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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뜻[무엇을 하겠다고 속으로 먹는 마음]을 정하여! (단 1:8~16)
루이스가 쓴 ‘악마의 편지’ 란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영국의 노신사가 도서실을 찾아갑니다.
이 책 저 책을 훑어보다가 기독교 신앙에 관한 책을 보게 되었습니다. 노신사는 책을 읽던 중 마음속에서 갑자기 하나님에 관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그 순간 악마가 찾아옵니다. 악마는 그의 마음속에 말합니다. “점심시간이야, 뭘 그렇게 생각해.” 그 순간 노신사는 하나님에 관한 생각을 누르고 식당으로 갑니다.
점심을 먹다가 또 다시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떤 분일까? 나는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만 하는가?” 이 때 악마는 다시 그의 마음에 속삭이고 노신사는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밥 먹는데 뭘 골치 아픈 생각을 하나. 우선 식사를 끝내고 보자.” 식사를 끝냈습니다.
다시 하나님의 생각이 어렴풋이 나오려고 합니다. 그러나 노신사는 악마의 간섭으로 이렇게 말합니다. “그거 뭐. 있을 수 있는 생각이지. 오늘은 너무 바빠. 집에 가서 할 일이 많아.” 그는 밖으로 나와 버스를 탑니다. 버스에 앉자 신문을 읽으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노신사의 뒤에서는 악마가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을 사단은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사람의 가장 민감하고 약한 부분을 찾아내어 유혹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이 약한 부분을 통하여 사단이 유혹하지 못하도록 대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며 하나님께 뜻을 정해야 합니다.
사람은 지조가 있어야 합니다.
특별히 신앙에 있어서는 절개가 있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해 보고자 하는 다니엘은 심지가 굳은 사람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그는 어린 시절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그 당시 바벨론의 임금이었던 느부갓네살은 세계 각국에서 똑똑한 소년들을 모두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을 궁중학교에 입학시켜 3년 동안 집중적으로 훈련을 시켰습니다. 거기다 자기가 먹는 진미와 포도주를 제공했습니다.
온갖 특혜를 다 부여한 것입니다. 그의 목적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을 훈련시켜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서 자기에게 충성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결심; 할 일에 대하여 마음을 굳게 정함]
다니엘은 왜 그런 결단을 했을까요?
그는 비록 우상이 즐비한 이방땅에 와 있지만 자신이 하나님의 선민임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마음을 먹었기에 비록 자신에게 어려움이 찾아오고 고난이 온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율법을 어길 수 없다고 여긴 것입니다.
왕의 진미가 각종 기름지고 몸에 좋은 음식들이 많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안에는 율법에서 금한 부정한 음식이 있을 것임이 분명했습니다
그는 궁중학교의 총책임자인 환관장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뜻을 이야기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환관장은 다니엘에 대해서 매우 동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환관장은 왕을 두려워했습니다. 다니엘로 인해서 자기의 목숨이 위태로우면 안되니까, 그의 뜻을 들어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니엘은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환관장 밑에 있는 감독자를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열흘동안 기한을 정해놓고 자기와 세 친구에게 채소와 물을 제공하면서 한 번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감독자의 마음을 감동시키셨습니다.
그래서 열흘동안 시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살도 더 윤택해 졌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뜻을 정했던 다니엘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면서 놀랍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의 삶을 책임져 주셨습니다. 나라가 바뀌고, 왕이 바뀌어도 다니엘은 변함없이 귀하게 쓰임받는 인물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이러한 은혜를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의 결단이 우리에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의 실천이 우리의 실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뜻을 꺾지 말고 실행에 옮깁시다.
다니엘을 축복하신 하나님, 그의 걸음을 선한 길로 인도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삶도 책임져 주시고, 놀랍도록 축복해 주실 것입니다. 다니엘의 승리가 우리 모두의 승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편의상 오늘 본문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다니엘은 뜻을 정했습니다.
8절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결심; 할 일에 대하여 마음을 굳게 정함
다니엘이 위대한 삶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만일 다니엘에게 단1:8이 없었다면, 그 이후 그의 삶도 없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이 일생 동안에 받았던 수많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은 그가 이 때에 위대한 결심을 했던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뜻이 없다면 길도 없습니다.
임종을 앞둔 어느 노인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이 그에게 기도해 주시기 위해 찾아갔습니다. 목사님은 간단하게 말씀을 증거하고 난 뒤 그의 결단을 촉구했습니다.
"할아버지, 예수님을 영접하시고 마귀를 부정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지금이라도 예수님의 품에 안기실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입을 꾹 다물고서 눈만 멀뚱멀뚱합니다. 다시 한 번 목사님이 재촉했습니다.
"할아버지, 마귀를 부정하세요. 그리고 예수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목사님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할아버지, 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시고, 마귀를 부정하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그 노인은 마지못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목사님! 내가 지금 어디로 가게될지 알지 못하는 판국에, 괜히 말을 잘못했다가 한쪽 편을 화나게 만들면 어떻게 합니까?"
이렇듯 뜻이 없는데 어떻게 길이 열리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으면서 이 세상의 모든 부귀와 영화를 다 누리고 말씀과 어긋나는 것도 서슴치 않고 해도 괜챦을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제대로 믿으려고 하면 이 세상에서 고난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그 이유는 이 세상의 길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은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넓은 문은 찾는 사람이 많지만 좁은 문은 찾는 사람이 적습니다.
그 이유는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 찾는 사람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으로서 산다는 것은 고난이 뒤따르는 것입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야기를 하면 그 길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맛볼 수 있는 길입니다.
뜻을 정해야 되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예를 들어서 생각해 봅니다.
오늘도 예배시간에 늦게 오신 분들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내가 예배시간은 꼭 지키리라. 지각하지 아니하리라." 이런 뜻을 정하고서 노력을 해야지 예배시간을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시간에 늦어도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해 버리면 늘 지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에녹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나이 65세에 아들 므두셀라를 낳았습니다. 므두셀라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 가운데 제일 오래 산 사람입니다.
에녹은 자기 아들을 낳기 전까지는 아무렇게나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낳고서 키워보니까 아버지의 심정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겠구나! 이제부터라도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지!"
그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 이후로 에녹은 삼백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했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신 것입니다. 이러한 결단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탕자가 집을 나갔습니다. 이국 땅에서 허랑방탕하며 있는 재물을 모두 탕진해 버렸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더러운 돼지나 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배가 고플 때는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로 자기의 굶주린 배를 채워야 되었습니다. 그제야 탕자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 너무나도 잘못했구나. 아버지에게 불효막심한 죄를 지었구나!"
그는 잘못을 뉘우쳤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결심을 했습니다.
"내가 이제라도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야지. 그리고 아버지에게 내 잘못을 고하면서 용서를 구해야지!"
그는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버지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더러운 옷을 다 벗기고 깨끗한 옷을 입혀주었습니다. 손에는 가락지를 끼워주었고, 발에는 신발을 신겨주었습니다. 살찐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모든 지위를 다시금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결단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내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한 번 살아보리라!
지금까지는 아무렇게나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믿음의 순결을 지키리라! 먹고 마시는 문제 때문에 내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버릴 것은 버리고, 끊을 것은 끊고, 포기할 것은 깨끗하게 포기하리라!"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결단을 실행에 옮기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오늘 이 예배는 우리의 일생에 엄청난 축복을 가져다주는 하나의 놀라운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둘째로, 다니엘은 뜻을 굽히지 아니했습니다.
우리가 뜻을 정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뜻을 굽히지 않는 것입니다. 아무리 내가 확고하고도 바르게 뜻을 정했다 할지라도, 작심삼일이 되어버리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어떠한 형편에서도 그 뜻을 굽히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이 더 중요한 줄 압니다.
다니엘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환관장이 그의 말을 들어주지 못할 때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어쩔 수 없지 뭐. 해도 안되는 걸 뭐!"
그가 이렇게 쉽게 포기했습니까?
아닙니다. 다니엘은 뜻을 굽히지 아니했습니다.
감독자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에 따라서 열흘동안 기한을 정해놓고, 채식과 물로서 자신들을 시험해 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감독자의 마음을 감동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십 일이 지났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의 얼굴이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제공받은 소년들의 얼굴보다도 더 아름다웠습니다. 살도 반질반질 윤택이 났습니다. 그래서 다니엘과 세 친구는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뒤에 메대 사람 다리오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 때 다니엘이 역시 총리로 발탁을 받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시기했습니다. 결국은 그를 해치기 위해서 하나의 모략을 세웠습니다. 왕을 부추겨서 이상한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30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이외에 어떤 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굴에 집어넣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다니엘은 왕의 법령이 얼마나 엄한지 알고 있었습니다.
자기가 총리인데 왜 몰랐겠습니까?
자기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굴에 던지워서 죽는다는 것을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의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믿음의 순결을 지키기 위해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서 나있는 창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그는 만백성들이 보는 가운데 변함없이 하루에 세 번씩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다니엘은 어떠한 경우에도 하루에 세 번씩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총리의 자리에 올라 바쁜 일정 속에서도 기도하는 일만큼은 어김없이 행하며 살았습니다.
다니엘 6장10절에 보니 “다니엘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고 하였습니다.
다니엘이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한 것은 기도하는 것을 과시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매일 무릎을 꿇고 예루살렘을 다시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위대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다니엘처럼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리라는 뜻을 정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뜻을 세우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축복해 주십니다. 도와주십니다. 지켜주십니다. 하나님은 뜻을 정한 다니엘과 세 친구에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들의 지혜와 총명이 온 나라 박수와 술객보다 십 배나 더 나은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결국 다니엘은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그냥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사자의 입을 봉하셨습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하룻밤을 사자굴 속에 있었지만 아무런 상함을 입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을 모함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자굴에 던지움을 당했습니다. 사자에게 모두 물려죽었습니다.
고난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영광은 무한합니다.
여러분도 잠시잠깐의 고난을 이기지 못하고 믿음의 순결을 꺾어버리면, 저처럼 두고두고 후회하게 됩니다. 다니엘처럼 믿음의 순결을 끝까지 지키십시다.
셋째로, 하나님이 다니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살펴봅니다.
9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여러분, 다니엘의 결심이 무엇이었습니까?
"내가 왕의 진미와 포도주로 나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세상에 그런 막말이 어디 있습니까?
자기 몸만 깨끗하고 왕의 음식은 더럽다는 말입니까?
왕은 더러운 음식만 먹고 산다는 말입니까?
게다가 다니엘은 지금 포로신분입니다. 자유인이 아닙니다. 다니엘은 지금 죽어 마땅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까 환관장은 그런 말을 들었어도 다니엘을 그 자리에서 벌주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다니엘에게 동정적이었습니다. 자기가 다니엘의 요청을 들어주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이해해 달라는 식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합니까?
하나님이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은 뜻을 굽히지 않고 이번에는 감독자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자신들을 시험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하나님은 감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열흘동안 시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들은 더 건강하고 더 아름다워졌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 진미와 포도주보다도 채식과 물이 건강식품이어서 그렇습니까?
콜레스테롤 수치가 낮아서 그렇습니까?
다이어트 식품이라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3년의 교육기간이 모두 끝났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의 학문은 다른 소년들보다도 뛰어났습니다. 그 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다니엘과 세 친구가 열심히 공부해서 그렇습니까? 그들이 머리가 뛰어나서 그렇습니까? 아닙니다. 이유는 오직 한 지밖에 없습니다. 17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이 네 소년에게 지식을 얻게 하시며 모든 학문과 재주에 명철하게 하신 외에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알더라."
하나님이 그렇게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신앙의 절개를 지키기 위해서 뜻을 정하고 그 뜻을 굽히지 않았던 다니엘을 하나님은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다니엘이 고통을 당할 때 하나님은 뒷짐지고 계셨습니까?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시고 그의 걸음을 선한 길로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바벨론 문화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줄 압니다. 죄악의 물결이 얼마나 거센 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정욕적인 쾌락에 자기의 몸을 마음대로 내맡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가 다니엘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마음 속에 떠올려 이와 같은 죄악의 유혹을 이길 수 있어야 할 줄 압니다.
다니엘의 모습이 우리에게 생각나기를 바랍니다.
고난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받을 영광은 무한한 것입니다.
다니엘의 결단이 우리의 결단이 되기를 바랍니다.
다니엘의 실천이 우리의 실천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베풀어 주셨던 은혜와 긍휼을 우리에게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해서 다니엘의 승리가 우리의 승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