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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익진의 비밀 : 불가능의 깨달음 / 백락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려고만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이라도 두렵게 한다.
이 말은 지금 우리를 두고 한 것이다.
[必死則生 必生則死 一夫當逕 足懼千夫 今我之謂矣]
- 『난중일기』 정유년 9월 15일
임진왜란 400주년이 지나면서 우리나라 학회에는 임진왜란을 이겨낸 원동력에 관심이 쏟아졌다. 해군에서는 전국 학회에 홍보하여 충무공해전유물발굴을 위한 이론적 배경을 확고히 축적하고자 학술대회를 열었다.
이때 우리 해군에서조차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갈피를 잡지 못하고 학회의 발표에만 의존한 형편이었다. 그래서 나는 몇몇 자문위원들에게 질문했다.
“자문위원님! 임진왜란의 승리 요인이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을 오래도록 역임한 최영희 박사께 물었다. 이 분은 숭실대학교 교수였던 1958년에 「귀선고」라는 거북선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야 충무공 이순신 때문이지요.”
“충무공의 어떤 점이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다는 말씀이십니까?”
“필승해군처럼, 그야 충무공의 정신전력과 필승의 신념이지요.”
“나라에서는 지원해주는 것이 없고, 현장 지휘관이 모두 해결해야 하는 사회구조에서 막강한 왜적선을 맞아 싸워 이길 비결이 뚜렷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럼, 그런 뚜렷한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해요?”
“이기겠다는 말만으로는 이길 수 있을까요? 한 방의 힘센 주먹, 곧 대포의 위력과 그 운용법이 중요하죠! 혹시 당시에 썼던 대포의 사정거리와 위력을 말해줄 수 있습니까?”
“그야 기록에 나오니 사정거리는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얼마만큼의 위력이 있는지, 그 거리까지 날아가는지 실험해보지 않았으니 알 수는 없지요. 아직까지 아는 사람은 없을걸요.”
“자문위원님 말씀에 따르면, 옛날 대포, 곧 전통무기의 복제와 실험이 중요한 관건이 되겠군요.”
“글쎄요. 요즘같이 달나라를 왕복하는 로켓의 우주시대에 400년 전의 총통들을 복제하여 실험을 거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 아닌가요? 돈과 시간만 허비하니 아마도 사람들이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나는, 임진왜란 관계의 논문을 여러 편 썼고, 특히 『임진왜란사』를 책으로 펴낸 성균관대학교 역사학 교수 이장희 박사에게도 물었더니 비슷한 말이었다.
이런 분위기로 보면, 학계에서는 전통무기의 성능을 확인하고 가치를 판단해보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나는 전통무기를 모두 복제하여 실제 발사를 통하여 그 성능을 확인해야 임진왜란의 승리의 요인을 정확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을 직속상관인 발굴단장 황동환 대령에게 보고하고, 직접 해군사관학교장 류세남 제독에게도 보고하였으며, 400년 전 조선의 전통무기 복원과 실험계획을 문서로 작성하여 결재를 받고 해군본부에 보고하자, 1993년 12월에 해군군수사령부 예하 정비창에도 전통무기 제작에 있어 충무공해전유물발굴단과 협의하여 시행하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나도 전통무기에 관한 지식이 깊지 않았다. 『신기비결』과 『화포식언해』가 있다는 것만 알았지, 그 내용에 대해서는 사실 까막눈이었다.
그래서 관련 책을 형설처럼 밤낮없이 읽어내며 그 이치를 알아보았다.
해가 바뀌자 바빠졌다. 나는 연초부터 정비창 설계과장 이재조와 설계담당 권혁민, 설계사 정영규 3명으로 구성하여 전통무기가 전시된 박물관을 방문하여 실물을 실측하기로 했다. 먼저 서울 전쟁기념관에 들러 박재광 학예사를 만나 우리의 취지를 말했더니 흔쾌히 응해주었다. 미라처럼 전시된 천자·지자·현자·황자 총통과 중완구를 사진을 찍고, 자로 재어서 낱낱이 기록하였다. 이튿날에는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장을 만나보고 우리의 취지를 말하니 또한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었다.
정비창 설계팀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달 만에 설계도면이 완성되었다.
이제 주물공장에서 총통이 만들어지고, 목공장에서는 발사대로 쓰이는 총통별 크기가 다른 동차와 신기전기 총통기가 제작된다.
나는 감독 아닌 감독을 하게 된 셈이다. 설계가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설계대로 제작하고 있는지에 대한 관찰과 확인이었다.
그러자 정비창장 김용정 제독이 나를 좀 보자고 했다.
나는 실무자 공무과장 장현식 중령과의 만남은 자주 있었다. 그는 체격이 좀 마른 편이지만 강인한 체력을 가졌고, 함대에서 수리할 입항한 함정에 대해 직접 기획하고 작업명령을 내려주며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기관 기술직이면서도 뛰어난 행정가이기에 무엇이든 믿을 만하다. 그래서 전통무기 복제를 위한 갖가지 업무를 직접 지시하고 확인하였기에 나는 늘 장현식 중령과의 확인이면 충분하였다.
그래서 정비창장을 직접 만나보지는 않았기에 혹시 내가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그는 해군사관학교 6년 선배로서 기관병과이고, 나는 항해병과이므로, 함께 근무하거나 가까이 지낸 적은 없었다.
“관리부장이랬나? 자네가 정비창을 어떻게 보길래 저런 총통 나부랭이를 만들어달라고 했는가? 여기가 무슨 어린애 장난감 만드는 공장인 줄 아나?”
“녜에? 무슨 말씀인지요? 군함 수리하는 곳 잘 압니다. 그런데 해군본부의 지시에 따른 것 아닙니까?”
“물론 해군본부의 지시였지. 내가 그걸 모르고 하는 말인 줄 아냐? 그 발단은 자네가 기획했다며? 그러니 자네에게 추궁하는 거야! 총통을 우리 정비창에서 만들어 놓고 실제 발사하게 되면 혹시 폭발하여 안전사고가 날지 어떻게 알겠어? 안전 시험 계획은 있는 거야? 만약에 안전사고라도 나게 된다면 자네가 책임질 수 있나?”
“잘못을 꾸중하시려면 저보다는 해전유물발굴단장에게 직접 하셔야죠? 저는 사관학교장과 발굴단장의 지시를 받고 와서 업무를 협조하고 확인하는 겁니다. 안전사고의 책임이라면 책임져야겠지요. 그러나 설계대로 잘 만들어진다면 폭발에 의한 안전사고는 발생하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안전사고가 나지 않는다고 자네가 어떻게 보장할 수 있나? 응?”
정비창장의 마구 쏘아붙이는 말에 나는 태산이라도 무너지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의 추궁은 단순한 꾸짖음이 아니라, 아예 임진왜란의 승전요인의 핵심을 알아내고자 하는 나의 모든 추진계획을 묵살시키며 없었던 일로 되돌릴지도 모르는 순간이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이 순간에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물러설 수가 없기에 사례로써 설득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창장님! 저도 처음이기에 알 수는 없지만, 이미 400년 전에 충무공께서 해전에 사용했던 무기 아닙니까? 『난중일기』나 『임진장초』에 보더라도 해전을 하면서 어떤 총통이든 발사할 적에 폭발사고가 났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니 안전했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총통은 안전하다고 봅니다. 다만 시험발사를 할 때, 안전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여 요원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총통의 비파괴 안전도 검사를 풍산금속에서 하도록 계획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안심해도 되겠군. 그럼 잘 해보게!”
“창장님! 고맙습니다. 전통무기 복제에 관여한 설계과와 목공소와 주물공장 직원들의 노고가 많습니다. 좋은 결실이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나는 정비창장이 직접 불러서 따지는 말에는 무척 불쾌하고 실망했지만, 안전관계를 걱정하는 모습에서 도리어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역시 해군장교는 안전사고 예방만큼은 특별한 정신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1시간 동안 이런저런 말을 듣고 멍한 마음으로 내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군항제가 시작된 벚꽃축제를 나는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게다. 사람들이 길을 가득 메웠고, 노랫소리 음악소리가 왁자지껄 시끌벅적해도 내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온통 전통무기를 복원하고 실험해야 하는 일에 정신이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운주관에 허름한 방석 하나를 깔고 혼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책상 위에 펼쳐놓은 대마도가 보이는 지도 한 장을 눈앞으로 당겨서 본다. 새벽 안개가 자욱하더니 해가 뜨자 맑아졌다. 바람이 세게 불더니 운주관 안으로 몰아붙인 바람이 책상 위 지도를 휙 뒤집었다.
이순신은 1591년 2월 중순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로 부임하여 열흘이 지나는데 마을에는 온통 ‘왜적들이 침입해올 것이다.’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그런데 왜적을 막는 일에는 분명 바다에 달려있음에도, 내가 진해 항만방어전대장을 맡았을 때처럼, 이순신은 바다를 방비할 길목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날마다 포구로 나가서 여기저기 다니면서 남자든 여자든 백성들을 만나고, 또 좌수영 뜰에 모아서 저녁부터 새벽까지 짚신도 삼고, 길쌈도 함께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밤늦도록 술과 음식을 대접하면서 나누어 먹기도 하였다.
매일이다시피 하지만, 오늘도 오전에 활 열다섯 순을 쏘고 나서 평복차림으로 나갔다. 장군복이 싫어서가 아니라, 되도록이면 입지 않고 서로의 격의를 없애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라도 백성들의 마음을 끌어내고 싶었다.
포구에 사는 백성들이 처음에는 ‘수군절도사’라는 말만 들어도 매우 두려워하면서 소통하기를 꺼렸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가까워지고 친하게 지내게 되었다. 차츰 웃으면서 농담까지도 스스럼없이 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백성들의 대화 내용에는 대부분이 고기잡이니 조개 캐면서 배가 지나다니는 곳에 관한 것이라 왜적을 물리칠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어느 항구에는 물이 소용돌이쳐서 들어가면 반드시 배가 뒤집힌다’라거나, ‘어느 여울은 암초가 숨어 있어서 그쪽으로 가면 반드시 배가 부서진다’라고 하는 말들이 있었다.
이런 말들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슬쩍슬쩍 적어두었다가, 이튿날 아침에는 몸소 그곳으로 나가 지형을 살펴보고 확인하였다. 그리고 거리가 멀어 직접 나가기 어려운 곳에는 휘하의 장수들에게 시켜 그곳을 살펴보고 오게 하였다. 역시 적바림해둔 백성들의 지나치듯 나눈 말들이 현장과 과연 같았다.
삶이 벼랑 끝으로 다다르는 순간, 인간은 값진 끝자락을 어떻게 휘두를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바다로 오는 왜적을 어떻게 싸워 이길 것인가? 왜적의 침략을 승리로 이끌 비밀은 무엇일까?
부임한 지 반년 남짓 지난 7월, 전라좌수사 이순신의 책상 위에 비변사의 비밀문서 한 장이 도착했다. 이제 왜란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졌지만, 그 대응방법에는 왈가왈부하였다.
“왜적은 바다에 강하니, 수군을 폐하고 육지에서 싸우라!”
그 한 줄은 곧 나라의 숨통을 비수처럼 옥죄는 칼날이었다. 전쟁은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집중하여 적을 굴복시킴에 있는데, 그 수단 하나를 없애는 것은 패배의 길을 걷는 것이다. 순변사 신립의 상소에는 더 섬뜩한 문장이 들어 있었다.
“과연 수군이 필요합니까? 힘을 모아야 하니 육전으로 돌려야 합니다.”
이순신은 그 한 줄을 읽는 순간, 가슴이 무너지고 손끝이 떨렸다. 칼보다 먼저 무너지는 것은 언제나 방패로서의 이성, 곧 나라의 판단이었다. 수루엔 바람이 스산히 불어왔다. 바다는 잠들지 않았다. 그는 붓을 잡고 붓끝에 힘을 주었다.
“바다로 들어오는 도적은 바다에서 막아야 합니다. 수군을 없앤다면, 조선의 바다는 한순간에 적의 손에 떨어질 것입니다.”
이 상소문 속의 짧은 한 구절, 그러나 그것은 시대적 위기를 맞아 반대와 음모 속에서 곧 학익진의 서곡이자, ‘불가능’을 향한 한 인간의 결연한 선언이었다.
이순신은 임금에게 글을 올리고 난 뒤 며칠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병사들의 노를 젓는 소리, 바위에 부딪히는 바닷물결의 리듬이 머릿속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파도 속에서, 사람의 마음속에서,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전쟁의 혼돈에 대비하여 새로운 질서를 찾아내야 했다.
‘바다는 육지와 다르다. 육지는 길이 있으나, 바다는 길이 없다. 그러나 없는 길을 만들어야 한다.’
그는 어금니를 부딪치며 등잔불 밑에서 지도를 펼쳤다. 다도해 남해의 물길, 조석과 조류의 흐름, 하루에도 수십 번씩 지도를 접었다 폈다. 수루에는 칼 대신 붓을 들고 싸우는 장수의 전쟁터다.
“체암(遞菴)! 판옥선으로는 왜적선과 싸워 이길 승산이 얼마나 될까요?”
“아다께부네(安宅船)와 엇비슷하다고 보면 승산도 비슷하지 않을까요? 이기고 지는 것이 전쟁에서는 늘상 있는 일이라고 하니까요? 다만 왜놈들이 바다에 더 익숙하니 …”
“그것으로는 안 되겠어요. 전투에는 목숨이 달렸고, 나라의 운명이 달렸는데, 싸우면 반드시 이겨야 해요. 아다께를 능가하는 묘수를 찾아내야겠어요. 무슨 새로운 배, 전혀 새롭지는 않더라도, 지금까지와는 매우 다른 무엇, 없겠소?”
“장군! 말미를 좀 주시오! 좀 더 찾아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전라좌수사 이순신과 군관 라대용과의 대화는 매우 진지했다. 사흘 지나 또 만났다.
“체암 장군! 좋은 자료가 있던가요? 어떤 묘안이라도 … ?”
“실망할 것 없습니다. 비록 전해오는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만, 선박에 창을 꽂는 창선(槍船)이니 과선(戈船)과 양날 칼을 꽂은 검선(劍船)이 있긴 한데, 기본적으로 판옥선을 능가하기는 어려워요. 그러나 판옥선 구조에 갑판을 하나 더 얹어서 그 위에 거북 등처럼 둥글게 덮개를 씌우면, 판옥선처럼 노꾼과 포꾼이 분리된 채 마음대로 활동할 수 있어 운용하기에 더 편리할 겁니다.”
“그래요? 훌륭한 착상이예요. 그러면 적어도 3층 구조가 되고, 함교까지 치면 4층이 되는군요. 거기다가 내 생각을 보테면, 이물에는 미르머리[龍頭]를 달고, 그 아가리로 철환을 쟁여 치쏘면 하나의 포대가 되지요. 둥근 덮개의 갑판에는 쇠송곳[錐刀]을 꽂아 거적을 깔아놓으면 만약에 백병전이 일어나더라도 왜적이 배 위에 올라오면 찔려 다치도록 하기 때문에 그들이 함부로 배에 오르지 못할 것이오. 게다가 특히 배가 뒤로도 갈 수 있도록 노를 끼우는 둥근 쇠못 노좆을 하나 더 꽂으면 노를 돌려 노 중간의 노좆에 걸리도록 파인 구멍 노씹을 걸기만 하면 되니, 앞으로 가던 배를 돌리지 않고도 뒤로도 아주 편리하게 운행할 수 있지요. 또 거북선은 안에서는 바깥을 볼 수 있어도 밖에서는 안쪽을 볼 수 없으니, 왜적은 안달이 나겠지요. 그놈들에게 얼마나 거북하겠어요. 그러니 거북함[龜艦]이라 불러도 좋겠어요.”
“장군! 이제 거북선, 아니 거북함이 머릿속에 대충 설계가 되었습니다. 바로 당장 구체적으로 설계하여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반년은 더 걸리겠지요?”
“좋소! 어쨌든 빨리 만들어 시운전하고 훈련해보면 그 결함을 더 찾아봅시다. 왜적이 쳐들어온다는 말이 흉흉하니, 시간이 촉박하여 참으로 걱정이오!”
거북선 건조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라대용은 군관에서 빈자리 발포권관을 임시로 맡았다.
어느덧 1년이 지나자, 임진년 1592년이다. 왜적들이 침입해올 것이라는 소문에도 도리어 사람들의 생각은 으레 하는 말로 여기고 경계심이 무뎌져 가는 것 같았다.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 나서 활 다섯 손을 쏘았다. 2월 8일 정오에 거북함에 쓸 돛베 스무아홉 필을 받았다. 벚꽃이 허벌나게 피었지만, 느껴볼 시간이 없다. 서울 갔던 진무 리언호가 와서 좌의정 류성룡의 편지와 “증손 전수방략(增損戰守方略)”이라는 책을 가지고 왔다. 이 책을 밤낮을 잊고 읽어보니, 수전·육전·화공전 등 모든 싸움의 전술을 낱낱이 설명되어 있다. 참으로 훌륭한 책이다. 왜적의 침범이 코앞에 다가오니, 마음만 자꾸 긴장되고, 몸이 불편하여 아침내 누워 앓았다. 4월 11일 아침에 흐리더니 저녁나절에 맑았다. 공무를 본 뒤에 활 열다섯 손을 쏘았다. 순찰사의 군관 남한이 순찰사 리광의 편지와 별록을 가져 왔다. 이날에 비로소 거북함에 쓸 베로 돛을 만들었다. 이튿날 아침식사를 한 뒤에 거북선 시운전에 들어갔다. 세운 돛대에 돛베를 올리고 내리기를 반복해보고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 거북함의 지자포·현자포를 쏘았다. 2층에는 노를 젓고, 3층에는 대포를 쏘는 훈련도 겸하였다. 미르아가리로 현자철환을 쏘아봤다. 자신이 생겼다. 순찰사의 군관 남한이 이 사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잘했다며 칭찬하고서 갔다.
그리고 특별한 비법, 또 하나의 싸워서 이기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은 거북선을 포함한 전투함 판옥선을 어떻게 운용해야 할 것인가다.
전략에 밝은 군관 송희립에게 물었다.
“신중(信仲)! 그대는 우리의 거북선과 판옥선으로 어떻게 운용하면 피해를 입지 않고 왜놈들을 이길 수 있겠소? 좋은 방법이 없겠소?”
“어려운 해법이군요. 전통적으로 여러 전투진이 있으니, 일단 그것으로 쓸 수밖에요.”
“아니오! 그것으로는 이길 수 없어요. 이미 왜적들도 알고 있으니까요. 전쟁은 나라의 운명이 달렸는데, 따로 특별한 비법이 있어야 하오!”
이순신은 창과 칼 따위로 맞싸우는 백병전의 한계에 고민했다. 그 한계를 극복해야 왜적과 싸워 이길 수 있을 텐데, 좋은 방법을 일단 총통의 특성, 특히 화약을 쟁여서 탄알을 쏘아 더 잘 맞히는 독특한 활용방안을 구상했다.
이순신은 마치 도원결의를 한 듯 라대용과 송희립의 머리를 빌렸다. 그 탄알에는 무겁고도 강력한 파괴력이 있는 대장군전 등이 있고, 무쇠로 둥글게 만든 철환도 있고, 비격진천뢰니, 큰 돌을 요강 만하게 깎아 만든 단석도 있고, 새알 크기 자갈의 조란환도 있다.
문제는 총통은 무거워 좌우로 돌리거나, 아래위로 높이를 조종할 수 없어 표적 맞추기 어려운 게 가장 큰 결함이라 생각했다.
조총은 개인휴대의 소총이고 마음대로 겨누어 쏠 수 있는 장점이 있음에 비하여, 선회와 고각의 조종이 불가능한 대형총통을 그렇게 가능하게만 한다면, 이들을 무력화할 수 있으니, 대형총통으로 잘만 맞추면 충분한 승산이 있음을 알았다. 선회와 고각을 어떻게 하면?
그런데 그 방법은? 생각이 날듯하면서도 언뜻 떠오르지 않았다. 적바림으로 ‘불가능!’이란 글자를 탁자 위에 써 놓고 골똘히 생각했다. 가위눌리듯 눈꺼풀이 스르르 닫히는 순간 똥파리 한 마리가 날아갔다.
탁자 위에 적힌 글자에 점[●] 하나 찍혔다. ‘불●가능!’이다. 이게 뭐야! 아하! ‘불처럼/불같이 하면 가능하다?’ 이제야 깨달았다. 불같이 타오르는 열정을 태워야 가능하다는 게야!
한산도의 밤은 근심에 더욱 깊어져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한참을 생각했다.
바둑판을 펼쳐놓고 지난밤 전라우수사 리억기와 두었던 바둑을 복기해봤다. 이길 바둑을 졌으니 다음에는 반드시 이겨야지 하는 생각에 바둑알이 기러기로 보였다가 두루미로도 보였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니 그게 판옥선으로 보였다가 안택선으로도 보였다.
그때였다. 그의 눈앞에 한 무리의 기러기 떼가 날아갔다. 저녁노을에 또 두루미들이 반원을 그리며 바다 위를 가르고 있었다. 가운데가 비고, 양쪽 날개가 길게 펼쳐진 모양. 그 순간, 이순신의 눈빛이 전광처럼 번쩍였다.
이제야 생각났다며 무릎을 탁, 쳤다. ‘바로, 저것이야!’
좌우로, 아래위로 움직일 수 없는 것 저 머저리 같은 총통들을 저 새들처럼, 날개처럼 벌려 세우면 그 앞에 초점이 생기니, 이를 왜적으로 보고 맞춘다!
그날 밤, 하늘을 향해 조용히 읊조리다가 일기장에 한 줄 써 내려갔다.
‘이기는 싸움이 곧 살아남는 싸움이요, 적을 이기는 것은 나를 이기는 것이요, 바다를 이기는 것은 배를 부리는 마음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면 배는 이미 가라앉은 것이나 다름없다. …’
그의 붓끝은 이미 바다 위에서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것은 단지 전술의 선이 아니라, 불가능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내는 한 인간의 고뇌에 찬 의지, 승리를 목표한 그 자체였다.
그러나 그 진법은 단순한 여느 전술이 아니다. 그에게 학익진은 하나의 깨달음, 곧 불가능을, 마치 역주행 같은, 특유한 질서로 바꾸는 가능성의 사유였다.
는개가 걷히자 안개도 사라지며 첫 햇살이 비치는 그날 새벽, 잠 못 이룬 토막잠도 숙면처럼 깨어나자, 하늘에 떼 지어 날아가는 기러기, 한산섬 앞바다 두루미 모습을 보고서는 머릿속의 진형들이 바둑판 위에서 번개처럼 그려졌다.
‘허허! 저 새들도 무슨 전쟁이 벌어졌나? 어디, 싸우러 가는가? 하늘에서도 저런 행군을 …? 나라가 어지러워 나처럼 살아가기가 힘든가 보다. 흐흠.’
학익진! 이걸 실제 함대운용에 적용한다면? 불같은 노력이 이마에 땀으로 흘렀다. 매뉴버링 보드라는 기동판에 올려 계산해보았다. 시간·거리·속도를 산출해내는 기법, S=VT이다.
전투 진형의 가장 멀리 끝에 있는 익단함도 작전속력 2노트(3.7㎞/h)라고 하더라도 단지 15분 안팎으로 걸리니 이야말로 획기적이다.
전라우수사를 불러 다시 바둑을 두었다. 지난날 졌던 바둑에 대한 복수랄까? 여하튼 그런 마음보다도 속마음은 왜적과 싸워 이기는 비법을 고안해내고, 이를 간단히 검증해본 결과 승산이 있음을 듣고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경수 장군! 당신은 참으로 바둑을 잘 두는군요. 어디 내가 당할 수가 있어야지. 오늘은 반드시 내가 이길 것이오.”
“허허! 그럼 두고 봅시다. 오늘 장군께서 또 지시면 한 턱 내셔야 해요!”
“글쎄요. 한턱을 누가 낼지, …”
“당연히 장군께서 …”
“경수 장군! 오늘은 바둑판 앞에서 내 말 들어보시오! 정말로 중요한 할 말이 있소.”
리억기 장군은 바둑알을 집었다가 그 자리에 놓으면서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어서 말해보라고 채근했다.
“으흠! 왜적은 멀리서는 조총을 쏘다가 우리 배에 올라 창과 칼로 백병전을 하잖소? 이를 제대로 당해내지 못하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겠소?”
“글쎄요. 무슨 좋은 방법이 있는 모양인데, 어서 말씀이나 해주시오.”
“그래서 말인데, 그 백병전을 아주 그냥 무력화할 수 있는 비법이 있어요.”
리억기 장군은 이 말을 듣자 신기하여 무척 안달이 났다. 눈은 바둑판에 가 있지만, 바둑알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바짝 신경을 곤두세워 “허허! 뜸 들이지 말고 빨리 말해주시오!”라고 다그쳤다.
“보채지는 마시오! 저기 날아가는 기러기 보이죠? 바다 위에는 두루미가 떠 있고요. 저 날개 펼쳐 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시오! 무슨 생각나는 것 없소?”
“뜬구름 같소이다. 내 말보다야 장군의 말부터 들읍시다.”
“두루미 학의 이름을 따서 ‘학익진’이라 붙여봤어요. 육군에서는 이를 ‘일자진(一字陣)’이라 하지만, 나는 느슨한 ‘∨자 꼴의 학익진’이라, 이대로 왜적선을 앞에 두고 우리 배들이 쭉 벌여서 대포를 쏘아대면 대포들의 화력이 집중되어 왜적은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되는 거지요. 안 그렇겠소? 이게 바로 내가 생각한 함포전이오!”
“학익진에 함포전? 우와! 듣고 보니 이야말로 ‘영재탁식(英才卓識)’이오.”
“그런 생각이 들지요?”
“함포전이라면 대개 지중해의 레판토 해전을 들먹이지만, 그건 1571년 10월의 일이고, 해도원수 정지 장군이 1383년 5월에 남해 관음포 해전 때에 왜적선을 물리친 비법으로서 세계 처음으로 함포전을 했었지요.”
“경수 장군은 아는 것도 많소그려. ‘내 할 말을 사돈이 한다’는 말처럼, 그게 바로 내가 하려던 말이었소. 유럽보다 188년이나 앞선 바로 그 비법을 우리가 다시 찾아 새로운 전투대형으로 만들어 써 보는 거예요.”
나는 바둑알에다 기함인 좌선(座船)을 가운데 두고, 예하 지휘관의 이름을 오방색(五方色)에 따라 중앙에 황색, 오른쪽에 청색, 앞쪽에 적색, 왼쪽에 백색, 뒤쪽에 흑색을 각각 써 붙였다.
각 배들이 깃발의 색깔대로 옮겨가 목표물에 대하여 동시에 화력을 집중함에 있다.
종렬의 장사진에서 일자진으로, 횡렬의 일자진에서 학익진으로, 쐐기꼴의 어린진에서 거꾸로 세운 학익진으로 이동해 가며 펼쳐지는 모습을 설명했다.
그것도 새 진형으로 옮겨가는 그 이동 소요시간이 15분 안팎이니 이것은 바다 위에서는 순식간이란 말이 더 적절할 것이다. 게다가 적군을 무력화시키는 가장 적합한 병법을 개발한 것이다.
이를 두고 삼류소설에서는 ‘신출귀몰’이란 말을 쓰겠지만, 오늘은 ‘신의 한 수’로 족하다. 귀신 같은 공격법, 왜놈들에게는 황천길이다.
“장군! 제갈량인들 이런 생각 했을까요? 나도 긴가민가 의심했고, 생각도 미처 못했던 걸요. 이로써 우리는 이제 기적을 이루는 거예요!”
“그럼요. 지휘관들을 모이게 하여 내가 설명하면 어떻겠소?”
“당연히 지휘관들을 다 모이게 하여 알려주고 이 비법대로 전투에 쓰도록 합시다.”
“그럽시다. 경수 장군! 혹시 모르니 보완할 게 있을지 생각 좀 해주시오!”
이렇게 하여 학익진을 왜적선과 싸울 때마다 지리적 조건이 넓어서 어울리기만 하면 썼다. 왜적선을 가까이 두지 않으니 백병전은 무용지물이 될 테고, 우리는 피해가 적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왜적은 아다께를 비롯한 싸움배들이 조총의 사정거리를 벗어난 200m보다도 훨씬 바깥에서 힘써 싸워보지도 못하고 깨지고 부서지는 꼴이다.
이순신은 병사들에게 새로운 훈련을 명했다. 한 척 한 척의 배를 학의 날개 끝처럼 이어 움직이며 조류와 바람, 거리와 속도를 몸으로 익히게 했다.
처음에는 엉켜 부딪히고, 방향을 못 찾는 배들이 서로 부서지기도 했다. 그러나 물살 흐르듯 배들이 서서히 하나의 호흡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바다가 그들을 받아 안는 듯, 그들의 진형은 물결과 함께 살아 움직였다.
견내량과 안골포에서 이겼던 한산대첩 때에 가장 유효하게 적용했다. 그때 전라좌수사 이순신이 직접 말한 통쾌한 장면을 읽어보자.
우리 배는 짐짓 물러나는 척하면서 돌아 나오자, 왜적들도 줄곧 뒤쫓아 나왔습니다. 그래서 바다 가운데로 나와서는 다시금 여러 장수들에게 명령하여 학익진을 벌려서 한꺼번에 진격하여 각각 지자‧현자‧승자 등의 각종 총통을 쏘아서 먼저 2‧3척을 깨뜨리자, 여러 배의 왜놈들이 사기가 꺾이어 물러나 달아나려 하였습니다. 그때 여러 장수와 군사와 관리들이 이기는 틈에 기뻐하면서 앞다투어 돌진하면서 대전(大箭)과 철환을 마구 쏘니, 그 형세가 바람과 우레 같아, 왜적선을 불태우고, 왜놈을 죽이기를 한꺼번에 거의 다 해치워 버렸습니다.
이 얼마나 통쾌한 말인가!
그 끝자락에 ‘왜놈을 죽이기를 한꺼번에 거의 다 해치워 버렸다’라는 말을 곱씹어본다. 가슴 뭉클해지는 이 대목에서 맞서 싸웠던 왜적의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가 “가장 두려운 사람,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이란 독백이 생각난다.
뒷날 당항포해전 때에도 학익진을 써서 이겼다. 이것이 거북함을 창제하여 백병전으로는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한, 반드시 이길 수밖에 없는 함포전이다.
임진왜란 해전의 결과를 보면, 통틀어 146일에 걸쳐 45곳 가운데 이순신이 지휘한 날이 132일 동안 모두 40곳에서 싸워 다 이겼으니, 역시 모두 ‘불세출의 영재탁식’에서 비롯된 결과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토록 두려워했던 처음 옥포대첩부터 장병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태산처럼 행동하라!’ 했던 말에서 보면, 곧 함포전으로 싸우면 반드시 이긴다는 자신감이 빚어낸 승리였다.
일본의 자랑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지휘한 연합 함대가 러시아의 로제스트벤스키 제독이 이끈 발틱 함대와의 대마도 해전에서 크게 이긴 것은 학익진을 응용하여 만든 T-자 전법이라고 하잖는가. 발틱 함대는 전투진형이 앞뒤로만 포격할 수 있었고, 일본은 옆으로 늘어서서 일제히 포격할 수 있었으니, 화력집중에서 큰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도고가 충무공의 전략·전술, 특히 학익진을 깊이 있게 연구한 결과에서 나온 것이다.
꿈에도 그리던 전통무기가 이제 다 만들어졌다. 발사시험 요원을 12명으로 정했다. 주형렬 갑판상사에게 실무 책임을 맡겼다. 트럭에 모두 싣고 해군과 해병은 누구도 빠짐없이 거쳐 간 덕산 소총 사격훈련장에 갔다.
먼저 왼쪽부터 2m 간격으로 각각 크기대로 총통의 발사대인 동차를 놓고서 그 위에 가장 큰 대포인 천자총통부터 구경이 작은 지자·현자·황자 순서로 각각 얹어 놓았다. 원형경기장에서 사자와 싸우는 검투사 모습이 떠올랐다.
먼저 천자총통의 심지 구멍에 길이 15㎝ 되는 심지를 꽂고, 그다음에 포구 쪽으로 흑색화약을 밀어 넣었다. 그다음에 화약폭발력이 새어나가지 않게 막아주는 격목을 막대기로 밀어 넣고서 힘껏 다졌다. 그다음에 대장군전을 포구에 꽂았다. 포신이 과녁 쪽으로 향하고 있는지를 확인하였다. 이것이 대포를 발사하는 요령이다.
이제 심지에 불을 붙이면 과녁까지 날아가게 되어있다. 여기서 나는 총통발사 시험 요원들과 내기를 했다. 피사체가 과녁까지 날아갈까 하는 것에는 모두 웅성웅성 해대며 ‘날아가지 않는다’는 말이 건 듯 들려왔다. 그들 책임자로 내세운 주형렬 상사가 나를 빤히 쳐다보면서 말했다.
“저가 이 발사시험 요원에 뽑혀 들어온 것은 ‘까라면 깐다’는 군대이기에 명령대로 왔습니다. 여기 있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집니다. 그래도 이건 아니라고 봅니다. 아무리 옛날에 사용했던 무기라고는 하지만, 대장군전의 경우 길이가 2m가 훨씬 넘고 무게가 내 몸의 절반에 가까운 50근으로 30㎏이나 되어 혼자서 들기에는 어림도 없고, 장전하기도 힘들었는데, 겨우 주먹만큼 되는 적은 화약 380g의 폭발력으로 어찌 날려 보낼 수가 있단 말입니까?”
군대에서 단련된 다부지게 생긴 체격에다 눈빛이 살아있고 책임감이 강한 그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만도 하다. 사실 나 자신도 긴가민가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금까지 전통무기 가운데 어느 하나인들 발사되는 장면을 누구도 본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래요? 그럼 짬밥 제일 많이 먹은 고참 박 수병! 자네 생각은 어때?”
“저요? 에이! 이게 어떻게 날아갑니까? 무게 30㎏ 저 정도쯤이야 하면서 대장군전을 몰래 혼자 들어봤는데, 굴리기야 했지만 어림도 없더군요. 그러니 주 상사님 말처럼 안 날아갈 거라 봅니다.”
다들 이 말에 ‘그럼 그럼’ 하면서 동조하는 편이었다. 나는 이런 말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그러나 나는 전통무기 복원과 실험의 책임자로서 큰소리쳤다.
“그래요? 그럴 것도 같지만, 나는 충무공을 믿는다. 임진왜란에서 해전마다 총통을 쏘았고, 함포전으로서 왜적선을 물리친 역사로 보아 오늘 전통무기 발사시험은 비록 우리나라에서 처음이지만 분명 성공할 것이다. 만약 여러분의 말대로 실패한다면, 그 벌로 내가 오늘 저녁에 여러분에게 막걸리를 코가 비뚤어지도록 대접하겠다.”
“부장님! 좋습니다. 그 약속, 지켜야 합니다! 딴말 없깁니다?”
나는 큰소리치며 자신감을 보였지만, 화약전문가의 말대로 화약량이 수치로만 1/3씩이니, 그래도 확신이 서지 안아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모두 5m 바깥에 임시로 쌓은 사낭벽 뒤로 안전하게 대피시켰다. 나는 천자총통의 대장군전을 과녁 방향을 확인하고, 심지에 불을 붙였다. 모두 귀를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서 천자총통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를 좀 길게 했기에 심지가 타는 시간이 15초쯤 걸렸다. 심지가 타는 소리가 “시지시 지지직” 하며 타들어 갔다.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는 순간,
“콰앙~”
대장군전이 과녁 쪽으로 날아갔다. 곰메의 천자봉이 흔들거리는 느낌이 들었다. 500m쯤 되었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우와! 우와! 저게 날아갔어. 날아갔어. 우와!”
“봤지! 봤지! 우와 대단해요.”
다들 어리둥절한 모습이고 나도 놀랐다. 이어서 나는 지자총통을 발사하겠다고 말하면서 똑똑히 보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 지자총통의 장군전의 방향을 확인하고 같은 방식으로 불을 붙였다.
“콰앙~”
장군전이 날아갔다. 600m쯤이다. 모두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천자총통보다 100m쯤 더 날아간 것을 보고는 신기해 했다.
“우와! 장군전도 날아갔어! 좀 가볍기는 하지만 대단해요!”
“여러분! 보았지요? 오늘 발사시험은 앞으로 더 보나 마나 성공입니다.”
대원들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모두 흥분하여 “우리는 해군이다 바다의 방패 죽어도 또 죽어도 겨레와 나라 …”라는 <해군의 다짐> 군가를 팔을 흔들며 불러댔다. 노래가 끝날 때까지 쉬었다가 현자총통을 발사시험 하겠다고 외쳤다. 현자총통에 차대전과 황자총통에 피령전도 같은 요령으로 불을 붙였다.
“콰앙~ 꽈앙~”
다 같이 500m 날아갔다. 이어서 별황자총통 발사시험에 들어갔다. 발사대가 동차가 아니라 삼각지지대이고 아래위 좌우로 선회가 가능하기에 일단 로프로써 고정해놓고 심지에 불을 붙였다. 15초가 지났다.
“꽈앙~”
철령전도 500m쯤 날아갔다. 모두 박수에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사격장의 적막은 발사시험으로 잔잔한 바다 위를 회오리바람이 지나간 것 같았다.
“오늘, 여러분 수고하셨어요. 우리의 발사시험은 모두 성공하였습니다. 다만 사정거리가 생각보다 짧게 나온 것은 그 원인을 찾아보면 될 것이고, 앞으로 완벽하게 성공할 것입니다. 오늘 약속을 지키면 여러분께 술을 대접 못하지만, 성공한 기분으로 오늘 저녁식사와 막걸리 대접을 내가 하겠습니다.”
이렇게 처음으로 전통무기 대형총통의 발사시험은 성공적이었다. 곧바로 직속상관 황동환 발굴단장과 류세남 사관학교장에게 전화하여 발사시험을 성공했다고 보고하니, 가보겠다고 했다. 30분이 지나자 몇몇 참모들을 대동하고 온 사관학교장에게 전통무기 발사시험 과정을 설명하고서 계획대로 발사하였다.
“콰앙~ 콰앙~ 콰앙~ 꽈앙~ 꽈앙~”
전통무기 총통의 발사시간을 처음 실험 때보다 줄여서 발사했다. 폭발음이 연이어 나니 마치 영화의 전쟁터에서 대포 소리를 듣는 것처럼 옥포대첩이 떠올랐다. 사정거리는 모두 처음 발사시험 했던 것과 똑같이 500~600m였다.
“여러분 수고했습니다. 총통의 발사시험이 드디어 성공했군요. 역시 충무공은 위대하며, 존경심이 돋보이는 증거예요. 임진왜란 승리의 비밀이 여기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습니다. 여러분 고맙습니다.”
류세남 교장의 현장의 짧은 격려의 말은 나에게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나의 어깨를 툭툭 치고서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사격장에서 떠났다. 그동안의 입술이 부르트며 쌓인 피로감이 씻은 듯이 사라지고 한결 어깨가 가벼워졌다.
총통의 발사시험은 순조롭게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동안 얼마나 마음 졸이고 피 말리는 걱정을 했던가. 왜적선을 맞추어 침몰시키는 피사체가 자신의 무게를 날려 하늘을 가르고 멀리까지 날아가던 그 순간, 나는 400년 전의 이순신 장군을 만난 듯한 짜릿한 전율과 쾌감을 느꼈다. 충무공의 자신감이 바로 이것! 하는 생각까지도.
1994년 8월 5일에 해군사관학교에서 거북선발굴을 위한 국제학술 심포지엄이 개최됐다. 그날 오후에 연병장에서 전통무기 대형총통 시범을 하기로 했다. 외국인으로서는 일본의 기타지마 만지 박사가 참석하였다.
연병장 경사면의 바다 왼쪽에는 실물 크기의 거북선 모형이 계류되어 우리를 보고 있다. 바다 위에 500m쯤 거리에 표적을 사방 5m 크기의 천으로 만들어 세워두었다. 드디어 전통무기 대형총통 발사시범을 보였다.
나는 긴장되어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냉수를 마시며 긴장을 풀고 참관인들에게 총통 성능을 간략히 설명했다.
그러고 나서 천자총통부터 10초 간격으로 발사했다. 각각으로 장전한 피사체가 우렁찬 소리와 함께 표적을 향하여 날아갔다.
비록 표적을 맞히지는 못했지만, 그 표적 가까이에 벼락처럼 떨어졌다.
이때 일본인 학자 기타지마 교수는 얼굴이 무척 창백해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몸이 불편하시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하면서 약간의 떠듬거리는 소리로,
“총통의 피사체가 날아가는 모습 직접 보고 나니 큰 충격 바다수무니다. 조총으로는 당할 수 없는 무기임에 분명하무니다. 참으로 충격적이무니다.”
나는 기타지마 박사가 충격을 받았다는 말에 “그러세요?”라며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그때 가까이에서 듣고 있던 최영희 자문위원이 나를 불렀다.
“저번에 전통무기를 재현하겠다는 말에 부정적으로 말했던 것 사과하네.”
“아닙니다. 사실 저라도 그렇게 말했을 겁니다. 다만 임진왜란의 승리 요인이 총통에 있을 것이란 막연한 생각을 실제로 확인한 것뿐입니다.”
“그게 대단한 발상이고 발전적 연구 자세예요. 오늘이 역사적 순간이오.”
이런 대화가 오갈 때 이장희 자문위원이 나의 어깨를 툭툭 치면서, 친하다는 표현으로,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수고했어요. 대단한 경험이예요. 임진왜란 승리의 결정적 요인은 총통의 위력임이 판명 났어요. 나는 새도 맞춘다는 조총을 무색케 한 대단한 위력이오.”
“그렇게 평해주시니 고맙습니다.”
뒤이어 허연 머리칼에 중절모를 눌러 쓴 육군사관학교 박물관장을 역임했던 이강칠 자문위원은 “여~! 오늘 멋진 광경을 보았소이다. 필승의 정신전력도 중요하지만, 우수한 무기체계가 승리의 결정적 요인임에 비로소 확신한 기회였어요. 무척 감동했소.”
역사는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 그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쳤다.
이토록 대단한 위력의 총통을 가진 조선 수군이, 만약 대마도와 일본 본토로 진격했더라면 어땠을까. 그 침략 책임을 묻는 차원에서도, 그랬어야 더 마땅하지 않을까. 아마도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은 그 가능성을 마음 한켠에 깊숙이 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노량의 바다에서 전사했고, 그 야망은 끝내 실현되지 못한 채, ‘미완의 임진왜란 종결’로 역사 속에 남았다.
그가 가장 열악했던 명량해전 직전에 외쳤던 “죽고자 하면 살리라.”
그리고 마지막 순간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단 말을 하지 말라.”는 유언.
그 말들은 무엇을 뜻하는가.
죽음의 순간에도 싸움을 멈추지 않고 이겨야 한다는 마음, 그 속에는 통념의 전쟁이론을 넘어선 어떤 비밀스러운 야욕의 의지가 숨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맹세하며 같은 하늘 아래 함께 살지 않기로 했던 그 일본을 무력화시키고, 나아가 침략의 근원, 악의 뿌리를 끊어내겠다는 결연한 의지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죽음은, 그 의지를 실현할 기회를 잃은 슬픔이었고, 피와 땀을 함께 흘린 부하들에게 남긴 미안함의 고백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라는 명령으로 마지막 유언이 되었겠는가.
끝
[한맥문학 427호, 201~231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