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anPXxa-pPyI?si=NHpRKQiFqSMpv8HP&t=2002
-실제 위나라가 동아시아에서 가지고 있던 위상은 무엇일까?
-촉나라 후주 유선의 연호가 쓰인 토기가 북한의 두만강 유역에서 발견
-한국전 당시, 소비에트군이 막사를 세우다 나온 토기였는데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면서 기증
-블라디보스톡을 방문해서 그 토기를 보니 '연희 2년' 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연희’ 라는 연호는 촉의 2대 황제와 후조(석홍) 밖에 없는데 후조의 연희는 1년으로 끝이난다. 그러므로 이 토기는 촉나라 유선의 것이고 고구려와 촉한이 교류한 것이 아닐까 추측.
-사마의가 이끄는 위군, 선비, 오환, 고구려 연합군이 요동의 ‘공손씨의 난’을 진압한 후, 242년 ’고구려‘의 ‘동천왕’이 서안평을 공격하자 관구검의 침략이 시작됨.
-관구검의 위군이 동진(242년~248년)하면서 고구려의 수도인 환도성까지 밀고 들어가 불태우고 동해안의 ‘옥저’는 거의 멸망에 이르게 하였으며 ‘동예’도 공략.
-읍루(퉁구스계, 부여의 종속국)는 제외
-120년전 길림시 도로공사중 관구검의 비 일부가 발견.
-위나라군의 침략으로 동해안의 고대국가들이 멸망하자 말갈(훗날 여진)세력들이 발흥하는 터닝포인트가 되는 나비효과를 일으켰다고 보고 있다.
-또한 관구검이 고구려, 옥저, 동예를 치는 과정에서(부여, 읍루등) 정사 ’삼국지‘에 ‘동이전’이 저술될 수 있었고,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의 만주지방에 있던 고대 국가들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첫댓글 우씨왕후와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서 소개해드렸습니다. ㅎ 우씨왕후의 2번째 남편인 ’산상왕‘의 아들 ’동천왕‘이 오나라 황제 손권과 교류했다는 것은 얼핏 들었지만 촉나라 2대 황제의 연호가 적힌 토기 발견은 처음 알게 되었고 관구검의 침략이 가지는 의미와 읍루의 존재가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ㄷㄷㄷ
이거 신기하내요. 고구려가 그 먼 촉한과 교류했을수도 있다니
적의 적은 우리편이라 하였으니 가능한 일로 보입니다. 송나라가 거란과 금나라 때문에 고려와 국교와 동맹을 맺고 싶어 했듯이. 촉나라 후주와 관련된 유물이 두만강 유역에서 나와 저도 깜짝 놀랐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