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진 음식 짝궁이 아닌 새로운 음식 짝궁들 모음
끝자리가 바삭하게 탄 해물파전과 막걸리, 달콤맵콤한 양념통닭과 맥주, 겉에 소보로를 잔뜩 뿌린 소보로빵과 오렌지 주스, 매운 떡볶이와 쿨피스. 하나의 이름만 불러도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짝꿍들이 있다. 이번엔 널리 알려진 짝꿍을 벗어나 새로운 조합을 밝혀보기로 했다. 이건 비밀인데, 새로운 짝꿍을 알려줄게.
중학생 때 처음 접한 불닭발은 쉼 없이 흐르는 눈물콧물 때문에 가족 아닌 누군가와 함께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미래의 남편과도 불닭발 만큼은 절대 공유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캡사이신의 시대가 도래했고, 익숙함의 동물인 나는 눈물콧물 없이도 불닭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미래의 여보, 기뻐해요. 불닭발을 포기하지 않아도 돼요.”
기분에 따라 매운 정도를 조절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날에는 청양고추도 거뜬히 올려 먹었다. 누군가 그랬다. 매운맛을 좋아하는 것은 몸에 고통을 주는 변태스러운 기질이라고. 하지만 매운 걸 잘 먹는 것은 능력처럼 여겨져 오히려 이상한 형태의 자부심으로 변했다. 불닭발은 보통 소주나 맥주, 혹은 둘을 섞은 폭탄주와 함께 많이 먹는데, 나는 꼭 레드 와인을 준비한다. 단맛이 진할수록 좋다. 매운 냄새를 폴폴 풍기는 불닭발을 한 입 크게 입에 밀어 넣고 뜨거운 계란찜을 한 숟갈 먹으면 매운맛이 더욱 극대화된다. 매운 건 뜨거울수록 더 매우니까. 그때 와인을 한 모금 들이마신다. 와인의 달짝씁쓰름한 맛이 불닭발의 화끈한 맛을 잘 잡아주어서 마냥 먹기 좋다. 닭발은 먹고 싶고, 매운 건 자신 없는 날에는 레드 와인을 곁들이는 것을 추천한다. 혼자 즐겨도 왠지 초라해지지 않는 기분이 드는 짝꿍이다.
Tip와인 따개가 없는 날에는 당황하지 말고 젓가락을 코르크마개에 꼽아서 두꺼운 책으로 콩콩 내리치면 된다. 세게 치다가는 와인이 튈 수 있다. 사실 편의점에서 3천원이면 와인 오프너를 살 수 있다.
소주와 여러 친구들
순댓국, 삼겹살, 마른 오징어, 묵은지돼지고기찜, 라면, 회, 새우깡…. 심지어 삼순이 언니는 집에서 남은 반찬으로 만든 비빔밥에 소주를 마셨다. 대체로 모든 한식에 소주가 어울린다. 한국 사람의 설움과 기쁨을 함께해온 주류 역할을 톡톡히 하는 셈이다. 그럼에도 소주와 함께 먹지 않는 음식이 꽤 있다. 이를테면 양식을 소주와 즐기는 사람을 본 적은 거의 없다. 왠지 소주는 한식의 칼칼하고 자극적인 음식과 걸맞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예상과는 다르게 소주는 피자와 생크림 케이크와 방울토마토와 잘 어울린다. 피자를 한 입 베어 물고 소주를 들이켜면 소주가 피자의 느끼한 맛을 확 잡아준다. 일명 치맥을 잇는 피소. 피자와 소주의 궁합을 맛보면 피맥이나 치맥은 결코 생각나지 않는다는 후문까지도 들린다.
생크림 케이크도 비슷한 맥락이다. 보드라운 생크림 케이크를 한 입 넣고 얼얼할 정도로 차가운 소주를 쭉 들이켜면 예상외로 환상의 조합을 느낄 수 있다. 방울토마토라 하면, 자르지도 조리하지도 않은 생 토마토를 말한다. 이건 반대로 소주를 먼저 호방하게 털어 넣고 토마토를 입안에서 와그작 씹으면 시원해서 술술 먹기가 좋다고 한다. 술술 넘어가서 술이라지. 크라잉넛의 ‘마시자’를 들으면 이런 가사가 나온다. ‘들이밀고 붓고 부어도 채울 수 없는 인생, 야!’
Tip소주는 차가운 소주가 진리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건 음주계의 법이고 진리고 빛이며 생명이다.
마시는 요거트와 오렌지, 오이 쫑쫑이
몸에 좋은 마실 거리가 유행이다. 체내의 독소를 배출하는 채소 주스를 비롯해서 비타민과 무기질을 충분히 보충해줄 수 있는 과일 주스까지. 몇 걸음에 한 번씩 주스 가게를 발견할 수 있고, 많은 카페에서도 관련 제품을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실 거리가 단순히 취향과 기호를 넘어서 건강 문제까지도 직결되기 시작한 것이다.
요거트는 위장을 보호하고 변비를 예방하는 데 좋다. 마트에서 파는 요거트는 당분 함량이 높아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이 요거트를 이용해서 맛있게 먹는 방법이 있다. 준비물이라고 한다면 마시는 요거트, 오렌지, 오이가 전부다. 먼저 마시는 요거트를 작은 그릇에 붓는다. 그리고 오이와 오렌지를 새끼손가락 손톱만 한 크기로 쫑쫑 썬다. 너무 잘게 썰면 먹을 때 식감을 느낄 수 없으므로 주의하는 것이 좋다. 그렇게 레시피는 끝. 아침마다 우유에 시리얼을 말아 먹듯이 숟가락으로 오렌지와 오이를 떠먹으면 끝이다. 요거트의 달콤함, 오렌지의 상큼함 그리고 오이의 시원함이 한데 모여 기분 좋게 먹을 수 있다. 처음 이 조합을 접하게 되었을 때 의아한 마음 반, 호기심 반이었는데 가끔 비타민이 떨어진 듯한 느낌이 들 때면 꼭 이 쫑쫑이 조합을 만들어 먹는다. 누군가 시리얼을 먹을 때, 우리는 당당하게 쫑쫑이를 먹는다고 말할 수 있다.
Tip마시는 요거트 대신 떠먹는 요거트를 활용해도 좋다. 하지만 요거트의 맛은 ‘플레인 맛’으로 활용할 것을 추천한다.
아메리카노와 삶은 감자
포슬포슬하게 삶은 감자는 설탕이든 소금이든 콕 찍어 먹으면 별미다. 구수한 보리차나 살얼음이 동동 뜬 동치미 국물이랑 먹어도 맛있다. 혹은 간장 양념에 졸여서 감자조림으로 반찬이 되기도 한다. 구워 먹어도 맛있고, 쪄 먹어도 맛있는 감자에게 새로운 짝꿍이 생겼다. 그건 바로 아메리카노. 십센치의 ‘아메리카노’ 노래에는 아메리카노를 고를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유가 등장한다. 이쁜 여자와 담배 피우고 차 마실 때, 메뉴판이 복잡해서 못 고를 때, 사글세 내고 돈 없을 때 밥 대신으로. 그리고 이제는 우리에게 새로운 이유가 생겼다. 그건 바로 ‘삶은 감자’와 함께 먹기 위해서다.
삶은 감자의 고소하고 담백한 맛이 아메리카노의 적당히 쓰고 신맛을 만나면 새로운 조화를 느낄 수 있다. 감자를 먹다 목이 답답해질 때 시원하게 아메리카노를 들이켜면 왠지 모르는 중독성에 빠진다. 아메리카노와 함께 치즈가 듬뿍 발린 베이글이나 뉴욕 치즈 케이크를 떠올렸다면 이제는 이 모든 것과 시원하게 작별해도 좋다. 앞으로 삶은 감자가 모든 카페를 점령할 날이 올 것이다. 삶은 감자와 아메리카노의 환상적인 궁합을 기대해도 좋다.
Tip삶은 감자의 껍질을 벗겨 먹어도 좋고 안 벗겨 먹어도 좋지만, 안 벗겨 먹으면 처음에 베어 물 때 왠지 식감이 더 좋다. 톡! 하고 껍질이 터지는 기분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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