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글은 몇 년 전부터 반재경 전도사님이 작성한 글로, 매년 교정 및 첨삭하여 올리고 있습니다. ]
우리의 삶을 주님께 헌신할 때(온전히 맡길 때), 우리는 '앞으로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다짐은 그 자체로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을 위해 살 때 누구의 능력으로 사는가, 그것이 문제입니다. 내 인간적 능력으로 주님을 위해 살려고 할 때는 많은 한계에 부딪힙니다. 그런데 인간적인 능력이 좀 더 강한 사람들은 평균적인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잘할 수도 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공을 부지중에 자기에게 돌리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리새인들이 저질렀던 실수(?)입니다.
주님을 위해서 살지만 동시에 주님의 능력으로 사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리를 통해 사시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습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렇듯 이방인 안에도 그리스도께서 사실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감추어졌던 비밀입니다.
(골 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물가의 여인은 어디서 예배 드려야 하는지, 즉 어느 성전이 진짜 성전인지 물었는데 이제는 우리의 몸이 바로 그 성전이 되었습니다.
(고전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신약 성도의 비극은 이렇듯 하나님의 성전이 된 후에도,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이용하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마치 요술램프의 요정처럼 생각하며 필요할 때만 이용하려고 합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통해 사신다는 것은 나의 뜻보다 주님의 뜻을 항상 앞에 놓고 나 자신을 주님이 쓰시는 도구로 매일 매일 내어 드리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힘든 일이 아닙니다. 내 뜻보다 주님의 뜻이 나를 위해서도 항상, 언제나 더 좋기 때문에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더 좋을 뿐 아니라 내 삶을 위한 최고의 계획은 주님의 뜻입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을 갖는 데 도움이 되는 것 중의 하나는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온전히 내 삶을 주님께 내어드려 주님께서 내 삶을 쓰신다면 나에게 주어질 천국에서의 상급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내가 받을 상급을 위해서라기 보단, 내 주님이 나를 위해 어떠한 희생을 치르셨는지 아는 자라면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됩니다.)
천국에 가 보았다는 어떤 사람의 간증을 들었는데 '아, 저것은 정말 맞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 하나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천국에서도 성도들은 자신의 의지가 있고 결정권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곳은 타락한 세상이 아니고, 육신('몸'의 뜻이 아닌 '영'의 반대 뜻으로)이 없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의 의지와 결정권을 가지고 항상 자신들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한다고 합니다. 온전히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이 완성된 곳이기 때문에 모든 성도가 연합과 조화를 이루면서도 자신의 개성이 살아 있다고 합니다. 너무나 성경적이죠.
이 땅에서는 그것을 연습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기반으로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 성령님의 음성에 항상 귀를 기울이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세미한 음성을 따라 살 때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통해 사는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이것을 연습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