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번주 금요일이 아니고 다음주 금요일이네? 에이, 날짜가 왜이리 느리노?...”
빨간색 동그라미가 굵게 그려진 달력을 들여다보면서
수학여행의 출발일자를 손꼽아보는 조바심은
열 살박이 소년시절이나 예순이 다된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꽃피고 햇살좋은 3월의 두번째 주말, 나는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간다
불국사와 석굴암을 구경했던 고등학교 졸업여행을 다녀온 이후 36년만에 부활된
우리들의 수학여행은 올해로 네번째가 된다
쉰 살 되던 해에 졸업 30주년을 계기로 출범하게 된 고교반창회.
소년시절의 단골빵집에서 처럼 우리는 여기서 다시 옛날을 시작하였다.
봄가을로 정례모임도 갖고 매월 한번씩은 산에도 다닌다.
인테넷 까페를 만들어 무시로 수다를 떨기도 하고
거기서 누군가가 욱하는 마음으로 번개모임을 선언하기라도 하면
우루루 비오는 날 사랑방에 홀아비꼬이듯 모이기도 한다
“우리 여행도 가자! 마누라는 데려가지 말고 우리끼리 옛날처럼 수학여행을 가는거야....”
이렇게 시작된 우리들의 추억만들기는 이제 반창회의 가장 중요한 연중행사로 자리잡게 되었고
쉰 여섯살 봄에는 베이징여행, 그 다음해 봄에는 칭따오여행, 또 그 다음해에는 따렌 을 다녀왔다.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의 사정도 있고 해서 금요일 오후에 출발해서 일요일 오후에
돌아오는 2박3일의 짧은 여행이지만 우리는 여기서 충분히 옛소년의 추억을 마신다
세계적인 금융위기가 몰고온 고환율의 여파는 우리들의 수학여행에도 불어닥쳤다.
턱없이 비싸진 항공요금과 현지물가의 부담 때문에 당초 중국 텐진으로 계획했던 행로를
국내로 돌려 부산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친구를 찾아 가는 여행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흥분과 설레임은 그 정도 사소한 여정의 변경으로 퇴색되지 않는다.
우리들의 달력에는 변함없이 굵은 펜으로 ‘수학여행’이라는 주홍글씨가 번득이고 있는 것이다.
아아, 그러나 필시 우리가 칠십살 팔십살을 넘어도 이어지게 될 이 수학여행의 끝은 어디일까?
지난해 따렌여행때 함께 했던 한 친구는 이번 여행에 함께 하지 못한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불과 몇달만에 급작스럽고도 짧은 암투병 끝에 저 세상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그렇게 세월의 흐름속에서 하나씩 하나씩 친구들을 앞세우다보면
서서히 서서히 검게 피멍들어 남게되는 친구들은 어느 나라, 어느 도시의 골목에서
초라한 수학여행의 밤을 지새워야 하는가....
그러다가 최후로 남는 불행한 친구는 또 어디로 홀로 수학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말인가...
에잇, 젠장! 그렇게 생각하면 종말을 피할 수 있는 존재가 어디있누?
"병신새끼야! 세상일이란 다 그런거야
모든 일을 좋게 즐겁게 생각해야해. 피멍이 들긴 왜 들어......"
그래, 생각을 돌려야겠다
존중과 사랑, 우아함과 해학이 넘치는 신나는 우리들이 있는 오늘이 아닌가
히로카네 켄시라는 일본작가도 50살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기록했지
“잃을 것도 없고 더 이상 얻을 것도 없고
삶에 대해 절망할 필요는 더더욱 없이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시기.
분주했던 지난 날에 대해 허무감을 느끼며
오르는 것만이 인생이 아님을 겸허하게 깨닫는 시기.
비로서 내면에서 삶의 결정이 빛나기 시작하는 아름다운 때.....”
맞다. 이렇게 아름다운 우리가 '쉰 아홉살의 수학여행'을 가고 있는거다
친구들아, 칭구야!
준비 다 되었지?
40년을 거슬러 오르는 59번 ktx의 바큇소리가 들리지?
(淡虛堂)
첫댓글 축하합니다. 좋은 친구들 서로 꼭 붙잡고 다니시소.
네, 꼭 붙잡을께요!!
저희 친구들 다섯은 환갑여행를 하기로 하고 적금을 들었습니다.
4월에 적금타서 오월중에 남자들만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지요. ㅎㅎㅎ
잘하신겁니다. 못잊을 추억을 만드시는거죠...^^*
축하합니다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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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요, 그리구요 다녀와서도 말이지요, 여행하는 동안 친구들이 쏟아놓은 기가막힌 익살들을 여행후기에 멋지게 담아 올리면
그걸 읽으며 왁자지껄 또 한세월이 간답니다...^^*
즐겁게 다녀오세요. 늦각기 학생님들...!
네, 안녕히 다녀오겠습니다!
여자들만의 여행과 남자들만의 여행 묘미는 각각 다르겠지요?
'수학여행'이란 어휘가 친근감이 들어 마음을 더 설레이게 할 것 같아요. 무척 친한 사이라 재미가 철철 넘칠 봄나들이 잘 다녀오세요.
되도록이면 옛날의 수학여행같은 기분을 살리느라고 일정도 그렇게 꾸민답니다.
문화유적답사도 하고요, 산책도 하고요, 노래자랑도 하고요, 숙소에서 밤늦도록 개똥철학 토론도 하지요.
킬킬대는 수다는 여행기간 내내 끝이 없구요.
친구들간에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밑깔려 있기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잘 다녀오겠습니다. 방장님..
긍정적인 삶 , 좋은 사람들 ... 함께 하는 여행은 활력소 , 삶에 충전 , 멋지게 사는 방법입니다 .
59 년에 청춘은 영원하리라 ... 칭구분들과 즐거운 여행 되셔요 . 먼저 가신 친구분에게도 애도를 표합니다 .
우아님, 정말 감사합니다..^^*
쉰 아홉살의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떠난다는 발상 자체가
부럽고 탁월하고 눈물나게 아름다워요.
어쩜 그렇게 좋은 생각을 하셨을까요...
평생 벗들과 쭈욱---- 아름다운 시간 만드세요.
칭찬해주시니 우쭐해지네요. 감사합니다. 지인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