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98]남원의 숨어있는 보석 2선(마애여래불 & 암각화)
남원 대산면 출신 전각예술가가 불쑥 방문을 한 게 그제 저녁. 한밤중에 수담 몇 판을 나눴다. 다음날(목요일) 오후 2시까지는 시간이 있다기에, 당신의 고향마을(대산면 수덕리) 근처에 선사시대 암각화와 풍악산 자락에 마애여래좌상이 있다고 하던데 보고 싶다고 하자, 여러 번 가본 곳이라며 안내를 맡았다. 신계리 마애여래좌상 안내판을 따라 산길을 조금 올랐다. 누가 어느 시대에 왜 이곳에 이렇게 멋지고 우아한 마애여래좌상을 조각해 놓았을까? 사진을 찬찬히 감상해보면 감탄이 절로 나올 것이다. 보물 423호라 한다. 남원의 숨어있는 보석 10선중 하나라고도 했다.
자연 암석의 한 면을 다듬어 부처의 앉은 모습을 돋을새김해 놓았는데, 거룩하다기보다 아름다웠다. 몸둘레에 서린 빛을 줄에 꿴 구슬로 둥글게 감싸 표현한 것이 무척 이채로웠는데, 희귀한 사례라 한다. 왼쪽 어깨에 걸친 옷은 단순한 선으로 간략히 처리했으나, 얼굴은 둥글고 풍만하게, 이목구비는 생동감 있게 조각했다. 넒은 어깨, 불룩한 가슴, 통통한 팔-다리도 입체적이어서 역동적인 모습인데, 안내판에는 고려시대 대표적인 마애불이라고 되어 있다. 흠이 있다면 항마촉수인의 손가락을 누군가 잘라갔다는 것. ‘백제의 미소’라는 서산의 마애삼존불상을 사진으로는 많이 보았지만, 그 작품들에 비교해도 부족한 것같지 않았다.
한편 마애불에서 1km쯤 떨어진 길옆 컨테이너집에서 사는 거사 한 분을 만났는데, 이분이야말로 진정한 ‘자연인’이 아닌가 싶었다. 20여년 전에 이곳에서 마애불을 처음 접한 후, 산속에서 지금껏 홀로 지내며 날마다 마애불 앞에 단을 차려놓고 향을 피우며 수행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이는 70대 전후로 보였다. 스님이 아니니 재가불자라 하겠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지만 마애불 주변을 날마다 엄청 깨끗하게 청소한다고 한다. ‘마애불을 지키라’는 꿈의 계시를 받았을까, 궁금했는데 차마 직접 물어보지는 않았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만, 세상에 별 사람도 다 있듯 이상한 일이다.
다음 행선지는 대곡리이다. 전설상의 새 봉황의 먹이라는 대나무를 많이 심어 죽곡竹谷마을인데, 대곡 또는 대실마을이라 부른단다. 그리 높지 않은, 자그마한 바위가 모여 있는 봉우리 동산의 이름이 ‘봉황대鳳凰臺’인데, 그 동산 아래 ‘봉황정’ 정자가 제법 유서깊게 보였다. 봉우리 바위에 사람이나 짐승 얼굴을 묘사한 듯한 선사시대의 암각화巖刻畵가 새겨져 있다. 많이 부식되어 그림이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으나, 1991년 학계에 첫 보고됐을 때의 사진이 남아 있어 다행이다. 암각화하면 울진의 반구대 암각화를 먼저 떠올릴 것이나, 이 암각화는 호남지방의 선사시대 문화를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라 한다. 직접 올라가 만져도 보았는데 마냥 신기했다. 옛 사람들은 이런 기하학적 그림을 어떻게 그릴 생각을 했고, 무엇으로 그렸을까? 안내를 한 이 친구는 어릴 적 이 그림을 보았을 터이므로, 돌에 글자나 그림을 새기는 것이 전혀 낯설지 않아 성장하면서 독공獨工을 하여, 돌에 마음을 새겨 꽃을 피우는 재능을 발휘하는 대한민국 으뜸가는 전각예술인이 된 모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매면의 <혼불문학관> 편액도 이 친구의 작품이다. 마애여래좌상과 선사시대 암각화 안내판의 문구 그대로, 이 두 곳은 <남원의 숨어 있는 보석>임에 틀림없는 듯했다. 나머지 8선도 궁금하여 검색을 해보았다. 다음엔 교룡산 선국사 등을 가볼 생각이다.
아무튼, 오래 전부터 가보고 싶었던, 말로만 듣었던 신계리 마애여래좌상과 대곡리 봉황대의 선사시대 암각화를 보고 마을로 돌아오니, 마을회관에서 할머니들이 점심 떡국을 먹으러 오라고 손짓한다. 친구를 찾아온 타지인을 밥 먹자고 서슴없이 부르는, 우리 동네의 인심이 아직은 살아 있었다. 밥값으로 창이나 한번 하라는 나의 농담에 사양하지 않고 춘향가 한 대목을 멋지게 불러제킨 친구는 역시 ‘국악의 고장’ 남원이 고향임에 틀림없는 듯했다. 좋은 고향에 태어나고 볼 일이다. 흐흐.