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파랗게 운다
이서빈
외발로 서 있는 소나무 온몸이 따끔거린다
이 세상 바늘 다 소나무 몸에서 나온 것
바람 구름 안개의 모시적삼
새들과 벌나비 온갖 곤충 옷 천의무봉 솜씨로 한 땀 한 땀
손가락 곱도록 품삯 한 푼 없이 지어 계절의 온도습도 조절했다
그들의 옷 짓는 일로 일생 보낸 장인 목에
시퍼런 전기톱 소리 초승달보다 섬뜩한 날 선다
톱날에 잘려 나온 톱밥 펄펄 마지막 숨 흩날리며 땅으로 고요히 내려앉는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흐느낀다
언제 숨 잘릴지 모르는 시한부 어깨 들썩이며 운다
별빛도 파랗게 파랗게 새파랗게 울고
허공천에 지나가던 바람 파라람 파라람 운다
재선충 바글바글 덤벼 숨 멈춘 동족 보며
어둠이 지운 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구불구불 울다
목울대 툭 불거져 옹이 되도록 운다
비늘 다 벗겨져 속살 보이는 귀신 되어 운다
어려서는 강제로 사지 잘라
자신들 구미에 맞게 분재라는 죄목 붙여 화분에 가두고
자라서는 재목이라 목 잘라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을 거라고 서럽서럽 운다
멈출 줄 모르는 인간 욕심에 잘려죽고 말라죽고
생식불능 되어 소나무란 말은 닫힐 거라고
슬피슬피 슬슬피피 운다
---이서빈 외 ‘남과 다른 시쓰기 동인 시집 {새파랗게 운다}(근간)에서
시인이란 누구인가? 시인은 그의 삶의 체험(공부)과 그 체험에서 얻어낸 삶의 지혜로 인간의 마음을 자극하고 새로운 인간으로 탄생하게끔 만들어준 전인류의 스승이라고 할 수가 있다. 시인은 언어의 창조주이자 그 언어의 사원을 짓는 명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이 세계는 시인의 언어로 창조된 세계이며, 이 세계는 시인의 몸(바늘-언어)으로 짜여진 세계인 것이다.
시인은 외발로 서 있는 소나무와도 같고, 자기 자신의 바늘에 찔려 온몸에 따끔거리는 상처를 갖고 산다. “이 세상의 바늘이 다 소나무 몸에서 나온 것”이고, “바람 구름 안개의 모시적삼/ 새들과 벌 나비 온갖 곤충 옷”들을 “천의무봉 솜씨로 한 땀 한 땀” “손가락 곱도록 품삯 한 푼 없이” 직조해 왔던 것이다.
하지만, 그러나 모든 인간과 생명체들이 다 사망선고를 받았고, 경제학에 기초를 둔 인공지능(AI)의 시대가 도래하게 되었다. 언어의 태양, 언어의 달, 언어의 별, 언어의 대지, 언어의 바다, 언어의 숲, 언어의 사막, 언어의 새들, 언어의 동식물들, 언어의 대평원과 언어의 대빙하들이 다 붕괴되고, “아름드리 소나무”와 시인들이 “언제 숨 잘릴지 모르는 시한부 어깨 들썩이며” “새파랗게 운다.” “시퍼런 전기톱 소리 초승달보다 섬뜩”하고, “별빛도 파랗게 파랗게 새파랗게” 운다. “재선충 바글바글 덤벼 숨 멈춘 동족 보며/ 어둠이 지운 해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라고 구불구불” 운다. “목울대 툭 불거져 옹이 되도록” 울고, “비늘 다 벗겨져 속살 보이는 귀신되어 운다.” “어려서는 강제로 사지 잘라/ 자신들 구미에 맞게 분재라는 죄목 붙여 화분에 가두고/ 자라서는 재목이라 목 잘라/ 이제 더 이상 살 수 없을 거라고” 서럽게, 서럽게 운다.
돈과 명예는 같은 무대에 설 수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돈과 인간의 관계는 불구대천의 천적관계이며, 우리 인간들의 일에 돈이 개입되면 그 모든 역사와 전통과 이 세상의 삶의 지혜와 인간 관계가 다 파탄이 난다. 돈은 배신과 음모와 사기와 살인과 강도짓 등을 다 사주하는 것은 물론, 전쟁과 내란과 수많은 살생과 생태환경의 파괴까지도 다 연출해낸다. 돈은 악마의 화신이자 모든 불행한 사건의 연출자이며, 이 돈의 맛에 중독되면 그 어떤 수치심과 도덕성도 다 없어지게 된다. 돈은 자본주의에 기초해 있고, 자본주의의 경제학은 시인과 인간의 목을 비틀고 서정시와 인문학의 싹을 다 잘라버린다. 국가와 사회와 회사의 조직체도 다 무너졌고, 학교와 군대와 병원의 조직체는 물론, 가정과 부모형제와 이웃과 친족의 관계도 다 무너졌다.
인간은 어디에서 태어났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 돈으로부터 태어나서 돈의 노예로 살다가 돈의 화장터로 가게 된다. 돈이 없으면 산부인과에서 태어날 수도 없고, 돈이 없으면 학교 교육과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도 없고, 돈이 없으면 요양원과 요양병원과 화장터에도 갈 수가 없다. 장수만세의 세상은 사는 비용보다도 은퇴 이후 요양원과 요양병원, 그리고 아무런 연고도 없이 화장터에서 소각되기까지의 죽는 비용이 더 많이 드는 세상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자식도, 마누라도, 손자도 필요가 없고, 단 한 푼의 유산도 남기지 않고 다 쓰고 화장터로 가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의 지상명령이라고 할 수가 있다.
자유와 평화와 사랑의 합창 대신, 고소-고발의 소송전의 찬가가 울려 퍼지고, 임전무퇴와 초전박살의 정신이 모든 시민과 군인과 국회의원과 대통령의 의식과 무의식을 가득 채운다. 무서워하는 사람과 무서워하는 사람만이 모여서 우울증과 정신분열증을 앓으면서 새파랗게 운다.
황금알을 낳던 거위가 울고, 봄부터 가을까지 꽃 피고 열매를 맺던 산천초목이 울고, 만지는 것마다 황금이 되게 해달라고 빌던 미다스 왕(자본가)이 운다. 헐벗은 산, 헐벗은 들, 오폐수로 가득한 강과 호수와 바다, 이상 고온과 이상 저온 등, 우리 자본가들의 욕심에 “잘려죽고 말라”죽은 생명체들이 새파랗게 운다.
시인은 언어의 창조주이자 언어의 명장이며, 영원한 전인류의 수호신이다. 이제 이서빈 시인과 늘 푸른 소나무들도 병이 들었고, “언제 숨 잘릴지 모르는 시한부 어깨 들썩이며 운다.”
돈, 인공지능, 장수만세----, 지구촌 전체가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천국이 되어가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재선충같은 독충들만이 득시글 거린다.
새파랗게 운다. 무섭다.
이서빈 시인은 최후의 단말마의 비명 소리--[새파랗게 운다]가 지구촌을 덮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