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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왕건 <제 107회>
줄거리
궁예는 도인이 다린 영초탕을 먹고 사경을 헤매다가, 마지막 사흘째 되는 날 깨어나게 된다. 예전의 고통은 씻은 듯이 나아 보이는데.... 한편, 백제의 견훤왕은 첩자를 태봉국에 보내고, 신라의 접경지역인 대야성으로 출병을 단행한다. 왕건의 둘째 부인 오씨는 꾀를 써서 왕건이 다시 나주로 돌아올 수 있도록 전선이 위급하다는 장계를 올리게 한다. 그 즈음 철원의 궁예는 관심법으로 연화의 부친인 강장자에게 다시 역모의 죄를 묻는데....
씬 황궁 외경(밤)
씬 동 황궁 대전
종간과 은부가 기도하듯 보고 있다. 궁예는 여전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은부 만 사흘이 다 지나가고 있사옵니다. 폐하께서는 여전히 눈을 뜨지 못하시옵니다.
종간 ..........
은부 아무래도 그 도인의 약이 잘못되었나 보옵니다. 처음부터 이러시지 않았사옵니까?
종간 .......... 좀 더 기다려 보세. 좀 더......
그들은 그렇게 궁예를 본다. 괴로워하는 궁예의 표정으로 카메라 밀고 들어가면....
씬 그 궁예의 꿈
궁예가 안개 속을 도망치고 있다. 수많은 알 수 없는 유령들이 우~ 하며 그를 잡으려 한다. 그는 꿈속에서 수없이 독화살을 맞고 죽었다가 깨어난다. 그리고, 웃고 있는 아지태를 만난다. 아지태가 손가락질을 하며 비웃고 있다.
아지태 어서 오너라, 이 미치광이 황제야. 너의 세상은 끝이 났다.
궁예 이놈, 간악한 놈! 너는 아지태가 아니냐?
아지태 너의 세상은 끝이 났다. 이 불쌍한 황제야. 하하하.... 나와 함께 지옥으로 가자꾸나.
궁예 놓아라, 이놈. 놓아라.
궁예는 다시 도망친다. 편안한 모습의 석총이 염주를 굴리며 웃고 있다.
석총 엉터리 미륵이 오는 구나. 궁예야, 이 불쌍한 신라의 왕자야. 너의 세상이 끝나가고 있다. 새 미륵이 이미 와 있어. 쯧쯧쯧, 딱한 것 같으니라구. 이리 오너라. 이리 오너라.
궁예는 질린다. 석총과 가까워지면서 비명을 지른다. 그리고, 다시 도망치기 시작한다. 헉헉대는 그의 표정에서 다시 석총이 다가 든다. 손을 휘저으며 길게 비명을 지르는 궁예.
씬 대전 현실
궁예는 비명을 지르며 그렇게 눈을 번쩍 뜬다. 은부와 종간이 보고 있다. 한동안 멍하니 그들을 보는 궁예.
종간 폐하, 악몽을 꾸셨나보옵니다.
궁예 ......(아직도 멍하다)
종간 사흘 낮밤을 주무셨사옵니다. 아시옵니까, 폐하?
궁예 ........
은부 사흘이옵니다, 폐하. 신은 사흘째 이곳에 있었사옵니다. 폐하께서 일어나시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사옵니다.
궁예 사흘이라고...? 내가 사흘이나 잤어?
종간 예, 폐하. 지금은 어떠하시옵니까? 신이 뵙기로는 용안이 아주 맑고 깨끗해 보이시옵니다.
궁예 (끄떡인다) 그런 것.... 같구료. 머리는 좀 맑아진 것 같은데, 아직도 좀 멍하구료.
종간 미음을 올리오리까?
궁예 아니오. 나 때문에 이곳에서 사흘씩이나 보내셨다니 참으로 민망하구료, 내원.
종간 아니옵니다, 폐하. 폐하께서 사경을 헤매시는데 신이 어찌 사흘이 아니라 삼년, 삼십년 아니 삼백, 삼천년인들 옆에 뫼시지 않으오리까?
궁예 (뭉클하다) 고맙소이다, 사형. 역시.... 내겐 사형이시오.
종간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폐하? 폐하께서 어려우실 때에는 늘 옆에 있는 신이 아니옵니까?
궁예 고맙소이다. 조금 더 쉬고 싶소이다......조금만 더..... 머리는 맑아지는 것 같은데 온 몸에 기운이 없어요. 그만 물러들 가세요.
종간 괜찮겠사옵니까, 폐하?
궁예 이제 좀 편안한 것 같소이다. 물러들 가세요.
두사람 예, 폐하. 하오면.....
궁예가 끄떡인다. 두 사람이 예를 올리고, 조용히 그곳을 빠져나간다. 궁예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뜬다. 스스로 얼굴을 만져보고 눈을 비벼본다. 그리고, 가볍게 머리를 저어본다.
궁예 신기한 일이다. 마치 안개가 걷히듯이 이 머리를 압박하던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천근 무게로 나를 짓누르던 가슴의 통증이 가버렸어. 이렇게 시원할 수가 있나? 이렇게..... 마치 거짓말처럼 다 가버렸다. 다 가버렸어. 마치 새털처럼 몸이 가볍지 아니한가? (생각하다가) 신기한 일이다. 오, 그렇다면.... 그 약 때문인가? 그 약.... 도사가 지어주었다는 그 약?
씬 동 황궁 마당(아침)
전각 사이로 종간과 은부가 걸어오고 있다. 종간의 표정은 가득 기쁨에 차있다. 연일 즐거워 어쩔 줄 모른다.
종간 폐하께서 일어나시다니... 사경을 헤매시던 폐하가 용안은 물론이고 정신도 맑아 보이셨어. 허허, 아주 총기가 있어 보이시지 않던가?
은부 그렇사옵니다, 내원어른. 참으로 놀라운 일이옵니다. 사실 처음부터 소인은 영초라는 신비한 약재가 있다는 것을 믿지 않았사옵니다. 특히나, 도인이니 도력이니 하는 것 따위는 더더욱 믿어지지가 않았고 말이옵니다.
종간 이제서야 이야기지만 나도 실은 의심이 많았네. 그러나, 달리 방법이 없었지 않았는가? 폐하를 위해서라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어. 그나저나 도인의 일은 참으로 안타깝게 되었어.
은부 그렇사옵니다. 허나, 당시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사옵니다. 워낙 절박하였고 처음의 조짐이 아주 나빴사옵니다.
종간 그러게 말일세..... 우리가 그 도인에게 큰 빚을 졌네 그려.
은부 생각해보니, 그렇게 되었사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음......
해설 도의 세계, 동서고금을 통하여 고도의 정신세계를 추구하는 집단들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도의 역사를 오래전 단군의 시작과 더불어 보고 있다. 그들은 스스로 은둔하여 자연의 이치를 연구하고 깨달으면서 자신의 몸을 단련시키고 나아가 인간과 세상을 구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끊임없이 수련하며 오늘에도 그 명맥을 잇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종류의 기의 세계와 단전호흡 같은 수련들이 그 맥락이다. 이렇게 도를 연구하는 도인들은 특히나 의술에 있어서 매우 뛰어난 재능들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그것은 먼저 자신을 단련시키고 스스로 병마와 싸워 이기는 비전을 연구하는 데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궁예는 아마도 이 덕을 본 것이 아닐까?
씬 동 황후전
연화가 슬이와 제조상궁, 진내관에게 묻고 있다.
연화 깨어나셨어? 폐하께서 깨어나셨단 말이지?
진내관 예, 황후마마. 계속해 폐하 곁을 지키던 내원께서 아주 밝은 표정으로 방금전 대전을 나갔다 하옵니다.
연화 그래?...
진내관 뿐만 아니오라, 대전상궁들이 조금 전 잣죽까지 올려갔다 하옵니다.
연화 잣죽까지..? 그렇다면, 일어나신 것이 확실하구나.
제조 도인이 백일정성을 들여 고았다는 약이옵니다. 뭐가 달라도 다르지 않겠사옵니까?
연화 그래, 허지만 그 도인도 죽지 않았느냐?
제조 오해를 받을만 하였사옵니다. 마치 독약을 드신 것처럼 괴로워 펄펄 뛰셨다 하옵니다. 짧은 시간도 아니고 온 종일 고통스러워 하셨으니, 어찌 화를 당하지 않겠사옵니까?
연화 그래... 그렇다하더라도 결과를 좀 더 보아야 했어. 참으로 안된 일이 아니냐? (사이) 대전에 다시 한 번 알아보게. 내원 그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나갔다면 필시 좋은 일이 있는 게야. 제발... 제발 그 약이 효험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폐하께서 옛날의 총기를 되찾으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얼마나.....
씬 동 다시 대전
궁예가 잣죽을 먹고 있다. 그 옆에서 최응이 보고 있다.
최응 폐하, 참으로 용안이 밝아 보이시옵니다.
궁예 허허허, 너도 그렇게 보이느냐? 참으로 날아갈 듯이 몸이 가볍구나.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이렇게 머리가 맑은 것이 말이야.
최응 (눈치 보다가) 하오면, 이제 독주를 내오지 않아도 되겠사옵니까?
궁예 독주..? (하다가) 그래, 허허허. 그럴 것도 같구나.
최응 다른 이들 같았으면 그만큼 많은 독주를 드시고 견디지 못하였을 것이옵니다.
궁예 허허허, 그것이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이런, 쯧쯧쯧...
먹기를 마치고, 그릇을 비운다. 그리고, 몸 운동을 해본다. 기운이 나는 것이다.
궁예 돌이켜보니, 생각이 너무 짧았다. 그 도인의 약 효험을 크게 보았는데, 참지 못하고 죽게 하였어.
최응 워낙 약성이 강했던 지라 폐하께서 고통이 심하고 오래가셨사옵니다. 그 도인의 운명이 아니겠사옵니까?
궁예 허허허, 운명이라... 글세다. 자, 이제 요기를 하였으니 녹차를 한 번 끓여 보거라. 우리 내원이 늘 그 녹차로 산다고 한다. 우리도 마셔보자꾸나.
최응 예, 폐하.
최응이 다기를 꺼내고 녹차 그릇을 연다. 궁예가 모처럼 밝은 표정이 되어 보고 있다. 그리고, 다시 가슴을 만져본다. 고통은 사라졌다. 그는 기쁜 것이다.
씬 씬 왕건의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왕건이 태평과 능산과 함께 해 있다. 왕건이 답답한 듯 읽고 있던 서류철을 덮는다.
태평 이상한 일이 아니옵니까? 벌써 사흘째 폐하께서 아무 말씀도 없으시옵니다.
왕건 .........
능산 주군, 소인이 생각해도 그러하옵니다. 이상하지 않사옵니까? 곧 친국을 여실 것이라고 하셨사온데, 아직까지 아무 말씀이 없으시옵니다.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고 말이옵니다.
왕건 뭘 그리 초조해 하는가. 폐하께서는 하신다 하시면 반드시 하시는 분일세. 아직 조사가 덜 끝나신 게지. 다방면으로 많은 것을 알아보신다 들었네.
태평 그렇사옵니다. 처음에는 원봉성령 최응이를 잠시 시켰다가 지금은 내군장군 은부가 군사들을 보내 직접 나섰다 하옵니다.
왕건 내군은 폐하의 직속 친위군일세. 그럴 만도 하지 않는가?
태평 하오나, 옥에 갇힌 강자자는 물론이고 아지태 사건에 관련한 자들을 다시 가두어 놓았사옵니다. 그리고, 또한 석총 대사에 관한 문도들을 수없이 잡아 들였다 하옵니다. (사이) 결국은 이것은 주군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왕건 자네는 이미 그런 이야기를 내게 수없이 많이 했네. 그러나, 내 대답은 늘 같아. 도망칠 곳도 없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네. 나는 이 나라의 시중이기 때문이야. 나는 지은 죄가 없네. 무엇을 부끄러워 하고 감추고 도망칠 이유가 있단 말인가?
태평 폐하는 지금 정상적인 분이 아니시옵니다. 그런 분이 매를 드시려 하니 문제가 아니옵니까?
왕건 기다려 보세....
태평 결과가 뻔한 일이옵니다. 주군께 화가 닥쳐오고 있는 것이옵니다. 폐하는 자신감을 잃은지 오래되신 분이시옵니다.
왕건 .........
태평 다시 말씀드리오면, 나약하게 주저앉고 있는 폐하의 자리에 주군의 모습이 우뚝 보이기 시작한 것이옵니다. 크게.... 점점 크게....주군의 모습이 나타나시는 것에 폐하는 당혹해하시는 것이옵니다.
능산 그렇사옵니다, 주군. 태평학사의 말이 참으로 맞는 말이옵니다. 대비를 하시오소서. 무슨 일이 떨어질 지 모르는 것이 아니옵니까?
왕건 그만들 하세. 할 일들이나 하게. 너무 그렇게 과민해 지면 사람들이 비웃게 될 것이야. 매사를 당당히 살아가세.
왕건은 그렇게 아무일 없는 듯 책을 넘긴다.
씬 동 집 안채
두 유씨가 수를 놓고 있다.
유씨 오늘도 서방님이 입궐을 아니하셨네. 분명히 좋지 않은 일이 있으시건만, 통 말씀이 없으시니....
수인 우리가 다 아는 일이 아니옵니까? 서방님이 맡으셨던 사건을 폐하께서 다시 조사하신다 하시옵니다.
유씨 그러게 말일세.
수인 말을 들으니 석총대사를 따르던 많은 스님들이 다시 잡혀오고 있다 하옵니다. 저는 그것이 자꾸만 두렵사옵니다.
유씨 그러게 말일세.
수인 만약에.... 만약에..... 서방님께서 새로운 미륵이 되신다는 그 비밀이 밝혀진다면 어찌되겠사옵니까? 그것이 바로 역모사건으로 되지 않겠사옵니까?
유씨 무섭네 그려. 그런 소리 말게. 그건 자네와 우리 집안 사람들만 아는 일이야. 그리고, 서방님께서는 폐하의 자리를 탐내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해달라는 석총대사의 깊은 뜻을 받으신 게야. 오해는 자네가 먼저 하고 있구먼 그래. 아니 그런가, 이 사람아?
수인 그런지도 모르옵니다. 나는 요즘 무슨 일이 자꾸만 생길 것 같아서 그저 두렵기만 하옵니다. 이러고보니 요즘은 나주 형님이 부럽사옵니다. 그곳에서 무슨 걱정이 있겠사옵니까? 어린 무를 데리고 얼마나 재미있게 사시겠사옵니까, 형님?
유씨 그런 말 말게. 그쪽에서도 지금 서방님의 입장을 다 알고 있다네. 그 사람인들 얼마나 걱정이 많겠는가?
씬 인서트/ 벌판
들판에서 윤신달, 전이갑이 부장들과 함께 들판을 메우고 있는 가득한 군사들을 보고 있다. 수많은 군사들이 기치창검을 들고 대오를 지어 훈련에 돌입하고 있다. 마치, 실전처럼 기마대가 달리고 공격령 장비들이 움직이고 있다. 끄떡이며 그 모습을 보는 두 사람의 표정에서....
씬 나주 관아 안
오씨와 다련군이 김언의 보고를 받고 있다.
김언 마님, 일찍이 말씀하신 그대로 금성일대에 배치되어 있는 전군이 훈련에 돌입했사옵니다. 비상훈련이옵니다.
오씨 잘하셨습니다, 장군.
다련군 고마운 일이오. 장군이 비상훈련에 돌입을 하면 백제는 분명 긴장을 할 것이외다. 그리고, 군사들을 또한 대비하겠지요.
김언 그렇사옵니다, 태수어른.
다련군 (끄떡이며) 잘 하셨소이다. 정말 잘하셨소이다.
김언 조정에 오늘 아침 장계를 띄웠사옵니다. 백제군이 심상치 않게 움직이고 있다고 말이옵니다. 그래서, 전군이 비상사태에 돌입을 해 있다고 말이옵니다.
오씨 잘 되어야 할 터인데... 서방님께서는 지금 아주 곤경에 처해 계십니다. 이번만은 장군이 큰 힘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김언 소장은 왕시중의 그늘에서 큰 사람이옵니다. 하옵고, 평생을 모실 분이옵니다. 염려놓으시오소서. 조정에서 분명 반응을 보이게 되어 있사옵니다. 문제는 백제이옵니다. 정말 우리가 전투를 하려는 것으로 오해를 한다면 일이 아주 복잡하게 되옵니다.
오씨 그건 그렇습니다. 정말 전투가 일어나서는 아니되지요.
김언 적당히 잘 해 보겠사옵니다. 너무 심려치 마시오소서, 마님.
오씨의 답답한 그 한숨에서....
씬 백제 황궁 외경
견훤 (E)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씬 동 황후전
박씨, 고비와 함께 견훤이 차를 마시다가, 찻잔을 소리나게 놓으며 빤히 최승우를 본다. 능환이 함께 해 있다.
견훤 이보게, 파진찬, 지금 뭐라고 하였는가? 금성에서 태봉군이 움직이고 있어?
최승우 예, 폐하. 그렇다 하옵니다. 강변과 성을 지키는 군사들이 대부분 강을 넘어 벌판으로 나와 진을 치기 시작했다 하옵니다.
견훤 무진주에서 올라온 보고인가?
최승우 예, 폐하.
박씨 세상에, 태봉군이 또 쳐들어오는 것이옵니까? 지난 번에는 폐하께서 공격을 하셨는데, 이번에는 태봉군이 먼저 치고 오는 것이옵니까?
고비 지금 그렇다고 하지 않사옵니까, 황후마마?
박씨 아이고, 그 지겨운 전쟁, 전쟁....
능환 저들이 무슨 병력이 있어서 우리를 공격한단 말인가? 지금 그곳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이 태봉국의 전략일터인데 우리를 공격한다? 그만한 여력이 있을까?
최승우 아마도 뭔가 다른 꿍꿍이가 있는 것 같소이다.
견훤 다른 꿍꿍이?
최승우 그러하옵니다. 금성은 우리 백제국의 한 귀퉁이에 박혀 있는 땅이옵니다. 우리 본토를 공격할 여력은 없사옵니다. 아마도 뭔가 숨어 있는 의도가 있을 것이옵니다. 저들이 오히려 공격을 해온다면 우리로써는 금성을 되찾는 절호의 기회가 될 수 있사옵니다.
견훤 그럴게야. 공연히 군사들을 한 번 시위해보는 것이겠지.
능환 그럴 수도 있사옵니다. 우리는 그대로 대야성 공략에 최선을 기울이면 되옵니다. 일일이 저들의 움직임에 대응할 필요는 없을 줄로 아옵니다.
견훤 옳은 말일세. 무진주에는 그렇게 전하게나. 일일이 반응을 보이지 말라고 말이야.
최승우 예, 폐하.
견훤 자, 이제 우리도 대야성으로 갈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미 출병 준비는 완료되었다지?
최승우 예, 폐하.
견훤 그 태봉국에 관해서 자네가 하고 있는 일은 어찌되어 가는고?
최승우 아직 이렇다할 성과는 없사옵니다. 어차피, 시일을 요하는 일이옵니다. 잘 될 것으로 보옵니다, 폐하.
견훤 허허허, 나는 자네를 믿네. 사실 그러한 일들이 대야성 열 개를 얻는 것 보다 더 중요할 수가 있어. 태봉국의 왕 궁예를 없애거나 우리에게 독사보다도 더 지독한 저 왕건이를 제거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암, 그것도 전쟁이야. 반드시 성공을 해야 하네. 암.......
박씨 태봉국의 왕을 죽이시옵니까? 어떻게 말이옵니까? 왕건이라는 사람은 또 어떻게 없애시고요?
견훤 허허, 황후가 아실 일이 아니오. 그건 그렇고, 우리는 이번에 저 신라의 대야성을 공격하러 가오. 이 황도는 이찬 이 사람과 사위 박영규 장군이 맡게 될 것이오. 의논할 일이 있으면 이 사람들과 의논들 하시오.
박씨 예, 폐하. 하오나...걱정이옵니다. 지난번에도 뜻을 이루지 못한 대야성이옵니다. 또 가신다 하니 걱정이 크옵니다.
견훤 어허, 대군을 이끌고 전선에 가는 사람에게 그 무슨 소리를... 이번에는 때가 되었소이다. 그렇게는 아니될 것이오.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올 것이니 기대들 하시오. 허허허.
씬 어느 길
견훤이 최승우와 함께 출병하고 있다. 제장들이 모두 따라 붙고 있다. 신덕이 선봉을 섰고, 최필, 김총, 신검, 양검, 애술, 추허조, 능애, 공직 들이다. 수천의 군마가 끝도 없이 줄을 잇고 있다. 태봉국의 첩자들이 보다가 사라진다.
해설 대야성, 지금의 합천이다. 견훤은 서기 901년 8월에도 대야성을 공략한 적이 있었으나, 실패하였다. 당시 그의 나이 서른 다섯, 지금 두번째 다시 시도하고 있는 이 전투는 그로부터 십오년이 지난 서기 916년 그의 나이 오십에 접어들어서였다. 대야성은 그만큼 백제에게 있어서 신라로 들어가는 중요한 통로였고, 관문이었다. 또한, 낙동강 전선을 유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요충지이기도 했다. 백제의 견훤이 이렇게 대군을 동원하여 대야성으로 갈 수 있었던 것은 태봉국이 그만큼 내정이 복잡하여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씬 철원 저자 거리
두 필의 전령이 달려가고 있다. 급박하게 카메라 앞을 지나쳐 멀어져 간다.
씬 철원 황궁 외경
씬 동 시중부 안
왕건이 놀라고 긴장된 표정으로 전령의 장계를 읽고 있다. 원극유, 박질, 박지윤이 함께 대책 회의를 하고 있다.
왕건 (전령을 본다) 나주가 갑자기 그토록 위험해졌단 말인가? 적군이 움직이고 있어?
전령 예, 시중어른.
왕건 그리고, 이건 또 뭔가? 백제의 견훤왕이 이번에는 대야성으로 향했다? 대야성....?
원극유 그렇지않아도 국방에 관한 일을 논의 중이었는데 이것 참 큰일 아닙니까? 나주가 다시 위험에 처하고, 견훤왕은 대야성으로 가고... 이렇게 되면 전면전을 벌이자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박지윤 그런 것 같습니다. 나라 사정이 한참 복잡한 때에 이런 일이 이곳저곳에서 한꺼번에 터지다니요. 허허, 답답합니다, 왕시중.
왕건 .......(계속 장계 보며 한숨을 쉰다)
원극유 빨리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박질 지금 그럴 여유가 없지 않소이까? 북벌군이 평양쪽으로 향하고 있는데다가 나주라면 어느 누구보다도 왕시중이 필요하신 곳인데, 조정에 사정이 또한 그렇지 못합니다.
원극유 그러나, 백제의 견훤왕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저 대야성이 함락되면 백제는 우리보다도 훨씬 유리한 입장에서 신라를 누를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박지윤 그건 그렇소이다. 그러나, 지금은 우리가 군사를 함부로 이동시키거나 움직일 수 있는 입장이 아니올시다. 허허, 왕시중, 이거야말로 큰일이 아닙니까?
왕건 일단은 지켜보는 수 밖에요. 나름대로 전장터에서 장수들이 제몫을 하고 있으니 당분간은 조정에 문제들을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습니다.
원극유 아니올시다. 그렇지가 않아요. 조정에 일은 국내의 문제고, 견훤왕이 움직이는 것은 국가 존망의 위기와 연결된 것이오이다. 어떻게하든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폐하께도 주청을 드려야 하고요.
박지윤 그건 병부령의 말씀이 맞소이다. 왕시중께서 혼자 해결하시기가 어려운 문제 같소이다. 내원과 폐하께 사안을 올리고 영을
기다려 보십시다.
왕건이 고개를 끄떡인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답답하기만 하다.
씬 황궁 대전(밤)
궁예가 편안한 모습으로 아지태의 기록들을 읽고 있다. 계속해 장을 넘기다가 혀를 찬다. 그리고, 중얼거린다.
궁예 (E) (기록을 보며) 나는 아지태라는 인물을 만나 너무도 많은 세월을 낭비했다. 슬픈 일이다. 철원으로 오면서부터 내내 나라 사정이 엉망이 되어 버렸어. 교활한 놈.... 내가 이렇게 교활한 놈을 만나서 북벌이니 뭐니 어릿광대 노릇을 하였단 말인가?
궁예는 한숨을 쉬며 기록을 덮어 버린다. 그리고, 한참 생각한다.
궁예 (E) 아니지.... 어쩌면 아지태도 나름대로의 큰 꿈이 있었던 이상가였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자와 나의 생각은 같았어. 북으로 가는 것, 저 북으로 가는 것 말이다. 그래, 생각은 좋았어. 그러나, 현실이 따라 주지 않았어. 현실이....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외로 꼰다. 아지태의 웃음소리가 섬찟하게 들려온다.
아지태 (E, 에코우) 너는 미쳤다. 그래, 이제 바른 말을 하마. 내가 모종의 사건을 꾀하였다. 왜냐, 네 놈이 미쳤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난 북으로 갈 수 있었고 너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길 수도 있었다. 불쌍하구나. 황제여, 너는 이미 미쳤다. 제국을 끌어 나갈 힘도 없다. 결국은 왕건이에게 다 내주게 될 것이다. 이 미련하고 불쌍한 황제여.
궁예는 그렇게 다시 한숨을 쉰다. 그리고, 도리질을 한다.
궁예 (E) 그래, 아지태 그 자도 역사에 한 줄 이름을 남기고 싶어했어. 그래서, 나를 따라 왔고... 그리고, 무리수를 두다가 죽은 게야. 헌데... 헌데, 왕건이에게 다 준다고? (사이) 왕건이에게? 그 자는 죽어가면서 자신의 심중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이야. 빈말을 한 것은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건 그래.... (사이, 의심) 그건 그래.....
그렇게 생각하다가 궁예는 다시 기록들을 펼쳐 본다. 몇 장을 그렇게 넘겼다. 또 생각한다.
궁예 (E) 돌이켜 보면, 내 정신이 아니었다. 허지만, 지난 것은 지난 것이야. 더 강할 필요가 있어. 그게 내게 주어진 소임이야. 왕건아우라니...(도리질하며) 아니되지. 그건 왕건아우의 뜻은 아닐 게야. 불순한 무리들이 왕건아우를 이용하려고 하는 거야.
궁예는 그렇게 단정을 내리며 혼자 끄떡인다. 그리고, 다시 법봉을 만지며 모진 결심을 한다.
궁예 강해져야 한다. 예정대로 국문도 시행해야 한다. 그리고, 요언과 요설을 퍼트리는 석총의 문도들을 단속하고 어린 태자들을 내세워 흑심을 품었던 강장자도 해결을 해야 한다. 해야지. 해야지....! 불순한 모든 것들을 한꺼번에 뿌리 째 뽑아 버려야 해.
씬 의형대 감옥
강장자, 능달, 기전들이 갇혀 있다.
강장자 (E) 국문을 한다더니 어찌 된 것일까? 며칠 째 왜 아무 소식이 없는 게야. 하긴 그래. 그래도 내가 황제의 장인이고 황후의 아비가 아닌가? 나를 죽이기 쉽지 않을 게야. 암, 그리고 내가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다 아지태 그 놈의 짓이지. 허, 이거 참...대체 일이 어떻게 되려고 하는 것인가?
그 초조한 모습에서... 비명 소리들이 들려온다.
씬 그 의형대 일각
수많은 승려들이 잡혀와 고문을 당하고 있다. 그 중에는 석총의 제자였던 주지승도 보인다. 은부는 그저 보고만 있고, 장일과 금대가 취조에 나서고 있다.
장일 네 이놈, 네놈이 죄를 받고 죽은 석총이의 제자라고 하였겠다?
주지 그렇소이다.
장일 지난 법회 때 모두 생매장들을 시켰는데, 용케도 살아 남았구나.
주지 (실신하듯).... 그렇소이다. 형을 집행하는 군졸들이 너무 불쌍하고 억울하다 하여 몰래 풀어 주었소이다.
금대 헌데, 또 이렇게 붙들려 오다니 안되었구나. 자, 묻는 대로 말하거라. 너의 법상종은 무엇 하는 종파이냐?
주지 미륵을 모시는 종파올시다.
금대 어떤 미륵을 말하는 것이냐?
주지 이 세상을 구하러 오시는 미륵부처님을 믿소이다.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구하는 위대한 부처님말씀이오.
금대 그 미륵부처님이 황제폐하이시다. 그것을 모른단 말이냐?
주지 아니오. 우리는 그런 미륵이 아니라, 앞으로 오실 미륵을 기다리는 것이야.
은부 (보고 있다가) 네 이놈, 이미 폐하께서 미륵부처님으로 이 세상에 오시었다. 고얀놈 같으니라고.. 무슨 헛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야?
주지 아니오. 폐하께서는 그런 미륵이 아니시오.
은부 이런, 고얀.... 더욱 단단히 혼을 내주어라.
금대 장군께서 혼을 내랍신다. 더욱 조여라.
주리가 틀어진다. 주지는 비명을 지르다 못해 혼절한다. 피가 밑으로 줄줄 흐르고 있다. 은부가 화가 나 고개를 돌리며 말한다.
은부 조사해 보았자 뻔한 것이지만, 그래도 알아낼 것은 알아내야 한다. 죽은 석총이가 어떤 인물이며, 왕시중을 왜 가서 만났는지 알아내거라. 그리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도 알아내야 한다. 저들의 뼈가 부서져 가루가 되더라도 알아내야 한다. 반드시... 알겠는가?
금대,장일 예, 장군.
은부 찬물을 끼얹어 정신을 들게 하고, 다시 취조하라.
금대 예, 장군.
주지에게 찬물이 끼얹어 진다. 그 모습을 보며 은부는 돌아선다. 그의 차가운 표정 위로, 고문소리와 비명 소리들은 다시
이어진다.
장일 말하라. 석총이는 누구이냐? 왕시중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더냐? 그때, 청주까지 왜 갔느냐 이말이다. 말해라. 말해!
주지 모르오이다. 모르오이다.
장일 더욱 주리를 틀어라. 뭣들 하느냐?
씬 임춘길 집 외경
씬 동 집 사랑
임춘길이 전전긍긍하며 생각에 잠겨 있다.
임춘길 모두들 지금 끌려가 고문을 받고 있다고 한다. 강장자마저 옥에 갇혔고, 능달과 기전이마저 끌려갔어. 그리고, 나는 이 도성을 떠나지 말라고 한다. 아무리 순군부의 장수라지만 사실상 죄인의 낙인이 찍힌 것이야. 내게도 틀림없이 위험이 닥쳐 올 것이야. 어찌 한다....?
계속 한숨을 쉬며 어쩔 줄 모른다. 그때, 밖에서 소리가 들려온다.
소리 장군, 집사장이옵니다. 왠 스님이 장군을 뵙고자 왔사옵니다.
임춘길 뭐라? 스님이...?
문을 열고 보면, 집사장이 고개를 숙이고 있고, 그 옆에 최승우가 보낸 도우가 미소를 지으며 서 있다가 합장을 한다.
임춘길 왠... 스님이시오?
도우 도우라는 승려올습니다. 이곳을 지나다보니 죽음을 드리우는 사기가 보이는 것 같아서 잠시 들렸사옵니다.
임춘길 (뜨끔해서) 뭐요? 사기...?
도우 그러하옵니다. 죽을 사자, 기운 기자, 죽을 기운이 돌고 있다는 것이옵니다. 허허허.... 차 한잔 주실 수 있겠사옵니까?
임춘길 사기라...? 사기...? 법명이... 뭐라 하셨소이까?
도우 도우라 하옵니다, 장군.
임춘길 도우...?
그렇게 묘하게 도우를 보는 임춘길의 당황하는 표정에서...
씬 황궁 대전
궁예가 법봉을 닦고 있다. 겉으로는 변한 것이 없다. 그러나, 취하고 흐린 눈이 아니다. 총명이 빛나고 있다. 궁예는 그렇게 법봉을 닦으며 점잖게 앉아 종간과 은부를 보고 있다. 그 옆에 최응도 앉아 있다.
궁예 나주에 있는 백제군들이 다시 움직이고 있다?
종간 예, 폐하. 전선의 상황이 갑자기 급해지고 있다 하옵니다.
궁예 이런, 이런... 아니 왕건아우가 잠시 자리를 비웠다고 이렇게 나약한 소리들을 해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이건 뭔가? 백제의 견훤왕이 이번에는 대야성으로 갔다? 이거 이상하지 않는가? 어떻게 양쪽에서 대규모 전쟁을 벌일 수가 있단 말인가?
은부 그러나, 어쨌든 전선에서 올라온 보고이옵니다. 모두 믿을 만한 곳에서 온 것이오니, 폐하께서 어떤 영을 내리셔야 할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허지만, 뭐 당장 나주가 무너지고 대야성이 저들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들이 많아. 일단 여기서 해결을 볼 것은 보고 나서...
궁예는 법봉을 계속 닦는다. 그리고, 말한다.
궁예 내가 처리하려던 일들이 있지 않소이까? 우선 그것을 해결하고 전선이야기를 하십시다.
종간 용안이 정말로 맑아 보이시옵니다, 폐하.
궁예 약이 좋았던 것 같소이다. 긴 잠에서 깨고 나니 내가 언제 병을 앓았다 싶소이다.
종간 (계속 안색 살피다가) 과연.... 과연.. 그 도인의 약이 효험이 있으신 것 같사옵니다. 폐하의 쾌차를 감축드리옵니다.
은부 감축드리옵니다, 폐하.
궁예 뭘 그런 걸 가지고, 허허허. 다 사형께서 기울여주신 그 지극한 정성 덕분이오.
종간 (감격) 망극하옵니다, 폐하. 그리 말씀하시니, 신은 몸둘 바를 모르겠사옵니다.
궁예 소주잔을 치우라고 했소이다. 가슴에 고통이 없어 졌어요.
종간 하늘의 도움이시옵니다.
궁예 그 동안 병마에 시달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허지만, 그건 모두 나라가 잘되고자 했던 일들이예요.
종간 옳은 말씀이시옵니다. 그러하옵니다, 폐하.
궁예 내 생각이 흐리고 병마와 마군이가 나를 괴롭히는 동안 적지 않은 일들이 있었소이다. 내가 누구보다도 믿었던 아지태가 북벌 정책이 실패하자 반기를 들려 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가슴 아픈 일이었고.
두사람 .........
궁예 거기에 부화뇌동하여 어린 태자를 볼모로 잡고 불순한 의도를 꾸몄던 내 장인인 강장자도 불쌍한 사람이오.
종간 매사를 너그럽게 보시오소서, 폐하. 황후마마의 가친이 아니시옵니까?
궁예 또한, 석총이가 미륵을 운운하면서 세상을 현혹시키고 황제인 나를 부정했다는 것은 열 번, 백 번 죽여도 벌이 부족할 것이오.
은부 이미 그 문도들에 관한 것은 모두 자복 받아 올렸사옵니다.
궁예 보았소이다. 왜 그런 자들이 왕건아우를 만났는지 모르겠어. 쓸데없이 오해를 받게 하고 말이야. 아무튼 이 모든 것들을 빨리 해결해야 올바른 정사를 볼 수가 있을 것이오. 나라의 기강을 확실히 잡아야 한다 그런 말이오. 이제 국문을 할 때가 되었소이다. 그 자리를 좀 마련하시구료.
종간 국문을... 꼭 하셔야 하옵니까?
궁예 무슨 말씀이오? 법을 다시 세우자 하는 것이오. 법 말이오. 나는 변함없는 미륵이오. 그리고, 황제요. 반역과 음모는 뿌리를 뽑아야 하오. 또한, 황실의 위엄에 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을 없애야 하오. 아지태가 말한 그 모든 것들을 나는 다시 확인해서 공정한 시비를 가릴 것이오. 자리를 만드시오. 아시겠소이까?
종간 예, 폐하. 그리 하겠사옵니다.
궁예 내가 살아 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내 관심법이 얼마나 공명정대하게 이 나라 법을 대신하고 있는 지를 보일 것입니다. 그 국문장에서 말입니다. 추호의 인정이나 사정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든 말이오.
종간 예, 폐하.
궁예 그리고, 이후부터는 내가 미륵이며 황제임을 나타내는 새로운 의관을 갖추고 싶소이다. 이런 황금색 법복보다는 황제를 나타내는 의관 말이오. 황제이면서 미륵인 그런 것이면 좋겠소이다.
종간 예, 폐하.
궁예 위엄이라는 것은 여러면에서 갖추면 갖출 수록 좋은 것이오. 아니그렇소이까?
종간 마땅하고 옳으신 말씀이시옵니다, 폐하. 그리하도록 하겠사옵니다.
씬 다시 임춘길의 집 사랑
임춘길이 눈을 크게 뜨고, 도우를 보고 있다.
임춘길 그래서요? 그래서 어찌된 것입니까?
도우 석총이는 미륵불의 대표적인 고승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왕건시중이 황제가 될 것이라는 것을 예언했사옵니다.
임춘길 정말로 그랬소이까?
도우 그래서, 황제가 석총이라는 중을 때려죽인 것이 아니옵니까?
임춘길 ...허긴....
도우 소승은 오래도록 만행을 하면서 불가의 여러 소식들을 손바닥처럼 보고 아는 사람이옵니다.
임춘길 물론 그러시겠지요.
도우 잘못하면 장군께서 개죽음을 당하시옵니다. 지금 상황이 그렇게 되어 있사옵니다.
임춘길 그러게 말이올시다. 그 아지태라는 자가 영 일을 어렵고 난처하게 만들어 놓고 죽어버렸어요.
도우 (눈치를 보며) 장군이 살 길은 왕건시중을 물고 들어가는 것이옵니다. 분명히 황제께서는 관심법을 쓸 것이옵니다. 그 관심법은 두 번 묻는 법이 없습니다. 황제가 원하는 대답을 해야 한다 이런 말이옵니다.
임춘길 허지만, 왕시중은 나를 구해주었소이다. 아지태만 벌을 내리고 다들 풀어 주었어요.
도우 허나, 지금은 물지 않으면 장군이 물리게 되었사옵니다. 왕건시중은 틀림없는 반역자이옵니다. 아지태가 말한 것처럼 첫째로는 송악의 예언이 그렇사옵니다. 도선이 예언한 삼한의 성인 말이옵니다.
임춘길 ....... (고개 끄떡인다) 나도 들은 적이 있소이다.
도우 두번째는 석총이 말하는 미륵은 왕건이라는 사실이옵니다.
임춘길 허긴, 그래요. 아지태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도 사실 여러 번 왕건시중을 황제 자리에 앉히려고 했던 일이 있었소이다. 물론, 다 그 왕시중이 거절을 해서 틀어졌지만 말이외다.
도우 그랬을 것이옵니다. 반역의 기운이 있사옵니다. 그것은 틀림없사옵니다. 살 길을 찾으시오소서, 장군.
임춘길 어떻게 말이오?
도우 나는 장군을 돕기 위해 온 사람이옵니다. 밀고를 하시오소서.
임춘길 밀고..?
도우 살 길을 찾아야 하지 않겠사옵니까?
임춘길 스님께서는 왜 나를 도와주는 것이오?
도우 불제자로써 적지 않은 세월을 살았사옵니다. 그동안 폐하께서는 사실 죄없는 많은 목숨들을 거두셨사옵니다. 소승이 뵈니, 장군께서도 억울하게 벌을 받으실 것 같아, 찾아 뵌 것이옵니다. 다른 뜻은 추호도 없사옵니다. 불제자가 무슨 다른 욕심이 있겠사옵니까?
임춘길 (그제서야) 그건 그렇소이다. 사실 수없이 많은 목숨들이 죄없이 죽어갔습니다. 나도 그렇게 생겼고....
도우 왕시중을 앞세우소서. 폐하께서 물으시면 죽은 아지태가 그리 말하더라고만 말하시면 되옵니다. 폐하는 지금 아지태가 남긴 그 말들을 모조리 확인하고 계시옵니다. 하나, 하나... 모두다 말이옵니다.
임춘길 그건 사실이외다.
도우 그러니까, 아지태가 했다고 하면 십중팔구 또 믿게 되어 있사옵니다. 그 틈을 이용해 빠져나오시지 않으면 죽사옵니다. 죽느냐, 사느냐, 장군께서 생각하시기에 달렸사옵니다.
임춘길 (계속 한숨을 쉰다. 갈등이다) 밀고라..? 밀고라...? 허, 이거 참...
그렇게 갈등하는 임춘길의 표정에서....
씬 황궁 안 마당(아침)
씬 동 황후전
연화가 장탄식을 하고 있다. 제조상궁, 슬이가 백씨와 마주 해 있다.
연화 페하께서 환후를 물리쳤다 하시더니, 다시 국문을 하신다 이말입니까?
백씨 그렇다하옵니다, 황후마마.
연화 건강을 되찾으셔서, 모두가 기뻐하고 기대가 컸었는데... 국문을 다시 한다고요?
백씨 앞이 캄캄하옵니다. 이미 국문 준비가 끝나고 신료들이 들고 있다 들었사옵니다, 황후마마. 막아야 하옵니다. 지금 나으리께서 다시 내린 죄명은 태자마마들을 보위에 올리려했다는 그것이옵니다. 과연, 죄를 벗을 수가 있겠사옵니까?
연화 (긴 한숨) 모두가 아버님과 어머님의 자업자득이시옵니다. 제가 얼마나 막았사옵니까? 얼마나 알아 듣게 말씀을 드렸사옵니까?
백씨 아이고,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오리까? 지금 일이 급하게 되었습니다, 황후마마.
연화 하긴, 그렇습니다. 아버님의 생각이 옳았는지도 모릅니다. 사는 길을 찾다보니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지태도 만난 것이고, 또 권력에 욕심도 생기신 것이고, 그런 것이겠지요. (도리질하며) 그래도, 설마..... 그래도, 폐하의 장인이십니다. 죽이기야 하시겠습니까?
씬 동 황궁 대전
궁예가 혼자서 기록들을 덮어놓은 채 생각이 많다. 그리고, 스스로를 다짐하고 있다. 그리고, 고개를 끄떡인다. 이미 의관이 바뀌었다. 그는 황제를 알리는 법복에 금관을 썼다. 그리고, 주장자를 짚었다.
궁예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리지 말고 이번 기회에 털어 낼 것은 깨끗이 털어 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시작하는 것이야.
그때, 대전내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전내관 (E) 폐하, 원봉성령 입시이옵니다.
궁예 들라하여라.
최응이 들어와 예를 올리며 말한다.
최응 폐하, 의형대에 국문장이 마련되었다 하옵니다. 지금 신료들이 들고 있사옵니다.
궁예 오, 그러한가? 그렇다면, 차비를 차려야겠구나. 관련된 죄인들은 모두다 와 있느냐?
최응 예, 그런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순군부의 임춘길이도 와 있느냐?
최응 임장군은 지금 내원어른과 함께 있는 것으로 아옵니다.
궁예 임춘길이가? 아직 죄가 가려지지 않았는데, 내원에 가 있어? 모를 일이로구나. 이번에는 황후는 오지 않을 것이다. 그대로 황후전에 있게 하라. 자, 국문장으로 가보자.
최응 예, 폐하.
씬 동 황궁 마당
대소신료들이 모두 들고 있는 것이 보인다.
씬 동 내원
임춘길, 종간이 마주해 있다.
종간 그러니까, 아지태가 죽어가면서 한 말이 모두 사실이었다?
임춘길 그러하옵니다, 내원어른.
종간 시중 왕건 그 사람이 석총이의 예언을 받았고, 다음 미륵으로 낙점을 받은 것이 사실이다?
임춘길 예, 내원어른. 죽은 아지태가 소장에게 그리 말을 하였사옵니다.
종간 허허, 그런데 왜 진작 그런 얘기를 안하고 지금에 와서야 하는 것이오?
임춘길 그때는 사실여부를 좀 알아보느라 말할 형편이 못되었사옵니다.
종간 (이리저리 눈치를 보며) 그리고, 또 할 얘기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임춘길 폐하께서 백제낭인들의 공격을 받으셨던 것은 역시 왕시중의 집안에서 사주한 것이라 하옵니다. 그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 말이옵니다.
종간 이런, 이런.... 하긴 아지태가 죽을 때 그런 말을 했었지. 백제인들에 관한 당시 사건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이오.
임춘길 그러하옵니다.
종간 허지만, 뭐 새로운 것은 없지 않소이까? 혹시... 임장군이 폐하께서 물으실 죄가 두려워 내게 찾아 온 것은 아닌지 모르겠소이다?
임춘길 아니옵니다, 내원어른. 소장은 아지태와 아무 관련이 없사옵니다. 그저, 동향인 청주라는 관계로 쓸 데 없이 누명을 쓰고 있었사옵니다.
종간 ............(쏘아보듯 살핀다)
임춘길 폐하의 관심법은 무섭사옵니다. 사실 오늘의 국문 자리는 너무도 감당하기 어렵고 벅차옵니다. 내원어른께서 살펴주시오소서.
종간 .........? (계산하듯 본다)
임춘길 오늘 지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다시 말씀 올리는 것은 소인이 생각해보건데 그 많은 사건의 핵심에 왕건시중이 관계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옵니다. 그렇지 않사옵니까, 내원어른?
종간 (많은 생각을 하다, 끄떡인다) 지난번에는 아지태 혼자서 주장하는 독설로만 여겼는데,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이었다? 너무도 두려워서 말을 못하고 있다가 지금에서야 말을 한다?
임춘길 그러하옵니다. 헤아려주시오소서, 내원어른.
그때, 밖에 소리가 들려온다.
은부 (E) 내원어른, 폐하께서 국문장으로 납시셨사옵니다. 속히 가시오소서.
종간 그렇게 하세. 갑시다, 임장군.
임춘길 예, 내원어른.
그들 그렇게 일어선다.
씬 국문장
궁예가 들어서고 있다. 사람들이 놀라운 눈으로 그의 변신을 보고 있다. 황금관에 주장자를 든 그의 모습은 역시 위엄이 높아 보인다. 그는 내관, 상궁들을 물리며 자리에 가 앉는다. 연화는 없다. 왕건과 더불어 모든 신료들이 좌우로 늘어서 있고, 다시 죄를 받을 강장자와 기전, 능달이 보이고, 입전, 신방, 임춘길이 한쪽에 있고, 고문으로 상처투성이가 된 승려들이 또한 늘어서 있다. 종간, 은부, 최응들이 황제 곁에 서있다. 내군이 법봉을 모시고 있다.
궁예 모두들 들으라.
신료들 예.
궁예 나는 오늘 지난 날 역적 아지태가 남긴 요언들이 일리가 있다 하여, 이 국문을 다시 열은 것이다. 내가 손수 기록을 점검하고 사실들을 살펴본 결과 많은 죄안들이 새로이 드러났도다.
왕건 .........
신료들 ........
궁예 왕시중이 일차 이들을 심문하였으나, 너무 인정이 과하여서 밝히지 못하고 숨어버린 것들이 많았노라. 물론, 인정은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나라의 존망을 위급하게 하는 대역죄에 관해서는 인정이란 없다. 내군의 금부장은 들어라.
금대 예, 폐하.
궁예 그 법봉을 가지고 죄인들을 다스릴 것이다. 준비하라.
금대 예, 폐하.
궁예 입정에 들기 전에 말하노라. 지금이라도 이실직고를 하면, 살려줄 것이다. 인정은 자신의 죄를 뉘우칠 때 베푸는 것이다. 말해보라. 누구든 나서서 자신의 죄를 자복하면 나는 관심법을 쓰지 않을 것이다. 말해보라.
아무도 말이 없다. 무서운 정적만이 지나쳐 가고 있다. 아니되겠다는 듯 궁예가 도리질을 한다. 어느새 금대는 법봉을 들고, 죄인들의 뒤로 가서 섰다. 궁예가 혀를 찬다.
궁예 없단 말이지? 자복할 죄들이 없단 말이지?
죄인들 (강장자를 비롯해 그 면면들이 스친다).........
궁예 안타까운지고.... 아무도 할 말들이 없단 말이지? 이보시오, 장인어른.
강장자 예, 폐하.
궁예 지금부터는 죄인 강장자요. 할말이 없소이까?
강장자 억울하옵니다, 폐하......
궁예 안타깝도다. 안타깝도다. 입정에 들겠노라. 곧 관심법을 시행하겠노라. 관심법에 들어갈 것이다!
< 107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