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두부터 뜬금없이 ‘바보’에 관한 이야기를 한 이유는, "위대한 바보가 세상을 구한다."는 ‘바보예찬’을 넘어 "바보가 되어라.
그것이 신이 소망하는 삶이다"라며 바보는 신의 선물이라고까지 말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도쿄대를 나와 현재 츠쿠바대 명예교수인 <바보는 신의 선물>의 저자 무라카미 카즈오 교수입니다.
도쿄대라면 세계적으로도 알아주는 대학인데, 아무나 갈 수 없는 그런 명문대학을 나오고 대학교수 생활까지 했다면 누가 봐도 바보라고는 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그렇듯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 그런 말을 하니,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싶은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무라카미 교수가 그런 주장을 하는 데에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먼저 그는 자신이 대학에도 간신히 들어가고, 연구생 시절에도 열등생으로 이름을 날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런 자신이 유전자 연구에 몰두한 끝에 고혈압의 원인인 ‘레닌’ 효소의 유전자 해독에 성공해서 일본학사원상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무모하리만큼 어리석은 방법으로 우직하게 한우물을 판 결과였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그는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학문분야만이 아니라 정치와 경영분야에서도 정작 위대한 성과를 이루는 것은 번뜩이는 지혜를 가진 영리한 사람이 아니라
왠지 모자란 구석이 있어 보이지만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대기만성형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린 시절 바보로 놀림 받았던 에디슨이나 아인슈타인이 그 좋은 예입니다.
특히 아인슈타인은 다들 잘 알고 있듯이 학생 때 학교수업도 제대로 못 따라가는 열등생이었습니다.
또 아이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발표한 논문은 오류가 엄청나게 많았고, 내용도 대부분 이해하기가 힘들어 주위사람들로부터 “이 논문을 쓴 녀석, 완전 바보야”라는 혹평을 들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논문 한귀퉁이에는 E=MC²이라는 원자폭탄 개발의 기초가 된 유명한 방정식이 씌어 있었지요.
사람들에게 특급 바보 취급을 받던 아인슈타인은 이 한 줄의 방정식으로 과학의 역사를 새로 쓴 것입니다.
바보가 상식을 뛰어넘어 세계를 변화시킨 예는 기업에도 있습니다. 애플의 창시자 스티브 잡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아이디어로 끊임없이 세계를 놀라게 만든 탁월한 인물이지만,
그의 인생은 좌절과 파란만장의 연속이었을 뿐더러 상식을 벗어난 무모한 사람으로 낙오자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지요.
이런 잡스가 스탠포드대 졸업식에서 한 축사가 굉장히 감동적이어서 인터넷을 타고 순식간에 유포된 적도 있는데,
이 축사는 “Stay hungry, Stay foolish”라는 말로 끝맺고 있습니다.
이 Stay foolish라는 말은 곧 “틀에 박힌 우등생, 모두에게 칭찬받는 똑똑한 사람은 되지 마라.
정해진 길밖에 가지 못하는 천재가 될 것이라면 차라리 어리석은 자가 되어라.
그것도 상식 따윈다 버릴 수 있는 통 큰 바보가 되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즉 지식을 과시하며 똑똑한 척하지 말고 한길에만 매달릴 수 있는 어리석음을 소중히 간직하고 지켜나간다면
그 어리석음이 오히려 돌과 바위마저 부술 수 있는 큰 무기가 되어 성공으로 이끌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저자는 일본 에도시대에 ‘큰바보’(大愚)로 불렸던 료칸(良寬)에 대한 일화도 들려줍니다.
료칸은 술을 사랑하고 따로 머무는 절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수많은 시를 남긴 승려인데, 그가 배에 오르자 심술궂은 사공이 배를 흔들어 그를 물에 빠뜨리고는 실컷 비웃은 후에야 배 위로 끌어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때 료칸은 그 고약한 사공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하고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에 대한 악의에마저도 고마움을 표하는 이런 료칸의 삶의 방식은 ‘궁극의 바보의 삶의 방식’을 보여줄 뿐 아니라 ‘참으로 행복한 삶의 방식’임을 일깨워줍니다.
이처럼 매사에 단순하고 솔직하게 감사하는 그릇이 큰 어리석음엔 누구도 당할 재간이 없을 듯합니다.
자신들을 탄압한 나라에 대해 울분과 증오를 느끼기는커녕 "중국은 우리를 강하게 해준 스승이다"라고 말한 티벳의 교주 달라이 라마 14세 또한 위대한 바보 중 한 사람입니다.
무라카미 교수는 이렇게 좀 모자란 듯하고 무모해 보이는 사람들이 고정관념에 사로잡히지 않고 상식을 뛰어넘어 놀라운 성과를 이루는 것은 학문이나 경영의 세계, 그리고 실제의 삶은 ‘모범답안이 없는 세계’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정답이 하나뿐이거나 여러 개의 답 중에서 옳은 답을 골라내는 일에는 똑똑한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하지만, 대부분의 학문이나 경영, 실생활에서는 생각을 하나로 모으는 게 아니라 점점 더 확산시켜 나가는 사고력과 창조력이 필요합니다.
게다가 답을 찾을 때까지 엄청나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긴 인고(忍苦)의 시간이 그들을 머리회전이 느리거나 어리석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만,
때로는 손익을 잊고 주변에서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만류할 만큼 비합리적이고 무모한 결단을 불사함으로써 그들은 기어이 성과를 이뤄낸다는 것이지요.
세상엔 조금만 유명해지면 거들먹거리고 자만하며 으스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정말로 뛰어난 사람들은 겸허함이 몸에 배어 있으며 함부로 자신을 내세우지 않습니다.
또 스포트라이트를 받든 못 받든 뽐내지 않고 영예에 취해 타락하지도 않으며, 그저 자신이 믿는 길을 묵묵히 나아갈 뿐입니다.
즉 진짜 잘난 사람들일수록 오히려 남이 볼 때 ‘바보천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속도 없는 바보'라는 말을 듣기도 하지만, 이들은 결국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어리석음의 미덕'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은 신에게서 사랑을 받으며, 이들이야말로 신의 선물이라는 것이지요.
바보에 대한 단상
사리분별을 잃은 사람에게 안쓰러움이 있다면 오직 현자로 불리지 못함이다.
그러나 현자들은 바보로 불린다 해도 변함없이 현자이며 또 지혜롭다.
현자들은 스스로 지혜의 밭을 일굴 줄 알기 때문이다.
일시적으로 바보 취급을 당하거나 스스로 바보처럼 굴어도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진짜 바보로 평가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문제는 바보들이 현자인 척하는 데 서 불거져 나온다.
-발타자르 그라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