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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11월19일(화요일) 서산시 [황금산&간월암&간월도항 방파제등대&해미읍성] 탐방일정
회비 31,000원 11월3일 송금 필, 27번 좌석 10월15일 예약
탐방지 : 서산시 황금산
탐방코스: [황금산 주차장~황금산~몽돌해변~코끼리바위~해벽~황금산 주차장] (3.6km)
탐방일 : 2024년11월19일(화요일)
탐방코스 및 탐방 구간별 탐방 소요시간 (총 탐방시간 2시간45분 소요)
06:50~09:40 “좋은사람들” 버스로 양재역 12번 출구 전방 국립외교원 앞에서 출발하여 충남 서산시 대산읍 독곶해변길 164-1 번지에 있는 황금산 주차장으로 이동 [2시간50분 소요]
09:40~10:30 황금산 주차장에서 산행출발하여 서산 9경 중 제7경인 황금산(해발 156m) 정상으로 이동
[몽돌해변과 코끼리바위가 유명한 황금산은 서산 9경 중 제7경으로, 해송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숲길과 몽돌로 이루어진 해안이 절경을 이룬다. 해발 156m의 낮은 산이지만, 산을 넘으면 코끼리바위가 있는 아름다운 해안절벽을 감상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항금산(亢金山)’이었으나 산이 있는 전체구역을 총칭하여 ‘항금’이라 했다고 한다. 옛날 평범한 금을 뜻했던 ‘황금’에 비해 ‘항금’은 고귀한 금으로 여겼다. 이 때문에 마을 선비들은 ‘항금산’으로 표기했다고 전한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 마치 섬과 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으나 화학공장이 들어서면서 지금은 육지와 완전히 연결되어 있다. 서쪽은 바위 절벽으로 서해와 접해있고 금을 캤던 2개의 동굴이 남아있으며, 산 정상에는 예로부터 풍년과 안전을 기원했던 당집을 복원하여 매년 봄 제향을 지내고 있다.]
10:30~10:30 사진촬영
11:00~11:10 몽돌해변으로 이동
11:10~11:20 코끼리바위로 이동
10:30~10:30 사진촬영
10:30~10:30 해벽으로 이동
10:30~10:30 사진촬영
16:51~12:25 황금산 주차장으로 원점회귀하여 서산 9경 중 제7경인 황금산의 산행을 완료
12:25~12:40 “좋은사람들”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 대기
12:40~13:40 “좋은사람들” 버스로 황금산 주차장에서 충남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1길 117 번지에 있는 카페 간월로 이동 [1시간 소요]
[간월암(看月庵)
충남 서산시 부석면에 위치한 간월도에 있는 절.
간월도가 예전에는 피안도(彼岸島), 간월암은 피안사(彼岸寺)라고 불린 적이 있다.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하는데 그 출처가 분명하지는 않다. 밀물이 들어오면 물위에 떠 있는 연꽃과 같다 하여 연화대(蓮花臺)라고도 불렀다. 고려 말에 무학 대사가 이곳에서 수행 중에 달을 보고 홀연히 도를 깨우쳤다 하여 암자 이름을 간월암(看月庵)이라 하고 섬 이름도 간월도라고 하게 되었다, 무학 대사의 득도처였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것은 대사가 태어난 곳이 간월암에서 멀지 않은 충남 서산시 인지면 모월리이기 때문이다.
무학이 누구인가.
1392년 왕사로서 조선 개국에 참여 했고, 한양 천도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 공으로 인해 간월도와 인근의 황도를 하사 받아 절을 지었으니 그가 지은 절을 무학사(無學寺)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 후 조선의 억불정책으로 폐사되었던 것을 1941년 만공선사가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무학 대사는 간월암을 떠나면서 짚고 다니던 주장자를 뜰에 꽂으며, 지팡이에 잎이 피어나 나무가 되어 자랄 것인데 그 나무가 말라죽으면 나라가 쇠망할 것이요, 죽었던 나무에서 다시 잎이 피면 국운이 돌아 올 것이라 예언했다고 한다.
만공스님은 죽었던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간월암을 찾으니 암자는 간 곳이 없고, 그 자리에 묘가 들어서 있었는데, 실제 귀목나무에서 새파란 잎이 돋아나 있는 것을 보고 이곳에 머물며 중창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기도 회향 전에 김씨 가문에서 묘를 이장해 가는 가피가 답지하였고, 절터를 되찾은 다음 제법 모습을 갖춘 암자를 짓고 손수 간월암이라는 현판을 써서 내건 후 종종 찾아와서 한소식을 했었던 추억의 장소가 간월암인 것이다.
언젠가 만공스님이 끝없이 보채는 파도를 보다가 송(頌)을 한수 읊었다.
간월암
불조불우객(佛祖不友客)부처와 조사를 더불어 벗하지 않는 객이
하사벽파친(何事壁波親)무슨 일로 푸른 물결과는 친했는고
아본반도인(我本半島人)내 본래 반도 사람이라
자연여시지(自然如是止)자연에 이와 같이 멈추노라
만공스님이 중창 불사를 한 후 간월암은 벽초, 서해, 진암스님의 발길이 닿았었고 경봉, 춘성, 효봉, 금오, 성철스님 등 기라성 같은 도인들이 간월암에 수행의 족적(足跡)을 남겼다
무엇 보다 간월암이 유명해진 것은 1942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 만공스님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 천일기도를 했고 천일기도 회향 사흘 후 조국이 독립을 맞이했다는 사실이다.
지척에 살던 만해 한용운 스님이 민족대표의 한 사람으로써 세속에서 독립운동에 앞장섰다면 만공스님은 마곡사와 수덕사를 중심으로 선원에서 정진하며 웬만해서는 산문을 나서지 않았다. 또한 선학원을 만들어 일제의 한국불교말살 정책과 총독부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신 수행가풍을 지키기 위해 헌신 하였으니, 한국불교에 있어서 만공스님의 위치는 확고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조국의 독립 소식을 전해들은 만공스님은 무궁화 꽃에 먹물을 듬뿍 찍어 ‘세계일화(世界一花)’라고 쓰시고 대중 앞에서 말씀하시길
“너와 내가 둘이 아니요,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요, 이 세상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다. 머지않아 이 조선(朝鮮)이 세계일화(世界一花)의 중심이 될 것이다. 지렁이 한 마리도 부처로 보고, 저 미웠던 왜놈들까지도 부처로 보아야 이 세상 모두가 편안할 것이다."라고 하셨으니 그 법기(法器)의 크기를 가늠이나 할 수 있으랴.
1980년대 진행된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인해 육지와 연결된 간월도.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배를 타지 않으면 닿을 수 없는 작은 섬이었다.
간월도는 이제 뭍이 되었지만 간월암은 지금도 하루에 두 번 만조 때 섬이 되고 간조 때는 뭍이 되는 신비로움을 간직하고 있다.
특히 간월암에서 바라보는 낙조는 바다 위 통통배와 갈매기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 된다. 보는 이로 하여금 수채화의 주인공이 되는 동시에 숙연함과 설레임을 함께 느끼게 하니 이런 곳이 또 있겠는가.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84호 서산 간월암 목조보살좌상
간월암 목조보살좌상은 제작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양식적인 특징상 1600년 전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 이후에 형식화된 보살상과는 다르게 갸름한 타원형의 얼굴, 비교적 긴상체, 높고 안정감 있는 무릎, 부드러운 옷 주름의 표현 등이 특징인 조선시대의 보살상이다.]
13:40~14:30 [카페 간월~(402m)~간월도항 방파제등대~(235m)~간월암~(350m)~카페 간월]의 동선으로 서산 9경 중 제3경인 간월암(看月庵)을 탐방
[2023년 6월 이달의 등대, 충남 서산시 ‘간월도항 방파제등대’ 선정
디엔피넷뉴스 기사 등록 : 2023. 6. 3. 06:44
해양수산부는 2023년 6월 이달의 등대로 충청남도 서산시에 위치한 ‘간월도항 방파제 등대’를 선정하였다.
‘간월도항 방파제등대’는 2019년 6월에 처음으로 불을 밝혔으며, 빨간색 원추형 모양으로 일몰을 형상화한 벽화가 인상적이다. 등대 근처에는 충남 서산 9경 중 대표 명소인 간월암(看月庵)이 있는데, 썰물 때는 육지와 연결되고 밀물 때는 섬이 되는 신비로움을 지녔다. 하루 2번 간조로 접어들 때 바닷길이 열리므로 이곳을 방문하려면 미리 물때 정보를 확인해야 한다. 또한, 굴과 새조개로 유명한 간월도에서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음식물 기념탑인 ‘어리굴젓 기념탑’도 볼 수 있으며, 주변에 어리굴젓을 비롯한 영양굴밥, 게국지 등 다양한 수산물을 즐길 수 있는 음식점들도 있다. 한편, 해양수산부는 이달의 등대를 방문하거나 여행 후기를 작성한 여행자 중 일부를 연말에 선정하여 예쁜 등대 기념품과 50만 원 상당의 국민관광상품을 증정할 예정이다. 자세한 행사 참여방법 등은 국립등대박물관 누리집의 ‘등대와 바다’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등대 주변 관광정보는 서산시 문화관광 누리집에 소개되어 있다.]
[간월암은 부석면 간월도리에 위치한 작은 암자로 조선 초 무학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송만공 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해진다. 다른 암자와는 달리 간조 시, 육지와 연결되고 만조 시, 섬이 되는 신비로운 암자로 만조 시 물 위에 떠 있는 암자처럼 느껴진다.
주위 자연경관과 옛 선조들의 숨결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고찰이 어우러져 관광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또한 간월도에서 생산되는 굴의 풍년을 기원하는 굴부르기군왕제가 매년 정월 보름날 만조 시에 간월도리 어리굴젓 기념탑 앞에 서 있는데, 이 행사는 부정한 행동을 하지 않은 청결한 아낙네들이 소복(흰옷)을 입고 마을 입구에서 춤을 추며 출발하여 굴탑 앞에 도착하면 제물을 차려 놓고 굴 풍년 기원제를 지내며 채취한 굴은 관광객에게 시식도 시켜준다.]
[서산에 왔다면 서산 9경을 봐야지!
트래블투데이 발행일 : 2019년10월21일
글 트래블투데이 박선영 취재기자
충청남도의 북서부에 위치한 서산은 저산성 구릉지대로 광활한 평야를 가진 곳이다. 삼국시대에는 백제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찬란한 백제의 문화를 볼 수 있는 내포문화의 중심지다. 백제의 유서 깊은 문화와 서민의 숨결이 조화를 이루며 깃들어있다. 그리고 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지고 있는 덕분에 볼거리가 많다. 다양한 문화와 천혜의 자연을 모두 가진 서산을 보기 위해서는 꼭 가봐야 할 곳이 있다. 한 곳이 아니라 9곳, 서산 9경으로 지정된 서산의 명소이다.
제1경, 호서지방의 심장부 해미읍성
1 해미읍성은 충남 5대 관광지이다.
2 서산에서는 매년 해미읍성역사체험축제가 펼쳐진다.
해미읍성은 마을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 길이만 약 1,800m인 읍성이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석성으로 알려진 해미읍성은 그 높이가 5m이며 내부는 6만여 평의 면적을 가지고 있다. 이곳은 과거 충청도 군사력의 중심지였으며 내란을 방지하는 임무도 맡았다. 해미읍성이 완공되고 나서는 왜구의 서해안 침입이 현격하게 줄어드는 효과를 보기도 했다.
지금은 천주교 성지라 불리며 많은 순례 객이 찾아오는데 여기에는 슬픈 이야기가 있다. 내포 지방에는 천주교 신자가 많았는데 심한 박해를 받아왔다. 1,000여 명의 신도가 이곳에서 고문 받고 처형되었다. 해미읍성에는 천주교 신자들을 묶어놓고 고문했던 회화나무가 남아있다. 이 회화나무는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로 매년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해미읍성을 찾게 한다.
제2경, 백제의 미소, 마애여래삼존상
서산시 마애여래삼존상은 국보 제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백제는 고구려나 신라 못지않게 불교를 숭상했던 국가이다. 백제인의 숭불을 느낄 수 있는 마애여래남존상은 백제의 미소라 불릴 만큼 온화한 미소를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마애불 중에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은 빛의 방향에 따라 웃는 모습이 달라진다고 한다. 한 번 본다면 누구라도 그 신비로운 미소에 빠지는 이 석상은 암벽을 파고들어가서 조각되었으며 마애석굴 형식의 대표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제3경, 세계적인 철새 도래지 천수만 간월암
간월암은 신비의 길 만큼 아름다운 낙조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조선 초에 무학 대사가 창건한 간월암은 썰물 때에는 육지와 연결되고 밀물 때에는 섬이 되는 신비로운 암자다. 섬이 될 때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암자처럼 느껴져 주변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하나가 된다. 밀물과 썰물이 6시간마다 바뀌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옛 선조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주변에는 때가 되면 돌아오는 철새가 쉬어가는 곳으로 유명하며 아름다운 낙조와 함께 볼 수 있는 철새의 아름다움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특별한 풍광을 자아내고 있다.
제4경, 아름다운 사계절을 자랑하는 개심사
개심사는 자연과의 조화가 뛰어난 사찰이다.
충청남도에서 유명한 4개의 사찰 가운데 하나인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시기인 651년에 건립되었다. 한때 큰 산불로 전소되기도 했었지만 조성 성종시대에 재건하였다. 개심사 대웅전은 조선 초기에 지어진 건물로 현재 국가에서 지정한 보물 제143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심검당은 다른 건물들과는 다르게 단청을 하지 않았고 기둥과 대들보가 휘어진 목재를 그대로 사용하여 특별한 아름다움을 자아내는 곳이다. 사찰을 중심으로 우거진 숲과 기암괴석이 조화를 이루어 수려한 경관을 연출하기도 한다. 특히 석가탄신일을 전후로 만개하는 벚꽃이 주변의 경치를 더욱 아름답게 꾸며줘 마치 무릉도원에 와있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제5경, 하늘과 바다 사이의 여덟 봉우리 팔봉산
정상에 오르면 서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는 높이 362m의 팔봉산은 하늘과 바다 사이에 놓인 여덟 개의 봉우리가 조화를 이루어 일대 장관을 연출한다. 산의 봉우리는 마을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기암괴석과 계곡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기암이 많은 팔봉산이지만 철로 만들어진 계단과 로프가 안전하게 설치되어 있어 등산하기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팔봉산을 오르다 보면 볼 수 있는 서해안의 절경은 예상하지 못한 행운이며 가파른 길이 많은 등산로이기 때문에 등산의 재미를 더해준다.
제6경, 유서 깊은 문화유적을 품고 있는 가야산
가야산은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 옥양봉, 일락산, 수정봉, 상왕산 등의 봉우리가 연결되어 있어 다양한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대부분의 등산로가 어렵지 않아 누구나 쉽게 즐길 수 있으면서도 길마다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언제나 가야산의 색다른 모습을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계절에 따라서도 각기 다른 모습을 보여주며 정상에서 볼 수 있는 서해와 흐드러지게 핀 각종 야생화의 모습을 보면 절로 감탄이 나온다.
그리고 서산 9경 중 제2경이자 국보 제84호인 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하여 보물 6점, 기타 문화재 4점 등 각종 문화재가 가야산에 있다. 자연과 역사를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명소이기 때문에 매년 5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서산을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제7경, 몽돌 해변과 코끼리 바위가 유명한 황금산
바닷물을 마시는 듯한 모습의 코끼리바위를 품고 있는 황금산의 원래 이름은 항금산이다. 그러나 이곳에서 금이 발견되면서 황금산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 이곳에는 아직도 금을 캤던 흔적이 남아있다고 한다. 바다 한가운데 우뚝 솟아 있어 섬처럼 보이는 황금산은 코끼리를 닮은 코끼리바위가 유명하다. 낮은 산이지만 해송과 야생화가 어우러진 숲길을 걷으며 다양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정상에 도착한다면 아래에 보이는 바다의 아름다운 조망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등산마니아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제8경, 한국 축산업의 미래 서산 한우 목장
소들이 드넓은 산지를 마음껏 뛰어다니고 있는 서산 한우 목장은 21.06㎢ 거대한 산지를 개발하여 조성된 대규모 목장이다. 광활한 초원을 보고 있으면 마치 자연과 하나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이때 불어오는 산바람에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드넓은 산지 이곳저곳을 다니며 한가로이 풀을 뜯는 한우의 모습은 서산의 순박하고 평화로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봄이면 초지 능선을 따라 만개하는 벚꽃의 풍경이 유명하며 목장 한가운데 있는 용비저수지도 인기가 많다.
제9경, 서산의 북쪽 관문 삼길포 항
삼길포항은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가 가득하다.
삼길포 항은 싱싱한 해산물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곳이다. 어디에 가도 싱싱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으며 유람선을 타고 바다로 나아가 섬들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짜릿한 손맛을 느낄 수 있는 바다낚시를 즐겨도 된다. 빨간 등대와 어선, 푸른 하늘을 날아다니는 갈매기를 보고 있으면 한적한 어촌의 정취와 분위기가 물씬 느껴진다.]
14:30~14:40 “좋은사람들”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 대기
14:40~15:10 “좋은사람들” 버스로 간월암 입구에서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98-12 번지에 있는 해미읍성으로 이동 [27km] [20분 소요]
[천주교 성지 해미읍성
충남 서산 해미면에 있는 해미읍성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읍성 가운데 가장 보존이 잘된 곳이에요. 해미읍성은 왜구의 침입에 대비해 조선 성종 임금 때 쌓은 성이에요. 읍성이란 산성과 달리 평야지대에 사람들이 사는 집을 둘러서 쌓은 성을 말해요.
해미읍성에는 천주교와 관련한 슬픈 역사가 서려 있어요. 우리나라에 처음 천주교가 들어왔을 때 천주교는 서학이라고 불리며 학문으로 연구되었어요. 그러다가 차츰 천주교를 믿는 사람들이 늘어났지요.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천주교의 가르침은 백성들 사이에서 빠르게 퍼져 나갔어요.
“유교를 근본으로 하는 우리나라에서 서양 오랑캐의 종교를 믿다니!”
“제사도 모시지 않는 천주교를 금지시켜야 합니다.”
선비들은 천주교를 반대하고 나섰고, 나라에서는 1786년부터 천주교를 믿지 못하게 했어요. 그로부터 백 년 가까이 천주교는 엄청난 박해를 받았어요. 특히 프랑스와 미국의 군함이 강화도를 침입해 온 일이 있은 후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졌어요. 서양에서 들어온 종교인 천주교를 믿는 신자들이 서양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수많은 사람들이 단지 천주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했어요.
1866년, 해미읍성에서도 천 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벌어졌어요. 목을 베거나 매달아 죽이는 것은 물론이고, 돌로 쳐 죽이기도 했어요. 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죽이기 위해서 구덩이에 산 사람들을 몰아넣고 묻어 버리기도 했어요.
“예수와 마리아를 믿지 마라. 그러면 살려 주겠다.”
관리들은 천주교 신자들에게 말했어요. 하지만 천주교 신자들은 믿음을 버리지 않았어요.
“예수를 버리느니 차라리 죽겠습니다. 어서 죽이십시오.”
천주교 신자들은 죽음을 묵묵히 받아들였어요. 살기 위해 종교를 버리거나 도망치지 않았어요. 해미읍성 근처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시체가 산처럼 쌓였어요.
해미읍성에서 천 명이 넘는 천주교 신자들이 죽었지만 이름이 남아 있는 사람은 겨우 70명 정도예요. 이미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이나 신부들은 다른 곳으로 끌려갔고, 해미읍성에는 평범한 백성들만 남아 있었기 때문이에요. 해미읍성은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처형장이 되었던 것이지요.
해미읍성은 서울 합정동에 있는 절두산 기념관과 함께 대표적인 천주교 성지로 불리고 있어요.
해미읍성에 있는 호야나무
해미읍성 안에는 호야나무라고 불리는 큰 고목이 하나 있어요.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 나무에 목 매달려 죽었어요. 또 나무에 사람을 매달고 활로 쏴 죽이거나 돌을 던져 죽였다고도 해요. 지금도 호야나무 가지에는 그때 사람들을 묶어 두었던 밧줄 자국이 남아 있어요.]
15:10~16:50 서산 9경 중 제1경인 서산 해미읍성(瑞山 海美邑城)을 탐방
[해미읍성은 조선 시대의 대표적인 읍성이다. 읍성이란 읍을 둘러싸고 세운 평지성으로 해미읍성 외에 고창읍성, 낙안읍성 등이 유명하다. 해미읍성은 조선 성종 22년, 1491년에 완성한 석성이다. 둘레는 약 1.8km, 높이 5m, 총면적 196,381m²(6만여 평)의 거대한 성으로 동, 남, 서의 세 문루가 있다. 최근 복원 및 정화사업을 벌여 옛 모습을 되찾아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었으며, 조선말 천주교도들의 순교 성지로도 유명하다. 천주교 박해 당시 관아가 있던 해미읍성으로 충청도 각 지역에서 수많은 신자가 잡혀와 고문받고 죽음을 당했으며, 특히 1866년 박해 때에는 1천여 명이 이곳에서 처형됐다고 한다.
성내 광장에는 대원군 집정 당시 체포된 천주교도들이 갇혀 있던 감옥터와 나뭇가지에 매달려 모진 고문을 당했던 노거수 회화나무가 서 있다. 바로 성문 밖 도로변에는 회화나무에 매달려 고문을 받으면서도 굴하지 않은 신도들을 돌 위에 태질해 살해했던 자리개돌이 있어 천주교도들의 순례지가 되고 있다. 성벽 주위에는 탱자나무를 심어 적병을 막는데 이용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 호야나무(회화나무)
감옥 입구에 서 있는 300년 된 나무로, 이 나무의 가지에 신자들의 머리채를 묶어 매달아 고문하였었고, 그 흔적으로 철사 줄이 박혀 있다.]
16:50~17:00 “좋은사람들” 버스에 승차하여 출발 대기
17:00~20:00 “좋은사람들” 버스로 해미읍성을 출발하여 서울 양재역으로 이동 [3시간 소요]
서산 황금산 지도
서산 간월암 지도
해미읍성 지도
서산9경 위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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