 필력에 속에 담긴 표현력이
돋보이십니다. 지난 날의 삶 뿐만, 신앙안에서 참된 고뇌의 흔적과 사유가 돋보이는
좋은 글 많이 보여주십시오.
비록 시대와 지역은 다르지만, 신앙안에서는 이 모든것을 아우르고 초월해서 같은
공감의 기쁨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의미의 성도간의 교제이겠지요. 감사합니다. ^^
댓글감사합니다. 보잘것 없는 글 보심에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