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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령포 단상이다.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를 가면서 죽음을 자리에서 받은 단종을 생각해 봤다. 그는 왜, 탈출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승하할 시 17세라면 한창때가 아닌가. 내가 영화를 많이 봐서 그런가, 아무튼 그런 생각을 떨쳐 낼 수가 없었다. 오늘따라 강폭이 좁아 보이고, 물살도 이 정도라면, 괜찮지 싶었다. 홍수로 물이 불었다면 위험은 하겠지만, 오히려 이동이 빨랐을 것인데. 결심만 하면 가능한 일 같았다. 목숨과 모험 사이의 갈등일까,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아홉 번의 끝없는 탈출을 시도한 ‘앙리 사리엘’의 실화인 『빠삐욘』도 있고, 어릴 적 읽었던 『암굴왕』인,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Ⅰ,Ⅱ』 도 있다. 에드몽 당테스의 아슬아슬한 탈출과 호쾌한 복수, 물론 복수를 위한 감행이다. 또한 팀 로빈슨과 모건 프리먼 주연의 1994년 작, 「쇼생크 탈출」도 자유를 향한 열망과 끈질긴 집념을 잘 표현한 영화다. 살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을 받아 ‘쇼생크 교도소’에서 갇힌 앤디는 15센티의 돌망치로 20여 년에 걸쳐 벽을 야금야금 뚫어, 긴 터널을 통과해 탈옥했다. 그 인내란! 스쳐 간 장면들이 눈에 선다.
하지만 우리의 단종께서는 옥이야 금이야 귀하게 성장한 탓에 ‘설마 나를!’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였을 수도 있겠고, 불사이군의 충신들이 억울한 유배를 풀어 주겠지, 하는 기대도 하였을 것이다. 아니면, 폐서인으로 전락한 삶이 구차해서, “까짓것 어차피 죽는 인생” 하며 체념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온실에서 자란 꽃처럼 부대끼며 살아보지 못한 나약함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때를 잘 못 타고난 단종이었다. 그는 살벌한 정치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갈 상황이 되지 못했다. 공포의 칼바람에 감히 누가 나서겠는가. 제대로 항변 한번 해보지 못하고 죽임을 당한 것이 참으로 억울하다. 한양을 바라보는 노산대, 돌탑인 망향탑, 다 보고 들었다는 관음송, 단종을 거쳐 생긴 이름은 모두 가슴 아린 이름들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